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에서 봉황성까지 *..역........사..*



압록강에서 봉황성까지의 구간이 조선 영토였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 이걸 한 번 봅시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들입니다.


세조 15권, 5년(1459 기묘 / 명 천순(天順) 3년) 1월 4일(정해) 2번째기사
행 첨지사역원사 김유례가 명나라에 가져간 주본·자문·사목

본국(本國)의 경계(境界)인 의주(義州)의 압록강(鴨綠江)가에 이르게 하겠습니다.

조선 초에도 보다시피 압록강이 경계였습니다. 현종 때 청나라 사람들이 자꾸 강을 넘어오자 봉황성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종 6권, 3년(1662 임인 / 청 강희(康熙) 1년) 9월 15일(을유) 2번째기사
월경인 처리, 선박, 궁둔 혁파, 윤겸의 처리 등을 논하다

상이 이르기를,
“봉황성에 말한다 하더라도 강변의 호인(胡人)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하자, 두표가 아뢰기를,
“봉황성의 장수가 강변의 제부(諸部)를 관장한다고 하니, 알아서 금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그렇겠다고 하였다.


봉황성에서 압록강까지 강변의 여러 부를 관장하므로 그들이 월경을 금지시킬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때도 말이 나오죠.

숙종 51권, 38년(1712 임진 / 청 강희(康熙) 51년) 6월 10일(임술) 2번째기사
접반사 박권이 백두산 정계의 일과 청나라 총관의 호의에 대해 치계하다

접반사(接伴使) 박권(朴權)이 4일에 치계(馳係)하기를,
“시위(侍衛)는 배를 타고 총관(摠管)은 육로(陸路)로 오늘 경원(慶源)에 도착했고, 내일 경흥(慶興)으로 떠나려 합니다. 총관이 백두산 지도 1본(本)을 내주었기 때문에 감봉(監封)하여 올려보내며, 총관이 또 이자(移咨)라 하며 1장의 문서를 보냈기 때문에 또한 올려보냅니다. 그 이른바 ‘압록강(鴨綠江)과 토문강(土們江) 두 강이 모두 백두산의 근저(根底)로부터 발원(發源)하여 강 남쪽의 조선(朝鮮)의 경계가 된지 역년(歷年)이 이미 오래 되었다.’라는 것은 피차의 경계를 논단(論斷)함이 지극히 명백하니, 뒷날의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종 때도 이렇게 경계가 분명함이 이야기됩니다.

고종 11권, 11년(1874 갑술 / 청 동치(同治) 13년) 1월 28일(임진) 1번째기사
의주 부윤 황종현을 소견하여 의주부의 경계를 잘 해 줄 것을 명하다

황종현이 아뢰기를,
“몰래 국경을 넘는 길은 압록강(鴨綠江)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 연안을 따라가며 상하에 몰래 건너가는 곳이 많아서 사실 하나하나 다 살피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이것은 신이 여러 전임 신하들한테서 들었고 영의정도 말하였습니다.”
하였다.


이때 압록강 건너편의 정황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하교하기를,
“중국의 규율이 요즘에 와서 자못 해이되어 압록강 이북의 공한지(空閒地)에 많은 백성들이 살고 있으며 밥 짓는 연기가 바라다 보인다고 한다.”
하니, 황종현이 아뢰기를,
두 나라의 접경지대에 공한지를 둔 것은 원래 목적이 있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골짜기마다 마을이 생겼다고 하니 변경의 근심거리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마땅히 금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압록강에서 건너편에 공한지를 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현종 3년에는 의주 사람들 몇이 압록강을 건너가 나무를 해왔다가 이 사실을 안 청나라가 노발대발하는 통에 의주부윤의 목이 달아날 뻔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막대한 뇌물을 뿌리고 왕까지 가서 사정을 한 끝에 파직으로 일이 마무리되기는 합니다. 의주 부윤 이시술은 집까지 팔아서 뇌물로 바쳤다고 하지요. (이 돈은 나라에서 갚아주었던 모양입니다.)

[추가]
월경했던 의주 백성들도 모두 목숨을 건졌습니다...^^


덧글

  • 갑그젊 2010/03/28 13:13 #

    마지막 문단 : 그런 일도 있었군요~_~;; 압록강 건너서 나무를 해온 의주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목이 달아났으려나요-_ㅜ?
  • 초록불 2010/03/28 13:16 #

    의주(義州) 백성들도 모두 죽음을 면한 상태에서 유배되거나 장형(杖刑)에 처해지는 등 차등있게 벌이 가해졌습니다. - 뇌물 만세!
  • 초록불 2010/03/28 13:16 #

    처음에는 의주부윤은 교형, 의주 백성들은 참형이었습니다...-_-;;
  • Allenait 2010/03/28 13:18 #

    ..와 이거 진짜 뇌물의 힘이군요
  • hyjoon 2010/03/28 14:19 #

    국경과 봉금표시를 구분 못하는 저 횡설수설 언제쯤 들어갈지............ㅡㅡ
  • 야스페르츠 2010/03/28 14:46 #

    세종 시대에 압록과 두만강으로 분명한 국경을 확립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확립이 가능했다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제가 말하는 저 민족이 그분들이 말하는 민족은 아니겠지.... ㅡㅡ;;
  • 슈타인호프 2010/03/28 15:18 #

    그저 웃을 뿐이죠^^
  • 들꽃향기 2010/03/28 17:53 #

    책문 떡밥은 얘나 지금이나 밟아도 없어지지 않는 히드라 같군요.....ㄷㄷ

    그런데 사료적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저들은 종종 하는 얘기가.

    "당사국이 그곳을 버린지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그곳에서 정착하고 실제적인 생산행위를 하는 축이 더 우세한 것 아니냐."

    라는 주장으로 합리화하려는 애들이 있더군요....물론 이런 소리는 일본 역시 을릉도-독도문제에 대해서 조선측에 하던 항변이라는 얘기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응?)
  • 초록불 2010/03/28 17:56 #

    에... 그건, 백성이 넘어가는 바람에 목숨을 잃을 뻔한 의주부윤 지못미...
  • 을파소 2010/03/28 19:39 #

    예전에 쓴 책문 관련 포스팅 트랙백 걸었습니다. 실록만 봐도 겹치는 인용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근거가 많은 거 같은데요?
  • 초록불 2010/03/28 19:43 #

    네, 근거가 바글바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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