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작가를 만나다 *..만........상..*



며칠 전, 강의 나가는 곳에서 교수회의가 있다고 참석해달라고 전화를 받았다. (강사도 그냥 관용적으로 교수라고 부른다...)

오늘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그래서 나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현기영 선생님 강연이 일산에서 있는 날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에야 도착해서 뒤풀이만 쫓아갔는데, 선생님도 계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내가 <순이삼촌> 재판본을 가지고 있는데, 너무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 책을 들고,

"이렇게 낡은 책을 가지고 가서 사인해달라고 하면 실례 아닐까?"

라고 중얼거렸다.

"작가 입장에서 말하자면, 무척 반가워하실 거다. 그토록 오랜 기간 간직해온 책이라고."

사실 그랬다. 현기영 선생님은 이 책이 사실은 초판이나 마찬가지 책이라고, 창비에서 판형을 바꿔서 처음 나온 책이었다고 쓰다듬어 주셨다고 아내가 말해주었다.

글쓰기는 때로 치유의 효능을 지닌다. 현기영 선생님도 4.3이라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강연을 하셨다고 하던데, 이 부분 나 역시 100% 동의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글을 본 지가 벌써 6년차. 글쓰기가 아이들에게 어떤 치유의 힘을 건네는지 오랫동안 보고 있다.

나는 제주도 친구가 하나 있었다. 이 친구를 통해서 4.3이라는 것도 처음 들었고, 현기영 선생님의 작품도 읽게 되었다. 동네 제삿날이 모두 한 날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해서 나를 놀라게 했던 그 친구는 지금 세상에 없다. 줄담배를 피우던 탓이었는지 3학년 때 폐암에 걸려 4학년도 되어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던 탓에 녀석의 무덤에 담배 한 개비 꽂아놓았다. 무덤은 그 담배를 필터가 탈 때까지 잘도 피워댔다.

오랜만에 옛 생각이 나는 하루였다.


덧글

  • asianote 2010/04/13 01:00 #

    현기영 선생님의 책을 군대에서 봤지요. 그런데 그 후에 금지서적으로 분류되더군요. 저도 제주도 출신인지라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 초록불 2010/04/13 01:07 #

    제주도 출신이셨군요.

    제주도 이야기가 나오니, 친한 친구이자 후배도 제주도로 귀농해서 땀 흘리고 있을 텐데...

    올해는 봄부터 기후가 엉망이라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입니다.
  • 사발대사 2010/04/13 01:04 #

    으음... 뭔가 뻘덧글 같지만 장가도 안 간 총각이 무덤이 있다는게 신기하군요...

    여기에 달 덧글은 아니지만 타이밍을 놓쳐서...;;;;
    "만들어진 한국사" 출간 축하드립니다. ^^ 한 10만부만 파시길..... ^^ (너무 적게 잡았나요?)
  • 초록불 2010/04/13 01:08 #

    음... 총각은 무덤을 안 만드나요? 하긴 화장을 하는 경우도 많지요.

    그런 생각은 전혀 못 했습니다.

    10만부라... 제 책이 10만부나 나갈 수 있다면 애초에 환독이 퍼지지 않았을 겁니다...ㅠ.ㅠ
  • 사발대사 2010/04/13 01:12 #

    어익후~ 무슨 말씀을요... 제가 10만부 팔리라고 고사를 지내겠습니다... ^^
    어쨌든 다시한번 오랜 노력의 결실이 맺어진 것을 축하드립니다.

    원래 총각은 봉분을 안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봐줄 사람(자식)이 없으니까요.
    뭐 다른 깊은 뜻이 있겠지요... ^^
  • 내맘대로교 2010/04/13 01:22 #

    아버지가 제주도 분이라 제주도에 대해선 각별한 애정이 있습니다. 전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갈거에요 (...)
  • 이준님 2010/04/13 06:29 #

    전 순이삼촌을 군대에서 봤습니다. -0-

    다 큰 놈이 동화나 본다고 타박맞았다는...

    ps: 현선생의 자전적 소설도 하나 있지요. 순이 삼촌에 비해서 잘 안 알려졌지만 단편이지만 그가 어떻게 정신적으로 성장했는지를 잘 나타내는 작품입니다.'


  • 2010/04/13 08:2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0/04/13 09:47 #

    네, 저도 박민규보다는 이기호의 글이 더 좋더군요.
  • 초이스 2010/04/13 12:30 #

    오랜만에 옛 친구 생각이 나게 하는군..
    장가안간 총각이 봉분이 있는 이유는 전통장례가 아닌 천주교 장례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네.. 현기영선생 소설 읽으면서 눈물흘렸던 시절이 생각난다. 왜 흘렸는지는 모르지만..
  • 카방글 2010/04/13 13:13 #

    어릴 때 4.3에 대한 글을 보고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잘 알게 되었죠.
  • 주코프 2010/04/13 15:46 #

    정작 제주도 본토 출신 친구들 만나보면 4.3에 대해서 별 관심도 없고, 잘 모릅니다..지역 방언도 잘 쓰지 않고요..글쎄, 아픈 기억을 건드리고 싶지 않은 건지는 그들만이 알겠지만..
  • 빛의제일 2010/04/13 17:20 #

    오래전 나온 뿌리깊은나무의 민중자서전 가운데 제주 4.3 관련된 책을 읽으며 '이런 일이' 심정이었다가, 제가 제주 4.3에 대해서 잘 모르고 제주도가 좋아서 제주에 관한 소설 하나 읽자고 '순이삼촌' 읽었다가 '어버버버+이럴 수가'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보고서(?) <4.3은 말한다>가 신문사 취재로 만든 책이라서 그런지 냉정하게 보게 되었지만, <순이삼촌>은 가슴에 콕 와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나온 강요배의 그림 <동백꽃 지다>는 참 가슴 아파서 다 못보고 보다가 덮었습니다.
    <만들어진 한국사>, 매우 죄송한 생각이지만 <만들어진 전통>이 생각이 납니다. 사서 볼터이니 혹시나 나중에 만나뵙게 된다면 저자싸인본으로 만들어 주시길 :)
  • 초록불 2010/04/13 23:04 #

    죄송할 일이 아니라... 그런 훌륭한 책에 기댄 제목인 거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