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실증사학 1세대 호시노 히사시[星野恒]는 1890년에 <우리나라의 인종과 언어에 대한 보잘 것 없는 생각을 이야기하여 세상의 진심어린 애국자에게 묻는다>는 논문을 <사학회잡지>에 실었다.
그는 여기서 천황가의 선조가 본래 신라의 임금이라고 주장한다. 금나라 시조가 신라인이라고 했으므로 금나라는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얼씨구나, 하겠지만 그가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대 한일은 하나의 나라였는데, 반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신공황후는 이를 정벌해서 다시 하나의 나라를 만들었지만, 결국 신라는 당과 연합하고 왜와 대적하였다. 이리하여 천지천황 때 반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환무천황 대에 일본이 삼한과 동종이라고 기록한 고서들은 불태워지고 천황의 조상이 신라에서 왕이 된 사실은 말소되었다고.
어디서 많이 보던 논리다. 그의 주장의 요지는 이것이다.
고대에 반도를 잃은 것을 분개, 애석해 하며 현대에 한반도를 회복하는 것은 고토 회복으로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논리로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도 극구 찬양한다. 다시 말하는데, 1890년의 글이다.
역시 1세대 학자인 구메 쿠니다케[久米那武]도 1894년 <섬나라 근성>이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일본인은 한반도를 잃고 무기력해졌다. 일본과 삼한이 동족이라는 책을 불태워버리고 비뚤어진 근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이 역시 한반도에 "만주"나 "대륙"을 집어넣어보면 유사역사학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메는 일본과 한반도에 남쪽에서 온 인종[남종]과 북쪽에서 온 인종[북종]이 대립했는데, 남종이 정복민족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북쪽에서 온 종족이 지배종족이라는 설도 만만치 않게 나오기 시작했다.
저널리스트 야마지 아이잔[山路愛山]은 1901년에 일본인은 북방 대륙을 누빈 우랄타이 어족으로 "우리들의 고향은 전세계이다. 고로 우리들의 전장은 오대주가 아닐 수 없다"라고주장했다.
이런 일선동조론은 3.1운동과 같은 민족자결주의에 대항하는 논리로도 사용된다. 같은 민족이니까 합병하여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이야말로 민족자결주의에 맞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유사역사가들이 한일은 하나의 민족이고 우리가 "형"이자 "조상"이라는 똑같은 논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위 내용은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 오구마 에이지, 소명출판, 2003, 5장~9장을 요약한 것이다.
덧글
스페인어-포르투갈어 같은 경우는 이베리아 반도에 살고
있던 토착민들이 쓰던 언어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거든요.
라틴족의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면서 토착민들이
자기 언어를 잃고 라틴어를 말하게 되었고 토착민들의 언어는
지명,인명및 몇몇 단어에만 남게 되었는데, 이 때 교체된 이베리아 라틴어에서
발전한 것이 오늘날의 스페인어-포르투갈어입니다. 갈리아(프랑스)에서도
이런 언어교체가 일어나서 본디 갈리아인들이 쓰던 갈리아어는
흡수되어 흔적만 남았죠. 그래서 스페인어,포르투갈어,프랑스어는
모두 언어상으로는 라틴어와 한 핏줄이지만, 그 땅에 살던 토착 종족이
라틴족과 혈연적으로도 동족이었다곤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동시에
로마인들과의 혼혈및 문화적 동화도 상당히 진행되었지만요.
원래 이베리아 반도에서 쓰이던 언어를 계승한 것은
고립된 언어로 매우 유명한 바스크어입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는 한일 이전에 고대 삼국의 언어관계부터가
아직 명확하게 풀리지 않은 문제입니다. 한국어쪽 고대자료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땅속에서 향가집이라도 대량출토되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도 줄곧 썰만 난무할 겁니다.
가끔 삼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때, 티벳처럼 한역본말고 나중에 자국어로 완역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그 때 불편하고 불완전한 한자로 쓰인 향찰말고 인도계 표음문자를 받아들여 다듬어서 우리말을 일찍 표기했더라면 국어사 차원에서는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acarasata님 /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이미 위지동이전 시절부터 왜와 삼한은 서로 구별되는 존재기도 하고.
같은 슬라브족이지만, 폴란드와 러시아는 전혀 별개의 민족이고,
이들 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인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도 서로 못죽여서
안달인거 보면 혈연이나 언어가 가깝다고 사이가 좋다는 보장도 없고.
이런 생물학적인 사실과 정치 논리에 기인한 주장은 별개의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일본 위키백과를 보니까 말씀하신 게 바른 것 같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