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본제국의 붕괴 *..역........사..*



대일본제국 붕괴 - 10점
가토 기요후미 지음, 안소영 옮김/바오


흥미진진한 책이다. 받아들자마자 순식간에 "문명하셨습니다"의 기세로 3장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내 마감은! 내 마감은!)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책의 형식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전문적인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로 만들어졌다. 논란이 있을만한 부분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통설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실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천착하면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것보다는, 쉽고 빠르게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번역한 출판사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장치를 추가한 모양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중을 위한 대중적인 교양서가 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종류라 하겠다.

다만 어쩐지 이 책은 앞의 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동일 저자의 저작이 아니라 시리즈물로서의 저작 같은...) 의구심이 든다.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고 당연한 듯이 기술되는 부분들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기술은 일본에서는 통설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가령 이런 부분...

절차만을 고집한 결과, 하찮은 실수를 범한 일본의 대미선전포고와 달리, 소련은 훨씬 더 교묘한 수법 - 표면적으로는 국제규정에 따르면서도 실제로는 이를 위반한 - 을 사용하면서 공격을 개시하였던 것이다. (46쪽)

진주만 기습은 일본군의 "페이크"가 아니라 실수였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이것이 일본의 고의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

그외에도 사소한 실수가 보인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과 같은. 또 쿠릴 열도를 "치시마 열도"라고만 써놓아서 어딘지 찾아보게만든다거나...

그러나 이런 사소한 것들을 넘어서서 이 책은 일본제국이 항복을 결정하게 되는 과정, 그 안에서 벌어진 일본 수뇌부의 오판과 실수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또한 멸망의 시점에서 제국의 본색이 드러나면서 일시동인, 동조동근의 가면이 벗겨지는 것도 분명히 밝혀내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천황은 항복을 선언했다. 천황의 옥음을 듣고도 일본인들도 그게 무슨 말인지,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곳은 일본 본토뿐이었다. 제국의 나머지 영역은 여전히 전쟁 중이었던 것이다.

옥음 방송 이후 그때까지 격렬하기 그지없었던 미국의 공습이 하루아침에 멈춘 본토와는 달리 '버려진' 이들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계속되었고,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마저 띠고 있었다. 실로 8월 15일은 새로운 격동의 시작이었다. (79쪽)

심지어 일본제국은 본토 이외의 제국에 남겨진 민간인들도 버려버렸던 것이다.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이 있었지만 실제 항복은 9월 2일에 이루어졌다. 미국의 미주리함에서.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선총독부에서 9월 9일에서야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와 연합국 미국 사이에 항복 문서가 교환되었다. 이때까지 조선을 총독부가 다스리고 있었던 것.

대만의 경우는 그 기간이 더 길어서 10월 25일에서야 국민당정부와 항복문서가 오가게 되었다.

대일본제국의 해체는 이처럼 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주된 내용이다.

건준의 결성부터 이승만과 김일성의 등장은 잘 알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기간 동안 일본인들은 어떻게 지냈는가, 그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가 하는 점은 생각 못했던 부분이었다.

조선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 중에서는 한일합방 전인 1876년의 '강화도조약'으로 거류민이 되어 인천이나 부산에서 살면서, 벌써 2세대와 3세대가 된 사람들도 많았다. 따라서 재조 일본인 사이에는 아무런 생활기반도 없는 일본 본토로 귀환하기보다는 한일합방 이전 상태, 즉 거류민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잔류해서 조선 땅에 뼈를 묻고 싶다는 의견이 강했다. (90~91쪽)

만주와 사할린 등지에 진군한 소련군과의 전투도 당연히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가슴 아픈 대목도 물론 빠지지 않고 나온다.

더욱이 남사할린에는 패전 시에 약 2만3천5백 명의 조선인들이 있었다. 소련은 국교를 맺고 있던 북한으로의 귀국은 허용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남한 출신자였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대부분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250쪽)

동남아 역사에는 워낙 무지한 관계로 타이가 2차대전 때 취한 행동을 보고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타이 정부는 일본과 연합군 사이에서 양면외교를 전개했으며, 일본의 패전이 결정된 직후인 8월 16일에 영, 미에 대한 선전포고 무효를 선언했다. 한때는 추축국 편에 서서 연합군과 싸운 나라가, 선전포고는 강제된 것으로 헌법상 무효라고 선언한 것은 타이뿐이었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였다. (267쪽)

이 책은 본래 일본인들을 위해서 쓰인 것이니만큼 저자는 일본인들에게 종전과 전후를 구분하는 역사 인식은 위험하며1945년 8월 15일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특히 한반도의 분단과 중국의 분열)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인들의 그런 분위기를 "정신적 쇄국"이라 부른다.

전후 일본인은 무언가 커다란 역사적 관점을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대일본제국이 붕괴한 1945년 8월 15일을 직시하면서,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현재 '일본국'의 영역이 아닌 '대일본제국'의 영역으로 돌아가서 상기해봐야만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8월 15일은 옥음방송이 발표되어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일본이 시작되었다는 전후에 확산된 일본인들만의 폐쇄적인 역사상이 아닌, 더 넓고 더 깊고 더 보편적인 역사상이 떠올 수 있게 될 것이다. (269~270쪽)

덧글

  • asianote 2010/10/06 17:59 #

    일본 제국 애들은 자국민인 오키나와 사람들도 방패로 이용했지요...... 제주도 출신이라 오키나와 이야기만 들으면 괜히 가슴이 아픕니다.
  • 초록불 2010/10/06 18:00 #

    이 책에도 제주도를 결전장으로 쓰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제주도민을 소개하지 못해서오키나와의 비극이 재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 에르네스트 2010/10/06 22:05 #

    어디서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자국인 취급못받았다고(류큐 왕국이었으니)하더군요~
  • 스토리작가tory 2010/10/07 04:23 #

    오키나와 인들중 지금도 일본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제주도민은 어떠신가요?
  • asianote 2010/10/07 07:53 #

    제주도 사람들은 오늘날 오키나와와는 달리 한국인이 아니라는 정체성을 갖는 사람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주의 3성 시조를 삼국의 시조와 동등하게 대우해달라는 상소문이 영조 시대에 올라가 있을 정도지요. 물론 19세기 민란의 시대에 탐라 독립 같은 떡밥을 던지면서 항쟁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긴 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이영권 저 <<제주역사기행>>, <<새로 쓰는 제주사>>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 파랑나리 2010/11/11 13:45 #

    오키나와 사람들은 지금도 천황을 증오합니다. 자기들에게 거짓선전과 자살강요를 했던 주체니까요. 1975년에 아키히토가 오키나와에 오자 누군가가 화염병을 던졌습니다. 이게 오키나와의 분위기입니다.
  • sinis 2010/10/06 18:09 #

    진주만 기습이, 공격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선전포고하려고 하였는데, 미국측 해당 부서가 바빠서 일본의 선전포고문을 전달하려 온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바람에 선전포고문을 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그것을 사소한 실수라고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 Warfare Archaeology 2010/10/06 18:19 #

    흠. 또 그런 일이 있었군요. 흐음~~처음 알았네요.
  • sinis 2010/10/06 18:20 #

    아니아니,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 기억이 매우 희미해서요~
  • 위장효과 2010/10/06 18:44 #

    대미 선전 포고 당시 워싱턴 주재 일본 대사관측이 보여준 모습도 미국의 "전쟁 유발설"내지 "진주만 기습 유도설"등의 근거로 들먹거려지고 있습니다.

    미국측 해당부서보다도 원래 계획은 진주만 기습 시간에 맞춰서 노무라 주미 대사가 "교섭중지"통보를 할 예정이었는데-당시 한참 ABCD포위망에 대일본 석유 수출 중단등 한참 미국하고 일본이 대립하던 중이니까요- 암호로 된 문서가 대사관에 도착했을 때 이걸 타이핑하고 다시 해독하고 정서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노무라 대사가 그걸 들고 코델 헐 국무장관을 만나러 갔을 때 이미 헐 장관은 진주만 기습에 대한 보고를 받았고, 노무라 대사의 "교섭중지" 통보는 원래 계획과 달리 기습 한 시간 후에야 전달되어버렸습니다. 미국은 이걸 일본의 고의라고 해석했고요.
    덤으로, 노무라 대사가 국무성을 나갈 때도 의례적인 미소로 몰려든 기자들에게 답례하고, 그게 사진으로 찍혔는데 그 모습조차도 "비열하고 음흉한, 일본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버렸습니다.

    "교섭 중지" 통보를 보내는 시점에 대해서도 해군군령부하고 도고 시게노리 외상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습니다. 공격전 통보를 주장한 외상과, 공격직후 통보를 주장한 해군 사이의 절충안이 만들어지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사기꾼 거짓말장이 잽스"라는 이미지만 공고하게...
  • 에드워디안 2010/10/06 18:48 #

    공격 1시간 전에 선전포고문을 미 국무성에 전달하기로 예정되었는데, 군부의 주장으로 공격 30분전에야 통보하기로 결정했죠. 게다가 동경에서 발신된 선전포고문 전보를 주미대사관원이 늦게 해독한데다, 선전포고문을 노무라 대사가 직접 타이핑을 쳐서 영문으로 번역했던 탓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결국 공격 시작 1시간 후에야 선전포고문이 전달되었습니다. 코델 헐 국무장관이 하도 기가 막힌 나머지, '공직생활을 시작한 지 50년이 되었지만,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문서는 처음본다. 지구상에서 당신네(일본) 정부와 같은 정부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유감이다'라고 노무라 대사에게 발끈했다죠...
  • sinis 2010/10/06 18:49 #

    오호, 그랬군요.

    정확한 지식을 알려주신 위장효과,에드워디안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 초록불 2010/10/06 18:51 #

    말씀들 고맙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0/10/06 18:56 #

    덧붙여 말하면, 노무라 기치사부로는 본래 해군제독 출신으로 상해사변 당시 홍구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기념식전에 출석했다가, 윤봉길의 의거로 오른쪽 눈을 실명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전문 외교관 출신이 아니라서, 워싱턴에 부임한 후에도 대사관 직원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네요.
  • dunkbear 2010/10/06 18:58 #

    참고로 회원분들께서 설명하신 내용은 영화 '토라, 토라, 토라'에서 상당히
    잘 묘사되어 있는 편이죠. 영화 자체는 특수효과와 전투 장면을 빼고는 앞
    뒤가 안맞아서 지루한 편이지만요... ^^;;;
  • 에드워디안 2010/10/06 19:01 #

    dunkbear//

    '진주만' 같은 쓰레기에 비하면, '도라 도라 도라'는 진짜 명작이지요.
  • 위장효과 2010/10/06 19:49 #

    전쟁 발발 당시 노무라 기치사부로 주미 대사, 전쟁 종결때 항목 문서에 서명한 시게미쯔 마모루 외상 모두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때 다쳤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게다가 도고 시게노리 외상은 임진왜란때 끌려간 도공의 후예로 원래 우리식 이름쓰다 나중에 개명했죠. 젊을 때 우연히 만난 여성하고 연애하고 나중에 혼담이야기도 나왔지만 여자쪽 집안에서 조선도공후예란 걸 알자 깨어진 경험도 했고. 정작 결혼한 부인은 조선총독부 건설에 자문역을 했던 독일인 건축가의 미망인-역시나 독일인-이었고.

    dunkbear,에드워디안님//

    도라도라도라는 전쟁영화고 진주만은 "연애영화"입니다. 장르가 다릅...(퍽퍽퍽!!!)
  • 초록불 2010/10/06 19:53 #

    <진주만>은 판타지물이죠...^^
  • LemonTree 2010/10/07 01:54 #

    초록불//진주만만 하더라도 대번에 '이건 에러야(...)'라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암만 봐도 P-40기가 제로센에 비해서 그렇게 날쌨다는 거 자체(특히 상승력과 선회력에서는)가 의구심 한 가득이였죠(흐음).게다가 '두리틀 공습작전'도 그렇게 영화에서 나왔던 것처럼 큰 효과도 내지 못했다죠.

    다만 이게 완전히 판타지는 아닌게,실제 경우도 상당히 반영되어 있었죠.예를 든다면 진주만 기습때 일본기 때려잡은 흑인 취사병,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였죠.'도리스 밀러'라고 말이죠.게다가 밀러를 추모하기 위한 미국내 밀러란 이름을 갖고있는 함정/시설물도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음).
  • 비바베르디 2010/10/06 18:25 #

    이런 형식의 일본 학자들의 책들이 참으로 유익합니다. 학술적인 내용의 전문성도 갖추면서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말이지요. 대개 강담사나 임파서점의 학술문고지요.

    최근에 본 것 중에 이런 형식의 책으로는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 - 이노우에 고이치, 이경덕 옮김 (다른 세상)
    지중해를 물들인 사람들 - 야기누마 시게타케 지음, 위정훈 옮김 (삼천리)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 - 오카모토 다카시 지음, 강진아 옮김 (소와당 )

    사할린의 버려진 조선인의 슬픈 역사는 정혜경(서해문집)이 쓴 <조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조갑제가 지금처럼 정신줄 놓기전인 80년대 중반 쓴 <조선총독부 최후의 인터뷰>가 이번에 다시
    조갑제닷컴에서 나왔는데 패전 후 일본인들의 상황이 자세히 나와 있고 상기 기요후미의 저서에
    소개된 내용이 더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기록 정신에 그저 놀랄 뿐이지요. 그들이 왜 일본제국의 패전 후 한국인의 귀향사는 없냐고 당당하게 물을 때는 저자는 할 말이 없었다고.
  • 초록불 2010/10/06 18:28 #

    대중성이 있는 교양서는 일반인들의 교양을 높이는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책이 안 팔린다고 한탄만 해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고, 많이 읽힐 수 있는 대중적인 책을 만드는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 꼬장꼬장한 꼬마눈사람 2012/12/21 13:43 #

    이렇게 연관된 책 추천이 제일 좋은것 같아요.
    아직 읽기전이지만 대충 알라딘으로 보니 볼만할것 같내요.

  • 진성당거사 2010/10/06 18:42 #

    정말 잘 읽은 책이었습니다.
  • 초록불 2010/10/06 18:51 #

    벌써 보았군요...^^
  • hyjoon 2010/10/06 18:52 #

    좋은 책 정보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10/10/06 18:53 #

    ^^
  • dunkbear 2010/10/06 18:58 #

    저도 좋은 책 정보 감사드립니다. ^^b
  • 초록불 2010/10/06 19:06 #

    ^^
  • 누군가의친구 2010/10/06 19:24 #

    일본제국이 진주만을 공격하지 않았어도 망하는건 동일했을겁니다.
    중일전쟁만 해도 전쟁이 장기화 되고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서 일본인은...
    "전쟁을 그만 두면 죽은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다."라는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0/10/07 10:08 #

    쇼와천황과 고노에 수상도 승산이 없는 대미전쟁을 가급적 피하고 싶어했고, 해남도와 화남지방에서 기한부로 철수하자는 논의가 외무성을 중심으로 있었으나,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육군 수뇌부는

    '미국의 주장에 그대로 복종한다면, 지나사변의 성과는 괴멸하고 만다. 만주국도 위태로워지고 더 나아가 조선 통치마저 불안정해진다. 지나사변으로 수십만 명의 전사자와 수배가 넘는 유가족, 그리고 수십만의 부상자, 수백만의 군대와 1억 국민들이 전장과 내지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심장이다. 양보, 양보하고 또 양보를 해서, 거기에 기본을 이루는 심장까지 양보해야 한단 말인가? 여기까지 양보했는데 이런 걸 두고 외교라고 할 수 있는가? 그건 외교가 아니라 항복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에서의 철병을 극력 반대했다고 하지요.
  • 초록불 2010/10/07 10:21 #

    에드워디안님 / 위 책에서도 육군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관건이었고, 육군 측에서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 파랑나리 2010/11/11 13:49 #

    에드워디안//덧붙이자면, 기약없는 전쟁은 국가재정을 바닥내고, 국제사회의 다른 맹수와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지죠. 그렇기에 히로히토가 미국과 싸우는 걸 가급적 피하고 싶었지만 미국과의 전쟁에 책임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아니 뭐 이 사람은 이미 아시아에서 저지른 범행으로도 충분히 사형감이죠.
  • 미연시의REAL 2010/10/06 19:35 #

    실수였다는게 위에 말씀하신 분들의 기준의 문제의 실수를 지적한건지..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한건지..
    아니면..

    전부 해군놈들 탓이라능!

    이건지.. 참 애매하네요;;
  • 초록불 2010/10/06 19:42 #

    네, 이 대목은 좀 뜬금없었습니다.
  • 개발부장 2010/10/06 19:45 #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10/10/06 19:53 #

    ^^
  • LVP 2010/10/06 22:52 #

    하지만 대욱일제국(?)은 죽지 않고 그 이후로도 뇌속에 기생을...

    ※富江?
  • LemonTree 2010/10/07 05:32 #

    LVP//결국 레드일럿 3에서는 참으로 괴랄한 제국(...)으로 다시 부활합니다.

    여고생 코스프레(...)한 초능력 아주머니 오메가 유리코짱 만세!!(괴굉)
  • Allenait 2010/10/06 23:38 #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학교 도서관에 있나 봐야겠군요
  • 2010/10/07 11:4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0/10/07 18:21 #

    그렇습니다.
  • 소시민 2010/10/07 13:26 #

    일본 시장에 내놓은 책이다 보니 확실히 '쿠릴 열도'라는 표기를 하기에는 무리가 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번역 과정에서 주석으로 달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 초록불 2010/10/07 18:21 #

    네, 제 이야기도 그것입니다...^^
  • 2010/10/07 20:2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0/10/07 20:34 #

    그런 면에서보면 동남아 역사에 대해서 참 무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10/10/07 20: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0/10/07 20:34 #

    호, 그 양반이 우리나라에 있었군요...
  • 아르니엘 2010/10/10 16:39 #

    본 글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안건이지만, 전후 천황제 존속과 관련해서 흥미있는 인물이 있죠. 키도 코우이치木戸幸一 후작(제1차 코노에 내각에서 52대 문부대신, 초대 후생대신등을 역임하고, 일본 최후의 내대신으로써 궁내성의 최중요인물중 하나)으로써 천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사람인데, 이사람이 전범재판중 스가모 수용소에 갇혀있으면서 쓴 '키도 일기'라는 물건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쇼와 천황이 어떻게 맥아더 미군정 치하에서 전범으로 재판받지 않았고,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인들에게 천황의 책임을 대신 지게 했는지, 대본영의 한심한 짓거리나 친위 쿠데타등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등을 써놓은지라 전쟁중이나 전후의 일본 황실에 대해 알고싶다면 한번 조사해보시는것도 좋을듯 합니다. 1941년 도조 히데키 내각을 성립시킨 거물이기도 하네요. 참고로 전범재판에서는 한표차로 사형이 아니라 종신금고형을 언도받았다고 합니다.
  • 구찮소 2010/10/12 00:12 #

    "...조선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 중에서는 한일합방 전인 1876년의 '강화도조약'으로 거류민이 되어 인천이나 부산에서 살면서, 벌써 2세대와 3세대가 된 사람들도 많았다. 따라서 재조 일본인 사이에는 아무런 생활기반도 없는 일본 본토로 귀환하기보다는 한일합방 이전 상태, 즉 거류민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잔류해서 조선 땅에 뼈를 묻고 싶다는 의견이 강했다. (90~91쪽)..."


    - 인용하신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실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내용이면서도 아쉽게도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연구가 미진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친일, 부역, "친일파"의 문제에 대해 매우 민감한 우리 나라에서라면 상대적인 입장에서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 재조일인들의 상황에 응당 관심을 깊이 가져야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에서 가해와 피해의 관계를 은폐하는 식의 서술도 곤란하지만, 그 관계를 단순한 흑백으로 묘사하기도 곤란할테죠. "조선"이 자기가 막 태어났을 때에 망한 나라였던 "조선인"에겐 이후 성장기와 청년기에 있어서 어디서나 일본인을 보고, 일본인들과 함께 살던 것이 현실이었던 만큼이나 그 무렵 한반도로 건너온 일본인 부부에게서 태어난 "일본인"은 또한 어디서나 조선인들을 보고, 조선인들과 더불어 살면서 일본 본토인과는 다른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가졌을 수도 있겠고요. 그들에게도 평생 살아온 곳이 조선인들이 거닐고 다니는 조선땅이었으니..

    이 어찌 아이러니가;;; 크흙~;;;

    앞으로 이런 분야에 미시사적/사회사적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초록불 2010/10/12 08:58 #

    전혀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고, 해방 후 상황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적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태준의 해방전후 정도가 생각나는 전부랄까...
  • 파랑나리 2010/11/11 13:50 #

    구찮소//그때 조선에 살던 일본인 2,3세의 아비투스는 일본인보다 한국인에 가까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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