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또다른 시각] (5) 백제는 어디서 도읍했을까?[클릭]
파이낸셜뉴스의 삽질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회의 제목 역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실상 질문에 대한 논리적인 추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살펴온 바와 같이 <삼국사기>를 인정하지 않는 사대주의적인 모습,
삼국사기에서는 온조가 백제를 처음 세운 것으로 기록했지만 어떤 정사(正史)에도 온조가 세웠다는 기록은 없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정사는 구태씨가 처음 십제(十濟)를 세워 후에 백제라 했던 것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라고 중국 사서를 가지고 <삼국사기>의 신뢰성을 부인하는 대목만 있을 뿐이다.
이중재는 중국 사서들을 들먹이며 백제가 대방군에서 건국했다고 말한 뒤에 슬그머니 이런 대목을 덧붙여 놓는다.
이처럼 여러 사서의 기록을 보면 백제는 대방군(帶方郡) 옛 땅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적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백제는 진평이군의 땅에 세워진 것으로 되어 있다.
진평이군에서 건국했다는 것에 대한 사료는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냥 그렇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남위례성의 하남을 중국의 하남성이라고 주장한다. 역시 근거 같은 건 없다. 그냥 하남이면 하남인 것이다.
삼국사기 본기(本紀) 제1편에서는 10명의 신하가 남으로 향하여 이른 곳은 하남성(河南省) 땅이다. 이곳에 위례성(慰禮城)을 지었다고 해서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다.
이 하남성이 백제의 땅이니까, 여기가 대방군이고, 여기가 진평이군이라는 게 이중재의 논리다. 어이가 쌈을 싸먹을 일이다.

빨간원은 신라가 있었다는 곳.
빨간 테두리의 화살표는 주몽 탄생 - 고구려 건국 - 주몽 죽은 곳. (고구려가 건국한 저 곳에는 "경주"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주황색 부분은 구태가 나라를 세웠다는 곳.
어떻게 되면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되는 것일까?
파이낸셜뉴스의 삽질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회의 제목 역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실상 질문에 대한 논리적인 추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살펴온 바와 같이 <삼국사기>를 인정하지 않는 사대주의적인 모습,
삼국사기에서는 온조가 백제를 처음 세운 것으로 기록했지만 어떤 정사(正史)에도 온조가 세웠다는 기록은 없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정사는 구태씨가 처음 십제(十濟)를 세워 후에 백제라 했던 것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라고 중국 사서를 가지고 <삼국사기>의 신뢰성을 부인하는 대목만 있을 뿐이다.
이중재는 중국 사서들을 들먹이며 백제가 대방군에서 건국했다고 말한 뒤에 슬그머니 이런 대목을 덧붙여 놓는다.
이처럼 여러 사서의 기록을 보면 백제는 대방군(帶方郡) 옛 땅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적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백제는 진평이군의 땅에 세워진 것으로 되어 있다.
진평이군에서 건국했다는 것에 대한 사료는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냥 그렇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남위례성의 하남을 중국의 하남성이라고 주장한다. 역시 근거 같은 건 없다. 그냥 하남이면 하남인 것이다.
삼국사기 본기(本紀) 제1편에서는 10명의 신하가 남으로 향하여 이른 곳은 하남성(河南省) 땅이다. 이곳에 위례성(慰禮城)을 지었다고 해서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다.
이 하남성이 백제의 땅이니까, 여기가 대방군이고, 여기가 진평이군이라는 게 이중재의 논리다. 어이가 쌈을 싸먹을 일이다.

빨간원은 신라가 있었다는 곳.
빨간 테두리의 화살표는 주몽 탄생 - 고구려 건국 - 주몽 죽은 곳. (고구려가 건국한 저 곳에는 "경주"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주황색 부분은 구태가 나라를 세웠다는 곳.
어떻게 되면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되는 것일까?
덧글
1/3를 차지하는 숲과
1/3를 차지하는 산맥과
1/3를 차지하는 평야
를 가지고 거기에 자기 영토도 더해서 약소 영주에서 강력한 귀족으로 부흥하는 소설이 있었음요.
...?!
삼국사기를 못 믿겠다면 더 나은 기록을 들고 오든지...
제대로 된 교육도 안이루어진다는게 더 큰 문제인거 같습니다-_-
역사를 패키지로 팔아먹는 수출의 역군들같으니라고...-_-
정치 경제 사회 기사도 저런 마인드로 쓴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