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 미신, 점쟁이 *..역........사..*



남아공 월드컵 최고 스타는 인간이 아니라 문어인 것 같습니다. 독일에 산다는 문어, 파울은 월드컵 승패를 족집게처럼 맞춰서 유명세를 탔지요.

사실 문어가 알긴 뭘 알겠어요? 파울은 역설적으로 우연의 일치라는 것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재수만 좋으면 1/256의 확률이라는 이런 기막힌 확률을 뚫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미신의 세계인 것이죠.

역사를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 예언들이 종종 보입니다. 단지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기록된 예언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나무로 된 성에 의지하라고 한 델포이의 신탁 같은 것이 대표적이겠습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테미스토클레스는 이것을 배에 의지하라는 것으로 해석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만일 이 예언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목책을 쌓아놓고 페르시아와 겨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일 그리스가 멸망했다면 이 예언이 후세에 전해지기는 했을까요? 전해지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임팩트를 주는 이야기로 전해지지는 않았겠지요.

점쟁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점이 태아 성별 맞추기라고 합니다. 확률이 무려 50%.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 중 점쟁이에게 와서 물어보는 사람들이 원하는 성은 물론 남성. 따라서 남자 아기를 낳기 위한 부적과 비방을 알려주고 정성을 다하라고 한 뒤에, 50% 확률을 즐기면 되는데, 설령 실패해도 의뢰자의 불성실 때문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라는 거죠.

신묘한 점쟁이의 이야기는 재미로 후대에 널리 알려지지만, 실패한 점쟁이 이야기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인구에 회자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함부로 믿었다가는 그야말로 패가망신하게 되지요.

조선 태조 때 일입니다. 밀양에 장님 점쟁이 이흥무가 살았는데, 동래 현령 김가행과 소금 담당 관리 박중질이 이흥무를 찾아와서는점을 쳤습니다.

"공양왕의 명운과 주상전하의 명운 중 누가 나은가?"
"공양왕의 명운은 쇠진하였습니다."
"그럼 공양왕의 원자와 정양군(=왕우, 공양왕의 아우)은 어떤가?"
"명운이 쇠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왕씨 가운데 누가 좋은가?"
"남평군 왕화(공양왕의 사촌)가 귀하고, 그 다음은 영평군 왕거(왕화의 동생)입니다."
"왕화의 명운이 어떠한가?"
"군사를 거느리고 진수할 명운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왕화는 삼촌인 중 석능을 데리고 이흥무에게 달려왔습니다. 공양왕이 다시 왕이 될 수 있는지 물은 후에 자신의 명운을 물었습니다.

"군신이 경회하고 천지가 덕합하는 명운이니 섬에 들어간지 3년 후에는 나오고 47,8세에 호운이 들어 50세 이후에는 장수가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반드시 일인(=군주)이 될 것입니다."

태조가 집권하면서 왕씨들은 대부분 강화도와 거제도에 유배되었습니다. 대강 3년이 가까워지는 시점. 손가락 발가락이 짜릿해지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석능도 자신의 명운을 물었습니다.

"왕사가 될 명운입니다."

왕화는 동생 왕거에게 이 사실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말이 어디선가 새어서 이들이 몽땅 잡혔는데, 문제는 배후가 "박위"라는데 있었습니다. 애초에 맹인 이흥무에게 이런저런 점을 치게 한 사람이 바로 박위였던 것이죠.

박위는 이성계의 요동정벌을 수행했고, 위화도회군 때도 이성계 편이었으며 수군을 이끌고 가 대마도를 정벌한 일도 있었던 용맹한 무장이었습니다. 이성계의 심복으로 당당한 개국공신이었죠. 이런 그가 왜?

더구나 사건이 터지자마자 잡아넣었던 박위를 태조 이성계는 이틀만에 풀어주고는 고생했다고 술자리를 마련합니다?

그후에도 대간에서 박위를 심문하자, 처벌하자 상소를 계속 올리지만 태조는 개무시해버립니다. 그리고 점쟁이 이흥무, 왕화, 왕거, 김가행, 박중질 등은 모두 참수형에, 중 석능은 거제도에 유배합니다.

일이 여기서 안 멈춥니다. 삼척에 유배되어 있던 공양왕에게 저승사자가 파견됩니다. 죽이는 이유가 황당합니다.

"김가행, 박중질 등이 반역을 도모했는데 너도 연관이 있다. 물론 너는 이 일을 전혀 모르겠지만 대간들이 너도 죽여야 한다고 계속 상소를 올리니 그만 죽어줘야겠다. 난 정말 억지로 죽이는데 동의한 거니까 그리 알려무나."

공양왕의 심정은 이랬을 것 같습니다. 이때 공양왕의 두 아들도 함께 교살됩니다.

그러나 박위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니, 박위 뿐이 아니었습니다. 국문 중에 이흥무는 박위보다 더 먼저 똑같은 것을 물어본 사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 지신사 이첨李詹이 그 주인공. 그러나 이첨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첨은 합포에 유배가는 형을 받았고 그나마 7개월만에 유배도 풀렸습니다. 그 후에는 다시 관직에 진출.

이 일에 연루된 사람은 또 있었습니다. 정양군 왕우王瑀. 왕화는 국문을 당하자 별 관련도 없는 정양군을 끌고 들어갑니다. 정양군이 섬에 유배되어 있는 공양왕의 사위인 익천군 왕집에게 사람을 보내서 "섬에 들어간 것을 근심하지 마시오. 내가 다시 왕으로 세우고자 꾀합니다."라는 말을 전했다고 일러바친 것입니다.

이 정양군은 태조가 그리 아끼던 후처의 자식인 방번의 장인입니다. 왕화는 정양군을 끌고 들어가면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지만, 태조는 이것 역시 개무시. 정양군의 아들들은 1차 왕자의 난 때 죽습니다. 특별한 이야기가 실록에 보이진 않지만 왕자의 난에 휩쓸려 죽은 것은 분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왕자의 난 때 박위도 죽지요. 점쟁이 이흥무는 박위의 운명이 "액운"이라고 했다는데, 그 예언은 몇 년 지나서야 성사되었군요. 하지만 이런 걸 맞췄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점이라는 것이 이런 허황된 것이라는 증거로나 삼을 이야기겠지요.



아참, 쓰다보니 깜빡...

아무래도 이 사건은 태조가 지휘해서 이첨, 박위 같은 심복들에게 꾸미게 한 일인 것 같지요. 왕씨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말이죠. 놀아난 점쟁이의 말로가 한심할 뿐입니다.

이후에 거제와 강화에 있던 왕씨들을 모두 물에 빠뜨려 죽이고 지방에 남아있던 왕씨들도 도륙을 해버립니다. 왕씨 성을 쓰는 것도 금지됩니다. 왕씨들은 어머니 성을 쓰라는 명이 내려가죠.

그러나 이 와중에도 정양군은 주모자로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와도 무시하죠. 사돈은 잘 두고 볼 일...

덧글

  • skyland2 2010/07/12 17:11 #

    점 하니까 약간 관련된걸로 예전에 소비자 고발에서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라고 사람들을 꼬셔서 높은 가격에 이름을 지어주는 역술인들을 방영해주더군요. 그런데 역술인 협회 회장도 그것을 믿지 말라고 하던 적이 생각납니다.

    약간 관련되려나요(.....?)
  • 초록불 2010/07/12 17:15 #

    괴짜심리학에 보면 이름이 의외로 그 사람의 직업에 관여하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물론 서양의 이름이라는 게, 직업적인 특성과 연관시키기 쉬운 단어로 구성된 경우가 많아서 나온 이야기지만...^^
  • 한양댁 2010/07/12 18:51 #

    이름 바꾼다...고 하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네요.
    아주 유명한 작명소에서 고교 동창들이 전부 애들 이름을 지었다나요.
    나중에 보니 아들들 이름은 다 달랐지만 딸들은 이름이 전부 같았다네요.
    여자 이름은 딱 두 글자만 지정해놓고는(예를 들자면 [민][정]) 성하고 겹치지만 않게('정정민'은 이상하니까 '정민정'. 이런 식.) 돌려 주고 있었다 뭐 그런 이야기....
  • 초록불 2010/07/12 20:28 #

    한양댁님 / 아이들 이름은 놀림감이 되지 않게 짓는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교"자 돌림이라니까 "성교"라고 어르신이 지어오셨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듣곤 해서...
  • asianote 2010/07/12 17:11 #

    세상의 일을 참으로 알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한문제의 부인인 두태후가 본래 시녀였고 한문제는 고조의 아들 중에서도 권력과 먼 거리에 있었는데 황제가 되고 두태후는 황후가 되었으니... 진실로 모를 노릇입니다. 그러니 점이여 영원하라?
  • 초록불 2010/07/12 17:16 #

    인간세상의 기묘한 우연이 점에게 늘 살 길을 열어주고 있는 거죠...
  • Allenait 2010/07/12 17:16 #

    그리스의 어떤 왕이 점괘만 믿고 페르시아를 쳤다가 자기네 왕국이 망한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
  • 초록불 2010/07/12 17:18 #

    ^^
  • 네비아찌 2010/07/12 19:30 #

    그게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지요. 처음으로 국가 발행 화폐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한데, 페르시아의 키로스 대왕이 리디아에게 항복을 요구하자 크로이소스가 델포이 신탁에게 어찌해야 할지 물었더니 "전쟁을 하면 큰 나라를 멸망시키리라." 해서 전쟁을....결과는 다 아시는 대로.
    그나마 키로스가 대인배인지라 크로이소스의 목숨을 살려주고 후하게 대접한 것이 해피엔딩이랄까요.
  • 靑山 2010/07/12 17:16 #

    전 문어보단, 그 먹이를 세팅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합니다. 문어의 점 결과를 보니 딱 1번빼고 모두 오른쪽 먹이를 먹었더라구요...즉, 그 문어는 오른쪽을 엄청 선호했던거 같습니다...

    그러니깐 진짜 배후는 이긴 팀을 오른쪽에 놓은 사람..
  • 초록불 2010/07/12 17:18 #

    왼쪽 눈이 시력을 잃었다든가...^^
  • 헬카이저 2010/07/12 18:26 #

    초록불님//이게무슨 x소리인가요?
    님은 왼쪽눈감으면 새상이않보이시나보네요?
    왼쪽눈시력 0에까깝고 오른쪽0.1도안나오는저도 게임하고 할거다합니다만?
  • 초록불 2010/07/12 20:23 #

    헬카이저님 / 새상이 않보이는 게 아니고 세상이 안보이는 거라고 해야지요. 농담을 진지하게 받으면 드릴 이야기가 없습니다만?
  • 김현 2010/07/12 17:19 #

    우연과 우연 사이를 파고 드는 송곳 같은 게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푹 찌르면 훅 가는 거고 허탕 쳐도 원래 그런 거니 상관 없고...

    ...졸리니 별 소리가 다 나오네요 ㅎㅎ
  • 초록불 2010/07/12 17:21 #

    허탕 치면 목이 달아나는 건 좀 곤란...^^
  • 로크네스 2010/07/12 18:07 #

    게임하던 중에 하필이면 동전을 7번 던져서 7번 연속으로 뒷면이 나온 적이 있었죠. 그 게임 완전히 망했습니다(...) 1/128이라니....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에서도 저렇게 우연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을 통렬하게 까는 부분이 있지요. 특히 우연히 산 골동품에 어머니의 이름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던 사건을 분석해서 의외로 그럴만 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부분이 최고.
  • 초록불 2010/07/12 18:14 #

    <푸코의 추>에서도 가판대를 놓고 우주의 미스테리를 푸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피라밋에 비견한...^^
  • rumic71 2010/07/12 23:35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가지고 미국 근대사를 몽땅 예언해낸 케이스도 있다고 하죠. (사후약방문 식이지만)
  • Ezdragon 2010/07/12 18:10 #

    "무지개를 풀며"에서 도킨스가 우연에 대해 적은 부분이 있죠. 1/10000의 확률이라고 해도 60억이 사는 지금 세상에선 그다지 특별한 확률이 아니라고. 누군가에겐 특별한 일로 여겨질 수 있지만 확률적으로 그런 우연이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이죠.
  • 초록불 2010/07/12 18:15 #

    아, 한 발 늦으셨습니다...^^
  • 바다를 달리는 갈매기 2010/07/12 18:50 #

    그럼 지구종말의 예언에도 배후가...(읭?)
  • 초록불 2010/07/12 20:24 #

    출판사라든가... (먼산)
  • 검투사 2010/07/12 19:21 #

    앞서 먹이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로마인 이야기 제2권>에서 원하는 점괘를 얻기 위해 닭을 굶겼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이... 굶주렸을텐데도 먹이를 먹지 않는 닭을 열받은 로마 수군 제독이 "그럼 물이라면 먹겠느냐!"며 바다에 쳐박았다가 "닭보살의 예언대로" 패배하니 윗분들에 의해 박살이 났더라는...
  • 초록불 2010/07/12 20:24 #

    하하...
  • 네비아찌 2010/07/12 19:31 #

    페르시아 전쟁 때의 "나무로 만든 성으로 피하여라"라는 델포이 신탁을 정말 곧이곧대로 나무 목책을 세우면 살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다 테미스토클레스를 따라 배를 타고 살라미스 섬으로 피난갈때 그 사람들은 아크로폴리스에 목책을 세우고 페르시아군을 맞았으나....전멸하는 운명을....
  • 초록불 2010/07/12 20:25 #

    아이쿠...
  • 2010/07/12 19:4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0/07/12 20:25 #

    글쎄요... 이건 딱히 어떤 한 권을 권하기가 좀 그렇네요.
  • 스토리작가tory 2010/07/12 21:07 #

    아 저사진 그거네요 광화문에 있는 고종어쩌구비ㅎ 딱 저거 보고 되게 재밌었다 생각해요ㅎ
  • 초록불 2010/07/12 21:09 #

    고종즉위사십년칭경기념비...입니다...^^
  • 스토리작가tory 2010/07/12 21:11 #

    재밌었다 생각해요는 뭐지...
    재밌었다생각했어요... 우와... 그랬군요 초록불님 멋져부러~
  • 초록불 2010/07/12 21:39 #

    고맙습니다. 저도 딱 보는 순간 재미있어보이더라고요...^^
  • 루드라 2010/07/12 21:08 #

    전 두 개중에 하나 찍기에서 8번인가 9번인가 연속으로 틀렸던 적이 있네요.

    저 위의 에피소드에서도 그렇지만 이성계는 장수로는 필적할 사람이 드문 대단한 명장이지만 저런 부분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유치해 보입니다. 이방원이라면 저렇게 유치한 방법으로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 같습니다. 실제로 이방원은 왕씨들을 죽이는데 반대했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 초록불 2010/07/12 21:09 #

    이방원이 반대를...^^

    저도 잘 모르겠네요.
  • rumic71 2010/07/12 23:36 #

    방원이야 같은 이씨 죽이는데 골몰했으니...
  • highseek 2010/07/13 00:45 #

    사실 고대의 예언들은 알고보면 정치적 배후에 의해 탄생한 것들이 많죠.

    ...배후가있다! -ㅂ-!;;
  • 초록불 2010/07/13 09:07 #

    배후를 찾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0/07/13 00:48 #

    점쟁이 관련해서 고대 설화들도 많지요. 김유신 관련 설화중에도 있었고 말입니다.

    고대 로마떄는 전투에 앞서 닭에게 모이를 주어 모이를 먹으면 승리하는 것으로 점을 쳤는데 지휘관들이 닭을 미리 굶겨서 승부조작(...)을 해놓았지요.(...)
  • 초록불 2010/07/13 09:07 #

    긍정적인 마인드로 출발하고 싶었겠지요...^^
  • draco21 2010/07/13 01:54 #

    신통치 않은것에 자주 마음이 흔들리는 제가 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 같습니다. ^^:
  • 초록불 2010/07/13 09:08 #

    우리는 누구나 안심시켜주는 것을 찾게 마련이죠...^^
  • 라세엄마 2010/07/13 10:56 #

    전 동전 던지기 46번 한쪽면만 나온 적이 있었죠[..] 확률이 대체 얼마야?
    포춘코인은 전설의 아이템임..
  • catnip 2010/07/13 16:53 #

    뭐든지 절대적으로 생각해버리면 낭패인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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