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만........상..*



1.
현대 사회에는 많은 특이한 변화가 있지만, 인간 관계에 "온라인"이라는 것의 등장만큼 특이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온라인을 통해서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한계를 이전 시대와는 격이 다른 방법으로 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의 인간관계라는 것은 또 그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과거 인간의 활동 영역은 물리적인 한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편지와 전화가 그 한계를 넘어서게 했을까? 아니다. 이것들은 끝과 끝이 있는 선분과 마찬가지다. 본래 맺어진 관계의 선이 길게 늘어났을 때, 그것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온라인은 만남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2.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일을 동일한 잣대에서 잴 수 있을까?

온라인 이전과 이후의 인간 관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사이에 놓인 가장 큰 차이는 "익명성"이다. 인간 세상의 관계가 중간에 아무 가리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라고 한다면 온라인 사이의 관계는 얼룩덜룩한, 투명과 불투명이 섞인 유리를 사이에 둔 관계라 할 수 있다. 정체를 숨기고자 하는 사람이 잘만 움직인다면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다.

그리고 정체가 드러난 사람도 마치 불투명한 유리 뒤에 있는 척 한다면, 또 대개는 그런 것을 받아들여주는 것이 온라인 상의 예의라 하겠다. 물론 거의 훤히 보이도록 되어 있는 사람도, 애초에 유리창 너머에 별 관심이 없다면 그냥 불투명한 유리 뒤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온라인 상에도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따라서 관계를 의미하는 선분 역시 존재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 선분은 현실과는 달리 매우 약한 사슬로 이루어져 있어서 끊고자 한다면 쉬 끊을 수 있다. 자신이 끊을 수도 있고, 상대가 끊을 수도 있다.

현실 관계에서의 선분은 끊게 되면 상당히 큰 대미지를 쌍방에 안겨주게 된다. 하지만 온라인 상의 사슬은 그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것은 그 사슬에 얼마만한 무게를 걸었는가, 그 사슬이 지나는 유리창을 얼마나 깨끗이 닦아놓았는가에 따라 충격은 달라질 수 있다.

3.
상처는 치유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상처는 영영 치유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상처를 외면하고 상처를 돌보지 않으려 해서는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고전적인 이론에서는 많은 방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이 애매하고 모호한 온라인 세계에서 과연 통할 것인가? 전통적인 인간 관계만 가지고 과연 온라인 세상을 진단해낼 수 있을 것인가?

가능하다.

단지 하나의 조건만 더 건다면.

불투명한 인간 관계의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가능하다.

세상은 본래 넓다. 물리적으로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은 물컹한 지구를 확 조여버렸다.

우리는 넓으면서 작은 세계에 살고 있다. 좁아진 만큼 더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


덧글

  • 2010/05/02 00:2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0/05/02 00:45 #

    올라오시면 볼 기회가 있을지도...
  • 네비아찌 2010/05/02 00:51 #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장래에 석유가 고갈되면서 문명이 19세기 수준으로 돌아가는 날이 언젠간 올 터인데, 그때 끊어질 수많은 온라인 인간관계들의 끊어짐 후유증은 또 얼마나 심할까요.
  • 2010/05/02 00:5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Niveus 2010/05/02 03:17 #

    여러모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어찌되건 대다수의 선진국(...) 인류는 적던많던 온라인으로 연결되어있으니까요.
    오프라인과는 조금 다른, 하지만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은 미묘한 거리감인듯합니다.
  • 초록불 2010/05/02 11:38 #

    미묘한 거리감이라는 말이 좋네요.

    이 거리감은 현실 세계에서도 나타나기는 하지만 (난 쟤와 친구인 줄 알았는데... 운운) 온라인 상의 관계만큼 특이하지는 않죠.
  • draco21 2010/05/02 11:35 #

    현실만큼 이 가상세계의 관계도 소중한 무엇으로 평가받을수 있으면 합니다만... 쉽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
  • Nell 2010/05/02 12:38 #

    .....
  • 청풍 2010/05/02 23:03 #

    익명성이라는 벽은 오히려 더 진실한 관계를 가능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현실에서 얼굴을 마주하면 좋든싫든 대부분의 사람은 첫인상에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죠, 그건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외모나 기타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면에서의 영향은 줄어들테니까요.

    인터넷은 온라인에서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난한사람과 부유한 사람을 그런 선입견이나 신체의 제약 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해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초록불 2010/05/02 23:07 #

    네, 그런 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그런 점이 갖는 상징성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청풍 2010/05/02 23:09 #

    사실 그런면에서 인터넷과 그에 파생되는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자신이 어떻게 활용하고 거리를 두며 거기서 만든 인연을 믿느냐에 따라 천개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무언가라고 생각해요.. 그건 아마 저 위에서 Niveus님이 말하신 "미묘한 관계" 라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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