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형주를 빌린 내막 *..역........사..*



삼국연의를 읽다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간단하게 형주 지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넘버링해보자.

1. 유비, 형주에 의탁하다
2. 유표 사망
3. 조조, 형주 공략
4. 후계자 유종, 조조에 항복하기로 한다.
5. 유비, 도주
6. 장판파 전투
7. 유비, 강하에서 유기와 합류 = 조조, 형주 장악


이렇게 형주가 장악되었다. 이 부분은 실제 역사와도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조조는 강하에 있는 한줌의 무리는 신경쓰지 않고 동오의 손권을 압박. 항복을 권유한다.
잘 알다시피 이때 동오의 분위기는 항복론이 대세. 이것을 공명이 뒤집는다. 조조도 신경을 끊은 한줌의 무리. 그 무리를 대표하는 사람은 불과 스물일곱의 청년이었다. 그가 손권을 설득시킨 무기는 유비의 세력이 아니었다. 유비의 정신이었다.

그 후의 일은 어찌 되었던가?

손권이 조조에 대항해서 동원한 군대는 3만. 유비가 거느린 군대도 2만에 가까웠다. 이 말대로라면 둘의 연합은 누구 하나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 하지만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공명은 조조군을 15~6만, 형주군을 7~8만으로 토탈 22만~24만 정도로 말하고 있다.) 이때 유비는 이미 조조의 눈밖에 나 있었다. 실제로 병력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장강이라는 지리와 동오의 수군이었던 것이다.

적벽에서 패배 후 조조는 각 성에 심복들을 남겨두었는데 주유는 강릉과 이릉을 쳤다. 이때 유비는 형주 남부 4군을 접수했다. 즉 이 시기까지 사실은 유-손 동맹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손권은 합비에서 장요와 싸웠으나 물러났고, 주유는 강릉에서 조인을 내모는데 성공했다. 이때 유기가 죽자 손권은 유비를 형주목으로 세웠다. 이때 유비는 손권의 휘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유는 유비에게 땅을 내주었고, 유비는 손권의 틀 안에 머물러 있었다. 손권은 유비에게 여동생을 시집 보내 그를 자기 휘하로 굳히고자 했다. (삼국연의는 이 대목에서 유비를 변호하고자 무리한 설정을 잔뜩 집어넣었다.)

이때 유비를 형주목으로 올리고 유비에게 땅을 내어준 것은 모두 노숙의 계책이었다. 후일 손권은 노숙에 대해서 회고하면서 그것이 노숙의 한가지 단점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유는 유비가 결코 손권 밑에서 만족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유는 유비를 처리할 계책을 내었지만 조조의 위협 때문에 연대를 해야 하는 손권은 그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유는 서촉을 공략하고 서량의 마초와 손을 잡은 뒤 중원으로 진격하면 조조를 물리칠 수 있다는 원대한 계략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것을 시행하기 전에 죽었다.

이때까지 손권과 유비는 양양을 점거하지 못했다. 소설 삼국연의는 처음에 유비가 양양을 차지한 것으로 이야기했다가 나중에는 관우가 양양을 치러가는 모순을 일으키는데, 형주 이야기에 왜곡이 심해서 이런 오류를 일으킨 것이다.

유비는 이미 형주목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손권에 의해서였으나) 주유가 죽자 자연히 형주를 점거하게 되었다. 손권은 익주(=서천)을 치고 싶어했으나 유비는 합동작전은 계속 거부했다. 그리고 단독으로 서천 정벌에 나서 성사시키고 말았다.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남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손권이야 당연히 배신감을 느꼈다. 손권은 형주를 반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손권의 입장에서는 그 땅은 본래 자기들 것이고, 유비가 관리했을 뿐이었다. 특히, 주유 사후에 유비가 동오의 묵인 하에 점거한 땅일 뿐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또한 너무나 당연히 이를 거절했고, 이때문에 여몽이 강제 집행에 나서게 된다. 결국 유비는 일부 땅을 오에 돌려주고 만다. 결국 유비와 손권은 현존하는 가장 큰 위협인 조조 때문에 땅을 나눠갖기로 합의하고 물러난 것이다.

이 형주를 놓고 일어난 분쟁 때 삼국연의는 노숙이 관우에게 당한 것으로 말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노숙의 논리에 관우가 밀려서 찍 소리도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무튼 이런 어정쩡한 타협은 양 측에 모두 불만이었다. 결국 이 불만 때문에 뒷날 관우는 오의 역습에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삼국연의대로라면, 사실 납득이 잘 안 가는 대목들이 발생하는데, 가령 조자룡이 형주를 차지하고 주유를 놀리거나 주유가 촉을 치러갈 때 이미 형주가 확고히 유비 손에 있는 듯이 묘사된 부분이 많다. 그런데도 노숙이 갑자기 나타나 떼를 쓰는 것으로 보이게끔 삼국연의는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손권이 형주를 차지하고 유비에게 그 관리를 맡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후일의 역사는 그와 다른 내막을 가지고 전개된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유-손의 연합은 양쪽에 모두 이익이었다.

우선 이들이 왜 연합했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유비는 조조의 천하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손권은 자기 지배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실질적인 무력은 손권이 가지고 있었고, 명분은 유비가 들고 있었다. 그리고 공명이 손권을 격발시키는 데 성공한 것처럼 유비 측은 단 한 번도 이 명분을 버리지 않는다.

유비, 무력도 없고 인물도 적은 그가 명분마저 버렸다면 그는 일국의 황제로 군림하는 데까지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연합하여 조조를 물러나게 한 뒤 유비는 서서히 자기 세력을 넓혀나갔다. 주유의 사망이라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손권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했지만 손권 측에 투항하지도 않았다. 끝까지 자신의 명분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연합이 필요없어지자 과감히 명분을 걸고 서촉을 공략했고 성공했다.


손권, 그에게는 무력은 있었지만 명분이 없었다. 명분이 없으면 싸움에 불리하다. 조조는 명분상 한 왕실의 승상. 적법한 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그는 단지 지방의 무장 군벌에 불과했다. 그에게 명분을 준 것은 바로, 유비라는 존재였다. 손권은 그 명분을 알뜰히 써먹었다. 황실의 가장 윗어른인 황숙. 그가 조조를 역적으로 규정했다. 싸우자. 우리는 한실을 위한 충의의 군대다!

조조를 막아냈다. 명분의 유비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엄청난 성과는 동오의 결속에 큰 힘을 부여했다. 후일 한실의 명분 유비와 완전히 갈라서게 된 뒤 손권이 제위에 오를 수 있을 힘을 주었던 것이다.

공명. 그가 없었다면 역사는 어찌 흘러갔을까? 유비와 손권은 각개 격파되고 중국은 안정기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5호16국이라는 희대의 괴시기는 오지 않았을지도. 그러나 공명은 수많은 피가 흐를 것을 알았을 것이나 그 길을 택했다.

때로 대의명분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덧글

  • asianote 2009/12/17 19:43 #

    초록불님이 공명 빠도리셨군요. 와 기쁘도다!
  • 초록불 2009/12/17 19:46 #

    공명 덕에 중국은 혼란에 빠졌고 그 사이에 한때 위나라에 수도까지 털렸던 고구려가 요동까지 세력을 확장했으니 이 아니 기쁜... (퍽!)
  • dunkbear 2009/12/17 20:05 #

    공명이 없었다면 야스페르츠님의 오호망양 시리즈는 없었을지도... (응?)
  • 고독한별 2009/12/17 20:07 #

    뭐, 고구려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 만큼 중국을 혼란에 빠뜨리는데에는,
    제갈 공명의 손자인 제갈 선우와 장비의 손자인 장빈의 지략 및 조자룡의
    손자인 석륵(석씨의 양자가 되어 성을 석씨로 갈았음)의 무용도 크게 일조
    를 했죠. (...)

    5호 16국 시대를 다룬 후삼국지(속삼국지) 얘기입니다. OTL
  • 초록불 2009/12/17 20:13 #

    국내 번역가가 찹쌀떡 같은 피부라는 말을 즐겨 써서 기억에 남는... (으잉?)
  • 초효 2009/12/17 20:12 #

    재조지은의 대의를 쫓아 청과 적대했던 조선은...--;;;
  • 초록불 2009/12/17 20:15 #

    따지고 들면 복잡해지는데, 광해군이 이미 재조지은을 팽개쳤으므로... (먼산)
  • 들꽃향기 2009/12/17 20:14 #

    그리고 유-손의 결합은 여몽과 손권의 심경 변화로 깨어지고, 그렇게 위를 기세로 몰아부치던 촉의 기세가 꺾인후에, 오는 합비 하나조차도 손에 넣지 못했죠. (그저 묵념)
  • 초록불 2009/12/17 20:16 #

    그게 또 나름대로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손권이 합비를 치고 있을 때, 관우가 발진했고 관우는 위와 동오가 손을 잡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요. 심지어는 오의 군량창고를 털어먹으면서도 동오가 참으리라 생각했으니...
  • 들꽃향기 2009/12/17 20:25 #

    하긴요. 거기에 그래도 잘해보자고 손권이 보낸 사신에게 개의 아들 운운했으니 이건 관우가 대사를 그르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_=
  • 초록불 2009/12/17 20:27 #

    역사적으로는 그런데, 인간적으로는 관우를 참 좋아합니다...^^
  • 고독한별 2009/12/17 20:17 #

    그러고 보니 한가지 더 생각나는데요. 삼국지 연의에서 적벽대전이 끝난 후,
    제갈량이 지략으로 주유를 골탕먹이고 형주를 차지하는 대목에서, '양양'성
    과 더불어 '형주'성도 같이 빼앗았다고 되었는 게 좀 이상하더군요. 왜냐하면
    당시 형주의 행정 중심지는 '양양'이었으며, 따라서 '형주'라는 이름의 성이
    따로 존재했던 건 아니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양양성을 빼앗았으면 형주의 중심지를 빼앗았다는 소리가 되고도 남는
    데, 거기다 또 '형주'라는 이름의 성을 빼앗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무척 헷갈리더군요. 하긴 그래봐야 나중에 관우가 강릉에서 출병하여 양양을
    빼앗고 번성을 함락시키는 얘기가 나옴으로써 본격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건
    달라질 게 없습니다만... OTL
  • 초록불 2009/12/17 20:19 #

    그때 형주성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강릉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사실 삼국연의 안에는 당대 지명과 후대 지명이 혼동을 일으키면서 같은 곳의 두 개 지명이 동시에 등장하기도 해서 혼란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들꽃향기 2009/12/17 20:22 #

    보통 한대 형주목의 소재지는 양양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형주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형(즉 초)'의 수도가 강릉이었고, 실제로 남조시기 형주의 치소가 강릉이 된 이후로, 이후에는 강릉이 형주로 불리곤 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명대에 소설을 쓴 나관중은 한대의 양양과 형주(즉 강릉)을 따로 생각햇던 것이고, 그러한 혼동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네요.
  • 고독한별 2009/12/17 20:23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사실 삼국지연의를 읽을 당시
    제갈량이 지략으로 빼앗은 성이, '양양' '남군' '형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저는 남군성 = 강릉성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거든요. (남군의 행정 중심지가 강릉이라고
    하는 얘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하여튼 삼국지연의는 정말 지명이 헷갈립니다. OTL
  • 들꽃향기 2009/12/17 20:26 #

    사실 남군은 진이 초의 수도인 영과 그 주변지역을 빼앗아 남군(南郡)을 설치하고, 그 치소를 초의 옛 수도인 영(현재의 강릉)에 두었으니, 말씀하신대로 남군이 곧 강릉이고, 후대의 형주도 역시 강릉-_-;; 이라는 얘기가 나오죠.

    결국 이건 다 임영박...아니 다 나관중 때문입니다? 우와아아앙.
  • 고독한별 2009/12/17 20:28 #

    저도 그저 우와아아앙~ 입니다. OTL
  • 초록불 2009/12/17 20:30 #

    저도 들꽃향기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 맹꽁이서당 2009/12/17 20:59 #

    남군에 대해서는 저도 상당히 궁금했었는데, 역시 강릉이었군요 ^^
  • 이준님 2009/12/17 20:26 #

    창천항로의 적벽부분이 바로 초록불님의 철학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있지요.(공명 폄하와 조조 신격화를 제외하면 말입니다.-솔직히 한중전투나 합비 대전보다 재미없게 그렸죠)
  • 초록불 2009/12/17 20:28 #

    창천항로는 장판파 직전까지 보고 보지 않았네요. 아무래도 해석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썩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사실 전 유비빠...)
  • asianote 2009/12/17 20:29 #

    그야 우리 잘나신 위 무왕 전하(이때까지는 살았으니)께서 개박살나서 아무것도 못한 전투니까요. 그저 비아냥만 남겼으니... 무왕 전하도 208년 이후의 전공은 정말 별 볼 일 없다는 사실.
  • 초록불 2009/12/17 20:31 #

    asianote님 / 마초를 물리치고 한중을 빼앗는 전공이 아직 남았습니다...^^;; 마초에게 고전하기는 했지만 결국 이겼으니까요,
  • asianote 2009/12/17 20:35 #

    초록불님 // 뭐 마초를 상대로 이겼다고 해도... 조무라기 하나 잡은 정도에 불과하지요. 중소군벌 하나 잡은 정도고... 한중전도 그렇고요.

    그리고 그 한중에서 최후의 망신을 당하고 마는데... 뭐 마지막에 관우 제압한 거 정도는 어쨌든 대단한 정치력을 발휘했으니 그 부분은 인정할 만 합니다.
  • 이준님 2009/12/17 20:38 #

    창천항로 뒷부분(한중 전투부터 번성전투, 그리고 관우의 죽음까지)을 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지요

    이건 관우항로다.

    관우가 진정한 주인공이다.

    작가는 고도의 조조빠를 가장한 유비빠다. ==;;

    사실 뒷부분이 더 재밌죠. 저로서는요
  • 초록불 2009/12/17 20:40 #

    호, 그런가요? 급 땡기는군요...
  • 들꽃향기 2009/12/17 21:54 #

    이준님의 평가에 공감합니다. 확실히 작가가 바뀐 이후(19권 이후부터인가요?)부터는 정말 조조빠를 가장한 고도의 유비빠, 제갈량빠, 관우빠 소리가 나오긴 합니다. =_=
  • 少雪緣 2009/12/17 23:57 #

    파촉 정벌전까진 인간미 넘치지만 찌질했던 유비가 파촉 정벌을 하면서 거의 제갈량이랑 동급 포스에다가 한중전에선 완전 포스가 쩔어주는....

    창천항로는 유비의 중2병 극복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합니다(...)
  • 맹꽁이서당 2009/12/17 20:32 #

    눈팅 애독자입니다 ^^

    유비에게 땅을 내어주라고 했고, 그것이 그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손권이 평했던 사람은 주유가 아니라 노숙 아닌지요? 정사 삼국지 오서 주유노숙여몽전 마지막에는 노숙이라고 되어 있어서요. (혹시 다른 곳에서 주유라고 되어 있으면야 할말이 없습니다만.. ^^)
  • 초록불 2009/12/17 20:56 #

    긴 글 쓰셨다가 지우셨네요...^^;;

    찬찬히 읽어보니 맹꽁이 서당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잘못 읽었네요. 본문을 수정해 놓겠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 흑태자 2009/12/17 20:34 #

    솔직히 다시 땅 토해놓으라 그러면 누가 고분고분 게워낼런지 ㅡㅜ
  • 초록불 2009/12/17 20:36 #

    그렇지요...^^
  • 맹꽁이서당 2009/12/17 20:55 #

    김원중 번역 정사삼국지 오서 주유노숙여몽전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공근(주유)은 영웅답고 장렬하며 담력과 지략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조맹덕(조조)를 무찌르고 형주로 세력을 뻗쳤던 것이오. 오랜 시간 동안 어떤 사람도 그의 재능을 이을 수 없었는데 그대가 오늘 그를 잇고 있소.

    //여기서의 '그'는 주유를 말하는 것일테구요//


    공근은 전에 자경(노숙)을 동쪽으로 오게 하여 내가 있는 곳으로 보냈소. 나는 그와 연회석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는 곧장 정사의 핵심과 제왕의 공업을 언급했소. 이것이 첫번째로 기뻤던 일이오.

    //여기서 두번 나오는 '그'는 둘다 노숙일 겁니다. 제왕의 공업도 정사나 연의에도 나오듯이 노숙이 말한 것일테구요. '첫번째 기뻤던 일'은 현재로서는 주유나 노숙 둘다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만//

    뒤 에 맹덕은 유종의 세력을 손에 넣은 것으로 인하여 수군과 보병 수십만 명을 이끌고 함께 내려 올 것이라고 말했소. 나는 각 장수들을 두루 불러서 알맞은 대책을 물었으나 만족스럽게 말하는 이가 없었소. 자포(장소)나 문표(진송)는 마땅히 사자를 보내 격문을 받들고 조조를 맞이해야 한다고 함께 말했는데, 자경은 곧바로 안 된다고 반박하여 나에게 급히 공근을 불러 적을 거꾸로 치도록 권하였소. 이것이 두 번째로 통쾌했던 점이오.

    //여기서 두번째 통쾌했던 점이라고 칭찬하는 대상은 주유가 아니라 노숙임이 분명하지 않을까요? 따라서 첫번째도 노숙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뒷부분은 생략하겠지만, 위 두가지 장점이 있지만 유비에게 형주를 빌려주라고 한 점이 단점인 사람은, 뒷부분의 평에 '관우를 잡을 방법이 없어서 큰소리 쳤다는' 노숙이 되어야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형주를 빌려주라고 한 장본인인 노숙이 해결해야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결국 여몽이 해결했고, 이 점에서 여몽이 노숙을 이겼다고 했구요)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껏 이 대목에서 칭하는 사람은 당연히 노숙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혹시나 제 독해력이 잘못되었던 건지 갑자기 겁이 나네요. --a
  • 초록불 2009/12/17 20:56 #

    앗... 아까 달려니까 댓글이 지워졌다고 나왔는데...^^

    말씀하신 내용이 맞습니다. 제가 잘못 읽었네요.
  • 맹꽁이서당 2009/12/17 21:03 #

    눈팅만 하다보니 처음으로 덧글을 달아보았는데,
    덧글을 수정하는 방법을 몰라서 한번 지우고 수정후 다시 올린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노숙 빠라서 (ex-여친은 진궁 빠였죠.. 독한 X ! --a)
    혹시 잘못 알고 있는건가 하고 말씀드려봤습니다.
    실례가 된건 아닌지 모르겠네요(__)
  • asianote 2009/12/17 21:08 #

    맹꽁이서당님// 노숙빠라니... 완전 희귀한 경우로군요. 뭐 노숙과 제갈량은 서로 친구 사이로 정말 친했으니 노숙이 오래 살았다면 정말 재미있었다게 저의 의견입니다만... 역사의 IF는 허용될 수 없으니까요. 저도 노숙은 꽤나 좋아합니다. 공명빠니까요.
  • 초록불 2009/12/17 21:09 #

    아닙니다. 실례는 제가 했지요...^^;;

    사실 썼다가 지웠지만 보통 적벽대전의 삼국연의 왜곡으로 주유가 손해를 보았다는 말들은 많이 하지만, 저는 노숙이 가장 큰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노숙은 장대한 플랜을 세우고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면서도 가능한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상황을 돌파하고자 했는데, 이 시대에는 보기 드문 뛰어난 식견의 선비라 하지 않을 수 없지요.

    노숙을 좋아하는 분은 만나기 힘든데 무척 반갑습니다. 그만큼 더 죄송하네요. 너그럽게 생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sinis 2009/12/18 10:47 #

    이글루스에서 덧글, 댓글은 수정이 안됩니다.
    삭제후 재답글을 다는 수밖에는 없죠.

    이는 "XXX"란 주장을 하고는, 거기에 대해 "YYY"란 댓글을 달았더니 먼저번 사람이 "XXX"란 주장을 "ZZZ"로 고쳐쓰고는 "YYY"란 댓글을 비난하는 식의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 BeN_M 2009/12/17 21:25 #

    유손동맹은

    손권측의 명분임대기간종료(이제 조조하고 공조할 만한 분위기가 되었구나)
    + 자경의 죽음(압도적인 조조에 맞서 둘의 연대를 강력히 주장한 인물이 사망. 노숙 사후 손권진영은 형주공격에 적극적으로 변하는)
    + 관우의 오판(유비세력의 형주지역 사령관으로서의 관우는 군사적으론 강수지만 정치적으론 악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유비같이 관우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옆에 없는 상황에서 너무 오래 형주지역 사령관을 해버린 게 문제가 아닌가 싶지만 촉에 유비를 제외하고 그를 대체할만하거나 제어할만한 인물이 없었다는게 문제)

    이 합쳐져서 유비진영의 큰 피해로 마무리.
    그리고 형주를 빼앗기며 유비진영이 삼국을 통일할 기회도 안녕히.


    ....촉빠인 저로서는 이 부분이 참 씁쓸~한 대목입니다 ㅜ.ㅜ
  • Joshua-Astray 2009/12/17 21:56 #

    공명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을지 궁금하긴 합니다만,

    조조라는 인물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 저로서는
    적벽에서 대패한 후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조조가
    "아, 곽봉효가 있었더라면!"이라 탄식한 말이 생각나네요.
  • 말코비치 2009/12/17 22:17 #

    저는 조조가 손권, 유비를 무시하고 서량, 한중 이어 파촉을 먼저 차지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꽤 있었습니다^^..
  • 고독한별 2009/12/17 22:13 #

    제 기억이 맞다면 당시 형주에는, 남양군, 남군, 강하군, 장사군, 계양군,
    영릉군, 무릉군 등 7개군이 있었습니다. 적벽대전이 끝난 다음의 형세를
    볼 것 같으면, 남양군(행정 중심지는 완성)은 조조가 유지했습니다. 또한
    강하군과 남군은 조조와 손권이 얼마씩 나눠가졌으며, 형주 남부의 가장
    가난한 4개군 (장사, 계양, 영릉, 무릉)은 유비가 차지했죠. (3대 세력이
    형주를 분할한 형국입니다. 북쪽은 조조, 동쪽은 손권, 남쪽은 유비. 뭐,
    그만큼 형주가 중요한 요충지였단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오나라는 유비의 도움을 얻어 1년간의 공방전 끝에 전략적 요충지인 강릉
    을 포함한 남군의 일부를 점령한 다음, 또 그 땅의 일부(공안)를 유비에게
    나눠줬습니다. 남군은 당시 수륙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오나라가 강 상류
    로 거슬러 올라가 익주를 정벌하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강릉
    을 영유함으로써 가능한 거라더군요. 제갈 공명이나 주유가 형주를 중시한
    게 다 이유가 있는 셈이죠.

    적벽대전 이후 형주의 남쪽 4개군을 점령하고 형주목을 자처하던 유비는
    새로 얻은 공안을 자신의 치소로 삼았는데, 그 땅이 너무 좁고 가난하여
    늘어나는 부하들을 지탱할 수 없다는 이유로 끈질기게 오나라에 요구해,
    결국에는 '강릉'을 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오나라는 익주로
    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를 유비에게 그냥 넘겨준 셈이라고 합니다.

    결국 유비는 그 덕분에 익주로 진출하여 촉을 건국하게 되었지만, 이번엔
    조조와 결탁한 손권에게 형주를 상실하면서 끝내 천하통일은 물건너가고,
    촉은 익주 분지에 틀어박힌 지방 할거 정권으로 전락해 버렸으니, 형주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죠. OTL
  • 바투 2009/12/17 22:16 #

    정사 삼국지도 읽어보긴 해야할텐데...

    삼국지를 읽다보면 앞부분은 무장의 무력이 부각되다가, 적벽대전부터는 군략이 부각되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아무래도 그럴 수 밖에 없는게 그 이전엔 호족들 오밀조밀한 규모로 싸울땐 먼치킨 장군 있으면 게임 끝이지만, 적벽대전이 끝나면 대략 국가의 틀이 잡히면 장수 하나가 할 수 있는건 그다지 많지 않으니...)

    분명히 적벽대전에 양양을 뺏은거 같았는데, 다시 관우가 양양치러 가는게 항상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오늘 알게되었군요.ㅎㅎ 그런데 또 다른 헷갈리는 지명인 번성은 그러면 어디쯤 위치한건가요? 유비가 신야에 있을 때 번성으로 후퇴하던가 점령하던가 하는 대목이 있는거봐서는 신야 근처에 있는거 같기도 하면서...한편으로는 관우가 양양치러 갈 때 번성을 공격한다고 되있던거 같거든요. (읽어본지 오래되서 제가 지금 잘못알고 있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걸 보면 그러면 강릉과 양양사이에 있는 곳 같은데...
  • 초록불 2009/12/17 22:19 #

    번성과 양양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번성이 조금 더 북쪽에 있지요.

    그런데 무력과 군략 부분은 이문열이 퍼뜨린 잘못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삼국연의가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관우나 장비 등의 캐릭터들에게 들인 정성이 후반의 장수들에게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것은 단지 소설 기법 상의 문제입니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손자병법이 나온 나라라는 점을 기억하시면 문제가 쉽습니다...^^;;
  • 고독한별 2009/12/17 22:23 #

    번성은 양양성 북쪽에 있습니다. '한수'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 번성, 남쪽에 양양이 있죠. 두성은 서로 굉장히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종 '양번'이라고 '한 세트'로 묶어
    서 언급될 정도랍니다.

    남쪽 세력이 북쪽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도 양번은 굉장히 중요
    한 전략적 요충지이고, 북쪽 세력이 남쪽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도 양번은 또한 굉장히 중요한 땅이죠. 몽골이 남송을 정벌하기
    위해 양양성을 집요하게 공략한 건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 유명한 무협소설 영웅문에서 곽정이 부인 황용과 함께 양양성
    을 죽기로 사수하면서 몽골과 싸우는 얘기도, 전부 저런 역사적
    근거에서 나온 창작이죠.
  • asianote 2009/12/17 22:56 #

    원(몽골)이 양양을 차지하기 위해 무려 약체인 남송을 상대로 5년 동안이나 악전고투를 벌이다 보급로 차단하고 회회포를 동원해야 간신히 항복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 고독한별 2009/12/17 23:06 #

    그게 다 곽정 대협을 비롯한 여러 강호 영웅들의 절세 무공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퍼퍼퍼퍼퍽~)
  • sinis 2009/12/18 10:50 #

    고독한별 / 어허, 황약사의 이십팔숙대진의 공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강호 군웅들을 하나로 통솔, 몽고달자들을 쓸어버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我幸行 2009/12/18 13:04 #

    양양과 번성은 서울과 영등포정도의 차이일겁니다.
    지금은 양번시라고 해서 같은 행정구역으로 통합되엇지요.
  • rumic71 2009/12/17 23:21 #

    제갈양이란 '제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양' 을 줄인 말로, 사실 환민족이었음을 나타냅니다 (뭐냐)
  • asianote 2009/12/17 23:23 #

    와 우리민족이었군요. 어쩐지 (이건 또 뭔 멍멍이 짖는 소리냐?)
  • 초록불 2009/12/17 23:31 #

    백<제>의 <갈>색 <양>이라는 게 더 나을지도... (먼산)
  • sinis 2009/12/18 10:52 #

    공명은 실은....
    .
    .
    .
    .
    .
    아, 환빠와 같은 창작능력이 저에게는 부족한거 같아요...

    환빠들이라면 '공명'이라는 단어를 멋대로 해체, 조합하여 멋진 헛소리를 만들어 내었을텐데 말이죠...ㅠㅠ
  • Allenait 2009/12/17 23:46 #

    허. 삼국연의랑 실제 역사랑 차이가 꽤 많은 모양이군요
  • 초록불 2009/12/18 00:02 #

    결과적으로는 같고, 그 과정에서 유비 중심 설명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유비 관련해서는 유비 미화를 위해 꾸민 부분이 많습니다.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오류가 나는 설정은 문제지만 역사를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로 만들어버리진 않았다 하겠습니다.
  • Ezdragon 2009/12/18 08:53 #

    저는 상식이 있으면 유비빠가 될 수 밖에 없지 않냐는 생각을 하는 열렬 유비빠입니다.
    조조는 일단 서주대학살에서 아웃이고, 손책은 양민학살, 손권은 뭐 제리니까요.

    단지 초록불님이 말씀하신 것과 달리 유비와 손권이 적벽에서 조조와 붙었을 때 단순히 숫자가 비슷한 것과 상관없이 손권주도였다...라기 보단 무제기에 조조가 적벽에서 유비와 싸웠다고 기록된걸 보면 유비가 손권 휘하나 다름없었다는건 좀 오버같고 손권은 당시 사가들 사이에서도 그저 쩌리(...)에 불과했다는게 보다 정확하지 않나 싶습니다.
  • 초록불 2009/12/18 10:40 #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요...^^

    저는 무제기의 그 대목이 광개토대왕비에 왜를 치기 위해 고구려가 출동했다는 식의 <과장법>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 허안 2009/12/18 10:35 #

    저는 노숙이 설령 손해를 볼지언정 유비와의 동맹은 반드시 지켜져야 동오가 생존할 수 있다는 굳은 외교적 신념을 가지고 속에서 나는 열불을 참고 안으로 동오조정과 밖으로 유비세력을 상대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초록불 2009/12/18 10:41 #

    그랬을 것 같습니다.
  • 我幸行 2009/12/18 13:06 #

    저는 조조가 원소를 쳐서 하북을 통합한 후에는 유비가 조조에게 항복했거나 격파되었더라면 중국인들이 더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
  • 김갑환 2009/12/18 13:41 #

    형주왕 관우.
  • 머미 2009/12/18 14:34 #

    저도 당연히 오랜 공명빠이긴 합니다만, 그 27세 청년은 '뭐야? 조조쪽으로 가서 이제 내가 성공하긴 글렀잖아? 할수없네. 이쪽의 명분을 키워야지. 통일은 무슨 얼어죽을. 내 능력이면 나도 승상 정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기적인 녀석.^^

  • 초록불 2009/12/18 15:25 #

    저는 그 나이 때는 타오르는 정의감에 의한 선택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먼산)
  • nighthammer 2009/12/18 14:57 #

    제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봐도 적벽대전은 유비의 비중이 꽤나 큰 듯 싶습니다.
    오나라는 말이죠, 육전 못해요. 정말 못해요. 진짜 지지리도 못해요. 10만 끌고가서 500 보병대에게 그대로 처발리는 놈들이에요.(...)

    조조군은 육군이 주력이고 아무리 수군 날려 봤자 육군 살아있으면 형주 그대로 먹은 채로 다시 재건할 게 뻔하고, 그럼 육전을 해야 하는데 오나라 육군은... 말을 말죠.

    결국 수군이 격파되면서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질 조조군을 몰아낼 육전부대는 유비군이 될 수밖엔 없고, 이건 절대 작은 비중이 아니죠.
  • 초록불 2009/12/18 15:25 #

    에... 그렇게 보면 그 육군에게 붙잡혀 죽은 관우가 불쌍하지요... (먼산)
  • nighthammer 2009/12/18 15:30 #

    뒷치기로 근거지 뺏어먹고 가족 인질잡고 병사들 회유공작 들어가면 관우가 아니라 통상이시라도 답이 없지 말입니다.(...)
  • nighthammer 2009/12/18 15:04 #

    노숙이 유비에게 강릉 일대를 대여해 준 것도 오나라 육전능력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가죠.

    그나마 강릉 일대를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주유가 지휘했기 때문이란 점을 생각해 보면 주유가 사망한 시점에서 오나라에게 강릉은 의미없는 땅이 되버리는 겁니다. 나갈 길이 없죠.

    결국 '써먹지도 못할 땅 유비나 주고 전선 줄이자' 는 게 타당한 의견이 되 버립니다. 그래서 인심도 쓰고 대 조조 전선을 분담시키기 위해(강릉을 잡고 있으면 유비는 조조와 직접적으로 대치하는 국경선이 없습니다.) 강릉을 넘기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 형주 반납하라... 고 한건, 어찌 보면 좀 거시기한 것이, 오나라가 내 준 건 강릉 일대였는데 돌려달랄 때는 형남 4군도 다 달라고 떼씁니다. 땅에 무슨 이자 붙은 것도 아니고. 결국 1차 분할에서 강릉, 무릉은 유비에게, 나머지는 손권에게 넘어가는데 아무리 봐도 무릉은 나머지 3군에 비해 거의 미개척지란 말이죠.(무릉만이란 말도 있고.) 결국 알짜배기를 반 잘라 먹은 셈입니다.



    그렇게까지 했으니 공격은 안하겠지... 라고 했다가 모든 촉한 사람들이 뒷통수를 후려맞은 게 관우 뒷치기. 어찌보면 뒷치기 말곤 없는...
  • 꿈 속의 꿈 2009/12/18 16:33 #

    유비에게 명분이 힘이 되었는지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 유비가 자신이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명분으로 삼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유승부터 유비까지 가계가 완전히 불명이라 그러한 주장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김두한이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김좌진 아들이라고 주장하니까 다들 뭐라하기 그래서 맘 속으로는 의문이 있지만 대놓고 반박은 하지 않는... 그런 상황과 유사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누구도 증명할 수도 없지만 반박하기도 어려운 그런 것이겠지요.

    그리고 유비 및 주위 장수들의 집단적 성격은 (이 점은 마치 한고조 유방과도 비슷한데) 인의/충의로 엮인 도덕적 관계라기 보다는, 유비의 보스적 카리스마와 어린 시절부터 따르던 부하들의 추종이 결합된 의협관계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외는 제갈양 및 이후 합류하는 마초 같은 장수 정도..). 그래서 유비가 빌빌댈 때에도 다들 빌빌거리며 따라다녔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관우, 장비가 젊어서 부터 유비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등 서로 믿음이 "형제와 같았다"는 관우전의 구절이 그런 의미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과연 손권이 일정 군사력 밖에 없는 떨거지의 "명분"을 보고 그것에 의탁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초록불님 말씀대로 2만 정도 군사면 어쨌든 조조 군에 직면하여 아쉬운 대로 힘을 빌린다는 차원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 초록불 2009/12/18 16:44 #

    그런 의문은 후대에 제기된 것입니다. 당대 황제가 황숙으로 선포한 이상 그의 신분은 확고한 것이 되지요. 더구나 그의 명분은 신분이 아닙니다. 그가 황숙으로서 종실의 역적 조조에 대항할 수 있다는 점이 명분이지요.

    지금도 명분이 차지하는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데, 전근대사회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초록불 2009/12/18 16:46 #

    말씀하신대로 유비의 군사력도 손권에게 "힘"은 되겠으나, 손권에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황제의 칙명 뒤에 서 있는 조조와 싸우면서도 "역적"이 아니게 될 수 있는 명분입니다.
  • 꿈 속의 꿈 2009/12/18 20:33 #

    아니 바로 그 점이 선결문제입니다.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삼국지 촉지 선주전을 보아도 유비가 황제를 알현해서 황숙으로 선포되었음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삼국지 다른 부분에서도 황숙으로 불리는 곳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당대인들이 과연 그를 황숙으로 고려했는지 의문이 있는 것입니다.
  • 꿈 속의 꿈 2009/12/18 21:21 #

    오측의 명분으로는 사료상으로 "操雖託名漢相, 其實漢敵也" "老賊欲廢漢自立久矣" (오지 주유전) 정도이며, 사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바로 이어서 나오는 바와 같이 이제 다른 영웅들은 가고 남은 것은 손권 자신뿐이라고 나오는데, 명분을 세워 선전을 할 상대도 마땅히 없다고 생각됩니다. 군사들에 대한 명분은 어차피 의미가 적은데, 이미 손가 삼대는 그 지역에서 할거정권으로 오래 존속했고 여러차례 지적되는 바와 같이 그 지역인들은 이미 손씨에 충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nighthammer 2009/12/18 21:59 #

    2만 군사력, 그것도 손오의 군과는 달리 육전의 베테랑이면 아쉬운대로 힘을 빌린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손오에겐 꼭 필요한 전력이죠.

    손오는 뒷치기나 방어전을 제하면 육전에서 이겨본 경력이 극히 적습니다. 손책도 진등에게 처발리고 손권은 10만 끌고가서 800 보병대에게 죽을뻔도 하고.(나중에 장료 왈 '내가 오나라 진에 기습할 적에 말을 잘타고 활을 잘 쏘며, 수염이 자줏빛이고 상체가 길고 다리가 짧은 장수가 있었는데 누구요?' 하니까 '그게 손권인데요.' 했다고도 하죠. 총사령관이 위치한 부분까지 다 털렸단 소리.(...))

    군사들에 대한 명분도 명분이지만 대내외적인 명분이 더 큽니다. 그때 인지도를 생각하면 손권은 조조나 유비에 비하면 루키중의 루키죠. 대내외적인 인지도가 떨어지니 오랫동안 존속했던 강동 땅에서도 그렇게 많은 항복파가 나왔습니다. 검증이 안된 거죠. 유비는 그래도 그렇게 오랫동안 조조와 싸우면서도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검증이 되지만.
  • 꿈 속의 꿈 2009/12/19 00:56 #

    지금도 명분이 차지하는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데, 전근대사회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명분과 사기를 연결하는 것이야말로 초록불님께서 항상 경계하시던 근대 국민국가(nation state)의 관념을 고대로 투영하는 것 아닐까요? 고대에도 군대의 사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야 없겠지만, 평민 내지 예속민인 사병들이 정통론(그것도 송대 이후에 완비된)에 따른 명분에 따라 사기가 좌우되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 초록불 2009/12/19 01:14 #

    음.. 저는 본래 이 부분에 의문이 없었습니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당대에 황숙이라 불렸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당대에 그가 황실의 후예를 자처한 부분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이미 그의 신분이 명분이 아니라 그가 역적 조조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점이 명분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유비의 명분이 "의대조"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댓글에서 이 점을 누락시킨 점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의대조의 경우 그것이 실재한 것은 사실이므로 명분 상에서 유비의 중요도는 감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시 그의 무력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것은 조조가 그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비가 조조를 위협할만한 세력이었다면 조조 입장에서 전선을 둘로 나누어야 하는 선택을 할 필요없이 일격에 강하를 쳐서 함락 시킨 후 동오를 공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대의 일을 모두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조조는 유비가 유벽과 손을 잡았을 때 원소와 대적하던 것도 멈추고 기동전을 펼쳐 유비를 격파했습니다. 유비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인데, 이때 유비를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장판의 승리 이후 유비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고 판단했거나, 유비의 세력이 더 이상 변수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꿈 속의 꿈님께서는 전근대의 명분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저와는 다른 판단을 내리고 계신 듯합니다. 이런 문제는 일조일석에 말씀드리기 어려운 견해차이인지라 더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 초록불 2009/12/19 01:18 #

    음.. 댓글을 쓰는 사이에 하나 더 다신 모양입니다.

    유비의 명분은 "정통론"과 같은 것이 아니고.... 역시 앞에서 의대조를 언급하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조조가 역적이라는 것을 유비가 증명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헌제가 있는데, 유비가 정통일리도 없고요.
  • 마무리불패신화 2009/12/18 17:14 #

    번성이 양양 북쪽에 있었군요-_-

    전 관우가 양양을 공략하기 위해 남쪽에 있는 번성을 공격한 줄 알았는데.

    의문점-유비가 형주목이 되었는데 양양 주위가 위나라 땅이 된 이유는 뭔가요??

    - 그리고 손권이 별로인 이유가 뭔가요??
  • 고독한별 2009/12/18 19:19 #

    그거야, 당시는 관직이 대부분 명목상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렇겠죠.
    당시 형주 북부의 완성, 번성, 양양성 등은 조조의 땅이었는데, 유비가
    '이제부터 내가 형주목이니까, 조조야, 형주를 다 내놓아라!'한다 하여,
    조조가'오, 미안하다. 전부 가져가라.' 할 턱이 없질 않겠습니까? (하핫)

    그런데 손권이 별로라는 얘기는 어디서 나온 건가요? 맥락을 못 짚겠네요.
  • 초록불 2009/12/19 00:56 #

    유비가 형주목이 된 건 손권이 임의로 내린 명에 의한 것이죠. 조조가 한나라의 승상인데, 유비한테 형주목을 시켜줄 리가 있겠습니까...

    조조에게 유비는 그냥 반역도. 유비에게도 조조는 반역도. 형주는 둘로 나뉘어져 서로 힘 닿는대로 차지한 것 뿐이죠.
  • 아인베르츠 2009/12/18 20:17 #

    유비의 가장 놀라운 능력은,
    결과적으로 그가 빌붙은 집안은 하나도 남김없이 싸그리 망했다는 겁니다.
    공손찬에 원소에 도겸에…그나마 안 망한건 조조가문정도.
    하지만 조조도 유비한테 왕창 당했죠 군사까지 뺴먹히고.
    희대의 망조 유비? 일지도.

  • 원샷원킬 2009/12/18 21:32 #

    역사적 사실을 떠나 지극히 개인적으로 촉빠라서 그런지 오나라 쥐새끼들의 무리는 좋게 보이지 않네요 ㅎㅎㅎ 손권 말년도 매우 좋지 못하고 무엇보다 촉 위에 비하면 관심도가 낮은 듣보잡이니깐요 ㅎㅎㅎ(농담반 진담반 입니다)
  • 원샷원킬 2009/12/18 21:33 #

    이런 표현은 안하려 했는데 이미 제리가 등장한 리플이 있었군요!!
  • nighthammer 2009/12/19 01:49 #

    유벽에게 유비를 보내 연계를 시도했을때 조조는 실제로는 직접 가지 않고 조인만 보내서 정리했습니다.

    이후 돌아갔던 유비는 원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여남으로 가서 유표와 연합하겠다고 했고, 여남으로 들어가서는 기존의 병력(원래 이끌던 병력을 끌고 가게끔 해줌)에 그지역의 도적이였던 공도가 호응해 세를 키우죠. 조조는 채양을 보냈지만 유비는 이를 가볍게 격파, 채양을 참수합니다.

    이후 원소를 격파한 조조가 직접 내려오자 유비는 대응하지 않고 바로 형주로 빠졌고요.

    연의는 이 두가지 사건을 하나로 편집해 묘사했다 볼 수 있습니다.
  • 초록불 2009/12/19 02:14 #

    네. 그 사건으들을 묶어서 기억해버렸네요. 역시 뭘 쓰려면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는데...^^
  • nighthammer 2009/12/19 01:57 #

    그리고 형주 남하시기의 조조와 여남의 유비를 공격하던 시기의 조조는 세력의 규모차이가 꽤 나지요. 하북을 완전 장악해 전력이 못해도 두배 이상은 증가한 조조(하북 일대가 원가 내전과 조조 북진으로 인한 전란으로 손실을 입었다고 해도 뭐.)인데다가 형주군까지 손실 없이 획득했습니다.

    아무리 유비를 능력있게 봐도 이정도 전력차면 무시해도 되리라 보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력차가 나는 상황이니까 뭐.

    ...그런데 무제기 기록보면 "공(조조)이 적벽에 이르러 유비와 더불어 싸웠는데 불리했다"... 손권보단 유비를 더 처주죠. 인지도 차이일수도 있습니다만.


    그리고 대의명분은 커요. 근대 국민국가가 아니라도 이점은 마찬가집니다. 조조가 왜 스스로 황제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 dkvmsao 2010/12/10 12:33 #

    우연히 관심이 초큼 있는 삼국지 글이라서 뒤늦게 보게 됐습니다.
    상당히 사소한(?) 것인데 손권이 형주목으로 만들어준 게 아니라 형주자사였던 유기가 죽자 부하들이 유비를 추대해서 형주목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기가 병들어 죽자 군하(群下-뭇 부하)들이 선주를 추대해 형주목으로 삼고 공안(公安)을 다스렸다. 손권이 점차 이를 두려워해 여동생을 시집보내 우호를 굳건히 했다. - 선주전 -


    솔직히 소설에서의 형주 이야기는 촉빠(…)인 저로서도 개인적으론 별로더군요.
    적벽대전에서 유비세력의 역할이 축소된 것도 그렇고, 제갈량이 날로 형주를 점령하는 것은 주유쪽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얄밉더라구요-ㅂ-;
  • 초록불 2010/12/10 13:03 #

    선주전은 유비 입장을 잘 반영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비를 초라하게 만들수록 공명이 돋보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인데, 오늘날 관점에서는 그게 공명에 대한 반감과 주유에 대한 동정을 일으키게 되니까 참 아이러니하지요...^^
  • dkvmsao 2010/12/10 13:25 #

    손권은 주유를 남군태수로 삼았다. 유비는 표를 올려 손권에게 거기장군을 대행하도록 하고 서주목을 겸임하도록 했다.
    유비는 형주목을 맡아 공안(公安)에 주둔했다. - 오주전 -

    손권이 유비를 형주목으로 내세웠다고 보기는 그렇지 않을까요?
    아니면, <오주전>이 아니라 다른 전에 있다면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초록불 2010/12/10 13:33 #

    오주전에 그 대목이 나오는 것 자체가 손권이 그 일을 실행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자치통감>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마침 유기가 죽자 손권은 유비에게 형주목의 일을 관장하게 하였고, 주유는 남안의 땅을 떼어서 유비에게 주었다. 유비는 유구에 군영을 세우고 이름을 공안으로 삼았다. - 권중달 역, 자치통감7, 439쪽.

    참고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 dkvmsao 2010/12/10 22:12 #

    아,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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