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의 영향력 시리즈 004 *..역........사..*



유사역사학이 어떻게 얼마나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리즈.
이 시리즈는 유사역사학의 영향력을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개인에 대한 비난 댓글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임의 삭제가 가능합니다.

제보 환영합니다.

그 네번째.

[사족]
사실 생각해보면 이 시리즈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지요. 일반인에게 경각심을 줌과 동시에 유사역사학의 위세를 광고하는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성질 부리는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이 있군요...^^;;)

이러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보고 있으면 아찔합니다. 하지만 안 보이는 분들은 늘 이런 일이 마치 우리에게는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마련이지요.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X가 위안을 준다'가 'X가 참'이라는 의미가 아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도킨스와 같은 인물과 저 자신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도킨스는 자신에 대한 아래와 같은 비판에 대해서 답하고 있습니다. 그 답은 제게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당신이 비판하는 근본주의자나 당신이나 별 다를 바가 없다.
- 아니, 그렇지 않다. 제발, 바뀔 수 있는 열정과 결코 바뀔 수 없는 근본주의를 그렇게 쉽사리 혼동하지 말라. (중략) 두 상반되는 견해가 동등한 힘을 갖고 있을 때 진리가 반드시 그 중간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한쪽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편의 열정을 정당화한다. (중략) 내 열정은 증거에 토대를 둔다. 진정으로 근본주의적인 것은 증거에 맞서는 그들의 열정이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조선닷컴] [Why][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무협황제' 야설록, 게임의 覇王에 도전하다 [클릭]
―환단고기니 하는 책들은 사학계에서 위서(僞書)로 판정 나지 않았나요?
"저도 그 책들은 참고자료로만 봅니다. 그렇다고 우리 역사 가운데 단군(檀君)을 전설로 보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치우보다 300년 늦게 태어난 단군이 어떻게 곰의 자식이란 말인가요. 기자(箕子)조선으로 우리 역사를 축소시킨 것도 그렇고요. 지금 우리 사학계는 일제 때 우리 역사를 축소시킨 학자들의 제자들이 맥을 잇고 있지요."


바로 그 책을 참고자료로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문제의식이 없는 거죠. <환단고기>는 참고자료로 보지만 <삼국유사>는 부정하고 있습니다.

기자 조선으로 우리 역사를 축소시켰다는 말은 대체 어떻게 나온 말일까요?

기자 조선을 부정한 것은 일제식민사가들이고, 오히려 그 영향 아래 기자 조선은 지금까지 부정되는 것이 사학계의 통설이지요.

"일제 때 우리 역사를 축소시킨 학자들의 제자" 운운은 전형적인 유사역사학의 주장입니다. 유사역사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는 증거지요.

다음 대목도 한번 봅시다.

그는 나이가 들면 호미를 들고 발굴을 하러 다닐 것이라고 했다. 무슨 발굴이냐고 묻자 다시 야설록의 얼굴이 환해졌다.
"백제 동성왕이 북위를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남제서(南齊書)에 나옵니다. 4회 이상 10만명을 동원한 싸움이었다고 해요. 믿어지지 않죠? 그 큰 중원의 나라가 백제에. 그때 동성왕이 지은 임유각을 제가 찾아낼 겁니다."


<남제서>를 보면 위로魏虜(위나라의 오랑캐)가 기병 수십만으로 백제를 공격하여 그 경계 안으로 들어갔는데 기습해서 크게 이겼다고 나옵니다. 이것이 뻥 튀겨져서 "북위를 멸망시켰다"가 되었습니다.

벡제가 동원한 군사 수는 나오지도 않지요. 또한 4회 이상이라는 말도 <남제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 백제에서 올린 표문에는 침공한 나라가 위나라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표문에는 이렇게 되어있죠.

獫狁弗悛, 擧兵深逼.
험윤이 회개치 않고 병사를 움직여 심하게 핍박하였습니다.


위로魏虜라는 말대신 험윤獫狁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습니다. 또한 백제의 기습을 받은 정황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宵襲霆擊, 匈梨張惶, 崩若海蕩.
밤에 기습하여 벽력같이 들이치니, 흉리匈梨가 크게 당황하여 무너지기가 바닷물로 쓸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흉리匈梨란 흉노의 선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험윤이나 흉리는 모두 흉노를 가리키는 말로, 이것은 북쪽의 오랑캐라는 뜻을 갖는 말일 뿐입니다. 고구려를 지칭하고 있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표문을 남제 쪽에서는 자신들의 북쪽 오랑캐인 위로魏虜로 파악한 것입니다.

북위는 수전에 약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표문은 수군도 동원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木干那前有軍功, 又拔臺舫
목간나는 전에도 군공이 있고, 또 누선[臺舫]을 빼앗았으니


이 점을 보아도 고구려가 바다와 육지를 통한 양면작전을 펼쳤다가 백제에게 패퇴 당한 것으로 봄이 옳겠습니다.

동성왕은 500년에 임유각을 대궐 동쪽에 세웠다고 <삼국사기>에 나옵니다. 이것이 왜 난데없이 중국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요? 유사역사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추가]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10년조에 실린 

十年, 魏遣兵來我, 爲我所敗. 십년에 위나라가 우리(백제)에게 병사를 보냈는데, 우리에게 패한 바 되었다.

라는 기사는  <자치통감>에서 그대로 옮겨온 기사입니다. <자치통감>에는 해당 연도에 제일 마지막에 날짜를 특정하지 않은 채 위와 같은 기사만 적어놓았습니다. 사마광도 전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냥 해당 연도에 간략하게 적어놓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덧글

  • 네비아찌 2010/04/20 10:58 #

    호미가 닳아지도록 파 보시라....하고 웃고 싶습니다.^^;;;
  • 초록불 2010/04/20 11:00 #

    유사역사학자들은 돌멩이가 나와도 그것이 증거가 됩니다. 예전에 야산을 놓고 전방후원분이라 주장한 뒤에 발굴 조사해서 나온 돌멩이를 가지고 조각 유물이 나왔다고 발간보고서까지 낸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 2010/04/20 11:0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0/04/20 11:03 #

    고생이 많았다.
  • 야스페르츠 2010/04/20 11:06 #

    호미가 닳도록 파 보시라. (2) ㅡㅡ;;;
  • 네리아리 2010/04/20 11:16 #

    이제 고대역사는 호미에 관심을 둬야 하겠군요. 흠 좀 무
  • hyjoon 2010/04/20 11:18 #

    호미가 닳도록 파 보고....뭐라고 할 지가 더 궁금해지는.....『삼국유사』를 부인하고 [환단고기]를 먼저 믿고 보는 저 논리는 어디서 나온 건지 참......(이 시리즈 인제 몇회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스트랄.....).........ㅡㅡ
  • Allenait 2010/04/20 11:38 #

    호미가 닳도록 파 보시라. (3)

    아무것도 안나오면 날조다! 라고 우기겠죠...
  • 슈타인호프 2010/04/20 11:43 #

    기꺼이 호미 하나 보태드리겠습니다.
  • 세실 2010/04/20 11:45 #

    호미가 닳도록 파 보시라. (4)

    그러고보니 예전에 이런 개그가 있더랬죠
    일본에서 땅을 100m파고 들어가다 구리조각이 발견되자 이렇게 발표하였다.
    '고대 일본은 이미 전화선망을 구축하였다.'
    그러자 중국에서도 땅을 200m나 파고 들어가서 유리조각을 발견하자 이렇게 발표하였다.
    '고대 중국은 이미 광케이블망을 구축하였다.'
    그러자 한국에서도 땅을 400m나 파고 들어갔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이렇게 발표하였다.
    '고대 한국은 이미 무선통신망을 구축하였다.'

    아무것도 안나오면 아무것도 안나오는대로 우길기세...ㅇ<-<
  • 들꽃향기 2010/04/20 14:32 #

    오오 비유가 최고입니다.ㄷㄷ
  • 베리타스 2010/04/20 12:55 #

    호미가 닳도록 파 보시라. (5)

    호미 팔 기세로 공부나 좀 더 하시면 어떨지...
  • 위장효과 2010/04/20 13:31 #

    호미 대신 모종삽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호미 팔 기세로 포크레인까지 동원할까 두렵다능.
  • 2010/04/20 14:57 #

    이분은 정말 중증임;;
  • 천랑성주 2010/04/20 15:05 #

    음...환빠가 아니더라도 험윤이나 위로를 반드시 고구려로 보지 않는 분들도 많은데...초록불님께서는 상당히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시네요...
  • FC안양 2010/04/20 16:32 #

    그렇다면 '험윤이나 위로를 반드시 고구려로 보지 않는분들도 많다'
    가 아니라 '험윤이나 위로는 이러이러해서 고구려가 아닐 수 있다'
    라고 제시해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저 '이런 얘기도 많다' 라는건 건설적인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천랑성주님이 바쁘시다면 주제넘은 간섭이겠습니다만..
  • 천랑성주 2010/04/20 16:48 #

    FC 안양/ 시간이 많지 않아 짧게 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만...
    험윤=고구려 주장은 유원재 선생님의 논문을 읽으시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강시단야'라고 설명되는 큰 전투임에도 삼국의 역사를 다루는 <삼국사기>에는
    그 해에 전투에 대한 기록이 없는 까닭에 험윤/위로=고구려 주장에 의문을 품는 것입니다.
  • Niveus 2010/04/20 17:44 #

    ...호미만들어팔면 대박날거같은데요.
    골드러쉬때 청바지 장사들 돈벌던것처럼 호미장사로 돈을(...야)
  • 곰옹 2010/04/20 19:30 #

    호미가 닳도록 파 보시라. (6)

    위에 말씀하신 전방후원분이 나왔다는 지역이
    예전에 제가 지표조사를 해서 보고서까지 썼던 곳입니다
    덕분에 문화재청부터 국회의원실까지 여러군데에서 전화를 받았었습니다

    답이 안나오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지요
    초록불님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 초록불 2010/04/20 23:16 #

    오호... 고생하셨습니다.
  • santalinus 2010/04/20 23:01 #

    유사역사학이 정말 위험한 것이....유사역사학을 토대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이라고 쓰고 망치는 이라고 읽는다-, 그야말로 교육을 빙자한 단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새싹들을 그런식으로 밟아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Alchemist 2010/04/20 23:26 #

    아아......위로가 왜 바다를 건넜지...라고 생각했는데 고구려를 의미하는 것이었군요.
    고구려가 다른 명칭으로 불리는게 신기했습니다
  • 초록불 2010/04/20 23:28 #

    고구려도 백제를 "백잔", 신라를 "동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니까요. 비칭인 거죠.
  • 누군가의친구 2010/04/20 23:40 #

    이런건 학계나 지식인층에서 적극대응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그쪽에서 환단고기를 정면 반박하며 해악에 대해 논한다는 뉴스가 없다는게 안타깝지요.
  • 초록불 2010/04/20 23:59 #

    적극대응을 한다 해도 뉴스는 다루지 않습니다.

    이덕일 글에 오항녕이 적극 대응하자 한겨레는 논쟁을 종결시켜버렸죠.
  • 미스트 2010/04/21 04:03 #

    유사역사학은 논리에 기반하여 진실을 탐구하는게 아니라
    신앙에 기반해 열렬히 믿는 것일 뿐이지요... .....
    이건 꼭 유사역사학 자체에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위대한 우리 민족', '위대한 우리 역사'를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듯.
    고구려 맥궁은 25cm 철판도 뚫었다는 주장과 그것에 열렬히 동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와서..... -_-;;;
  • 에드워디안 2010/04/21 11:59 #

    그렇다면 삼국사기에 나오는 '위나라의 백제공격' 기사(488년)도 사실, 고구려의 백제공격을 묘사한 것인가요?
  • 초록불 2010/04/21 20:58 #

    그 기사는 남제서에 실린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김부식이 요약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santalinus 2010/04/22 00:12 #

    백만년을 파다보면... 맨틀이 나올지도?ㅋㅋㅋㅋ
  • 초록불 2010/04/22 00:19 #

    ^^
  • 시나브로 2010/04/22 00:16 #

    에에, 몇 주 전에 나왔던 기사네요. '치우보다 300년 늦게 태어난 단군이 어떻게 곰의 자식이란 말인가요.' → '진시황보다 몇 백년이나 빠른 치우가 어떻게 천황이라는 건가요.'
  • 초록불 2010/04/22 00:17 #

    "황제"라는 말이 아니므로 "진시황"을 가져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 시나브로 2010/04/22 00:18 #

    쩝, 그런가요.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북위의 백제 침략은 삼국사기에 아예 기록되지 않은 것입니까?(488년 기사가 고구려의 공격이라면)
  • 초록불 2010/04/22 00:22 #

    아닙니다. <삼국사기>에는 위에 애드워디안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十年, 魏遣兵來我, 爲我所敗. 십년에 위나라가 우리(백제)에게 병사를 보냈는데, 우리에게 패한 바 되었다.
  • 시나브로 2010/04/22 00:35 #

    '남제서에 실린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라면, 결국 김부식이 남제서 훼이크의 영향을 받아 고구려의 침략을 북위의 침략으로 잘못 서술한 게 아닙니까?
  • 초록불 2010/04/22 00:42 #

    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시나브로 2010/04/22 00:44 #

    말씀 감사합니다. 혹시 삼국사기에 이에 상응되는 고구려의 백제 침략 기사가 있을까요?
  • 초록불 2010/04/22 00:50 #

    고구려는 이때가 장수왕 때인데, 백제를 공격한 기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패를 했다면 기록에서 누락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시기에 장수왕은 북위에 엄청 사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484년 1회, 485년 2회, 486년 1회, 487년 1회, 488년 3회, 489년 3회, 490년 2회, 491년 2회...

    북위와 고구려가 무척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고구려와 북위 사이의 관계가 문제의 표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만 그냥 상상에 그칠 뿐이지요.
  • 시나브로 2010/04/22 00:52 #

    윽, 뭔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네요. 무튼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10/04/27 23:34 #

    오늘 확인했는데, 삼국사기 기록은 자치통감에 실린 것을 그대로 전재한 것이네요. 본문에도 부기해서 적어놓았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0/04/22 11:21 #

    그러고보니 장수왕이 북위에 사신을 파견한 기록이 재위 후반에 갈수록, 눈에 띄게 늘어나더군요. 종래의 학설대로 남진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親북위정책을 취한 것인가요?

    덧붙여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접근한 건, 당시 남조 송나라의 내정이 혼란스웠던 탓이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 초록불 2010/04/22 23:48 #

    장수왕의 경우는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백제의 경우는 잘 모르겠군요. 일반적으로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양면 외교를 펼쳤다고 이해하는 것으로 압니다.
  • 포동이 2011/03/12 21:49 #

    남제서에서 위로,험윤,흉리로 나온 세력의 고구려인 이유가 바로 위로,험윤,흉리가 백제와
    전쟁을 한 소식을 바로 고려전에 올렸기 때문입니다.백제와 전쟁을 한 위로,험윤,흉리가
    고구려가 아니라면 고려전에 백제와 전쟁을 한 위로,혐윤,흉리는 고려전에 올라올 이유가
    없으며 올라도 다른 곳에 올라 왔을겁니다.남제서를 쓴사람도 위로,험윤,흉리로 원사료가
    표현되 있어도 그세력의 고구려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위로,험윤,흉리로 표현되 있어도
    고려전에 자료를 올렸던 것입니다.고려전 중간에 뜸금없이 위로,험윤,흉리와 백제간의
    전쟁의 나온것도 위로,험윤,흉리로 표현된 세력의 고구려이기 때문에 고려전에 그사실을
    올린 것입니다.초록불님의 남제서에서 위로,험윤,흉리로 표현된 세력의 고구려라고 밝혀낸
    점은 탁월하고 훌륭하다고 여겨집니다.저도 초록불님의 글을 보고서 남제서를 보면서
    깨달은 건데 제글의 초록불님의 이론에 조금이나마 보탬의 됐으면 합니다.

  • 초록불 2011/03/12 22:36 #

    아, 그건 포동이님이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남제서에는 결문이 있습니다. 고려전과 백제전 사이의 일부분 사료가 없어진 것이죠.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여기서도 음모론을 찾습니다만...^^
  • 포동이 2011/03/13 18:59 #

    죄송...--;;;
  • 초록불 2011/03/13 19:14 #

    괜찮습니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언제나 잘못 안 사실을 수정할 자세가 되어 있지요. 그것이 진정 훌륭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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