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회고 *..역........사..*



내가 본 자료 중에 박정희가 공적인 경우에 일제강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언급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박정희 일기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을 뿐이었다. 아들 박지만이 육사에 입교할 때 "육사생활의 남아로서의 호쾌한 나의 경험담" 등을 들려준 끝에 나온 이야기다. (육사 생활의 호쾌한 경험담이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1977년 1월 29일
내가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하여 1940년 3월 하순 어느날, 쌀쌀한 봄바람이 옷자락으로 스며드는 고향 구미역 플랫폼 북행선, 멀리 이국 땅 북만주 신경군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하여 북행열차를 타고 떠나는 나를 전송하기 위해 칠순 노구의 어머니께서 나오셨다. "늙은 어미를 두고 왜 그 먼 곳에 가려고 하느냐" 나의 옷자락을 붙잡으시며 노안의 눈물을 흘리시던 그 모습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르고 어머님의 흰 옷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들어 흔드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완연하다.

그 날 어머님의 심정이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하셨을까?

어머님, 너무나 불효막심하였습니다.

이제 용서를 빌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덧글

  • 갈매나무 2009/12/12 23:23 #

    요즘 박정희 재조명이 유행입니까.
  • 초록불 2009/12/12 23:30 #

    아는 바 없습니다만...
  • 我幸行 2009/12/12 23:28 #

    부친은 1938년에 돌아가셨고 홀어머인 모친도 당시 연세가 70을 바라보는 노인이었습니다.

    홀어머니와 작별하는 막내아들의 회한이 왜 없었겠습니까?
  • 초록불 2009/12/12 23:33 #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다스리던 나라는 1910년에 망했고, 남의 말로 훈련받는 곳에 가는 회한은 없었을까요?
  • 我幸行 2009/12/13 07:41 #

    그런 회한이 있는사람이라면 자기발로 왜학을 배우러 왜학교에 들어가고 왜학을 가르치는 훈도가 되지는 않았겠습니다.

    만군학교에 입학함으로 조선 아해들에게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가르치지 않아도 되었고, 황국신민서사를 외게 하지 않게 되었고, 신사참배를 강요하지 않게 되었고, 궁성요배를 시키지 않게 되었으니 마음은 가벼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 곧은나무 2009/12/12 23:40 #

    그때 효도했으면 그나마 지금 욕은 덜 먹지 않았을런지.
  • 초록불 2009/12/12 23:41 #

    그랬겠지요.
  • 한도사 2009/12/13 01:28 #

    저런 인간도 효심이 있었다는게 정말 불가사의 합니다.
  • 초록불 2009/12/13 01:33 #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아주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하지요.
  • 초효 2009/12/13 10:22 #

    저런 인간은 무조건 악독했어야 해...라는 인식이야 말로 그 인물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 도움이 안 됩니다만?
  • 네비아찌 2009/12/13 02:11 #

    아내 육영수 여사를 잃었을 때에도 진심으로 슬퍼했다지요.
  • 초효 2009/12/13 10:20 #

    공민왕도 노국공주 죽고 나서 맛이 갔지요.
  • 초록불 2009/12/13 10:52 #

    제 블로그에서 싸움이 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다들 댓글 보면 한마디씩 더 하실 것 같아서 댓글난을 폐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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