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떻게 하면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 ![]() 하이먼 러치리스 지음, 김정희 옮김/에코리브르 |
청소년용 책이다. 이 뒤에 뭐라고 붙여햐 할지 망설여졌다. 과학입문서? 과학적 사고 입문서? 아니면 미신 타파를 위한 책? 다행히 이 책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고 있다.
이 책은 과학의 방법, 즉 미신적이고 동화식으로 생각하는 방법과 구별되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또한 어떻게 과학이 세상을 변화시켰으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관해 설명하는 책이다. (14~15쪽)
책은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한 어조로 재미있게 만들어져 있다. 총 183쪽에 한 면에 스무 줄 편집이라 내용이 많지 않다. 부담 없이 쉭 읽어나갈 수 있겠다.
이 책은 여러가지 서양의 미신 - 점성술, 검은고양이, 깨진 거울, 불길한 숫자 13, 마녀소동 등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라는 문제와 기묘한 우연은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해서 확률을 가지고 잘 설명하고 있다.
읽어보면 비록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신문들도 오늘의 운세와 같은 미신을 열심히 게재하고 있고 4라는 숫자를 싫어하며 풍수와 사주와 관상과 손금 등 온갖 미신이 횡행하는 것에 비추어 귀감이 될만한 책이라 하겠다. 이런 과학적 사고의 부족이 결국 순수혈통을 주장하는 유사역사학의 번창에도 기여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겠다.
"사실"은 관찰을 통해서 알 수 있지만,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는 "관찰" 자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 책은 지적한다.
그러나 많은 종류의 사실, 혹은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밝히기에 어려운 것도 있다. (중략) 통증 그 자체는 어떤 문제가 존재함을 알 수 있는 관찰이다. 실제로 우리가 통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관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해내려고 할 때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즉 판단을 잘못하여 틀린 결론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다리에 통증을 느낄 경우, 그곳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통증은 실제로 허리의 신경이 눌려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다리를 치료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 이런 건강에 관한 문제는 관찰을 통해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는데 전문가인 의사를 찾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12~13쪽)
역사학에서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문자 그대로 집착하는 것은 다리에 통증이 있다고 다리만 치료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 가령...
馬韓在西有五十四國
어떤 유사역사학 신봉자는 위 글을 마한馬韓 서쪽에는有西 54국五十四國이 존재한다在라고 해석한다. 글자는 남김없이 다 쓴 셈이다. 그러나 저 글은,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으로 끊어읽어야 하고, 그 뜻은 마한은 서쪽에 위치하며 54개국이 있다라는 말이다. 아프면 의사를, 역사에 궁금한 것이 생기면 전문역사학자가 쓴 책을 보자.
미신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이다. (중략) 미신은 동화식 사고의 예다. 그러나 상상으로 꾸민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동화와 달리, 미신은 사실이라고 잘못 믿는 것이다. (21쪽)
신년이 되었으니 모두 토정비결이나 신년운수 같은 것을 "재미" 삼아 볼 것이다. 그리고 좋은 결과가 나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쁜 결과가 나와도 훗, 이런 건 미신이야, 라고 밀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혹 불안해 하는 일이 비슷하게라도 일어나면 그 일이 일어난 이유를 미신에 미뤄버림으로써 책임감에서도 해방 되고 개선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게 되기도 한다. 불운해서 생긴 일을 어쩌겠는가?
미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증거로 내놓는 것들은 물론 그 미신이 성립된 것들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증명을 가리켜 카드섞기Cardstacking라고 부르고 있다. 프로도박사가 자기에게 유리하게 패를 모으는 기법인 "스테키"(만화 타짜에 나와 유명해진 바로 그 용어)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신이 '증명'하고자 하는 것에 유리한 예만을 찾거나 보여주고, 불리한 것을 보여주는 예는 모두 감춰버리거나 무시해버린다면 그 사람은 바로 '카드섞기'를 하는 것이다. (38쪽)
유사역사학에서도 얼마나 자주 이런 방법을 사용하던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만을 발췌하고 심지어 왜곡하여 제시하는 일은 유사역사학의 전가의 보도와 같다. 결국 이런 일은 과학적 사고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매우 깊은 논의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청소년 책을 쓰다보면, 제일 고민스러운 점이 바로 이 점인데, 어디까지 이야기해줘야 하는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다. 어떤 청소년들은 이미 그 사고의 깊이가 성인과 맞먹기도 하는가 하면, 어떤 청소년은 초등학생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우 쉽고 간편한 방식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어른들이 보면 불만족스러워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유사역사학 신봉자 급의 사고 방식이라면 어른도 읽고 반성할 필요는 있겠다. 더불어 과밸의 괴인들께도 추천...^^;;
집에 청소년이 있는 분들께는 강추. 반드시 읽혔으면 합니다.
그런데... 어느 밸리로 보내야 하나... 일단 책이니까 도서 밸리로...
덧글
배두 나왔다. (으흐흐)
내가 니 애비다. ㅋㅋㅋ
청소년용이라고 위장된...
어른들을 위한 필독서 라고 생각이 드는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