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북정에 나서다 1 *..역........사..*



조선 건국 후 최대의 적은 일본도 중국도 아닌 북방의 여진족이었다. 임진왜란 전까지 조선은 13차례에 걸쳐 여진 정벌에 나섰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조선의 동북 방면을 조상의 발상지로서 당연히 자국의 영토로 만들고자 했다.

조선 초, 북방의 정세는 한두 마디 말로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만주의 여진족을 명과 조선은 서로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아 상대 국가를 견제하고 싶어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조선이 왕실의 용흥지지라고 중시한 곳은 지금 함경북도 끝자락인 경성과 경원이다. 두만강을 경계로 최북단 지역이라 할 수 있겠다. 이성계는 건국 원년에 이미 이곳에 오른팔이었던 여진인 이지란(본성 퉁佟. 초명은 몽고식 이름인 쿠란투란티무르古倫豆蘭帖木兒)을 보내 갑주(지금의 갑산)와 공주(경원) 등에 성을 쌓게 했다. 태조 7년(1398)에는 정도전을 보내서 경원부에 석성을 짓게 했다.

중국의 손진기는 이 시대 여진족을 협의의 여진(금나라 후예)와 광의의 여진으로 나누고, 광의의 여진을 5종족으로 분류했는데,(1) 여진(금후예인 숙여진) (2) 금대 생여진의 후예인 쿠라온(忽刺溫;학자에 따라 우디케의 일종으로도 본다) (3) 오랑케(兀良哈=후리가이胡里改) (4) 오랑케와 여진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오도리(吾都里=斡朶里) (5) 흑수말갈의 후예 우디케(兀狄哈=종족이 많다)가 그것이다.

당시 두만강 이북으로는 여러 여진족이 존재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대개 야인野人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여진어 우디케를 번안한 말이라고 한다.

우선 채분하綵芬河에서 연해주 일대에서 어로에 종사하던 골간骨看우디케, 모란강 영고탑 일대의 혐진嫌眞우디케, 송화강 상류의 쿠라온(忽刺溫)이 있었다. 이들은 명과 조선 사이에서 양측에 모두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회령 일대에는 오도리가 있었다. 이들은 금나라의 후예로 본래 모란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지역(三姓)에서 살다가 남하한 종족이다. 퉁밍거티무르童猛哥帖木兒가 이들의 지도자였다.

퉁밍거티무르는 조선왕조실록에는 맹가猛哥라고도 나온다. 벌써 태조 4년인 1395년에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사에 이름을 보이고 있다. 퉁밍거티무르가 조선과 명 사이를 오가며 펼치는 외교전이나 이 시기 여진족들끼리의 암투도 매우 복잡한데, 역시 이번에도 단순하게 처리하자.

조선 전기에 명이 요동에 설치한 위衛가 184개였는데, 이중 79개가 조선에도 입조하는 이중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을 대표하는 세력은 앞에 나온 퉁밍거티무르의 오도리와 오랑케 추장 아하추阿哈出였는데, 이들은 모두 조선과 명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성계의 이지란의 아들 이적리불화李赤里不花가 동북면 11개 추장들과 힘을 합하여 조선에 협력하고 있었다.

여진족은 외교에서 양다리였고 조선과의 관계에서도 화전和戰 양면을 구사했다. 태종 6년(1406년) 초에 함경도 경원을 혐진우디케의 추장 키무나乞木那(=金文乃)가 침공한 것을 시발로(이 전투에서 조선은 키무나의 아들을 죽였다. 여진족은 기병에 활로 무장했고 조선군은 기병으로 대적하다 패한 후 보병으로 전투에 임해 승리했다) 키무나는 태종 10년 이번에는 다른 우디케와 오도리까지 끌고 쳐들어와서 병마사를 죽였다. 다행히 목책으로 후퇴하여 방어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성밖의 가옥을 불지르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이에 태종은 여진 정벌을 결심한다.


덧글

  • 다복솔군 2010/02/15 12:39 #

    선리플 후감상 = 후다닥

    잘 읽었습니다. 요새 부흥카페에서 올라오고 있는 소드마스터 척미네이터(;;)의 활약을 읽고 있는지라 관심이 생기던 부분인데 맞춰서 올려주시네요. 기대됩니다. ㅠㅠ
  • 초록불 2010/02/15 14:42 #

    그냥 저도 공부할 겸 겸사겸사 올려보려고 합니다.
  • 마무리불패신화 2010/02/15 12:40 #

    이런데도 조선이 맨날 당하기만 하는 착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_-
  • 초록불 2010/02/15 14:42 #

    일제강점기에 뿌려진 떡밥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들이죠.
  • LVP 2010/02/15 12:46 #

    아 글쎄 '한국=전쟁을 먼저 일으키지 않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를 여적꺼정 믿는 사람들이...

    ※예방전쟁도 전쟁은 맞음. 'ㅅ';;;;
  • 초록불 2010/02/15 14:50 #

    그렇죠.
  • 들꽃향기 2010/02/15 12:56 #

    잘 읽고 갑니다. ^^ 기병전에서 패했다가 보병전으로 이겼다니 놀라울 따름이군요. ㄷㄷ 더욱이 다수의 고급병종과 장교단이 섞인 기병전의 패배후에 보병대가 와해되지 않고 전투를 치뤄냈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조선군대의 기량을 가늠해볼만한 지표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초록불 2010/02/15 14:52 #

    기록 자체가 자세하지는 않은데 저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여진족이 활을 잘 쏘기 때문에 단병접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걸 받아들여서 몰아내었으니까요.
  • hyjoon 2010/02/15 13:11 #

    조선의 안정과 평화가 왜구와 여진족에 대한 무력진압 위에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가야 그 뒤에 다루어질 역사를 제대로 서술할 수 있는데, 그걸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죠.....
  • 초록불 2010/02/15 14:55 #

    그렇습니다. 뿐만아니라 수백년간 싸우고 당시 사람들도 이종족이라 분명히 여긴 저들을 동족이라고 자꾸 부르는 사람들도 많죠.
  • Marcus878 2010/02/15 13:26 #

    오오ㅠㅜ 이게 얼마만의 역사 글인지
  • 초록불 2010/02/15 14:55 #

    그, 그래도 한달에 몇 편은 올라가는데요...
  • 풍신 2010/02/15 13:35 #

    그러고보니...저때부터 끊이지 않고 싸웠군요. 이순신 장군도 훈련후 벼슬길 첫 임무가 여진과 싸우는 것이었으니...참 징하게도 여진과 싸웠던 듯...
  • 초록불 2010/02/15 14:55 #

    고려 시대에도 싸웠으니...
  • Niveus 2010/02/15 14:21 #

    뭐 예방전쟁이 전쟁 아니냐? 라고 하는 사람에게 이스라엘 50년사를 보여줘야(...)
    분명 쟤네도 중동전쟁은 예방전쟁이라고 우기고 있죠? (笑)
  • 초록불 2010/02/15 14:56 #

    ^^
  • 이비에르 2010/02/15 16:47 #

    얕은 지식이지만 태종때이렇게 다져져서 세종대왕때 빛을 보는 업적중에 하나가 바로 현재의 국토를 만드는 북진아닌가용'ㅁ'?
    (대마도 정벌도 있다고 알고 있구요.)
    우리나라가 그렇게 당하기만 하는 나라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욕하는 주입식으로 배우면서 자랐는데도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까요;;
  • 이비에르 2010/02/15 16:49 #

    세종대왕 업적에 현재의 우리나라 지도 모습으로 영토확장을 국사시간에 안배우고 자란것도 아닐텐데..
  • 초록불 2010/02/15 17:23 #

    그보다 더 많이 엉터리 이야기들을 듣다가 그만 생각 못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더군요...^^
  • 이비에르 2010/02/15 17:25 #

    항상 이상한거에 낚이는 것 같아요..ㄱ-
    우리나라는 보면 1번주제로 얘기 시작하다가도 얘기하다보면 꼭 한 15번 얘기로 싸우고 있는것 같다는..
  • 을파소 2010/02/15 17:57 #

    금나라 청나라 다 우리 역사라는 헛소리대로면 부모한테 대드는 자식을 훈계하는 태종인가요?
  • 초록불 2010/02/15 18:52 #

    조선까의 입장에서 보면,

    명은 입만 가지고 관직 내려주면서 달랬는데, 조선은 녹봉까지 줘가면서 달래는 비굴한... (이하 생략)
  • moduru 2010/02/15 18:59 #

    이거슨 바로 그 말로만 듣던 북벌. 두둥....
  • 초록불 2010/02/16 01:20 #

    효종 때 일은 아닙니다...^^
  • 루드라 2010/02/15 19:24 #

    기병은 항상 보병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 알려진 속설의 하나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초록불 2010/02/16 01:21 #

    고맙습니다.
  • 현암 2010/02/15 20:14 #

    역시 태종의 포스는 부럽군요....(?!)

    뭐랄까요 포스팅 제목만 보고 나선정벌이 생각났습니다만.... 이 연재가 진행됨에 따라 언급하시겠죠?
  • 초록불 2010/02/16 01:21 #

    태종의 지략을 이제 볼 차례지요.

    나선정벌은 따로 항목을 잡아야죠. 조선, 러시아와 싸우다... 뭐 이런 식으로.
  • 이레아 2010/02/15 21:23 #

    원래 근대 이전 동양정주민족국가에서는 국경경비에 나서는 향병 계통이 강력하다는 전통이 있죠. 급료받는 중앙군따위야 씹어드실만큼...(...)
  • 초록불 2010/02/16 01:22 #

    호...
  • Allenait 2010/02/15 21:55 #

    ...진짜 여진하고는 징하게 싸웠군요.
  • 초록불 2010/02/16 01:22 #

    그렇죠.
  • 장미 2010/02/16 01:09 #

    "기병으로 대적하다 패하고 보병으로 승리했다.">>>
    이거 자세히 볼 수 있나요? 재미있을 것 같은데.
  • 초록불 2010/02/16 01:19 #

    해당 기록은 이렇습니다.

    ------------------------------------------
    야인들이 격분하여 원망하고, 건주(建州) 사람이 또 이를 부추겨서 경원(慶源) 지경에 들어와서 초략(抄掠)하였다. 박영이 가볍게 여기고 수십 기(騎)를 거느리고 나아가니, 야인이 기병(騎兵)으로써 옆에서 돌출(突出)하였다. 박영이 놀라서 말을 채찍질하여 후퇴하였다. 조금 있다가 관병(官兵)이 잇따라 이르니, 박영이 거느리고 싸웠는데, 한 사람이 계책을 올리기를,

    “야인이 활을 잘쏘므로 그들과 더불어 예봉(銳鋒)을 다투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단병(短兵)을 잡고 죽을 때까지 싸우면 승부가 날 것입니다.”

    하였으므로, 곧 적진(敵陣)을 돌파(突破)하여 들어가니, 여러 사람들이 이를 뒤따랐다. 김문내(金文乃)의 아들을 죽이니, 야인들은 이에 목마(牧馬) 14필을 약탈해 가지고 가버렸다. 관군(官軍) 가운데 죽은 자는 4인이었다.

  • 장미 2010/02/16 09:42 #

    중세에 프랑스의 Crossbow 가 장거리를 쏘나, 속사를 못해서 보병이 러쉬를 하면 크게 힘을 못썼다고 보았는데, 위의 경우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기병과 싸우기를 피하고 직접 기병을 몰아 말이 힘을 쓸 수 없는 진중으로 뚫고 들어가 싸워서 백병전을 치른 것인지 궁금하네요. 종종 서양전쟁사를 보면, 병력수 등 자세한 숫적정보와 함께, 화살표를 이용한 병력이동경로, 보유무기 등을 들어가며 설명을 한 것이 영화를 보듯 흥미진진해져서요. 위의 것도 그런 정보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부연설명 감사합니다. 야인은 Horse Archery 가 주된 구성이었겠지요?
  • 초록불 2010/02/16 09:50 #

    기록 자체가 소략해서 당시 정황은 여러모로 재구성해봐야 하겠지요. 저도 들여다보는 중이니 자세한 내용은 차차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0/02/17 05:00 #

    여진을 상대로 기병으로 싸워서 지고 보병으로 싸워서 이겼다는 기록이 흥미롭굼뇨.

    고려때 윤관이 여진을 상대하려면 기병을 키워야 한다고 했던적도 있고, 조선시대 당시 여진을 상대로 전과를 올렸던 신립도 기병을 위주로 대응해서 성과를 올렸던걸 생각하면 의외군요.

    물론 기록이 간략한 덕분에 당시 상황이 정확히 어떤지 모르는게 문제지만요.

    저 기록을 보면 대충 추정 가능한게 기병으로 추적하면서 대응하다가 여진족 기병의 매복에 당해 피해를 입고 잠시 물러난 시점에서 조선군측의 추가병력이 도착했고, 이 병력 가지고 그대로 밀어붙여서, 조선군을 기습한 이후 대열 정리를 안한 여진족을 그대로 밀어붙여 친것 같습니다.
    특히 단병접전을 제시한건 여진족이 활로 대응할 것으로 예측하고 활로 대응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움직여서 활의 장점을 무용지물로 만들게끔 접근해서 제압한다고 볼수도 있고 말이죠. 그래서 죽을 각오라는게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함을 의미하는것 같습니다.
    활에 대한 대응의 선례로는 꼭 적용하긴 그렇지만 마라톤 전투가 있는데 당시 그리스군 중무장보병의 약점인 측면을 위협할 기병이 없던 시점에서 보병에게는 유일한 위협인 페르시아 궁병에 대응하기 위해 궁병의 사거리에서 최대한 빨리 이용해서 피해를 줄이면서 접근해서 친 적도 있으니까요.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 초록불 2010/02/17 09:17 #

    말씀하신대로 기록이 소략해서 정확한 재현이 안 되는 것이 저도 안타깝습니다. 공부를 더 해보면 실마리가 나올지도 모르니, 함께 진행을 지켜봐주십시오...^^
  • matercide 2010/09/25 21:17 #

    여기나오는 퉁밍거티무르(이게 정확한 발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는 성이 아이신줴뤄(이것도 불확실합니다. 소리를 빌려적은 한자의 북경식발음이어서)고 그의 來孫은 청나라의 창업자 누르하치입니다.
  • 초록불 2010/09/25 22:05 #

    이 글도 뒤를 이어야 하는데 바빠서 손을 놓고 있는 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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