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술 - 고고학 *..문........화..*



마녀는 자기 걸상을 그에게 바짝 끌어당기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자리에 앉은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럼 한 번 들어보려무나. - 그 처방전은 전설에 나오는 악마-난세-고고학-거짓말-천재-알코올-지옥이 복합된 소망의 술인 마법의 술에 관계되는 것이란다."

- 미하엘 엔데, 마법의 술, 홍성광 역, 세계일보, 1990, 106쪽


옛날에 저 책을 읽을 때 다른 단어는그렇다치고 대체 왜 "고고학"이 끼어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말 자체는 독일어로 이루어진 이상한 말장난인데 "악마-난세-고고학-거짓말-천재-알코올-지옥"이라는 낱말은 여러가지 형태를 거쳐 이렇게 쓴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Satanarchäolügenialkohöllisch

간단하게는 난세(anarch)의 뒷 철자 arch를 받아서 고고학(archäolog)으로 넘어간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왜 미하엘 엔데는 하필 고고학을 이런 마녀가 쓰는 흉악한 단어의 하나로 집어넣은 것일까? 아래와 같은 내용이 그 답일지도 모른다.

민족주의 고고학의 전형적인 예는 나치 독일 하에서 과거를 정치적으로 조작한 사례이다.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선사학자였던 구스타프코신나는, 독일 고고학에서 민족적 해석을 주도하였고 이를 나치 독일이 파시스트적이고 민족주의적으로 이용하도록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중략) 코신나는 그의 저서를 통해 게르만족의 인종적·문화적 우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색채를 뚜렷이 드러냈다. (중략) 독일이 (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에는 고고학 연구 결과를 토대로 폴란드 지역은 철기시대 이래 게르만족의 영토였다고 주장하였다. (중략) 알프레드 로젠베르크나 하인리히 히믈러 같은 주요 나치 인사들은 고고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히믈러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과학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친위대 조직인 도이치 아넨에르베(독일선조유산)를 창설하여 친위대 간부로 하여금 고고학 연구를 주도하게 하였으며, 코신나의 '취락고고학' 방법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게르만적인' 것으로 식별된 고고학 자료는 다른 것보다 우선시되었으며, 특히 게르만족이 선사·원사시대에 폴란드, 남러시아,코카서스 지역 등으로 확산한 것을 '증명'하는데 주력하였다.

- 시안 존스, 민족주의와 고고학, 이준정·한건수 역, 영남문화재연구원 학술총서2, 14~15쪽 (강조는 인용자)


나는 이 대목에서 <홍산문화>에 열광하는 어떤 사람들이 떠올라 부르르 몸을 떤다.



덧글

  • 야스페르츠 2010/11/21 21:38 #

    그나마 아직은 국가주도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해야 하는 걸까요. ㄷㄷㄷ
  • Mr 스노우 2010/11/21 21:45 #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패턴이라 섬뜩할 정도네요.
  • 잠본이 2010/11/21 21:45 #

    역시 풍자의 천재 엔데선생
  • 초록불 2010/11/21 22:01 #

    그리고 인디애나 존스에 나오는 나치들의 정체도 알게 되었습니다. (레알?)
  • ZAX 2010/11/21 21:48 #

    천재라는 단어가 왜 악마적인지도 좀 의문이군요.
  • 초록불 2010/11/21 22:01 #

    악마는 천재와 어울리지 않습니까?
  • ZAX 2010/11/21 22:03 #

    악에 어울리는 만큼 선에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초록불 2010/11/21 22:06 #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꼬마 니콜라>에서 똑똑한 아냥이 악역이듯이, <스머프>에서 똘똘이 스머프가 악역이듯이, <삼국지>에서 조조가 악역이듯이... 뭐, 그런 거죠. 순박한 바보 온달이라든가,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이라든가... 이런 멍청함은 선함과 이어지기가 쉽고요. 특히 동화의 세계는 대체로 전형적인 이런 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죠...^^;;
  • ZAX 2010/11/21 22:09 #

    동화라는 걸 감안하지 않았군요...;;; 납득했습니다.
  • 잠본이 2010/11/21 22:17 #

    ...똘똘이는 천재라기보다는 겉멋만 든 바보라는 느낌이 OTL
  • 치오네 2010/11/21 21:52 #

    저는 요즘 유목민 찬양하는 분들만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 초록불 2010/11/21 22:01 #

    이해합니다.
  • Allenait 2010/11/21 22:50 #

    진짜 여기서는 그나마 국가주도가 아니라는게 다행이로군요
  • hyjoon 2010/11/22 10:32 #

    왜 북한이 생각나는 걸까요.......(도유호 숙청)....ㄷㄷㄷ
  • 까마귀옹 2010/11/22 11:02 #

    작가 엔데 씨가 정확히 집으셨군요. 민족주의 광풍이 불어 닥친지 60여년이 지났는데, 그 광풍이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재현하는 것 같아 두려워집니다.

    여담으로 맑스 영감님의 말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그런데, '과거와 명랑하게 작별'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제길.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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