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시 - 혹은 의문이 남지 않는 법 *크리에이티브*



장르소설에는 "한국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장르소설에만 따라다닌다.

한국적 무협, 한국적 판타지, 한국적 라노베... 뭐 이런 소리들.

본격문학의 대마왕이신 김동리는 <사반의 십자가>라는 대표소설이 있는데,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인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소설을 보면서 "한국적 순문학"이라는 꼬리표를 누가 달아주는지? (그러나 이스라엘은 한국과 동족이라는 유사역사학 신봉자는 이것을 태연하게 한민족 이야기로 분류할 수도 있으리라. 퍽!)

창비 147호에는 박민규의 신작이 실려있는데, 알래스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고, 주인공은 미국인. 등장인물도 미국인. 한국인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누군가 여기에 대고 왜 한국작가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느냐, 라고 시비를 걸까? (걸지도 모른다. 세상은 넓으니까.)

전에 어떤 장르소설 감상평에서 "사람을 마구 죽이는" 것을 장르소설의 특징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박민규의 소설에서 사람들이 잔인무도하게 죽어나간다. 그런데 동일한 사람이 과연 박민규의 이 단편을 읽으면서 그것을 장르의 특성으로 파악할까? 매우 의심스럽다.

나는 때로 우리가 깊은 암시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A라는 작품은 평판이 좋은 작품이니까 나에게도 "좋아야 한다"로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해서 의문 자체를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그 안에서 "좋은 점"을 발견해서 주류의 흐름 속에 자신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암시에 걸려서 의문 자체를 말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글

  • rumic71 2010/03/19 10:43 #

    순문학과 달리 장르소설은 '정해진 틀'에 맞추어야 하는 면모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 한도사 2010/03/19 10:56 #

    세상에 장르소설 아닌게 있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세상의 모든 소설은 어떤 장르에 속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소설가'라는 단어앞에 무협이나 환타지를 붙이는게 싫습니다. 그냥 소설가인거지, 왜 장르의 이름을 접두사로 붙이는지 모르겠습니다.
  • 회색인간 2010/03/19 14:08 #

    나는 장르 나누기가 마치 계급을 나누어 천민과 평민 귀족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 초록불 2010/03/19 14:11 #

    음...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옛날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역시 복잡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 sharkman 2010/03/19 18:48 #

    천민 : 오직 필드에서만 놉니다.
    평민 : 5인 던젼과 막공으로 레이드 던젼을 갑니다.
    귀족 : 고정 공대에서 오직 레이드만 뜁니다.

    세상은 이렇게 계급을 분류합니다.

    요즘 평민에서 내려와 천민짓하고 있음.
  • mattathias 2010/03/19 19:58 #

    한국적인 글을 따지게 되는 건 대개의 경우 일본색이 너무 짙은 소설들에 대한 반발심리에 가까운 것 같더군요.

    어느 나라를 배경으로 하든, 글 자체에서 배경에 대한 자연스런 이해가 가능하게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되겠죠. 이를테면 펄 벅 여사 같은 경우처럼.
  • 초록불 2010/03/20 09:45 #

    원래 무협과 판타지에서 90년대에 나오던 논의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중이죠. 아마도 뿌리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모토에서부터일 것 같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