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립이 생각한 우리 영토 *..역........사..*



<환단휘기>는 이유립이 1971년에 펴낸 책이다.

이 책 안에는 1956년 대전에서 쓴 <환단휘기자서>라는 글이 실려있다. 물론 저 1956년이라는 연도를 믿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환단휘기>에 대해서는 이유립의 환단휘기 [클릭]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바 있다.

이유립은 <환단휘기자서>에서 우리나라의 영토에 대해 이런 말을 해놓았다.

窃想컨대 我先民이 積力艱苦하여 世守經營者ㅣ 北自黑龍江之外數千里하고 而西至邠岐淮岱之間하고 東則越海而任那倭奴之民이 皆屬하야 相距數萬里之地에...(환단휘기, 3쪽)
[속으로 생각컨대 우리 앞선 사람이 고난에 힘을 모아 대대로 경영한 것은 북으로 흑룡강까지 수천리하고 서로는 빈기 지방과 회대 사이에 이르고 동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노의 인민을 모두 복속하야 수만 리의 땅을 아울러서...]


문제는 저 빈기邠岐 지방이 되겠다. 岐는 기산을 가리키는데, 바로 촉한의 제갈량이 북벌을 위해 침공하던 바로 그곳이다. 어디쯤인지 감이 오는지?

"회대지간淮岱之間"이란 태산과 회수 사이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중국의 동부 해안이 된다. 그곳에서 서안(장안)을 넘어선 곳에 있는 빈기지방까지 영토였다고 한다면 중국은 공중증발하고 만다.

이유립은 이정도로 막장은 아니었다. 이곳 빈기 지방은 일시적으로 점령한 지역으로 13세 흘달 단군이 여기에 주둔했었다는 말을 다음에 넣고 있다. 이 부분은 위 문장과 흘달 단군 사이에 은-주의 성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유립이 전 중국을 환족의 영토로 생각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사실 굳이 이렇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 빈기 지방까지 우리 영토였다고 주장한다면 회대지간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없다.






[사족]
그런데 환단휘기에는 환단고기에 나오지 않는 서언왕徐偃王이 등장한다. 치우천왕이 산동의 여러나라를 점거하고 단군흘달이 빈기에 병사를 주둔했다는 대목 뒤에 서언왕이 개봉 동쪽을 경계로 땅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언왕은 주나라 목왕때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서언왕에 대해서는
위앤커[袁珂], 중국신화전설2, 전인초 김선자 역, 민음사, 1999, 24~27쪽에 자세히 나온다.
수경주 서언왕 [클릭]에서 소하님이 정리한 내용을 보아도 되겠다.

서언왕은 주몽과 같은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어서 신화학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지만, 엄연히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인데 최남선이 우리나라 사람 취급한 이래(1927년 출간된 <아시조선兒時朝鮮>에 등장) 그렇게 여기는 일단의 흐름이 있는 모양이다. 김상기가 1974년에 낸 <동방사논총東方史論叢>에도 등장하는 모양인데 이 논문은 읽어본 바 없다. 언제 찾아봐야겠다. (이이화도 이런 이야기를 한 모양?)

서언왕이 <환단고기> 최종본에서 설 자리를 잃은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덧글

  • LVP 2010/10/16 11:52 #

    설정오류 'ㅅ' (!!!)
  • hyjoon 2010/10/16 12:20 #

    역사를 날조하려 보니 구멍이 날 수 밖에요......문제는 그렇게 날조한게 재미도 감동도 없는 것이라는......(먼산)
  • 한단인 2010/10/16 17:23 #

    환빠 때도 서언왕 얘기가 없는게 참 의아하긴 했죠.
  • 소하 2010/10/16 17:37 #

    년대가 스스로 생각해도, 매우 어긋나니 삭제한 것은 아닐까요?
  • 누군가의친구 2010/10/16 23:47 #

    소설에서 의례 등장하는 설정오류지요.ㅋ
  • 천지화랑 2010/10/17 00:01 #

    환단고기는 그냥 설정집입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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