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의 북한을 보는 시각 *..역........사..*



소련군도 처음에는 일반적인 점령군의 행동양식에 따라 종래의 총독부 체제를 그대로 인수하여 이를 통해 치안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각 지역에 인민위원회가 있음을 알게 된 소련군은 일본인과 친일파들을 추방하고, 행정을 인민위원회에 넘겨주고 주요 일본인 재산을 국유화했다. 이후 소련군은 적어도 지방적 수준에서는 북한 행정에 간섭하지 않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대부분 노동자와 농민 출신으로 구성된 지방인민위원회가 소군정하에서 지방차원의 행정을 직접 담당했다. 이리하여 북조선에서의 인민위원회는 남한과 달리 통치권을 계속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북조선에서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담당했던 일본인과 친일파들이 신속히 제거되어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일에 착수하였다. - 고준환, <하나되는 한국사> 개정판, (재)한국교육진흥재단, 2002582~583쪽

그럼 이런 일은 사실일까?

북한에 대한 전적인 지배권은 소련군 사령부에 있었다. 소련군 사령부는 그들의 점령 지역에서 소련정책과 위배되는 정치적 상황은 전혀 허용하려 하지 않았다. 인민위원회로 하여금 각 지역을 관장하도록 결정한 것은 소련군 사령부였으나, 인민위원회는 소련군 사령부의 감독을 받아야만 했다. - 이정식, <조선노동당 약사>, 이론과실천, 1986, 107쪽

고준환의 "신속히 제거"와 같은 표현을 보면 북한이 친일파들을 죄 죽이기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북은 인적 청산의 면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당히 관대한 정책을 실시했다. 일제의 강점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조선인들이 마땅히 취업할만한 곳이 없던 사정 아래서 일제 기관에 복무한 사람들을 다 가혹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 만주의 빨치산 생활을 한 사람들만으로는 새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건국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이 요청되었다. (중략) 비록 나중에 해직시키기는 했지만, 초기 인민군의 건설 과정에서는 일본군이나 만주군 장교 출신들을 군에 받아들이기도 했다. - 한홍구, <대한민국사>1, 한겨레신문사, 2003. 106~107쪽

고준환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있어서도 남한 측, 특히 이승만에 의한 단독국가 수립을 상당히 비난하는 어조로 기술하고 있다. 그럴수도 있는 문제기는 하겠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그 이전에 준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사실 그 점을 고준환도 뒷부분의 북한사 서술 부분에서는 아무 비판적 견해없이 줄줄 늘어놓고 있다. 그러면서 양측을 비교할 때는 남한 측에만 단독정부 책임을 묻는 뉘앙스를 충실히 풍기는 것은 문제가 있는 서술 방식이다.

한편 북한에서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대응하여 해주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고(8월 25일) 이어서 헌법을 채택하여(9월 3일) 9월 9일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이하 '조선'으로 표기한다). - 고준환, 위 책 594쪽

이 책에서는 남한 측의 혼란상과 파벌 간 암투는 자세히 묘사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린다.

특히 남한의 경우 미군정은 건준과 인공은 물론, 임정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의 친일파 등 일제 잔존세력과 새로운 친미파를육성시켜 자기 나라 국익에 따라 반공친미정권을 세움으로써 상대적으로 그 굴절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과 친미 반공의 이승만 세력을 반대하는 세력은 가차없이 제거되었다. 반면 북조선의 소련 군정은 대중적인 의사와 배치되는 정책 수립이나그 강행을 삼가하면서 조만식 등 민족진영을 제거하고 자기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공산당의 김일성을 권력의 중심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에 극도의 혼란을 겪지는 않았다. - 위 책 595쪽

뒤이어 이런 말도 나온다.

북조선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라도 대중의 요구를 수렴해 나가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평등이념에 입각하여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나갔다는 점이, 비록 권력투쟁이나 파벌문제로 암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이 북조선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해 일제잔재의 청산문제, 반봉건적 토지관계의 청산문제 등 반제반봉건개혁을 추진해나갔던 것이다. - 위 책, 595쪽

남한에는 친일파 득세, 북한에는 친일파 숙청이라는 신화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대한민국 초대 정부와 초대 국회에 친일파가 거의 없었음을 증명한 바 있다.

대한민국 초대 내각 [클릭]
제헌국회와 친일파 [클릭]

그나마 6.25를 북침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북한 책을 베껴먹은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가는 이런 대목은 대체 어떻게 기술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편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구체화되자 북한민중들은 2.7 구국투쟁, 제주 4.3봉기 등을 통해 단독정부 수립을 저해하려는 노력을 벌였고... - 위 책 638쪽

지못미, 제주도민들... 졸지에 북한민중이 되었습니다.

고준환은 남한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준열한 사관의 필봉을 휘두른다.

박정희는 통일문제를 이용하여 군사독재권력을 강화하여 국민들을 극도로 탄압하고 영구집권으로 가는 유신독재체제를 구축하다가 내부분열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였다. - 위 책, 610쪽

그러나 김일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단기 4285년(서기 1952년) 12월의 제5차 전원회의와 단기 4286년(서기 1953년) 8월의 제6차 전원회의를 통해 조선은 박헌영, 이승엽, 이강국 등 반대파들을 종파분자와 미제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숙청하고 김일성의 확고한 지도력을 수립했다. - 위 책 640쪽

김일성은 단기 4289년(서기 1956년)말부터 중앙당 집중지도라는 명목하에 '반종파투쟁'을 아래로부터 전개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김두봉, 최창익, 박창옥, 오기섭, 박의완 등 중요 지도자들이 숙청되었고 (중략) 이들의 숙청은 단순한 당내 권력투쟁이라기보다는 북조선에 있는 소련과 중국의 사대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소련이나 중국에 경도되어 있는 당내세력을 제거한 것이다. - 위 책, 643~644쪽


고준환은 나중에는 북한의 주장을 그냥 소개만 한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마침내 7개년 계획은 완수되었고 북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 공업화를 달성하여 사회주의 공업, 농업국가에서 사회주의 공업국가로 전환했다고 주장했다. - 위 책, 646쪽

북한의 주장을 단순 복사하는 이유가 뭘까?

고준환은 주체사상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상으로, 사람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주성(세계의 주인으로 자유롭게 살려는 성질), 창조성(목적의식적 세계개조적 성질), 의식성(세계와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는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성질)을 가지며 인민대중은 사회역사적 운동의 주체라는 것이다. 유물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유심론으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 위 책, 646~647쪽

... 인민을 주체교의 광신도로 만드려는 의지가 엿보이긴 하겠다.

이 책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은 아래 구절 한 군데서 볼 수 있다.

조선은 남북대화를 계속하면서도 안으로는 자체 내의 구조적 모순 해결은 외면한 채 수많은 정치범들을 구속하면서 남한에 대해 민주화개혁 요구 만을 되풀이하였고 급기야 버마 아웅산테러사건과 KAL기 폭파사건을 일으켜 스스로 모순되는 행동을 하였다. - 위 책 667쪽

그러나 앞에서 북한의 구조적 모순은 거론한 바가 없고, 정치범이 수많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이 유일한 비판의 경우에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양비론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한국은 7.7선언으로 조선을 동반자관계로 본다는 입장을 천명하는 등 통일논의의 불길을 가속화했으나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일련의 방북, 밀입국사태를 맞음으로써 공안정국을 야기하며, 정국을 회오리 속으로 몰아넣었다. - 위 책, 667~668쪽




[추가]
고준환은 위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환국은 캄차카 반도에서부터 중동지역까지 유라시아의 광대한 영역을 차지한 연합나라이며, 그 중심이 파미르 고원지역에서 비롯된 하나의 천하였다. - 위 책, 33쪽

고준환은 환단고기를 적극 지지하고 그에 의해서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이다.


덧글

  • 네리아리 2011/01/31 23:07 #

    여러모로 이런 것까지 유사역사학의 손길이...후덜덜
    ㄴ이건 논외인데, 10~20년 전만해도 이런거 올리면 초록불님은 그날로...(지하실을 쳐다본다.)
  • 초록불 2011/01/31 23:15 #

    아니, 제가 왜?
  • dunkbear 2011/02/01 08:17 #

    아시잖습니까... 자본론 서적만 가지고 있어도 체포되던 시절인데 단순
    하게 주체사상이나 북한 옹호론을 담은 글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얼
    마든 지 빨갱이로 몰렸을테니까요... ㅡ.ㅡ;;;
  • あさぎり 2011/01/31 23:08 #

    저런 주장을 책으로 펴내는 사람이나 얼씨구나 내놓는 출판사나... 민주주의 만만세입니다.
  • 초록불 2011/01/31 23:16 #

    이 책의 발간사를 읽어보면 유사역사학의 영향력에 대해서 뒷목을 부여잡게 됩니다.
  • 무상공여 2011/01/31 23:11 #

    "북한 민중들은 2.7 구국투쟁, 제주 4.3봉기를 통해 저항을..."

    제주도민이 북한 민중이면 당시의 민간인 피해들은 도대체 뭐가 되는 건지...
    말만 질러놓고 보면 그만이라는 걸까요. --;;
  • 초록불 2011/01/31 23:17 #

    무분별한 베껴쓰기의 폐해이리라 생각합니다.
  • rumic71 2011/02/01 02:19 #

    졸지에 4/3 사태 유혈진압을 정당화시켜주는 기술이로군요. (고도의 까였단 말인가!)
  • 누군가의친구 2011/01/31 23:30 #

    문뜩 뉴스밸리의 XX곡필이 떠올랐습니다.(...)

    PS: 그러고보니 올해 있을 이글루스 8주년 통계에서 뉴스밸리에 포스트를 가장 많이 쓴 사람 랭킹 1위를 XX원숭이와 XX곡필이 다툴것을 생각하면 안습입죠.ㄱ-
  • 초록불 2011/02/01 10:25 #

    이런 경향이 점차 심화되면서 극우민족주의와 종북이 결합하게 된 것 같습니다. 본래 유사역사가들이 반공을 들어 역사학자들을 공격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 네리아리 2011/01/31 23:32 #

    주체사상 같은건 금서목록이었지 않습니까 'ㅅ')~
    ㄴ왠지 모 애니메이션이 생각...(야!)
  • 초록불 2011/02/01 10:26 #

    저 책은 90년대 말에 나왔다가 2002년에 개정판이 나온 것인데 초판은 보지 못해서 당시에는 어떻게 기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체사상 원전은 금서였을지 모르겠지만 주체사상을 소개하는 책자는 여러가지 있었습니다.
  • 네비아찌 2011/01/31 23:43 #

    저런 책이 한국교육진흥재단 이름을 달고 나오다니 통탄스럽네요.
    저번 윤정모 작가 건도 그렇고, 극좌 쇼비니즘이라는 한국적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군요.
  • 초록불 2011/02/01 10:28 #

    책 발간 서문을 보면 죽음입니다...
  • DenisK 2011/01/31 23:4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1. 인민위원회의 한반도 전역에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 소련은 인민위원회의나 당시 반제국주의 세력의 성향에 따라

    그들을 인정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했다고 판단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3. 따라서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이에 따르는 반탁을 결정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미국과 이승만은 소련이 신탁 통치를 영구화하려 했다고 주장했으나

    소련측이 언론에 회의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일단락 되게 됩니다.

    4. 과연 동란의 시발점이 언제인가를 보건데, 1950년 6월 25일 새벽 6시를

    전쟁의 시작으로 볼 것인가 혹은 그 이전에 이미 한국의 수비대와 북한의

    수비대가 서로 큰 전투를 치루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은가? 혹은 더 앞서 나가

    제주 항쟁 이후로 남한 전 지역에서 인민위원회를 해체하려는 미군정과 이에

    저항하는 반제국주의 민중항쟁 세력간의 유혈 충돌을 의미하는 것인가는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정치나 이념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혹은 남한 즉,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따라 살펴봐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에 김구 주석의 말을 남기자면

    하나된 조국의 정부가 아니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조국의 통일된 정부를

    위해 이 몸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38선에 누워 몸이 베어도 상관없다. 현재의

    단독 선거로 탄생하는 정부가 맞다면 그렇다면 미군정은 과도정부란 뜻인가?

    그리고 당시 남한의 단독 선거를 민중이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무력으로

    시행하려 하고 이것으로 정권을 잡고 독재를 시작하고 많은 유혈사태를 일으킨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옹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6월 25일 새벽 6시 기습 남침이전에는 우리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상기해야 할 듯 합니다.
  • DenisK 2011/01/31 23:59 #

    당시 단독 선거 그리고 제헌 국회와 행정부의 친일 논쟁에 대해서 덧 붙이면

    첫째,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후 일본은 각지에 인민위원회와 여운형에게

    일본으로의 안전한 철수를 협상하고 그리고 권력기반으로 내주고 물러 나려고

    했습니다.

    둘째, 미국 즉 맥아더는 38선을 기준으로 북으로 소련 남으로 미국이 일본의

    행정을 접수하도록 협의하였고

    셋째, 미군은 일본 총독부에게 모든 것을 현상 유지키시고 미군에게 양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각지에 설립한 인민위원회를 무효화한 것이지요.

    넷째, 이 후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국은 신탁 통치를 소련은 단기 신탁 통치후

    인민에게 양도를 주장합니다.

    다섯째, 미국은 남한의 언론에 소련이 장기 신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 이에

    소련은 회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언론에서 서로의 진위 논쟁이 일어납니다.

    여섯째, 미국은 여론 약화를 우려하여 남한의 단독 선거를 통한 정부 수립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유엔에서 캐나다 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마저 한반도의 분열을 유도하고

    현재 대립을 키울 것이라는 반대를 받습니다.

    일곱째, 미국은 유엔의 감시를 통한 남한의 단독 선거를 치루려 합니다.

    여덟째, 많은 정당, 특히 민족주의 계열은 이 선거를 비토하기 합니다. 그리고

    선거장에 투표하러 가지 말자고 합니다. 그래서 선거 반대 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납니다.

    아홉째, 선거를 통한 정권 쟁취 대결이 아닌 선거를 하자 선거를 하지 말자로 국론이

    분열됩니다. 그래서 당연히 선거에 열심히 참여한 이승만 쪽 인사들이 대거 승리를 거둡니다.

    열번째, 이로 인한 흐름으로 이승만 정권의 정당성과 친일 논쟁에 불씨가 생긴 것이라고 봅니다.
  • 초록불 2011/02/01 10:29 #

    현대사에 대한 강의는 본인의 블로그에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무명병사 2011/02/01 00:33 #

    요즘 역사'책'에는 '기존의 역사를 비틀어야 제대로 된 사실이 나온다'가 유행인가 봅니다. 뒷면을 뒤집는다고 앞면이 될 수는 없는데 말입니다요 거 참-.-;;

    이중잣대가 압권이네요. ...폴란드 사람들을 탱크 궤도로 깔아뭉갠 건 대체 뭘까요? 저 분한테는 '평행세계'에서 일어난 일일까요;; 하기사 환단고기를 떠받드는 시점부터가 이미(저 사람 책으로 불을 때면 유독성 연기가 일어날 듯;;)...
  • 초록불 2011/02/01 10:29 #

    북에서 일어난 일은 다 그럴만한 이유와 정당성이 있는 것으로 줄기차게 써나가는 것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2/01 01:11 #

    켁...이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유사역사학에 달려드는군요. 켁!!
  • 초록불 2011/02/01 10:29 #

    저 사람은 이 계통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2/01 10:37 #

    유사역사학의 영향력이 정말 어마어마하군요. 흐음~~
  • 2011/02/01 01:2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1/02/01 10:30 #

    누구나 잘못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현재 그렇지 않은 것이 중요하지요.
  • peperota 2011/02/01 02:07 #

    그런데 맨 끝에
    "고준환은 환단고기를 적극 지지하고 그에 의해서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이다." 이건 왜 넣으셨습니까?
    님은 모든 사회악의 판별기준이 환단고기입니까?
    나이는 자실만큼 자신 것 같은데 너무 사고가 한쪽으로 집중적으로 편벽되게 형성되신 것 같아서 안타깝군요.
  • 초록불 2011/02/01 10:22 #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니 참 안타깝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다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져보도록 노력하기 바랍니다.
  • 존다리안 2011/02/01 09:25 #

    이런 걸 보면서 어찌 보면 제가 대학 시절 운동권과는 담을 쌓았던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초록불 2011/02/01 10:31 #

    뭐 저도 대학 시절에 주사파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혔습니다...
  • DenisK 2011/02/01 09:46 #

    일단 입증되지 않은 것을 역사라 이야기하는 것을 유사역사학이라고

    정의한다고 하여 환국을 이야기하는 것과 근현대사를 바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을 제대로 보는 것이 근현대사 역사의 기초가 될 듯 합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느 것의 기초에 서 있냐라는 질문에 답이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제주 항쟁에서 시작되어서 419로 마무리된 이승만 정권 퇴출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요.

  • 초록불 2011/02/01 10:23 #

    이 글은 이승만을 제대로 보든지 말든지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위에 무명병사님이 쓰신 것처럼 이중잣대에 대한 시각을 비판한 것입니다. 이승만만 비판하면 김일성은 찬양해도 되는 것입니까?
  • hyjoon 2011/02/01 09:47 #

    ㅅㄹㄱㅍ이 따로 없군요. ㅡㅡ;;;
  • 초록불 2011/02/01 10:31 #

    그런 사람들의 탄생 배경이라 할 수 있겠지요.
  • 2011/02/01 12:2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1/02/01 14:14 #

    그 말 자체가 고구려가 평양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무슨 반박이 필요한지요? 해당 구절은 <구당서>와 <신당서>에 나오는 것입니다.

    <구당서>에서는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내주(산동)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을 공격했다라고 되어 있고, 요하를 건너 요동성을 함락하고 안시성에 이르른 과정이 적혀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전황과관련하여 자세히 적혀 있는데, 왜 해당 구절은 설명하지 않고 전체 지리를 두루뭉수리로 이야기하는 저런 구절을 가지고 벅벅 우기는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당서>는 좀 더 자세해서 압록강을 설명한 뒤에 "평양은 압록의 동남쪽에 있다"라고 나옵니다. 대저 명백한 것을 한두마디 말의 억지 해석으로 우기는 것을 그 말에 얽매여 이야기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고려사에도 조선왕조실록 및 조선의 온갖 기록에도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라고 나오는데, 그런 명백한 근거들은 다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엉터리 상상을 가미해서 사서를 들고 나와 우기는 일에 일일이 맞대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 Rothschild 2011/02/01 17:46 #

    대륙평양설이아닌 고구려 밑에 바다가있으니 육지로이어진 한반도가아니라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잘몰라서 물어봅니다.
  • 초록불 2011/02/01 18:07 #

    저 말은 고구려에서 바다를 통해 백제로 왕래했다는 이야기인데, 중간 한강 유역을 신라가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랬나보다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방에게 논쟁 자체를 끌려다녀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런 외국인의 카더라 기록이 아니라 좀 더 분명한 기록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하기 위해 근구수를 보냈을 때 기병들이 움직인 기록. 백제가 중국과 왕래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가는 기록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충분히 풍부한 기록을 버리고 상대가 제시한 아젠다를 쫓아다니며 설명하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공주에서는 백제왕인 무령왕의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대체 이런 명백한 증거를 놓고 다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 들꽃향기 2011/02/01 12:43 #

    사실 고준환이 서술하는 저런 맥락은 저 역시 종종 들었던 운동권 괴담이기도 했죠. ㄷㄷ 그런데 그런 운동권 괴담에 미쳐서 '같은 민족'이라는 것에 주화입마한 사람들이 환단고기에 빠지는 것을 종종 봐왔지만, 그런 이들이 교육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충격이긴 합니다;;;
  • 초록불 2011/02/01 14:23 #

    1980년대 초반에 처음 평양 거리가 TV에 소개되었는데, 그때 받았던 충격들이 대단했습니다. 그얌말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평양에는 거지들만 득실댈 줄 알았기 때문이었죠.

    주체사상도 그렇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친구들이 있었던 거죠. 공산주의 사상에 유심론이라니! 라면서요. 어찌보면 다행이랄 수도 있는 것이 전 주사파가 들어오기 전에 주사 문건을 접할 기회가있었고, 이런 거지 같은 이야기가 다 있군이라고 웃어넘겨버렸기에 맹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11/02/01 14:24 #

    어라, 쓰다가 본론을 잊어버렸네요...^^

    정보는 무작정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 굔군 2011/02/01 14:35 #

    조금 뜬금없는 댓글이긴 한데, 북한 정권은 왜 평양을 수도로 정했을까요?
  • 초록불 2011/02/01 14:41 #

    서울을 수도로 정할 수 없으니까요...는 농담이고,

    38선이 그어진 상태에서는 개성도 남한 영역이니 수도로 삼을만한 곳은 평양 뿐이었지요.
  • Wizard King 2011/02/01 21:38 #

    사실 1972년까지는 북한 헌법에서도 서울을 수도로 규정했지요.
  • 강희대제 2011/02/01 20:47 #

    북한이 철저하게 친일파를 숙청했다라.. 해방이후 숙련기술자등에 한해서 그대로 방치했던 북한 아닌지.. 고준환 저양반 참..
  • 초록불 2011/02/01 22:16 #

    책을 다 옮길 수도 없어서 적당히 넘어갔지만 교묘한 악의적인 서술이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 Real 2011/02/01 21:16 #

    이글루스 역밸에서도 과거 남침유도론을 마치 정설로 밀리터리 문제와 결부하여 이야기하다가 쪽나신 분도 있는데..내참 세상에 그때 미국의 군비통제 상황이나 한국군의 군비통제 상황도 안보고 남침유도론을 이야기하는거보고 기겁을 하다 못해 자기책이 정설마냥 마치 님의 의견을 채용한것처럼 이야기한것만 생각해도 참..(그래놓고 거짓말 운운..) 저런 빨갱이가 없을려고요?

    분단이 되는한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정서상의 자극주의 그리고 반일감정이란 감성주의적인 현대사 언급의 남북한 비교는 계속 될 것입니다. 딱 봐도 나오잖아요? 북괴가 친일파 청산했다는 거짓말부터해서 마치 소련의 공산주의는 잘되게 도와줘서 북괴는 마치 독립운동가들의 좌익들이 성공적으로 나라를 일구었다는식의 저런 거짓말을 어떻게 하는지 정말 신기합니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 미군정이 마치 폭압을 하고 친일파를 기용한 것에 대해서의 문제를 자신들 친일파를 기반으로 삼았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한것을 봐도 웃기는 일이죠. 쟤들(민족문제연구소인가 나발인가 하는곳주장 포함해서요.) 친일파라는 반민족행위자 기준대로하면 도대체 당시 한반도에서 반민족행위자가 아닌 한국인이 어디있을가 싶습니다만..

    저 인간도 제발 통일뒤에 북괴판 슈타지 문서에 현지부역자로 명단에 있기를 바랍니다.(국가보안법 위반에 내란의 죄에.. 적어도 징역 10년..자격박탈될테니 말이죠.) 딱봐도 반일감정 악용해서 북괴선전하는게 딱 보이네요..(전형적인 우리민족끼리 논리를요.) 그리고 환국이라.. 이건 뭐 정치의 불한당인 친북좌파와 역사의 병X인 환단고기 옹호론이 결합하는건가요? 개인적으로 통일뒤에 북괴 체제하에 있던 주민들이 그리고 좌파들이 자신들의 4대 이념주의를 버리지 못한 것에서의 친북주장을 하기 위한 수작에서 이러한 두가지 형태의 역사이념과 정치이념이 결합된 막장 사회갈등을 일으킬까봐 참으로 우려스럽습니다.
  • 초록불 2011/02/01 22:17 #

    모든 것이 일제 탓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우리 사회에서 잘 먹히는 마타도어지요.
  • 초록불 2011/02/01 22:20 #

    친일에 대한 문제는, 독립과 인권이라는 두 가치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공간을 살아간 것을 가지고 친일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요. 친일파 인명사전은 친일기록사전이라고 불렀어야 마땅한데, 한 사람의 인생을 친일 행위가 있느냐, 없느냐만 가지고 재단하는 듯이 보이게 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 파랑나리 2011/02/21 11:04 #

    친일청산. 게시물에 인용된 한홍구는 친일파 중에서 악질은 처단하고 죄가 가벼운 사람은 용서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의 친일청산도 악질은 처단하고 죄가 가벼운 사람들은 탄백이라 하여 자신의 모든 죄악을 대중에게 그대로 자백하면 용서해주는 제도를 채택했죠. 대한민국은 불행하게도 처단해야 할 악질이 대한민국을 장악한 탓에 이제와서 친일문제가 불거지는 거고요.

    아참 그리고 대한민국의 첫 정부와 첫 국회에서 친일파가 거의 없었음을 증명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친일파는 주로 경찰,군인,관료에 똬리를 틀고 있었고, 처음부터 대한민국이 친일파의 손으로 세운건 아니고 나중에 친일파가 대한민국을 잡아먹어 민족세력들을 제거했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아웃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