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중인 분들이라면 죄송.
익산의 왕궁리 유적에서 고약한 냄새를 품기는 인공 구덩이가 발견되었는데, 알고보니 이곳이 백제 시대 화장실.
2003년 12월 고려대 이홍종 교수가 가설을 제시하고 토양을 분석한 결과 화장실로 확정된 것이죠.
복원한 모습은 대충 이렇답니다.

발굴 현장의 모습입니다.

직사각형으로 생긴 것이 화장실 터. 회충 꼬리처럼 늘어진 곳은 배수로입니다. 오물이 흘러가게 만들어 둔 것이지요. 위 복원도에 덮개돌로 주~욱 늘어놓은 그것입니다.
그런데 볼 일을 보고 나서 뒤는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복원도 좌측 그림을 보면 앞에 항아리가 하나씩 놓여 있는 것이 보일 겁니다. 뒤처리용 쓰레기통?
뒤처리를 어떻게 했는지도 발굴이 되었습니다.
나무막대를 사용했다는 군요. 나무를 두조각으로 쪼갠 뒤 둥그렇게 잘 다듬어서 사용했으며, 항아리에 물을 담아두고 변을 닦은 뒤에 깨끗이 씻어서 재활용 했을 거랍니다.
그 나무막대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나무막대는 일본의 후지와라[藤原] 궁전, 고로칸[鴻臚館]과 같은 유적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누가 화장실 물 안 내렸어!"라고 외친 것처럼...
그 시대에는 "누가 똥막대 안 닦았어!"라고 외쳤을 것 같습니다. (천하귀남님 질문에 답변으로 쓰다가 재미있어 보여서 본문으로 스카웃...)
이상의 내용은 "이건무 외, [천 번의 붓질, 한 번의 입맞춤], 진인진, 2009"를 참조.
나무막대 사진은 177쪽에서 가져왔습니다.
재미있는 내용이 많으니 읽어들 보시길...
![]() | 천 번의 붓질 한 번의 입맞춤 - ![]() 배기동 외 29인 지음/진인진 |
덧글
유적지라는 건 흙바닥 밑에 묻혀 있는 거니까요. 저 유적지 안에서 기생충 알껍질이 왕창 나왔고, 백제인들이 주로 채식을 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답니다.
壙中이 침수된 무덤의 유해가 보존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겁니다.
의외로 굉장히 부드러웠을지도 모르는일
여러모로 생각해도 치질걱정이 먼저 나는건 어쩔수 없는듯 OTL
그 시대에는 "누가 똥막대 안 닦았어!"라고 외쳤을 것 같습니다.
짚세기에 닦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았을 겁니다...^^
저도 그래서 댓글 달려고 내려오고 있었는데..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신 분이 있으시군요 _no
밥 먹은 다음이라 다행입니다..
'이노무쉬키, 가서 똥막대 갖구와!' '아이고, 여보. 그걸로 때리면 똥독이 오르니 제발 좀참으소' '으헝헝 아버지 잘못했어요, 제발 똥막대만은 으헝'
오오 휴지여...
조선 시대 때는 '측목(厠木)'이라고 해서 대나무를 얇게 주걱(...) 모양으로 깍아서 썻다고 하는데(<엽기 조선왕조실록>), 정작 실록에는 나와 있질 않으니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시아 남부에서는 물로 씻었다는데 그런 생각은 못했던 걸까요.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깐 당시에는 채식비중이 커서
식이섬유가 덩어리나 마찬가지인 X를 배설후에도
닦아낼게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 가족이라도 아버지 걸 아들이 쓰지는 않았던 것이죠.
PS : 믿는 사람 환빠~
PS2: 아니아니 죽부인 쓰지 않는 것은 전해지는 거 맞느넫요, 그 유래를 믿지 말라구요~
2. 막대기로 뒤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미스테리는 더욱 커져만 갑니다.
물론 상류층은 저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 중세 유럽의 부호들은 동양에서 가져온 실크나 아마 따위를 사용하기도 했다는군요.
1500년도 되지 않았으니 화석화 상태도 아닐텐데... 말 그대로 묵은 X을 땅속에서 캐냈다는...(어라?)
그나저나 자꾸 상상이... OTL
그것도 책 제목하고 관련해서...(응?)
고참 왈 "야 이새퀴야! 난 간만에 휴지로 똥 닦아서 좋은데, 뭐가 어쩌고 어째!"
고참의 말은 언제나 옳지요.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게 어찌 보면 매우 다행이군요;.
집에와서 똥막대를 내놨더니 아내는 부드럽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이거 생각한 사람이 저뿐은 아니겠지요.
동시대 다른 지역과 비교해 화장실(하수처리) 경쟁력이 어떠한 건가요? 비슷했던건가요? 지중해 지역이 더 발달했던(위생적인) 것 같은데. 하수가 바로 바다나 강으로?
문지른다고 나무에 다 뭍지도 않을것 같은데
물항아리는 얼마나 자주 refill하는지 심히 궁금합니다.
쪼그린 상태에서 고개 돌려서 막대로 털고 후비고 닦고 일어서기에는 목과 허리의 관절이 좀 괴롭지요.
왕족/귀족 체면에, 게다가 나이들고 비둔한 나으리라면 제 손으로 하기 힘들었을 법도 하지요.
"개똥아 개똥이 걔 있느냐"
"예, 나으리"
"어흠"
"나으리 여기 대령하였나이다."
"음... 으윽..."
"나으리 다 되어갑니다. 조금만 참으시옵소서."
"허허, 적절하던터에 친우를 만나 어젯밤 약주가 과했더니.... 네가 수고가 많구나."
하도 오래전 얘기라 기억이 안나는데, 그 교수가 똥은 물과 궁합이 안좋은거라거나,
수세식 화장실, 정화조등이 생기면서 똥을 예전처럼 재활용할 자원이 아닌
단순한 쓰레기 취급하게 된게 안타깝다는 식의 내용을 말했던게 기억납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 똥돼지 있는 것처럼 동남아 지역인가?
거기서는 똥떨어지는 곳에 수족관 비스무리한걸 만들어놓고 물고기를 키운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네요.
외국인이 생선요리가 하도 맛있길레 어디서 키우냐고 물었고 그 키우는 과정을 보고 졸도했다는 말도 기억납니다.
(역시 음식 먹을땐 모르는게 약임)
똥을 음식으로 만드는 발명을 했으나 영 음식이 팔리지 않아 고향집에 내려온 박사가 동네에서 똥을 먹고 있던 똥개를 보았는데, 그 녀석이 저녁 식탁에 올라오고... 그걸 먹다가 안 뒤에 구토를 한다는 내용의...
끝부분을 약간 둥글게 깎아 만들었고 개화기에 악보를 처음 본 아이들이 음표를 보고 똥칠개 같다면서 웃었다네요.(물론 이규태의 글에서 읽은 기억에 의한 거라 구체적인 출전 같은 건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초록불님의 포스팅 잘보고있습니다.
참고삼아 예전 제가 몇년간 지구상 마지막 오지라고도 하는(그런데가 한두군데인가만은..^^) 인도네시아 이리안자야 오지에서 근무한적이 있습니다.
당시 본섬쪽애들이건 원주민애들이건 한결같이 물을 이용한다는것이 흥미로워 그쪽에 관심을 가진적이 있는데요(네..할짓이 없어서 그랫습니다) 생각보다 물을 많이 사용한것도 아닌것이 여자건 남자건 뒷물에 드는 물은 작은 커피캔을 따서 만든 깡통을 화장실에 비치해두고 소형 쓰레기통만한 통에 물을 비치해두는데 평균적으로 깡통 두개정도가 소요되더군요.
남자나 여자나 화장실갈때 왜 화장지를 전혀 안쓰느냐고 하니 예전부터 그래와서 굳이 화장지를 써지 않는다고 하더군요...방법역시 배웠는데 계중 약간이나마 깔끔떠는 여자일부는 화장지 한칸정도로 제일 큰 건더기를 딱아내고(화장지없이도 동일..단 손가락 두마디에 약간의 물을 적심) 손가락 두개(중지와 검지등)를 이용해 뒷처리를 하더군요....그렇게 소요되는것이 한깡통...그리고 손가락 씻는데 한깡통입니다. 의외로 애들 깨끗합니다..일부러 화장실 다녀오는애들 잡아놓고 더럽지만 냄새도 맡아봤는데 전혀 냄새없더군요...그렇다고 비누를 비치한것도 아닌데(전 결국 그 방법 안썻지만)
그리고 위의 포스팅과 관계된것....막대기...우리와 접촉한 원주민 일부에게 배운 방법인데.
껍질을 벗긴 부드러운 가지가 위에 깔끔뜨는 여자일부의 경우에 화장지처럼 처음 건더기들을 처리
하는데 사용됩니다. 혹은 보드라운 잎을 쓰기도 하죠.....원주민애들이야 물통을 쓰는게 아니라 바로 집앞에 널려있는 개천에 가서 씻지만..
저는 그래서 이 포스팅을 보면서 동남아쪽의 관습과 원주민들의 방법 두가지가 참고할만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사실 가지가 아무리보드랍게 처리하고 짚을 아무리 보드랍게 처리해도 그것만으로는 뒤처리가 어렵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밀림 서베이중에 화장지 없이 생활해봐서 절대 그것만으로는 냄새처리나 뒤처리가 안되더군요..
물항아리의 비치와 나무가지란 결국 1차처리용도의 나무가지 + 물을 이용한 깨끗한 뒤처리의 방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도 귀족인데 설마...라던지 우리 조상이 디럽게 그랬을까?
라는 편견이 생길 수 잇지만 ....지위가 있건...학식이 있건 없건...그것이 생활의 일부가 된 이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그네들이 제가 관심가지고 꼬치꼬치 캐묻고 더럽지 않냐고 해도 전혀 문제없다하고 화장지만 쓰는 저를 오히려 좋지않다고 설득했듯(사실 맞는말이죠...다만 전 문명이라는 고정관념에 싸여있었을뿐)
당시의 조상에게는 그것이 당연한것이었을지 모릅니다...어디 사막 주민도 아니고 뒷물쓸 물을 못구했을리도 없고 물을 담을 통이 없었을리도 만무하죠...게다가 익숙해지면 동남아 주민들처럼 작은 깡통 한두개(대부분은 깡통 한개정도 물로 모든처리를 하더군요...두개쓰는쪽은 여성이나 낭비가 심한애들) 정도의 소량으로 가능....아주 깔끔하고 찜찜하지도 않죠...
다른지역애들이지만 당시의 생활상이나 목욕을 좋아했던 기록등을 볼때 단순히 물통이 나뭇가지를 딱기위한 용도였다라고 보기보다...둘 모두가 복합이었다고 보는게 옳을듯합니다....
굳이 똥딱개를 다시 쓰기위해 씻는 용도로 물통이 있었다라는 어색함보다...그런건 나뭇가지나 잎을 구하기도 힘든 평민이하층이었고 평민 이상층이라면 재활용하기보다는 그것은 따로 비치해서 일회용으로 쓰고 혹은 일회용 사용중 잠시 씻어쓰는 정도이고..
주된 처리는 물이었다고 생각하는것이 좀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궁궐이나 저런 화장실을 갖출정도의 재력에 비출때 아무리 씻는다해도 재활용을 위한 물통이다라는건....글세요....당시의 생활상이나 재력에 비추어볼때 어색하지 않을까요?
원래는 벽이 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