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이비역사의 탄생 - ![]() 로널드 프리츠 지음, 이광일 옮김/이론과실천 책에 대한 기본정보는 책 표지를 클릭해서 확인하세요. |
이 책의 지은이는 미국 애선스 주립대학의 문리대학장 겸 역사학 교수라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이 책에서 사이비역사라고 부르는 말의 원어는 pseudohistory, 즉 내가 <유사역사학>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전문학자가 엉터리 역사로 대중을 호도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단호한 목소리를 내는가 하는 점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사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만들어진 한국사>가 2만원인데, 이 책은 2만8천원다.. ㄷㄷㄷ)
머리말에서부터 무릎을 칠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이 대목은 탁견을 보여주고 있다.
사이비역사가들은 텔레비전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처럼 논리 전개 과정에서 가능성과 개연성의 구분을 흐려버리는 경향이 있다.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데 말이다. '어떤 일이 가능하다'고 할 때는, 그런 일이 일어났거나 일어났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발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반면에 '어떤 일이 개연성이 있다'고 할 때에는 일어났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따라서 내일누가 나한테 복권을 사줬는데 그 복권이 대박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내일이 주중이라면 내가 학교 사무실에 나가 연구를 하는 것은 개연성이 있는 일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중국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러서 그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한편으로 배를 타고 지구를 한바퀴 돌았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입수 가능한 믿을 만한 증거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랬을 개연성은 거의 없다. - 위 책, 21쪽
나는 과거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은 "환빠"라는 말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이 포스팅 자체는 비공개로 되어 있다.
6.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마라. 환빠에게 가능성이란 없다.
- 환빠에게는 그 말이 언제나 “그렇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자기 주장이 이겼다고 우기기 시작한다.
내 표현이 좀 더 거칠지만 근본적으로 프리츠 교수의 이야기와 같은 말이다.
프리츠 교수가 사이비역사(유사역사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는 이런 것들도 있다.
역사학자들은 해석을 놓고 얼마든지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중략) 그러나 거의 언제나 기본적인 사실은 논쟁 대상이 아니다. (중략) 반면에 사이비역사가들의 논쟁은 보통 기본적인 사실을 놓고 벌어진다. 어떤 사건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어떤 장소가 실제로 존재했느냐 존재하지 않았느냐? - 위 책, 22쪽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켰느냐, 안 시켰느냐? 낙랑군이 실재로 존재했느냐, 존재하지 않았느냐? 뭐, 그런 것이다.
나는 예전에 이유립의 후손이 <환단고기>를 창작물로 인정하고 저작권을 주장하면 훨씬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농담한 바 있는데, 이 책에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적어놓았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6천만 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인데, 이 책에 아이디어를 준 것이 분명한 <성혈과 성배 The Holy Blood and the Holy Grail>을 쓴 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 리, 헨리 링컨은 자신들의 저작권 침해에 분개해서 책이 나온 랜덤하우스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영국 법정에.
그러나 이들은 재판에서 졌다. 그것은 자신들의 책을 논픽션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논픽션 책을 소설가가 참고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들은 항소까지 했지만 패소하고 6백만 달러를 물어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이들이 자신들의 저작이 소설이었다고 주장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유사역사학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중립인 척 위장하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넘치는 우리 사회를 돌이켜보면 이런 책이 나와주는 것이 비록 바다 건너 나라의 책이긴 해도 참으로 반갑다.
1970년대 말부터 홀로코스트(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태인 대학살을 일컫는 말)를 부정하는 현상이 차츰 두드러졌다. 1990년대 들어와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자들의 공격성이 많은 학자들이 우려를 할 정도로 심해졌다. 1991년 12월 미국역사학협회평의회는 협회 차원에서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오랜 정책을 깨고 짧지만 강력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미국역사학협회는 언론에 보도된 홀로코스트 부인 시도들을 강력히 규탄한다.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진지한 역사학자는 없다." - 위 책, 12쪽
우리나라도 1970년대부터 유사역사학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학자들이 우려할 정도로 심해졌다. 여기서 고 이기백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학문적 진리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볼 때 교과서 파동은 심각한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저는 이러다가 한국사학이 파멸하지는 않겠나 하는 위기감을 느꼈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이 파동을 이겨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학회들이 모여서 성명을 낸 일이 있지 않습니까. 아마 김원룡 선생이 주도하여 학회대표들을 모았을 것입니다. 저는 역사학회 회원이지만 학회대표가 자기는 강의가 있으니까 제게 나가라고 그래요. 제가 사양할 수가 없어서 기자회견에 참석하였고 또 몇 차례 글도 썼습니다. 어떤 학회에서는, 학설 문제인 걸 가지고 왜 학회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느냐며 참석하지 않았어요. - 이기백, 나의 한국사 연구, 한국사학사학보1, 2000.3, - 이기백, <한국전통문화론>, 일조각, 2002, 305쪽)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이 이런 문제에서 발을 하나 빼려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었다는 점에 일말의 희망을 가져본다.
이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기백 교수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한국사 시민 강좌>를 만들었다. 하지만 2005년 나온 <한국사 시민강좌> 37집의 "이기백 선생 1주기 추모 좌담회>에서는 유사역사학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참으로 서글픈 노릇이다.
위 책으로 돌아가자.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법정으로 올라갔다. 영국작가 데이비드 어빙은 미국 에모리 대학교 역사학과 리프스태트 교수가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논박하면서 자신을 거론한 것에 발끈해서 영국 법정에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소송에 걸린 펭귄북스는 적극적으로 소송에임했고 어빙은 재판에서 졌다.
이 결과 어빙은 오스트리아에서 홀로코스트 부정 때문에 체포되어 10개월간 복역하게 되었는데, 이 덕분에 어빙은 박해받는 순교자의 이미지를 얻는 어이없는 결과를 빚었다. 이것이 바로 아무리 거지 같은 주장일지라도 표현의 자유를 가져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에 다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이 땅의 유사역사학과 맞서며 책까지 낸 입장에서 정말 눈물이 찔끔 날 뻔한 이 대목 하나를 소개하며 이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다. 벨리코프스키라는 유사역사가에 대한 이야기다.
헨리 H. 바우어는 벨리코프스키를 철저히 해부해서 그 허구성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 분명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과정은 지루하고 확인과 집필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작업이었다. 읽는 사람도 지겹기는 마찬가지다. - 위 책, 310쪽
아참, 그러고보니 또 내 글을 광고해주는 그 사이트에서 이 글도 광고를 해주겠지? 그래서 붙여놓는다. 제발...

덧글
엘렌버거 같은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시간을 두고 비전문가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차근차근 반박을 했더라면 벨리코프스키의 이론에 매료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제대로 된 반론의 기초만 지켜줬어도 "나는 결코 벨리코프스키에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엘렌버거는 말한다. - 위 책, 305쪽
특히 인터넷때문에 이전 세기와는 다르게 정보 유통이 빠르다보니 잘못된 이론, 주장이 쉽게 전파된다는 단점도 있어서 말입니다.
심지어 '여진족이라는 근거가 없는 건 그만큼 조작을 잘 했다는 거니까 이성계는 여진족이라는 근거다'라는 말까지 나오더라고요.
"대머리 여자와 바람을 피는 중이군!"
그리고 님도 남들한테 유사역사학이라고 공격하지만 정상인이 보기에는 그반대인 것같고 말입니다?
나참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네요?
그들은 자국의 역사를 외세가 악랄하게 축소시키고 왜곡시켜 놓은 것을 무작정 추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소위 주류 강단이라는 것들은 일제식민사학이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악랄하게 축소시키고 왜곡시켜놓은 사이비 역사를 마치 진실인양 그 서푼어치도 안되는 세력유지를 위해서 옹호하고 반대파를 치졸하게 탄압하고 있습니다.
외국과 우리가 같은 경우라고 보십니까?
제발 남의 눈에 티끌을 보기 전에 자기 눈의 대들보부터 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는 정말 희한한 것이 사이비 주류 강단을 상대로 이덕일님같은 진정한 역사학자분들이 소위 재야라는 척박한 현실에서 힘겹게 싸우는 그런 형국입니다.
무조건 "식민사학"의 프로파간다만 외치지 말고.
그게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국사니까.
인터넷에서 유사역사학 신봉자들 끼리끼리 모여서 놀면
자기들이 주류인거 같아 보이지만, 사실 안그래요.
말로 설명이 안될 것 같으니 친절하게 만화를 보여드릴게요.
다좋은데, 얘들이 들이미는 근거가 왜 마광팔과 그 분열체임?
서양-ㅄ놀음이어서 아예 신경을 안 씀
중국-한국사학계 이렇게 위서붙들고 빈약한 근거 가지고 놀고 있음이라고 사기치는 패턴(동북공정의 일환)
일본-재야에 동조하는 애들이 있긴 하지만 대개 우익계열로 그쪽 동네에서도 ㅄ취급 당함
서양의 학자들이 쓴 한국사 책들은 번역된 것도 있으니 좀 읽어보길. 댁이 안보니 남들도 안본다고 생각하나?
(댓글 수준이 그냥 말장난이군요.)
정말 처절한 현재 진행형 싸움입니다.
초록불님 정말 고생하십니다. 파이팅! 입니다.
그나저나 제 부모님도 환독이 조금 들어가신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그놈의 아침마당이 문제였어요. 아니, 그 이전에 어머니께 고조선 사라진 역사 추천해준 사람이 최대 문제였을지도....
그럼 새로운 정보 접하시고 교정되실지도요.
일본 극우세력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역사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넌지시 알려드리고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유사역사학을 물리치기에 늦어버린거 아닌가 합니다.
방금 김태희가 나온다고 해서 본 모 방송국 새 미니시리즈를 보니 왜곡된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황실의 복원이 필요...어쩌구 하고 있더군요....ㅠㅠ
유사역사학이 이끄는대로 가다가 불과 칼의 세례를(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중국제 열핵탄두의 세례를) 한번 받아야 언론 문화계가 정신을 차릴거 같습니다.....
안그래도 '맹글어전 환쿸사' 배달이 늦어져서 줄담배만 피우는 중인데, 자꾸 이럴거임 'ㅅ'^? (!?!?!?)
저걸 구분하지 못해서(혹은 안해서) 일어나는 좋은 않은 일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글내용과는 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이게 생각납니다(.....)
http://orumi.egloos.com/4390239
포스팅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개연성이 확률100%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또한 가능성이 확률 0%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단어 하나로 폄하하지 마라 뭐 이런 식으로...^^
더불어 생각이 틀린 걸 가지고 자꾸 단지 다를뿐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가능성과 개연성의 차이점은 이해못하지 싶습니다.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사이비역사라는 표현이 유사역사 보다 확 오는데요,,,느낌이
제가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유사과학과 같은 말에서 가져온 것이지요. 학계에서 정확한 번역어가 나와주었으면 좋긴 하겠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이런 글은 그들을 소환하는군요.ㅎ
이 책을 보고 제발 일부만이라도 인생을 더 이상 낭비하지 않기를 바랄뿐...
"아오 돌아버리겠네"
우리나라 사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외면만 하지 말고 대중을 상대로 좀 소통을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계의 성과가 쌓이고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데, 이게 대중에게 어필이 되질 않아가지고 국민이 학계의 기반이 되어 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멀어지고 있어요.
유사역사학보다 사이비역사학이라고 번역하는게..
명료하고 임팩트도 있어서 좋을 듯 합니다. ㅎㅎ
다른사람의 주장을 볼때 자신의 시각을 먼저 객관적, 비판적으로 보려는 노력도 필요하겠군영..
아무쪼록 사서 읽어봐야 겠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
그래도 그나마 온라인에서는 사라져가는 추세라 다행입니다
(제 취미 중 하나가 사이비 과학 비판서 수집(?)입니다.)
<<만들어진 한국사>> 유익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저 위의 독자분 말씀대로, 자꾸 돈이 깨져서 고민이지만, 그래도 좋은 책값은 지불할 생각입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 생물 진화 부정론, 태권도 역사 조작, 기타 등등......
사이비 역사는 여러 분야에서 학문적 진실을 어지럽히고 대중들을 현혹하는군요.
모든 진실의 뿌리는 '역사'니까요.
사이비 과학, 사이비 역사도 모자라서, 요즘은 에이즈 바이러스를 부정하거나 천안함 조작설을 유포, 선전 선동하는 책도 시중에 나왔더군요. (옛날에는 KAL기 테러 정부 자작극 낭설도 있었지요.)
세상에는 별 사람 다 있다지만, 그냥 씁쓸하네요.
말씀대로 근거 없는 주장이 유포되고 널리 믿어지는 것을 막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저도 '가능성과 개연성' 개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