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 둑제, 둑기 *..역........사..*



둑제[纛祭]라는 것이 있습니다.

군기 중 하나인 둑기[纛旗]에 제를 올리는 것으로 조선 시대에는 봄(경칩), 가을(상강)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으며, 장수가 출전하는 날을 택일한 뒤에도 제사를 지냈습니다.

둑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오례의 중]


둑은 군신軍神인 치우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오례의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오례 / 군례 서례 / 병기 / 둑·기·휘
○ 둑(纛)
《운회(韻會)》에
“모우(旄牛;털이 긴 소-검은 소라고도 한다)의 꼬리로 이를 만들고, 왼쪽 비마(騑馬;두 마리 이상의 말이 마차를 끌 때에, 옆에서 끌거나 따라가는 말)의 머리에 싣는다.”
고 한다. 《광운(廣韻)》에
“크기가 말[斗]만 하다.”
고 한다. 《이의실록(貳儀實錄)》에
검은 비단으로써 이를 만드는데, 치우(蚩尤)의 머리와 비슷하며, 군대가 출발할 적에 둑에 제사지낸다.”
고 한다.


자, 저기에 이상한 책 이름이 나옵니다. <운회>. 이게 뭘까요?

중국 송宋나라 학자 황공소黃公紹가 1202년에 편찬한 책 <고금운회古今韻會>를 가리킵니다.

그럼 다음에 나오는 <광운>은 뭘까요?

역시 송나라 때 진팽년(陳彭年) ·구옹(邱雍) 등이 칙명에 의하여 1008년에 만든 책입니다.

그리고 <이의실록>은? 어떤 곳을 보니 이 책을 초楚나라의 경절耕切이 지었다고 하던데, 그것은 <무예도보통지>를 잘못 읽어서 생긴 오류입니다.

楚耕切은 槍의 반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찾아보니 <이의실록>이라는 책은 두 가지가 있는데, 유효손劉孝孫과 원교袁郊 두 사람이 각각 저자로 나오는군요. 누구의 책에서 저 말을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두 사람 다 당나라 사람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왜 모두 중국 기록일까요?

이 제도는 고려 충선왕(忠宣王, 1275 ~ 1325) 때 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충선왕은 대청관大淸觀이라는 관아를 두고 둑을 보관하게 했다. 둑을 관리하는 관원은 둑치[纛赤]라고 불렀다. 우왕 3년(1377)에 폐지하였다. (<고려사> 지, 대청관)

어라? 우리 민족 고유의 유구한 전통이 폐지되었다고요?

조선 시대에 들어와 태조는 1393년에 홍색과 흑색으로 둑기를 만들었습니다. 둑기를 둔 곳을 둑소라고 불렀는데 국초에는 의흥삼군부(지금의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있다가 훈련원으로 옮겨 갔습니다. 처음 말한 것처럼 봄, 가을에 제사를 올렸으나 임진, 병자호란을 거친 뒤에는 둑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연려실기술> 별집 관직전고)

조선 시대에도 폐지 되었다고요? 그렇군요. '사대주의자'라 폐지했을까요? 무슨 말씀을. 둑제는 중국제도였는 걸요.

네? 중국의 시조 격인 황제黃帝와 싸우고 져서 목까지 잘린 치우를 중국인들이 왜 섬기겠느냐고요?

삼국지 조조의 부하 중에 전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별명이 악래惡來입니다. 악래는 고대의 장사였다고만 나오는 경우가 많죠. 악래는 은나라 주왕紂王의 부하입니다. 주왕은 폭군이었지요. 악래는 주왕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천하장사의 대명사처럼 거론되죠.

임진왜란 때 홀연히 나타나 왜군을 무찔렀다는 전설을 남기고 이 땅에 관왕묘를 만들게 한 관우. 관우는 무신武神으로 숭상받는데, 그 관우 역시 패해서 목이 잘린 장수입니다. 목이 잘린 사실이 그 대상을 무신, 전쟁의 신으로 섬기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해가 이제 되시는지요?

사실 위에 언급한 세종실록 오례의에는 '둑' 조항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 조항도 있습니다. 볼까요?

○ 기(旗)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황제(黃帝)가 군대를 정돈할 적에 5기를 설치했다.”
고 하며, 《황제내전(黃帝內傳)》에 이르기를,
“황제가 오채기(五彩旗)를 만들어 앞으로 가리키고 뒤로 돌아보았다.”
고 하며, 《황제출군결(黃帝出軍訣)》에 이르기를,
“적을 공격 정벌할 적에 5채아기(彩牙旗)를 만들었으니, 청색기(靑色旗)는 동방을 인도하고, 적색기(赤色旗)는 남방을 인도하고, 백색기(白色旗)는 서방을 인도하고, 흑색기(黑色旗)는 북방을 인도하고, 황색기(黃色旗)는 중앙을 인도하였다.”
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다.


자, 그리고 세종실록 6년 2월 7일 여섯번째 기사를 봅시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전에 강무(講武)할 때에 마제(禡祭)를 지냄에 있어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를 제사하였으나, 옛날 법제인 《두씨통전(杜氏通典》을 상고하여 보니 주제(周制)에 정벌하는 현지에서 마제(禡祭)를 지낸다는 주(註)에 말하기를, ‘만일 정벌(征伐)하는 지방에 이르러 제사지낼 때는 황제(黃帝)와 치우(蚩尤)로 하고, 또 전수(田狩)하는 때는 다만 치우만 제사한다.’ 하였으니, 청하건대 지금부터는 강무장(講武場)의 마제(禡祭)를 주(周)나라 제도에 따라 다만 치우(蚩尤)에만 제사하소서.”
하였다.


얼핏 보면 황제에게 제사하다가 치우에게만 제사하게 되었으니 치우를 섬기는 우리 민족의 행사처럼 여겨지겠습니다. 그런데 참조했다는 서적이 <두씨통전>이네요? 이 책은 당나라의 재상 두우(杜佑, 735~812)가 편찬한 중국 역대 제도에 관한 책입니다.

이걸 어쩌죠? 중국에서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꼭 황제와 치우에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아래와 같은 이야기도 있었지요.

예종 즉위년 9월 14일 세번째 기사
표기의 모양과 색을 신숙주와 의논하다
둑기(纛旗)는 기(旗)·휘(麾)에 비할 것이 아니므로 비록 흰빛이라도 좋습니다.


치우가 전쟁의 신이 된 것이 "황제를 이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8년 5월 1일 두번째 기사를 한 번 볼까요?

호군 최호원의 《태일경》을 간행 전수시키자는 상소에 대해 대신들이 논의하다
역대의 자취로써 말한다면, 황제(皇帝)는 태일국(太一局)을 만들어 치우(蚩尤)를 쳐 오제(五帝)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저것이 치우가 이겼다는 말이겠나요?

'둑기'라는 것은 달랑 하나만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대장기를 뜻하는 것으로 여러 개가 존재합니다.

세종 6년 9월 10일 두번째 기사
큰 사열할 때에 쓰는 기(旗)를 군기감을 시켜 조작하여 수송하게 하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큰 사열(査閱)할 때에 좌·우상(左右廂)과 중위(中衛)와 중소(中所)에 수용되는 28수기(宿旗) 두 개와 12신장기(神將旗) 두 개와 대두[大纛] 두 개와 중두[中纛] 열 두 개와 소두[小纛] 여덟 개를 군기감(軍器監)을 시켜 조작(造作)하여 수송하게 하소서.”


이런 사진을 한 번 볼까요?

멋지죠? 그런데 우리나라 같지가 않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몽골의 행사 장면입니다. 몽골에서도 "둑기"를 사용했다고요? 네, 칭기즈칸 때도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충선왕이 몽골의 원나라에서 보고 배워온 것은 아닐까요? 이런 기록은 어떻습니까?

태종 2년 5월 4일 두번째 기사
임팔라실리 등이 병기를 바치다
임팔라실리(林八剌失里;여진 추장)·최강(崔康) 등이 병기(兵器)를 바쳤으니, 갑옷이 11벌, 활이 2백 24개, 화살이 2천 6백 53개, 철두구(鐵頭具)가 56개, 창이 98개, 칼이 67개, 각(角)이 3개, 둑(纛)이 2개, 기(旗)가 15개, 활줄[弓弦]이 1백 8개, 나발(螺鉢)이 1개, 징[錚]이 1개였다.


여진족 추장이었던 임팔라실리가 투항하면서 둑기를 바쳤군요. 여진족도 둑기를 사용했네요. 몽골이나 여진이나 다 동이족이라서 사용했다고요? 허허, 중국 제도는 어쩌시려고요?

세종 12년 2월 19일 다섯번째 기사
예조에서 의례 상정소와 함께 의논한 박연이 상서한 조건에 대해 아뢰다
이제 《문헌통고(文獻通考;중국 송말(宋末), 원초(元初)의 학자 마단림(馬端臨)이 저작한 제도와 문물사(文物史)에 관한 저서, 1319년 간행)》를 상고해 보면, 「당(唐)·송(宋)의 제도는 둑(纛)을 잡은 두 사람은 문무(文舞)를 인도하고, 정(旌)을 잡은 두 사람은 무무(武舞)를 인도한다.」 하였사오니, 옛 제도에 의거하여 정(旌)과 둑(纛)을 각각 두 개씩 만들어서, 문무(文舞)와 무무(武舞)가 들어갈 때에 각기 따로 앞에서 인도하게 하시기 바라옵니다.’ 하였고...


뿐만 아니죠.

세종 12년 11월 12일 여섯번째 기사
예조에서 무반의 배제를 허락치 말 것을 건의하다
《홍무예제(洪武禮制;1381년에 명(明)나라 태조가 종래의 예제(禮制)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유신들을 시켜 편찬한 국가의 예식집)》를 자세히 보면, ‘모든 지방의 수어관(守禦官)은 모두 관청 청사 뒤에 대를 쌓고 기독묘(旗纛廟)를 세우고 군아(軍牙)와 여섯 독신(纛神)의 신위(神位)를 설치하여 놓고 봄철의 제사는 경칩(驚蟄)날에 지내고, 가을철의 제사는 상강(霜降)날에 지내며, 제물은 양 1마리, 되재 1마리, 백(帛) 1필인데 흰 빛을 사용하며, 축문 1장, 향·촛불·술·과일이다.


그리고 둑기는 심지어 유구국에서도 사용했네요.

세조 8년 2월 16일 두번째 기사
유구국 북쪽의 구미도(仇彌島)에 표류하였다 돌아온 양성(梁成)의 표류기
1. 영조칙(迎詔勅)은 중국의 조칙(詔勅)과 우리 나라의 서계(書契)가 나라에 이르면 배가 정박하는 첫 지면(地面)에 기(旗)·둑(纛) ·개(蓋) 등의 물건으로 의장(儀仗)을 설치하고, 또 군사들이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나가서 맞이하는데, 조칙(詔勅)이나 서계(書契)를 여교(轝轎)에 봉안(奉安)하고, 그 곁을 따르면서 북과 징을 울리고 태평소(太平簫)를 불면서 왕실(王室)로 맞아들였다. 왕(王)이 강의(絳衣)를 입고 관(冠)을 쓰고 절을 한 다음 앉으면, 이를 개독(開讀)하였다. 국왕(國王)은 항상 층각(層閣)에 있으면서 내려오지 않고, 부인(婦人)을 시켜 왕명(王命)을 전(傳)하며, 속인(俗人)은 관복(冠服)이 없이 모두 막배(膜拜)를 행하였다. 이때가 되면 뜰로 내려와 절하고 꿇어앉기를 대략 예법(禮法)과 같이 하였다.


둑제를 지냈거나 둑기를 사용했거나 하는 것이 "치우"를 우리 민족 고유의 "신"이나 "천황"으로 섬겨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충분히 이해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둑"은 춤을 출 때 도구로도 사용되었는데, 그때 모습은 이렇게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역시 세종실록 오례의 중에서)



핑백

  • 구라 구라 구라 : 광개토대왕과 치우 2010-05-29 19:24:34 #

    ... 떠한가?사실 치우가 한반도에서 숭배되었다는 기록은 없다.치우를 상징하는 둑기에 대해서는 초록불님이 쓰신 글이 자세하니, 그것을 보라.치우, 둑제, 둑기http://orumi.egloos.com/4382283삼국사기의 제사지에서도 본 적이 없고, 고려사는 물론이다.조선왕조실록에도 마찬가지다 실록이나정사류상에 나오는 것들은, 의례(군례)와 관련하여 혹&nbsp ... more

덧글

  • hyjoon 2010/04/25 13:47 #

    덕분에 좋은 정보 얻고 갑니다.^^
  • RNarsis 2010/04/25 13:48 #

    전국구 깡패 감녕도 후대에 공식적으로 제삿상 받아먹은 적이 있는데.(...)
  • 초록불 2010/04/25 13:50 #

    해적 감녕...^^
  • ArchDuke 2010/04/25 14:20 #

    전국구 깡패;; 하하
  • 을파소 2010/04/25 13:56 #

    치우가 패자였으면 제사지낼 리가 없다 라는 건 1등만 기억하는 성적지상주의가 가져온 폐해입니다.(응?)
  • 초록불 2010/04/25 13:59 #

    곧 퇴출될 KBS 유일의 시사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서 나온 문제 발언이군요.
  • 들꽃향기 2010/04/25 14:37 #

    오오 진정으로 핵심을 찌르는 지적입니다.
  • 구버달 2010/04/25 14:24 #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 듀란달 2010/04/25 15:46 #

    유구국이 둑을 썼다는 것은 유구 사람들이 동이족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우리는 대마도는 물론이고 오키나와 또한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증명할 수 있으며 따라서 오키나와도 내꺼라능? 우와아앙?

    ...하지 않을까요? 요즘 역밸사태 보니까 그 사람들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 Linesys 2010/04/25 16:58 #

    "그 넓은 땅을 다 뺐기고 한반도에 쪼그라든 너나 나나 함께 병신" 이라는게 환빠들의 주장입니다. 환빠들은 자신을 욕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계몽하는 희생정신이 충만한 이들인거죠 (엥?)
  • 초록불 2010/04/25 17:19 #

    듀란달 / 그 인간들은 뭐든지 가능해...
  • 시나브로 2010/04/25 19:59 #

    어쩐지 치우라는 말만 들으면 그게 생각나는군요. 환의 폐해가 이렇게 큽니다.
  • 진성당거사 2010/04/25 20:38 #

    어느 책에선가 중국의 둑기 제례가, 옛날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죽은 적장의 머리를 장대에 걸어놓고 이것에 마력이 있는 것으로 믿어 공물을 바친 것과 같은 고대의 미신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는 주장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 덧글을 이제 난독증 환자들이 읽어놓고 "북아메리카 인디언도 한민족이다" 하는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만, 좌우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초록불 2010/04/25 20:41 #

    그럴 듯한 이야기입니다. 메두사의 머리를 방패에 건 아테네 생각도 문득 드는군요.
  • 고독한별 2010/04/25 22:03 #

    http://www.ahseattle.com/news.php?code=&mode=view&num=1797&page=1&wr

    유사 역사학은 아니지만,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의 조상이 한국인이라는 기사도
    있더군요. 보면서 약 5분 정도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습니다. 다음에는 또 누가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얘기가 나올지 모르겠네요. OTL
  • highseek 2010/04/25 22:30 #

    부시라니.. 별로 달갑지 않은데요 :)
  • 초록불 2010/04/25 22:34 #

    하도 어이가 없어서 따로 포스팅 했습니다.
  • 셰이크 2010/04/25 23:05 #

    부...부시가 한국인이어서 기쁠 분들은 몇분 안계시지 않을까요,,,,
    아니 그보다도 부시는 전혀 모르는 사실ㅜㅜ
  • 네비아찌 2010/04/25 22:46 #

    용감히 싸운 적장의 머리를 공경하는 풍속은 위에 진성당거사님 말씀처럼 여러 민족에게 퍼진 풍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명쾌한 설명 감사합니다~
  • 베리타스 2010/04/25 23:16 #

    일전-굳이 시점을 짚어보자면 치우가 한민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온전히 털어낸 이후가 되겠습니다^^;-에 위키에서 저 둑제에 대한 내용을 본 적이 있었지요. 그 때는 그저 막연하게 '음, 조선 시대 때도 군신적 숭배가 있긴 있었나 보네. 아마 중국에서 받아들였겠지' 싶었는데, 이렇게 정확하게 파헤치신 포스팅을 보니 뭐랄까 반갑고도 명쾌하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몽골족의 둑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아시려나요?^^;)'의 몽골 캠페인에 나오는 몽골족 두데드(장식물)로 등장했군요.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합니다만 거의 흡사합니다. 아무래도 동양권 캠페인이라 대충 만든 두데드인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비슷할 줄이야... 오오... 신기합니다...

    (다시 봤다 앙상블...)
  • 초록불 2010/04/25 23:21 #

    AOE2는 해보지 못했습니다. 해봤다면 분명히 기억했을텐데... 어쩐지 그 게임은 1편에서 질린 감이 있어서...
  • 누군가의친구 2010/04/26 13:57 #

    지난번에 제가 덧글로 언급한 것이군요.
    덕분에 다시 한번 정의를 정리할수 있었습니다.

    역시 군복무시절의 기억이란건 훈련을 뛰면서 뒤죽박죽되는법...ㄱ-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아웃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