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에 대하여 - 창작과 비평 147(2010 봄호)을 읽고 *..역........사..*



마지막 렛츠리뷰로 창작과 비평 147호를 받고 문득 이것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과 비평 145호에는 고려대 김흥규 교수가 동국대 윤선태 교수의 논문을 비판한 글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146호에서 윤 교수는 그에 대한 반론을 실었다.

 

문제의 시발점이 된 논문은 <‘통일신라의 발명과 근대역사학의 성립>(황종연 엮음, <신라의 발견>, 동국대출판부, 2008)이다. 이 논문에서 윤 교수는 통일신라라는 담론이 일본의 역사가 하야시 타이스케가 발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단히 말하면, 윤 교수의 주장은 기존에는 통일신라는 고구려의 멸망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이해했던 사건인데, 하야시가 당의 축출로 완성되었다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는 것이며, 이는 단순히 통일의 시점을 옮기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타자로 보며 국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담론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당시 청의 입김을 배제하는 방향에서 조선의 독립을 일본이 후원하고 있던 것에 기인한다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하야시의 주장은 당시 국민국가 건설을 당면 목표로 삼고 있던 조선과 조선의 지식인에게도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비판없이 이 부분이 수용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수용에 대해서 반론을 펼친 사람들은 신채호 정도였으며, 통일신라를 폄하하고 남북국이라는 개념을 세운 이들조차도 이런 담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윤 교수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흥규 교수는 전근대에 이미 통일신라라는 관념이 있었음을 증명하여 윤 교수의 주장이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거론한 사실 자체는 매우 정확하고 올바른 것이다. 그러나 해석에 문제가 있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김 교수는 윤 교수의 주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윤 교수의 통일신라라는 개념을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관념으로 이해했는데, 윤 교수가 주장한 것은 나당의 대립을 강조한 새로운 담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윤 교수의 논문이 워낙 장황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저런 오해가 생긴 것도 일견 이해가 간다.

 

윤교수는 반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문제제기한 통일신라라는 담론은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만이 아니라 <나당전쟁까지도 시야에 넣어 삼국통일의 완성을 묘사하려는 역사가의 상상>을 말한다.”

 

이렇게 되어 전반전에서는 윤 교수의 승리가 확정적이다. 오독으로 인한 허수아비 치기가 된 셈이다. 중반전은 양상이 조금 다르다.

 

김 교수는 윤 교수가 쓴 다음 문장에 초점을 맞춘다.

 

하야시는 신라의 통일이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으로 달성된 것이 아니라, 그 이후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하면서 마침내(畢竟)’ 통일의 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하야시는 오히려 나당전쟁을 폄하하고 있으며 하야시가 거론한 사료들 역시 모두 기존 사서에 기재된 것이므로 새로울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하야시의 <조선사>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이해를 위해 전재한다.

 

당이 누차 꾸짖었으나, 신라가 또한 복종치 아니하니, 唐主가 노하여 유인궤로 하여금 침략케 하였다. 신라왕은 거짓으로 사과하나 마침내 고구려 南境까지 주군을 설치하였다. 무열왕과 문무왕 때 김유신의 공이 매우 커, 필경 통일의 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하야시가 나당전쟁의 전공을 감추고 신라가 마치 영토를 도둑질한 것처럼 묘사했을 뿐이며, 이를 가지고 새로운 담론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은 식민 교육에 연계되었다고 말하며 1920년의 신라일통에 대한 설명을 붙여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초점이 잘못 맞춰졌다. 윤 교수가 주장한 것의 핵심은 하야시가 삼국통일의 기점을 나당전쟁의 종결로 잡으면서 신라가 자주적인 모습으로 통일을 달성했다는 점을 최초로 의미있는 역사적 사실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윤 교수는 당초 하야시가 “‘통일신라론선구적 면모를 갖추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되어 후반전에 남는 것은 하야시의 <통일신라 담론>이 조선과 식민지의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었는가 하는 문제겠다.

 

사실 나는 이 문제가 윤 교수 주장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있기를 바랐는데, 불행히도 김 교수는 첫 단추를 잘못 꿰면서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고 말았다. 윤 교수는 통일신라론이 담론으로서 하야시의 발명 이후 건축학자 세키노의 불국사 예찬과 야나기 무네요시의 석굴암 예찬 등 신라 문화의 찬양에 힘입어 민족사 건립의 수단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문일평에 이르러 통일신라 담론이 완성된 것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이런 입장은 손진태에게 넘어가고, 그것은 현재 국사 교과서에 남아있는 주류사학의 결론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문일평의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는 기존 사서의 되풀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나 역시 이 점에 있어서는 윤 교수의 주장에 충분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다. 근본적으로 하야시가 시기적으로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것이 김택영과 현채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이야기겠다. 하지만 그 후의 과정은 지나치게 과감한 생략과 비약의 연속인 것 같다. 학문의 계승이라고 본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는 좀 더 정치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 교수의 반론은 앞부분의 오독과 그에 따른 엉뚱한 공격으로 인해 빛이 바래고 말았다. 또한 이 부분에 집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에 반론 역시 소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윤 교수는 이미 충분히 논리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음에도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고 말았다.

 

앞서 김 교수의 논평은 논문에 대한 논박이기는 하지만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은 아니다. 기껏해야 무리한 논증과 해석을 여러차례 감행했다.”, “그에게는 왜 이 많은 자료들이 보이지 않은 것일까.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정도이고,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은 것은 통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 하겠다.

 

특히 윤 교수는 다음의 두 문장에 격분했음을 감추지 않고 있는데,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한국 민족주의 사학의 일반적인 견해를 투사한 착시 내지 읽어넣기로 보인다.”

전근대 한국의 역사학 전통과 담론 유산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초오센시>의 문제 대목이 근대의 창신(創新)일까라는 의문이 불가피하다.”

배려가 있다면, 이라는 말을 놓고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전통시대 역사학의 유산과 담론을 하찮게 여겼다는 김흥규의 의식과 그 내면이다.

 

배려가 있다면, 배려가 없다로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하찮게 여겼다라는 말로까지 바꾼 다음에 공격하는 것은 학자적인 태도가 아니다. 윤 교수의 반론에는 느낌표가 참 많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논문으로서는 하자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글들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 그러나 김흥규는 자신의 생각만이 이성이고 선이었다. 학술비평이라고 하기엔 그의 글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 이 대목을 읽을 때 나는 결국 책을 덮고 말았다. 역사학 개론서 몇 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이런 말은 농담으로도 할 수 없다. 김흥규는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전혀 모른다.

- (...) 이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후고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김흥규 교수의 따끔한 충고를 바라마지 않는다.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따끔한 충고를 바란다니,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글 전체에 걸쳐서 일어난 심한 모독은, 그가 논리적으로 충분히 상대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음과 더불어, 상대의 글에 그만한 모욕이 없음을 상기해볼 때 지나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 좋은 논지의 글을 이처럼 인신공격으로 범벅해서 스스로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정도다.

 

이에 대해서 이번 창작과 비평 147호에 반론이 실리리라 생각하고 기다려 보았는데, 반론이라고 하기 애매한 글이 실렸다. 김흥규 교수는 전반전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이해를 못한 것인지, 그냥 우기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중반전의 결과에 대해서는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여 하야시가 통일신라의 담론을 완성한 것처럼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이 문제에 있어서도 김흥규 교수의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다, 그런데 후반전 문제에서는 새로운 자료를 꺼내들었다.

 

윤 교수는 신채호가 신라의 삼국통일 자체를 부정하고 남북국 시대를 설정한 것으로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 김 교수는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신채호의 글에 삼국통일을 하야시와 같은 나당전쟁의 종결 시기로 보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한 윤 교수의 답변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신채호도 하야시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말한다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실제로 김 교수는 그렇게 이야기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채호의 이런 인식이 그 후대에 준 영향은 과연 어떤 것인가, 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하야시가 선구적으로 보여준 그 통일신라 담론이 과연 어떻게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흡수되었는가, 라는 문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것이 하야시의 영향인지, 아니면 신채호나 다른 사람들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하여 이룩한 문제인지 고민스럽다. 이 고민은 식민지 근대성이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식민지라는 한계 속에서 민족국가 건립이라는 지상과제에 부딪쳤을 때, 그에 대한 답안 중 하나가 통일신라였다면, 이 역사인식이 제국의 역사가로부터 나왔다고 한다고 해서 그 발상과 결과가 동일하다고 과연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지금 내가 가진 의문은 이 논쟁의 부산물이다. 두 사람 다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논의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 반론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런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윤 교수는 조금 더 냉정하게 글을 썼으면 좋겠다.

 

어째 렛츠리뷰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가 된 것 같다. 아무튼 이번 호를 받아서 거둔 최대의 성과인지라 이것으로 리뷰를 갈음한다.


렛츠리뷰

덧글

  • 2010/03/16 07:2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0/03/16 09:12 #

    인자무적...
  • 진성당거사 2010/03/16 08:55 #

    저도 저 두 분의 논쟁을 퍽이나 관심 있게 보고 있기는 한데 포인트로 접근한다기 보다는 피상적으로만 접근하는 것 같아서 영 찝찝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16 09:18 #

    논쟁은 끝이 없군요. ㅎㅎ 그래도 이런 논쟁은 발전적이긴 합니다. ^^
  • 초록불 2010/03/16 09:31 #

    반론을 읽기 전에는 저도 잘못 이해하고 있던 부분이 있더군요. 그런 면에서는 개념이 명확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하겠지만, 더 발전적으로 나아갈수도 있는 논쟁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hyjoon 2010/03/16 11:30 #

    그래도 이순신과 원균같은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에 비하면 생산적인 모습을 본 것 같아 기쁩니다.
  • 들꽃향기 2010/03/16 20:50 #

    사실 저 논쟁을 보면서 의아했던 것은, 윤선생님께서 당시 신라 지배층(최치원으로 대표되는)과 고려 지배층들이 가지고 있었던 '삼한일통'의 의식에 대해서, 합리적인 설명논리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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