학생운동을 보는 두가지 시각 - 박정희의 경우 *..역........사..*



박정희는 4.19를 높이 평가하면서 학생들의 사회 참여에 아무 이의가 없었다.

'기성 세대는 물러가라' - 이 목멘 외침은 젊은 청년 학생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겨레의 소리'이며 '시대의 소리'이기도 했다. 막다른 어려운 고비에 처한 조국의 앞길이 어둡다고 하면서도 그 어둠의 저편에 희망의 태양이 여명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진정 이 나라 젊은 세대요 청년 학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겨레의 장래를 근심하는 사람은 이 젊은 세대의 목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했고, 때로는 조잡하고 과격할 때도 있고 간혹 탈선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들의 목소리, 지축을 뚫고 들려오는 새세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 우리민족의 나아갈 길, 1962.2

그러나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되자 톤이 바뀐다.

학생 제군! 오늘날 학생들이 거리로 뛰어나와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정치 문제에 직접 개입하기 좋아하는 나라치고 잘 되어 나가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정부 물러가라, 국회 해산해라, 그러면 그 다음에는 학생이 정치하겠다는 이야기입니까? 이거 언제부터 이런 버릇이 생겼습니까? 학생이라고 해서 이런 특권은 절대로 부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데모가 만성적으로 고질화되어 심지어는 스승의 배척을 외치는가 하면 정부를 부정하고, 행동함에 있어서는 온갖 기물을 동원하여 폭력으로써 경찰을 가해하고 선량한 국민을 괴롭히며 사회 공공질서를 문란케 하고 있음은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략) 이 이상의 데모는 우리의 적인 공산주의자 이외의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유와 명분을 불문하고 학생이 학원 밖으로 뛰어나와 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망국적 풍조를 단호히 시정할 것입니다. - 1965.8.25

위 연설문에는 저 이외에도 학원 폐쇄 경고, 경찰관 부상자 거론, 선동 정치인에 대한 비난 등등 오늘날 학생운동에 퍼부어지는 모든 소리가 다 들어있는데, 굳이 옮길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생략.

새세대의 소리에 설령 잘못이 있더라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자세는 사라졌다. 다음해 학생의 날에 박정희는 이런 말을 한다.

저항 정신과 부정적 대결로 특징지워진 지난날의 학생운동은 그 자체로서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날의 우리 학생들이 그러한 저항과 대결을 통하여 그 당시의 시대적 요구와 국가적 과제에 부응했다는 그 사실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 1966. 11.3

여기서 박정희는 4.19와 그 후의 학생운동에 대한 금을 쫙 그어버렸다. 4.19는 시대적 요구와 국가적 과제에 부응했기에 의미가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학생이 사회에 대해서 발언을 하는 것 자체에는 여하의 의의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 이제 이런 자세가 노골화된 때의 발언을 보자.

학생들은 내일의 주인공이지 결코 오늘의 주인공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원의 비판적 기능도 진리 탐구와 학문 수련이라는 대학 본연의 자세와 범주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이렇게 하는 것이 곧 학생에게 건실한 현실 참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학생의 현실 참여에 대한 올바른 자세이며 한도인 것이다. - 71.10. 30 학원질서회복에 즈음한 담화문 중

오늘의 주인공은 나, 박정희. 너희는 학원 안에서 공부하면 그걸로 땡이다. 공부하는 게 바로 학생 본분의 현실 참여이고 학생운동이다, 라는 이야기. 급기야 유신에 중독된 박정희는 1978년에 낸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게 된다.

우리의 지성인들은 옛부터 국가의 과업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던 훌륭한 전통을 갖고 있다. (중략) 확실히 봉건적인 사회질서나 외세의 압제라는 역사적 상황 아래서는 저항과 비판이야말로 우리 지성인들에게 요청된 시대적 사명이었고, 이 땅의 지성인들이 그 사명을 다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저항의 정신이 우리의 자주 독립 국가가 수립된 이후, 참여와 건설의 정열로 승화되어,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민족중흥의 길

이렇게 칭찬 비슷하게 시작한 말은 바로 비난으로 이어진다. 저 시대적 흐름의 지성인은 참여와 건설의 정열을 지닌 사람들만 가리킨 것이다. 이미 저항과 대결은 사라졌다. 그런 사람은 시대적 흐름에서 낙오한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 우리의 지식층 일부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낙오되어, 비판과 회의, 냉소와 패배의식, 그리고 부정과 반항 등 온갖 구시대의 낡은 인습에 빠져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을 반대하고 부정하는 데는 앞을 다투면서도, 무엇을 찬성하고 긍정하는데 있어서는 남보다 앞서기를 주저했다.

그리하여 박정희는 다음과 같이 주문한다.

이제 우리의 모든 지성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지난날의 악정과 혼란에서 비롯된 부정과 저항의 천한 풍습에서 과감히 벗어나, 긍정과 참여, 그리고 창조와 개척의 대열에 앞장 서서 국민을 이끌어 나가는 길잡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위 글에서 보면 심지어 악정과 혼란에 대항했던 일마저도 "천한 풍습"이 되어 있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 권력에 맞춰 보수화 되어가는가의 사례라고나 할까.

덧글

  • 아브공군 2009/12/10 10:13 #

    남을 비난하면 구국, 자신을 비난하면 반역이군요.
  • 초록불 2009/12/10 10:19 #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없지만 내가 벌인 일 내가 마무리해야 하니 뽑아달라는 김화백 풍의 연설문도 있지요...
  • 아브공군 2009/12/10 10:20 #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없지만 내가 벌인 일 내가 마무리해야 하니 뽑아달라는 김화백 풍의 연설문도 있지요... <= 이거 한 번 보고 싶습니다...
  • 초록불 2009/12/10 11:01 #

    나는 지금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심은 추호도 없다. 다만 60년대 후반기에서 모처럼 되찾은 이 안정의 분위기를 변동 없이 70년대 초반까지 좀더 굳히고 다져보자는 것이며, 내 손으로 벌여 놓은 이 방대한 건설 사업들을, 내 책임으로 매듭지어보자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며, 또 모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의 전진 대열을 쉬었다가 다시 짜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좀더 전진을 계속해 보자는 뜻에서 그러한 것이다. - 69.10.10 국민투표 실시에 즈음한 특별담화문

    69년 국민투표는 3선 개헌안이죠.
  • 네리아리 2009/12/10 10:38 #

    여전히 적용되는 명언이 생각나는군요.
    ㄴ내가하면 로망, 남이 하면 패륜~☆★
  • Allenait 2009/12/10 10:54 #

    입장이 바뀌니까 말이 달라지는군요
  • tranGster 2009/12/10 11:00 #

    사실 4.19에 대한 옹호 자체도 이승만 반대의 정통성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 초록불 2009/12/10 11:02 #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건 아니죠...^^
  • tranGster 2009/12/10 11:05 #

    음 맞는 말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9/12/10 11:02 #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은 진짜 명언인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09/12/10 11:09 #

    명언입니다.
  • 훼드라 2009/12/10 11:05 #

    여기서 " 그 직위에 있어보지 않았다면 함부로 말을 마라 "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명언(?)을 입에 올리면...서...설마 따 당하진 않겠죠 ^^;;
  • 초록불 2009/12/10 11:09 #

    그 말씀 보니, 유시민이 한나라당 의원들 보고 "8년이나 정권을 잡지 못해 가물가물 한 것 아니냐" 운운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 듀란달 2009/12/10 11:14 #

    만주국 장교에서 공산주의자,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 자신에게 필요하니 학생 운동을 찬양하고 필요 없어지니 내팽개치는 행동.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친일파나 공산주의자라기 보다는 기회주의자라는 말이 어울릴 듯합니다.
  • 초록불 2009/12/10 11:21 #

    그 말들이 모두 박정희의 일면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

    뭔가 한마디로 그를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 같아.
  • 라피에사쥬 2009/12/10 12:20 #

    러시아 역사에서 뇌제나 스딸린을 주제로 놓으면 가장 할말도 많고 어이도 자주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예가 아닌듯 싶습니다.(이 떡밥에 걸려드는 사람 있으려나요 하하;;)
  • 초록불 2009/12/10 12:24 #

    그렇죠. 그만큼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긴 사람인 셈이죠.
  • 다복솔군 2009/12/10 13:37 #

    "한국인은 비판만 잘해서 잘난놈 꼴을 못본다" 식의 논리가 여기서 시작 되었군요..
  • 누렁별 2009/12/10 14:54 #

    "이 나라의 주인은 나에요."(PJH)
    당시 박정희의 고스트 라이터가 누군지 몰라도 참 고생했겠습니다. 그런데 "건국-산업화"이란 논리로 이승만-박정희를 엮어보려는 뉴라잇들의 시도를 박정희 본인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볼까요. 아마 게거품을 물고 반대할 듯 싶은데요.
  • 초록불 2009/12/10 15:00 #

    대체로 박정희의 후기 인식은 그런 논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보다 충돌은 <근대화>에 있을 것 같습니다.

    박정희는 <근대화>의 주역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했으므로, 근대 의식도 자신의 공이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 Bluegazer 2009/12/10 16:45 #

    대한정글공화국의 불사조는 누굴까요?

    (...)
  • 들꽃향기 2009/12/10 15:25 #

    지금의 학생운동을 보는 것에 대해 그때는 민주화, 지금은 잉여 혹은 치기로 학생운동을 나누고자 하는 시각이 연상되는군요. ^^;
  • 초록불 2009/12/10 15:28 #

    그런데 80년대에도 똑같이 이야기했어요...^^
  • 萬古獨龍 2009/12/10 23:57 #

    (옳고그름을 떠나서) 무엇이든 남의 사정일때까지만 칭찬을 할 수 있는법이군요.
  • 원한의 거리 2010/12/06 22:20 #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분명 대한민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인임은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발전과 개발에는 공이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다만 과거에 보인 기회주의자적인 행동들과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해를 끼쳤던 유신 체제는 분명 과오였음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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