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 엄마의 편지 *..역........사..*



요즘 ㅐ와 ㅔ가 많이 혼동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걸 보니 "요즘" 일이 아니었다.

우측 상단의 빨간 네모를 보면 <자내>라고 되어 있다.

<자네>를 쓴 것이다.

저 문서는 원이 엄마가 원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이다. 남편이 죽은 뒤 그의 무덤에서 나온 것이다.

남편의 이름은 이응태. 1586년 서른 한 살에 죽었으며 키가 180이 넘는 장신이었다. (조선 시대 사람이 난장이 똥자루만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

이 편지는 자칫 유실될 뻔 했다. 모씨 문중에서 자기네 무덤인 줄 알고 파헤쳤다가 다른 집안 무덤을 나타내는 "철성이씨"라는 명정을 발견하고 내버려두었기 때문.

아무튼 이 편지를 통해서 원이 엄마의 애타는 사랑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종종 이 편지를 현대식(?)으로 개정해서 내놓는다.

"자네"라는 말로 시작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이 편지는 동갑내기 연애편지처럼 남녀간의 관계가 동등한 상태에서 쓰였다.

중간에 있는 빨간 네모에 든 글자는 "가소"이다. 하소체(그런데 이게 무슨 체람?)로 편지가 쓰인 것이라 한다.

자, 한 번 비교해서 읽어보자.



현대역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주세요.

원본(물론 약간 손은 보았음)
자네 여의고 아무리 해도 내 살 수 없으니 수이 자네한테 가고저 하니 날 데려가소.


느낌이 확 다르지 않는가?

16세기에는 아내와 남편이 서로 "자네"라고 불렀고 "하소체"를 썼다고 한다.

현대식으로 고친다고 해서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것은 그냥 아내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일 뿐이니까. 남편이 아내에게도 같은 어투를 썼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현대의 입장에서 과거를 보지 않던가. 아내가 저렇게 존칭으로 말하고 있을 때, 남편은 반말을 하고 있는 장면을 연상하지는 않을까?



그러니까 원래는 언어 밸리에 갔어야 하는 글이겠지...만 역사 밸리로.

[사족]
글을 쓰고 있다가 정전이 되었다.

"아싸! 노트북 만세!"

라고 생각했는데, 케이블 모뎀도 정전이 되면 죽는다...-_-;;

처음부터 다시 썼다.

덧글

  • 러움 2010/04/27 13:40 #

    애인이 자네 어쩌구 한다고 타박하면 이 얘기를 하면 되겠네요. ^^ㅋㅋㅋ.. (애인이 4살 많습니다 으악.ㅋㅋ)
  • Niveus 2010/04/27 13:47 #

    그럴때를 위해서 Ctrl+C Ctrl +V 가 있는거죠.
  • 초록불 2010/04/27 13:50 #

    그러니까 불과 1~2분 만에 전기가 다시 들어왔어요. 뭐랄까... 바보처럼 그냥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을...-_-;;
  • 슈타인호프 2010/04/27 13:53 #

    하소체는 지금도 씁니다. 경상도 부부들은 쓰지요^^;;
  • dunkbear 2010/04/27 13:59 #

    저도 조금 전 인터넷이 잠시 끊겨서 쓰던 글을 재빨리 워드패드로 옮겼었습니다. ㅎㅎㅎ
  • 초록불 2010/04/27 14:24 #

    같은 동네 사셨나요...
  • 解明 2010/04/27 14:12 #

    원래 '자내'는 '몸소. 스스로'라는 뜻의 부사로 쓰였는데, 점차 재귀대명사로 쓰이다가 오늘날과 같은 2인칭 대명사가 되었죠. 형태도 '자네'로 바뀌었고요. 요즘은 하게체 자체를 잘 안 쓰니 시간이 흐르면 '자네'는 사전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초록불 2010/04/27 14:24 #

    그렇군요.
  • 네비아찌 2010/04/27 14:54 #

    이 편지는 언제 보아도 마음이 절절하고 애틋한 느낌이 드는 편지입니다.
    뜨거운 연애가 아니라 집안의 중매로 만난 부부도 이렇게 애틋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 로디나 2010/04/27 18:41 #

    처음 봤을떄 부부간 서로 부를때 자식이름뒤에 아빠 엄마를 붙여서 부르는 경우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걸 알고서 참 놀라웠었는데 저런식으로 서로를 호칭하는
    방법이 언제부터 생겼던걸까요?
  • ALICE 2010/04/27 19:07 #

    예전에 TV에서도 나왔던 거 같아요...
    구구절절 애틋한 내용이었던 거 같은..
  • 진성당거사 2010/04/27 23:00 #

    이응태 묘는 흔치 않은 조선 중기 회곽묘였으니 대단한 유적이었는데 지금은 파헤쳐졌으니 참 아쉽습니다.

    이보다 2주 쯤 전에 나온 이응태의 할머니 남평 문씨 묘소에서 복식 유물과 시신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었던 걸 생각하면, 모씨 문중에서 저것을 함부로 파헤치지만 않았어도 시신과 여러 서한들을 포함한 더 많은 유물들이 보다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원이 엄마의 편지"에 대해서라면, 오래전에 국문학 전공하시는 분의 강독자료를 읽은 바 있습니다. 그 분 말씀이, "~하소"로 문장이 끝나고, 원문을 읽을 때 거의 정형율에 가까운 운율이 나타난다는 것 때문에, 단순한 편지라고 하기 보다는 일종의 초기 가사문학 작품으로 보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견해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지난 주말에 안동대학교인가에서 펴낸 "남평문씨/이응태 묘소 발굴 및 유물수습 보고서"를 문득 읽었는데, 초록불님 블로그에서 이걸 다시 보게 되니 뭔가 반갑습니다.
  • 斧鉞액스 2010/06/07 17:29 #

    검색중에 흘러들어 왔습니다만 '자내'에 대해서 한 말씀.

    중세국어에서 부부사이에 '자내'라고 쓰는 것이 맞습니다. 현대국어의 '자네'와는 뜻이 다릅니다.
    아직 배우는 중이라 정확히는 설명을 못해드리겠습니다만은 16세기의 중세국어에서의 '자내'를 번역하면 '여보'나 '당신'정도가 되지요.

    하소체의 경우에는 중세국어때 부부간에 사용되었고요. 그 흔적은 경상도쪽에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 초록불 2010/06/07 20:24 #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 바람불어 2011/11/07 15:06 #

    비슷한 얘기로 외국영화 더빙할 때 서양사람인데도 남편은 '당신이 할거야?'이고 아내는 '당신이 하세요'로 나올때 좀 불편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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