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상과 김부식 *..역........사..*



역사 밸리에서 정지상 후손을 자처하는 분이 경주 김씨 후손을 혼냈다...는 이야기를 올렸는데, 이야기 자체는 자작극이라나요.

그럴 가능성이 크겠습니다. 정지상을 시조로 하는 서경 정씨는 아주 희귀한 성이거든요. 1985년 인구 조사에서 전국에 307가구밖에 없는 극소수 가문이었습니다.

아무튼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을 떠나서...

김부식이 묘청의 난 때 정지상부터 죽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실 김부식이 너무 했다는 평부터, 김부식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평까지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죠.

그런데...

사실 제일 억울한 것은 김부식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김부식도 정지상에게 죽거든요.

이미 죽은 정지상에게 어떻게 죽을 수 있느냐고요?



잘 알려졌다시피 김부식은 정지상의 시 쓰는 재주를 시기했다고 하죠. 어느날 정지상이 지은 멋진 시구를 자신에게 양도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정지상이 수락해주지 않아서 삐쳐있다가 기회가 오자 처치해버렸다는 건데...

어느 봄날 김부식이 시를 지었다죠.

버들 빛은 일천 실이 푸르고 / 柳色千絲綠
복사꽃은 일만 점이 붉구나 / 桃花萬點紅

그때 홀연히 음귀가 된 정지상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싸대기를 내갈겼다는 겁니다.

"누가 일천인지, 일만인지 세어봤어?"

그리고는 이렇게 지어야 한다고 훈계까지.

버들 빛은 실실이 푸르고 / 柳色絲絲綠
복사꽃은 점점이 붉구나 / 桃花點點紅

김부식이 어느 날 절간에 있는 해우소(화장실)에 갔는데, 바지 내리고 일 보는 중에 정지상 귀신이 나타나 불알을 꽉 쥐었다는 겁니다.

"술도 안 마신 주제에 얼굴이 왜 빨개졌나?"

라고 놀렸으나 김부식은 태연하게,

"언덕에 있는 단풍에 낯이 비쳐 붉다."

라고 대답했답니다. (이로써 우리는 고려 시대 뒷간에는 변변한 칸막이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쪼그리고 앉은 사람이 언덕에 있는 단풍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죠.)

정지상 귀신은 김부식의 불알을 더 세게 쥐며,

"이 가죽주머니는 왜 이렇게 물컹대냐?"

라고 놀렸습니다. 하지만 김부식은 이번에도,

"네 애비 불알은 무쇠로 만든다더냐?"

라고 버텼습니다. 하지만 정지상 귀신이 결국 너무 불알을 세게 쥔 나머지 뒷간에서 비명횡사하고 말았다는 거죠.




이상의 이야기는 이규보가 지은 <백운소설>에 나옵니다. 김부식은 1151년에 죽었고 이규보는 1168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 큰 차이가 없는 시대의 사람들이죠. 이미 당대에 정지상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 와중에 이규보는 "정지상 시 별 거 없음 ㅋ"의 고인 드립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 저 이야기를 믿는다면, 화를 내야 하는 쪽은 경주 김씨일지도... (돌멩이 날아오기 전에 도주~)


덧글

  • Joshua-Astray 2010/04/30 22:07 #

    제가 고등학교 때 역사 선생님은 저 이야기를 하시면서,
    정말로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서 죽인 것은 아닐 테니,
    아마도 암살을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하셨었습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경호원(?)이 바싹 붙어있기 힘든 만큼
    볼일을 보고 있을 때 암살당하지 않았을까 하셨었는데, 갑자기 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
  • 초록불 2010/04/30 22:14 #

    별로 그럴 가능성은...^^
  • 無碍子 2010/05/01 08:13 #

    소햏의 선생님은 뇌졸증설을 말씀하십디다.

    환절기나 동절기에 화장실서 죽은 사람은 뇌졸증으로 죽은 것으로 봐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혈압이 높은 연로한 사람이 쌀쌀한 날씨일 때 따뜻한 방에 있다가 추운 화장실에서 과도하게 힘을 쓰면 아주 위험합니다.
  • 들꽃향기 2010/04/30 22:16 #

    당시 고려인들도 정지상, 백수한의 처형은 너무 급작스러웠던 사건인 것 같았습니다. 더욱이 김부식이야 윤언이에 대한 평생가는 악플공작도 있으니...-_-;;;
  • 초록불 2010/04/30 22:17 #

    악플 공작...^^

    적절합니다.
  • Allenait 2010/04/30 22:55 #

    아.. 저 이야기 전에 들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필이면 거기를 다쳐 죽다니(...)
  • snowall 2010/04/30 22:57 #

    이건 "내가 고자라니!!" 가 생각나는 장면인데요.

    귀신이 안좋은 곳을 건드려서...
  • hyjoon 2010/04/30 23:27 #

    정지상에게는 좀 안된 소리지만, 반란을 일으킨 사람과 그렇게 관련이 있는 사람이면 살아남긴 힘들죠. 그래도 갑작스럽게 죽였다는 것이 계속해서 반감을 일으킨 것 아닌가 싶네요.
  • 루드라 2010/04/30 23:32 #

    옛날에는 묘청을 지지한 정지상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도참설 따위를 근거로 터무니없는 일을 벌인 일파라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 Mr 스노우 2010/05/01 00:11 #

    hyjoon님 말씀대로 김부식이 앞장서서 죽이지 않았더라도 정지상은 살아남기 어려웠겠지요.
  • 누렁별 2010/05/01 00:57 #

    저 상황이 진짜라면 뒷간에서 힘 주다가 혈압 올라서 뒷목 잡고 쓰러진 것 같은데요 -_-;
  • 네리아리 2010/05/01 06:57 #

    참 곱게 죽진 못했군요 쯔쯔
  • 초록불 2010/05/01 07:42 #

    아니, 뭐... 저게 진짜일 리는 없지요...^^
  • 베리타스 2010/05/01 09:40 #

    이미 알고 있던 얘기지만 다시 보니 새롭네요. 백운거사는 무려 고인 드립을 칠 줄 아셨군요(...)

    그나저나 저번에 신청한 만들어진 한국사가 지역 도서관에 배치되었네요. 무려(?) 두 권이나요. 추천평 잘 쓴 게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ㅋㅋ
  • 초록불 2010/05/01 09:41 #

    고맙습니다. 도서관에 배치되어 널리 읽히는 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 액시움 2010/05/01 10:13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고자라니
  • 마무리불패신화 2010/05/02 21:20 #

    헐 불알 얘기도 있었군요.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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