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강의 *..문........화..*



뱀파이어 강의 - 6점
로렌스 A.릭켈스 지음, 정탄 옮김/루비박스


원제가 뱀파이어 강의이긴 했지만 어떤 강의인가 하면 정신분석학적 강의, 구체적으로는 포스트펑크 프로이트주의...라고 한다. 이 분야는 내게 있어서는 생소한 분야라는 정도를 뛰어넘어서 아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포스트펑크를 검색해보아도 음악의 한 장르라고 밖에 나오지 않는다. 프로이트야 심리학 시간에 죽어라 공부한 적도 있지만(20년 전이다. 남아있는 거라곤...) 대체 이 두 단어가 결합된 것이 뭔지 알 수 없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저게 무엇인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책은 그냥 그에 입각해서 뱀파이어 문학-영화를 분석한 것이기 때문인 듯하다. (심지어 여기에도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이론 없이 소개된 현상처럼 보인다. 아직 수영을 배우지 못했는데 망망대해에 던져진 것과 비슷하다. 더구나 강의, 즉 구술된 것을 문자로 옮기면서 일어나는 폐해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활자는 음성을 전달하지 못한다. 농담과 진담이 같은 폰트로 매겨질 때 활자로 되는 글은 주의 깊게 그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게 마련이지만, 구술에서는 그런 간격이 필요없다. 약간의 톤 조절만으로도, 제스처를 통한 분위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자기 진지하던 모드가 농담으로 바뀌곤 한다. 강의라면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초도 없이 읽어나가기에도 진땀이 나는 마당에 난데없이 돌출하는 농담을 보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그리고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게 느껴지는데, 특히 앞부분이 그렇다. 덕분에 이 책의 진입 장벽은 한층 더 높아지고 말았다. 후반부로 가면 이런 현상이 줄어드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저자의 난해한 말투에 적응하게 된 것일까?

시대를 막론하고 실시간으로 뱀피리즘이라고 유포된 사실과 소문을 되짚어 볼 수 있다면, 뱀피리즘의 이름을 따라 전해져 온 행위와 욕망의 다형적인 혼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뱀파이어로 변하는 방법이 많듯이 뱀피리즘을 실행하는 방법 또한 많다. 뿐만 아니라 신체 중에서 흡혈이 가능한 부위도 많다. (22쪽)

제1강의의 첫 부분이다. 이 문장을 열 번은 다시 읽어본 것 같다. 원문이 보고 싶었다.

뱀파이어의 갈증으로부터 프랑켄슈타인식 보디빌딩과 미라식 되감기를 거쳐 우리가 계속 살펴볼 육체의 재단 또는 테크놀로지화는 이미 호러 영화의 즁요한 예고편이기도 하다. (38쪽)

제1강의의 마지막 문장인데, 이 역시 뭔가 매끄럽지 않다. 이런 대목을 다른 책에서 찾을 수 있는 번역과 비교해보자.

망자에 대한 오랜 세월의 피로한 애도를 겪으면서 내 심장은 즐거움과 어울리지 않아졌다. (53쪽)

위 글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쿨라>에서 드라큘라가 하는 말이다. 열린책의 번역본에는 위 대목이 이렇게 나온다.

내 심장은 죽은 이들을 애도하면서 지루한 세월을 보낸 탓에 환락의 현을 퉁겨도 아무런 감응이 오지 않소. (39쪽)

"않아졌다"와 같은 어색한 표현이 계속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있다. "피로한 애도"는 또 어떠한 애도일 것인가?

더불어 <드라큘라>에 대한 분석 중 미나에 대한 정의는 그다지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첨단장비의 애호가로 정의하지만, 그 집단에서 원래 첨단장비 애호가는 수어드 박사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축음기라는 최첨단 장비는 본래 박사의 것이었다. (열린책 번역에서는 수어드로 나오고 이 책에서는 슈어드라고 나온다.)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지만 이 뒤로 넘어가면서는 번역상의 불편한 점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뱀파이어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얻는 차원에서 이 책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불편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뛰어넘고 그냥 자료적인 차원에서 읽어나가면 이것저것 얻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또한 해석 상으로도 시사를 주는 부분들이 여러가지 있다. 문제는 그런 작업을 위해서 이 책을 선택할 가치가 있는가, 라는 점이겠다.

<포스트펑크 프로이트주의>가 뭔지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뱀파이어 자료로 이 책을 선택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을 정도로 뱀파이어 관련 책자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가령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드라큘라 그의 이야기>와 같은 책은 쉽고 재미있게 뱀파이어에 대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는 시공사 디스커버리 총서의 <흡혈귀 - 잠들지 않는 전설>이나 살림지식총서의 <뱀파이어 연대기>와 같은 책도 좋다.

이 책은 뱀파이어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이 있거나, 뱀파이어 영화에 대한 마니아라든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텍스트와 영화에 어떤 해석을 가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적합하리라 생각한다.

렛츠리뷰

덧글

  • 들꽃향기 2010/01/08 22:47 #

    '포스트펑크 프로이트주의' -> 이 단어에서부터 뭔가 심상찮은 포스가 풍겨져나오는군요 ㄷㄷ;
  • 2010/01/08 23:0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0/01/08 23:12 #

    원문 자체가 난해하긴 하군요. 하지만 좀 더 잘 번역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 WeissBlut 2010/01/08 23:03 #

    흐음. 신청했다 떨어진건데 생각보다 책이 미묘했나보네요; 그래도 한번 구해봐야겠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0/01/08 23:17 #

    이 책은 아무래도 원서가 나은 듯 합니다. 번역은 가독성이나 의미 전달이나 완전히 꽝이거든요.
  • Fedaykin 2010/01/08 23:39 #

    뱀파이어와 강의가 합쳐졌으니 뭔가 뱀파이어의 전설이나 해석에 대한 알기 쉽고 재미있는 강의를 기대하고 왔다가, 번역자랑 프로이트한테 얻어 맞고 책장을 덮는게 가장 일반적인 반응인거 같습니다.

    우리나라랑 미국의 뱀파이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다는걸 보여주더군요.
  • 네비아찌 2010/01/09 00:33 #

    포스트펑크 프로이트주의라니 프로이트의 유산을 얻어먹고 사는 저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응가놈 2010/01/09 00:41 #

    중간에 농담하는 부분에서 여러번 읽고서야 ' 아지금 이사람 농치는 건가'... 전혀 웃기지도 않고 까딱 잘못봤다간 헛소리의 미로에서 헤맬뻔한. 농담이면 농담답게 좀 뉘앙스가 살아 있어도 좋으련면 말투가 딱딱해서 말이죠.
  • 홍월 2010/01/09 03:14 #

    오늘 서점에서 좀 훑었었습니다...사정상 사지는 않았지만, 뭔가 괴랄한 번역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괜찮다 싶었고 이 포스팅을 보며 어쩐지 예문도 잘 이해가 되는 것이...? 뭐,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뱀파이어와 정신 심리학의 결합은 예전부터 계속 나오는 이야기지요, 사실 예전에 대학 강의에서도 저런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었었는데-교양이라 껍질만 핥고 말았지만요.
  • 어릿광대 2010/01/09 07:34 #

    미묘한 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네요..
    저는 이번 렛츠리뷰에서 다른책이 당첨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안왔습니다;;;
    25일까지 리뷰써야하는데 아직까지 안왔으면 이건 뭐 -_-;;;
  • 차원이동자 2010/01/09 09:18 #

    뱀파이어연대기 참 재밌게 봤습죠.
    번역도 번역이지만 포스트펑크어쩌고도 좀 이해가 안가군요.
  • Allenait 2010/01/09 10:50 #

    ..미묘한 책이로군요.

    포스트펑크 프로이트주의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Luthien 2010/01/09 12:51 #

    예의상 호평 비슷하게 써주긴 했는데 프롬 + 켐벨 추종자 입장에선 식겁할 내용 천지더군요. 후기 마르크스 냄새도 좀 나는것이. -_-
  • highseek 2010/01/10 00:16 #

    사실 뱀파이어와 프로이트의 결합이라면, 뱀파이어 전설 쪽에서 더 할말이 많지요. 어째 제가 기대하던 책은 아닌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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