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께 *..만........상..*



11년 만에 부엌의 씽크대를 교체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사실은 벌써 몇 년전부터 교체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금전적으로 여유도 없고 해서 내버려두고 있었지요.

집 지을 당시에 공사 감독이 추천한 부엌 공사 담당을 물리치고 친구가 권한 사람을 쓴 것이 화근의 시초였는데, 그때부터 부엌은 계속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설거지대의 수전이 불편하게 달려있다가 기어이 떨어져서 덜렁거리고 있는 것이 거슬려서 공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토요일날 씽크대를 철거하는 작업을 했지요. 들어내고 보니 11년간 묵은 먼지가 장난이 아닙니다. 먼지가 들러붙어 눌어앉은 것을 "더께"라고 부르지요. 씽크대 아래 장판에 들러붙은 더께를 보니 음식 먹으러가서 주방 위생이 어떠니저떠니 하는 게 낯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벌레는 없더군요.)

장판을 이참에 싹 교체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장판을 주문해서 재단한 뒤에(아내가 재단에는 귀신...) 바닥에 까니까 금방 지은 새집처럼 보이는군요. 

헌 장판을 내다버리고 부엌 구석구석의 더께를 치우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냉장고를 들어내니 냉장고 모터 뒷판에 붙은 더께도 장난이 아니더군요. 냉장고가 그동안 가스레인지 맞은편에 있었던 탓인지, 그냥 먼지도 아니고 기름때가 낀 먼지가 들러붙어서 터는 정도는 떼어낼 수도 없었습니다. 뒷판을 분리한 다음에 헌칫솔로 싹싹 문질러서 더께를 제거했습니다.

기름때를 제거하는 세제로 냉장고 위의 먼지와 문설주에 붙은 기름때도 제거했습니다. 후드 위 천장에도 기름때가 잔뜩 끼어서 걸레가 누렇게 변할 정도더군요.

그러다보니 부엌 벽에 걸린 액자 위에도 더께가 앉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이들이 유아 시절 그렸던 그림들을 모아서 만든 액자인데, 제 눈높이보다도 약간 높은 곳이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먼지였지요. 

세제를 묻혀서 걸레로 더께를 밀어내자 반짝이는 본래 액자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먼지가 남긴 상처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나더군요.

어머니가 총채를 사가지고 오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걸 보는 순간 튼실한 새 회초리가 등장한 것이냐, 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 총채는 오직 청소용이라는 본래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총채로 집안을 털고 다니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참 쓸 데 없는 일이었습니다. 도무지 먼지라고는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힘들게 매일 왜 그러세요?"
라고 하자 어머니는 정색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만 안 하면 먼지가 쌓인다. 쌓이면 이미 늦은 거야."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게으름을 부리면, 그만큼 어딘가에 먼지가 쌓이는 것이지요. 그걸 잊어버리면 먼지는 더께가 되고 쉬 지워지지도 않는 각인을 남기게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불필요해 보이는 일들을 항상 해야 하는 것도, 그래야 먼지가 진화하여 더께가 되고, 더께가 아픈 낙인을 찍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정말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덧글

  • 표류소녀 2010/08/09 10:52 #

    아아 그렇군요. 정말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 초록불 2010/08/09 11:45 #

    ^^
  • sharkman 2010/08/09 11:05 #

    하는 김에 플로링으로 바꾸시지 그러셨어요. 장판보다는 훨씬 나은데.
  • 초록불 2010/08/09 11:45 #

    그건 돈이 웬수라...
  • ArchDuke 2010/08/09 12:06 #

    제머리엔 이미 더께가 잔뜩 쌓인것 같습니다 ㅠㅠ
  • 초록불 2010/08/09 12:42 #

    머리도 자꾸 써야죠...^^
  • draco21 2010/08/09 12:38 #

    살림살이의 지혜는 꽤 많은곳에 통하는것 같습니다. 배울점도 많고...
  • 초록불 2010/08/09 12:42 #

    맞습니다...
  • sharkman 2010/08/09 14:11 #

    살림살이의 지혜는 조선일보에 가득하죠.

    '간장을 옮겨 부을 때는 싱크대에서 하면 편하다' 같은 주옥같은 지혜가 가득가득.
  • 초록불 2010/08/09 14:23 #

    sharkman님 / 맥주가 차갑지 않을 때는 얼음을 넣으면 좋다...도 있죠.
  • draco21 2010/08/09 14:27 #

    sharkman님 / 쿨럭쿨럭.. ^^: 조선일보 말씀을 하실 줄은... O>-<
  • vibis 2010/08/09 13:57 #

    혹시 직접 공사를 하시는 건가요? 대단하네요.
  • 초록불 2010/08/09 14:05 #

    아이쿠, 설마요...^^

    장판만 직접 깔았습니다. 씽크대 공사는 업체에서 와서 한참 하고 있는 중입니다...^^
  • 전직 환빠 Jes 2010/08/09 23:43 #

    조선의 쇠고기 소비량인가 하는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알려주실 수 있다면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조선의 식량 소비량과 같은 자료들도 있으십니까?

    ....죄송합니다.
  • 초록불 2010/08/09 23:47 #

    그쪽은 제가 별 관심이 없어서...

    http://coldstar.egloos.com/

    이 블로그 주인장에게 물어보면 좀 자료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찬별 2010/08/10 15:12 #

    밀리터리 전문작가인 윤민석님이 자료를 정리해두신 것이 있지요. 그런데 윤민석님이 본인 자료의 신뢰성을 너무 믿지 말라는 말을 해두셨더군요.
  • 전직 환빠 Jes 2010/08/10 15:22 #

    찬별 님/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 찬별 2010/08/10 17:38 #

  • 전직 환빠 Jes 2010/08/10 23:00 #

    감사합니다.
  • 액시움 2010/08/10 10:56 #

    다르게 보면 이미 놓쳤을 때는 포기하면 편해...군요.
  • 찬별 2010/08/10 15:13 #

    그러고보면 총채라는 물건을 본 지가 오래 되었군요. 청소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된 지 오래인 듯...
  • 초록불 2010/08/10 22:02 #

    음... 난 요즘도 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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