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광화문을 헐어버린다는 결정이 나왔다.
다행히 광화문은 헐리지 않고 다른 쪽으로 이전되게 되어 목숨을 건졌는데, 이는 한 일본인의 힘이 보태진 결과였다.
일본 동양대[도오요대]의 철학과 교수였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광화문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문의 편지를 동아일보에 보냈다. 그리고 그 장문의 편지를 동아일보는 1922년 8월 24일부터 28일까지 5회에 걸쳐서 게재했다. 그 중 1회의 내용을 옮겨본다.
장차 잃게된 조선朝鮮의 한 건축建築「광화문光化門」을 위하야
이 일편을 공개할 시기가 성숙된 것 같이 내게는 생각된다. 장차 행하랴는 동양 고건축의 무익한 파괴에 대하여 나는 가슴을 짜내는 듯한 아픈 생각을 느낀다. 조선의 수부首府인 경성에 경복궁을 찾아보지 못한 여러 사람들은 왕궁의 정문인 저 장대한 광화문이 장차 파괴될 것에 대하야 알지 못하겠기로 신경에 아무 느낌과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독자가 동양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의 소유자인 것을 믿고 싶다. 가령 조선이라는 것이 직접의 주의를 여러 많은 사람에게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점차 인멸하여가는 동양의 고예술을 위하야 이 일편을 정성껏 읽어주기를 바란다. 이 일편은 잃어버려서는 아니될 한 예술이 잃어버리게되는 명命에 대한 애석의 문자이다. 그리하고 그예술의 작자作者인 민족이 목전에 그 예술의 파괴를 당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야 나의 동정코저하는 애달픈 감정의 피력이다.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너의 생명이 조석에 절박하였다. 네가 이 세상에 있다는 기억이 냉랭한 망각 가운데 장사葬事되여 버리랴 한다. 아! 어찌하면 좋은가?
나의 생각은 혼란하야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하겠다. 혹독한 끌과 무정한 철퇴가 너의 몸을 조금씩 파괴하기 시작할 날이 멀지 아니하였다. 이것을 생각하고 가슴을 쓰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너를 구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행히 너를 구원할 있는 사람은 너를 불쌍히 여겨주지 아니하는 사람뿐이다.
아직 이 세상은 모순의 시대이다. 문 앞에 서서 너를 쳐다볼 때 뉘 그 위세의 미美를 부인할 자 있으랴? 그러나 이제 너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랴는 자는 반역의 죄를 받을 것이다. 너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발언의 자유를 가지지 못하였으며 또 너를 산출한 민족도 불행히 발언의 권리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러하여 그 곳에 있는 여러 사람은 어둡고 쓰린 무정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너를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며 이후 세월이 지나갈수록 너를 애모하는 마음이 점점 깊어갈 것도 나의 확신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모의 애愛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이다. 아니 이러한 애愛를 죽이라고 강제하는 세상이다. 아!! 생각할수록 괴로운 아픔이 가슴을 누른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니 이야말로 답답하고 아프지 아니한가?
누구나 말하기를 주저하리라. 그러나 침묵 가운데 너를 파묻어버리는 것은 나로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비참한 일이다. 이 까닭에 나는 말할 수 없는 여러 사람을 대신하야 네가 죽는 이 때에 한 번 너의 존재를 이 세상에 의식케하려고, 나는 이 이편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있는 장소에서 1천 마일 이상이나 떠나있는 내가 홀로 침묵을 제치고 소리를 친다 할지라도 어둠의 힘과 강한 형세로부터 너를 구원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시비를 논단하는 이 말을 결코 무의미한 말이라고 생각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이를 쓰는 것이 나에게는 한가지 큰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운명을 다시 회복하도록 보증하여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에게 대한 존경과 애정이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의 미美와 역力과 운명을 이해하는 사람은 실로 적지 아니할 것이다. 만약 그 수가 적다고 할지라도 너는 그 적은 사람의 애정이라도 받아주겠지? 어쨌든 너의 죽음을 생각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음을 생각하여다오.
나는 현세에서 장차 떨어지려는 너의 운명을 회복하여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영靈의 세계에서는 너를 불멸의 자者로 만들지 아니하고는 맞지 아니하겠다. 실제 너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낼 수 있는 자유는 나에게 없으나 이 문자 가운데서 너를 불멸케 하는 자유는 나에게 있다. 아! 나는 이에서 너의 이름과 자태와 영을 결코 스러지지 아니할 깊은 힘으로 잘 조각하겠다. 마치 너를 산출한 민족이 저 견고한 화강암 위에 끌을 깊이 파서 기념할 영원의 조각을 새긴 것과 같이.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문장은 약간 현대 맞춤법으로 바꾸고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서너군데만 손을 보았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3.1운동 때도 조선인들을 옹호하는 글을 1919년 5월 11일에 요미우리 신문에 실은 바 있었다. 동아일보에서 1920년 4월 12일에 6회에 걸쳐 [조선인을 想함]이라는 제목으로 전재했다. 그는 "금일의 조선의 고예술 즉 건축과 미술품이 거의 패퇴하고 파괴된 것은 그 대부분이 실로 왜구의 죄행이었다... 승리하는 것은 저들의 미美요, 우리의 칼날은 아니다."(2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대목도 있다.
"일본은 우리를 위하여 교육하느냐, 일본을 위하여 교육하느냐"라고 어떤 조선인이 내게 질문한 일이 있었다. 여하한 일본인이든지 전자라고 능히 대답할 자가 있을까. 실로 그 교육은 저들의 충심의 요구와 역사적 사상을 중히하는 교육이 아니다.
그는 이러한 말로 그의 글을 맺었다.
조선인 제군이여, 설사 우리나라의 모든 식자가 제군을 매도하고 또 제군을 괴롭게 할지라도 일본인 중에 이 글 하나를 초한 자가 있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또 나뿐만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모든 나의 지인은 같은 애정을 제군에게 대하여 느끼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그리하야 우리나라가 정당한 인도人道를 받지 아니한다는 명료한 반성이 우리 동지 간에 있는 것을 알아주기 바라는 바이다. 나는 짧은 일문一文으로 하야금 적어도 제군에게 대한 나의 정情을 피력할 수 있으면, 나에게는 적지 않은 환희라 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아꼈던 광화문은 6.25 때 폭격에 맞아 부서지고 말았다. 반세기가 넘어 복원 공사에 들어간 광화문은 올 가을에 옛 모습을 되찾는다 한다.
덧글
이런 책도 있더군요.
20세기 초, 일본인이라는 한계 자체를 초월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여겨져서...
그가 실상은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통치에 기여한 제국주의 공법이라는 주장도 있
는 것 같습니다. 더 알아봐야겠지만요...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928022008
뻘플달아서 죄송....
그나저나 광화문을 다시 보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초록불님//林씨도 창씨 안 해도 됐다고 합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한 많은 한국인/한국문화'는 이 사람의 작품이죠.
이 '한의 미학'에 반발해서 염상섭 신채호 등의 당대 지식인들이 반박하는 시론도 썼을 겁니다.
당시 혼슈 북부 어딘가의 탄광에 끌려가셨다는데, 중간에 동료들이랑 프리즌 쀍끼... 하셨데요.
사람 발 안닿는 산길로 수십일을 걸으셨는데, 중간중간에 마을에서 밥도 얻어 먹고 그랬다고 하시더군요. 신고 안 당했냐고 제가 물으니까 오히려 순사가 안 다니는 길을 일러주기도 하더라고...--;;;
우리 생각에 일본놈이면 다 죽일 놈...이라 생각하지만, 당시에 일본인들 중에도 정부나 관리들의 행태나 정책에 반감을 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답니다. 뭐 초록불 님 글에 나온 분처럼 티를 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요.
아무튼 외조부님과 동료분들은 운이 좋으셨는지 몰라도 안 걸리고 무사히 도주를 계속 하실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중간에 해방되서 시모노세키에서 배타고 귀국하셨다네요.
사실 그는 일본에서도 민예운동의 선두에 서서, 대가와 작가론 중심의 예술-미술 성향에 반기를 들고 민예품이나 생활용품 가운데에서도 '소박성을 가진 미'가 있고, 그것을 강조하던 축이었으니깐요. ㄷㄷ
때문에 조선의 미에 대한 그의 시각은, 조선의 미를 함부로 '타입화'했다는 오리엔탈리스트적 면모도 있지만, 그것을 우열관계에서 놓고 파악한 것이 아니라, 일본 내에서 진행하던 민예운동과 연계되어, 근대 일본인들은 어느 '미'를 추구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대한 시사로 나아간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지난주 일요일에 국립민속박물관을 가면서 경복궁 외부를 둘러보고 왔는데 광화문은 아직도 한참 복원작업중이더군요. 서쪽으로가면 광화문 해체시 해체된 조각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때는 광화문이 철근 콘크리트일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조각들을 보면서 절단면에 튀어나몬 녹쓴 철근과 콘크리트 절단면을 보면서 생생히 느꼈습니다... 박통떄 이렇게 복원하고 황룡사 9층목탑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하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ㄱ-
그래도.. .미륵사지 석탑에 시멘트는 아무리 그래도 용서가 안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