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조롱 *..만........상..*



스티븐 킹의 소설을 보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다 싶은 것들이 있다.

갑자기 일상 생활의 익숙한 한 부분이 공포스런 대상으로 바뀐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만 알게 된다. 소설에서는 도망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냥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경우도 많다.

살다보면 이유를 납득하기 힘든(혹은 납득하기 위해 애쓰는 것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 적의를 만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적의가 가진 깊은 함의에 대해서 들어가보면, 인간이 가진 참 여러가지 깊은 내면을 만날 수 있기도 하다. 나는 가끔 킹 소설이 가지고 있는 "힘"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래봐야 읽은 게 많지는 않다.)

황석영의 <가객>을 보면 권력자는 "공포"를 주기 위해 그의 혀를 잘라 전시해놓는다.
중세 시대에는 사형수의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교수대에 걸어놓았다. 더럽고 냄새나고 무서운 형상으로 변해갔을 그 시체들을 왜 그대로 걸어두었을까? 로마 역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한 뒤에 대로 변에 반역자들의 시체를 십자가에 걸어서 전시해 놓았다고 한다. 예수가 받은 십자가 형 역시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참수형은 길거리에서 시행되었다.

어떤 이의 신분을 고려해준다면 그때서야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죽을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방 안에서 목을 매달아 죽는다거나.

이런 일들이 가지고 있는 뜻은 분명하다. "공포"다.

그러나 세상은 좀 달라졌다. 이제는 민주주의의 시대다. 권력의 원천이 국민에게 있는 시대. 국민에게 오는 공포 또한 국민이 위임한 힘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공포" 이면에 있는 것은 무無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다보니 "깨끗하게 살면 뭐가 무서워?"라는 말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이 "이론적"인 것이다. 이론 상으로야 "깨끗하게 살면" 그만이겠지만, 어디 실제 사회가 그런가? "실력"이 있으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해도(마치 심판이 뭔 짓을 해도 한판으로 이기면 되지...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계란에서 뼈를 찾는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이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받는 상처도 "깨끗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욕망은 사람마다 다르고, 따라서 깨끗함의 기준도 다르다. 이런 모든 것을, 아니 대부분의 것이라도 획일화하려고 하는 시도는 결국 필연적으로 "공포"를 수반하게 된다.

이런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이 원칙적으로야 깊은 수련을 해서 그 뒤의 실체를 파악하고 제도적인 힘으로 자신의 주위에 강력한 프롬프트 에빌 +3의 마법이라도 거는 것이겠지만, 누구나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도 드물지만(그런 일이 실제 상황에서 자주 일어난다면 스티븐 킹은 다른 소설을 썼어야 할 것이다) 일어났을 때는 전문 마법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한 일일 따름이다.

일반인들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서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은 그 뒤의 진실을 바라보며 그 앞에 선 허깨비 공포에 대해서 조롱하는 것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괴물 - 보가트가 이런 상황을 잘 나타낸다. 보가트 자체는 위험한 괴물이 아니다. 하지만 보가트는 자신과 대면한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형태를 파악하고 그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대항하지 못하면 지고 마는 것인데, 대항법이 간단하다. 보가트를 조롱하는 것이다.

보가트 힘의 원천은 바로 자기 자신의 머릿속이다. 따라서 자신의 머릿속 생각을 공포에서 조롱으로 전환한다면 더 이상 그 허깨비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것이 조롱, 나아가서 풍자가 갖는 위대한 힘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면, 웃음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고 하겠다.


핑백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사상의 자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2011-06-21 11:19:29 #

    ... 볼 만하다), 이 문제 때문이었다. 사상의 자유에는 "조롱"도 허용이 되는가? 나는 조롱에 대해서 애초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비유, 풍자, 해학과 조롱 [클릭] 공포, 조롱 [클릭]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괴물 - 보가트가 이런 상황을 잘 나타낸다. 보가트 자체는 위험한 괴물이 아니다. 하지만 보가트는 자신과 대면한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 ... more

덧글

  • 아브공군 2010/03/14 10:24 #

    웃음은 강력한 무기죠. 근데 그 웃음도 왜곡하려는 인간들도 있고 (어쩌라고)
  • 초록불 2010/03/14 10:31 #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웃음을 없애고자 노력하죠...^^
  • 김슷캇 2010/03/14 10:32 #

    그들은 때때로 돌아온다!
  • 초록불 2010/03/14 10:35 #

    ㄷㄷㄷ
  • 아브공군 2010/03/14 10:32 #

    그러고보니 움베르토 에코 교수님의 '장미의 이름'도 결국은 웃음을 지키려는 사람과 그것을 없애려는 사람의 이야기더군요.
  • 초록불 2010/03/14 10:35 #

    지못미 아리스토텔레스...
  • hyjoon 2010/03/14 10:40 #

    공포와 조롱.......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LVP 2010/03/14 11:00 #

    하지만 그양반들은 개그를 몰라요 개그를 -ㅅ-

    그러니 사람들이 더 안꼬이지 -ㅅ-

    ※'C밥솥에서 뛰쳐나온' 누구들이라고 말하진 않겠음.
  • 초록불 2010/03/14 11:01 #

    음... 좌송합니다. 진짜로, 누구 이야긴지 모르겠습니다.
  • 초록불 2010/03/14 11:12 #

    아, 이제 알았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0/03/14 11:19 #

    웃음과 위트, 그리고 건강한 조롱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지요.
  • sharkman 2010/03/14 12:43 #

    먼저 웃기고 드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항하란 말입니까.
  • 초록불 2010/03/14 12:46 #

    잘... (먼산)
  • LVP 2010/03/14 13:28 #

    열심히...부지런히...(불쑥)
  • 야스페르츠 2010/03/14 15:42 #

    조롱과 비아냥의 경계에서 허우적대는 1人

    공포를 퍼뜨려 올바른 비판을 가로막으려는 자에게 조롱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들이 하는 짓이 과연 공포스러운지 심히 의심스럽기는 합니다만.
  • 초록불 2010/03/14 16:21 #

    이 문제는 공포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떠나 어느 쪽에나 사용될 수 있는 문제죠.
  • catnip 2010/03/14 21:23 #

    그래도 스티븐 킹의 소설은 뭔 내용인지 모르고 보고나서 한여름에 등줄기에 소름을 경험한 터라 절대 안보고 있지만 앞으로도 못볼듯 하더군요...........ㅠㅠ
    아니 본문 내용의 핵심은 이게 아니지만 스티븐 킹하니 그때의 무서움이 갑자기 떠올라서..
  • 초록불 2010/03/14 22:00 #

    네, 그런 공포를 상상하는 일이 어디서 가능했는지 알게 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인 셈이죠.
  • BigTrain 2010/03/15 15:43 #

    단편 중에는 '트럭'이나 영화화된 '안개'가 생각나네요. 저도 킹의 소설, 특히 단편은 그런 재미때문에 참 좋아합니다.
  • 초록불 2010/03/17 10:53 #

    ^^
  • sinis 2010/03/17 10:17 #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프롬프트 에빌 +3의 마법보다 더 좋은 것은 [피어에 이뮨]을 캐릭터 특성으로 가지는 것입니다.

    PS : 아는 사람은 아는....
    PS2: 초록불님도 아실듯~^^;;
  • 초록불 2010/03/17 10:53 #

    오오...
  • 하지은 2010/03/19 07:03 #

    저는 스티븐 킹이 미저리나 샤이닝에서처럼 사람의 내면적인 공포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서 미스트나 드림 캐처에서처럼 갑자기 괴물이나 유령 혹은 외계인이 등장할 때 오히려 뜬금 없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 뭔가 일어날 것처럼 포석을 깔아서... 한데 초록불님의 해석을 보니 또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부정할 수 없는 것 하나는 어떻게 쓰든 그 사람이 쓰는 글은 다 재미있다는 것이지요.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 초록불 2010/03/19 09:57 #

    저도 기본적으로 플롯이 딱 떨어지게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킹의 공포소설들은 그다지 취향에 맞지 않았습니다...마는 요즘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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