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일식 기록에 대한 검토 *..역........사..*



한국 수학사 - 10점
김용국.김용운 지음/살림Math


위 책의 2장 3절이 <삼국사기>의 일식 기사이다.

<삼국사기>의 일식기사는 상당수가 중국 기록과 일치한다. 그때문에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일본사가 이이지마 다다오[飯島忠夫]는 김부식이 중국 기록을 베껴넣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이 박성래, 민족과학의 뿌리를 찾아서(동아출판사, 1991)에 나온다고 했으나 나는 그런 부분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반론은 바로 이 책에서 하고 있으므로 이런 부분은 중요치 않겠다.

이이지마 설을 위 책에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는데, 간략히 정리해본다.

1) 김부식이 중국 사서의 기록으로부터 일식 기록을 옮겨 적었다면, 삼국의 일식 기록이 불규칙하게 각기 다른 날짜에 적혀 있을 수 없다. - 이 점은 세종도 지적한 바 있다. (세종실록 6년 11월 4일)

2) <삼국사기>의 기록은 중국 기록에 비해 그 수가 지나치게 적다. 옮겨 적었다면 이렇게 적을 이유가 없다. (당나라 시대에 일식 기록은 102건. 신라의 기록은 9건 밖에 되지 않는다.)

3) 신라의 일식 기록은 중간중간 이상한 공백기가 있다. BC 54~256 이후 786년까지 일식 기록이 없다. 또한 이 기간 동안의 기록의 월일이 중국 기록과 동일하다는 것은 당시 중국의 역법을 신라가 썼다는 증빙이 불확실하므로 이상하다. 이 기간의 기록은 신라 자체의 기록이 아니라 낙랑군의 기록을 신라가 후대(국사를 편찬한 545년)에 차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의 독자 관측은 787년부터 가능했다고 본다. 애장왕 2년(801) 5월에 일식이 있어야 하는데 일식이 없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이 날 실제로 일식이 있었으나 관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이 무렵에는 일식을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구당서>나 <신당서>에 동일한 기록이 없다.

4) 고구려는 114~273년간 10개의 일식 기록이 있는데, 독자 관측이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한다. 그것은 태조64년(116) 일식의 경우 <후한서> 오행지에 "사관은 보지 못하고 요동에서 전해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고구려에서만 관측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5) 백제도 독자 관측이 가능했다. 백제 삼근왕 2년(478) 3월 을유 초하루에 일식이 일어났다고 되어 있는데, 중국 기록은 2월 을유 그믐(<위서> 천상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날짜가 서로 틀리지만, 당시 백제가 사용한 '원가력'으로 계산해보면 백제 기록이 맞다. 위덕왕 19년(572) 9월 경자 초하루의 일식은 한반도에서만 관측이 가능했다. 이 기록은 당시 중국 기록인 <수서>에 나오지 않는다.

위와 같은 사실로 지은이는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1) <삼국사기>의 일식 기사는 조작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2) 삼국 중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보다 앞선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3) 천문활동의 관측으로 미루어볼 때 삼국은 수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 박창범은 삼근왕 2년 3월 1일에 있었던 일식은 한반도에서 관측이 불가능한 일식이라고 했다(박창범 라대일, 삼국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독자관측사실 검증, 한국과학사학회지, 제16권 제2호, 1994). 박창범은 이 날을 478년 4월 19일로계산했는데, 이 날짜가 원가력에 의해서 맞는 날짜인지 모르겠다. 위 책은 오폴처Oppolzer의 표에 의해서 이것이 한반도에서 관측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동경 48도 북위 77도의 부근에서 시작하여 북부 시베리아를 거쳐 남사할린 남화태 지방을 지나서 태평양 상 서경 176도, 북위 19도의 지점에서 그치고 있다. - 위 책 74쪽). 이에 대한 계산이 나는 불가능하다. 아시는 분의 조언을 바란다.

* 백제 위덕왕 39년(592) 7월 그믐(임신)의 일식에 대해서 박창범은 역시 관측 불가능한 일식이며 양력으로는 592년 9월 10일이라고 했다.위 책에서는 오폴처의 표에 의거해서 7월 그믐이 임신이 아니라 계유라고 말하고 있다. 박창범은 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한 바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한 검증도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덧글

  • Jtm71 2010/05/22 17:09 #

    논문을 보면, 백제 삼근왕 2년은 478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EMapWin으로 확인해 보면, 478년 4월 18일에 일식이 있는데, 동북아시아에서는 관측할 수 없습니다. (468년 일식은 개로왕 14년이고, 논문에는 일식 가능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592년 9월 일식도 동북아시아에서는 관측되지 않습니다. 그 이듬해에도 비슷한 시기에 일식은 있었지만 관측되지 않습니다.

    추가로, 개인적으로는 일식의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관측을 할 수 없다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초록불 2010/05/22 19:56 #

    앗... 밑의 468년은 오타입니다...^^;;

    추가 부분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요.

    일단 이 부분에서는 박창범 교수의 의견이 맞는 것이라는 거겠군요.
  • Jtm71 2010/05/22 21:48 #

    '추가' 글은, 제가 내용을 잘못 읽은 것 같네요. 《신라본기》를 살펴보면, 다른 천문현상은 월별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일식은 날짜까지 적혀 있어서 이상하긴 합니다. 《고구려본기》에는 월별로 일식이 기록되다가 대조대왕 이후로 날짜가 적히고, 다른 천문현상에 날짜가 적혀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신라의 일식 기록의 경우, 혁거세 30년(기원전 28년) 일식은 개기일식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중요한 일들이 기록되었다면 남아있을 개연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혁거세 56년(기원전 2년)의 일식 또한 정월 초하루 해뜰 무렵의 일식이어서 해를 맞이하는 풍습이 있었다면 충분히 관측이 가능했을 것이고요. - 이러한 추측은 다음과 같은 일들을 전제로 합니다. 1) 일식이 일어날 때의 날씨가 맑았다. 2) 초기 신라의 연대를 믿을 수 있다.
  • hyjoon 2010/05/22 17:37 #

    나중에 한 번 구해 보아야겠군요. 제가 동양 수학쪽에 약간 관심이 있는지라 ^^
  • 초록불 2010/05/22 19:57 #

    일단 목차를 보고 저 부분만 보았는데, 찬찬히 읽어볼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 들꽃향기 2010/05/22 18:14 #

    헛. 그렇잖아도 최석정의 구수략 관련 글들을 읽고 있는데, 비단 위의 책은 고대사분야 뿐만이 아니라 지금 제 관심사에도 도움이 될 듯 하네요. ^^

    그나저나 고구려, 백제가 독자적인 관측이 가능했다면, 중국으로부터 일방적인 관측기술 수용이 아닌, 그러한 독자적인 관측능력과,이후에 중국에서 받아들이는 관측능력을 어떻게 조화시키는지가 차후 연구의 대상이 되겠다는 망상을 해봅니다.
  • 초록불 2010/05/22 19:58 #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파이팅입니다.
  • 지평 2015/02/13 1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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