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과 이하동서설 - 동북공정 (1) *..역........사..*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은 중국의 푸쓰녠(傅斯年·부사년 1896~1950)이 1934년에 내놓은 것이다. 푸쓰녠은 본래 실증사학을 하여 실증사학의 태두, 중국의 랑케라고 불리우고 있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역사학을 구국을 위한 학문으로 탈바꿈시켰다. 푸쓰녠은 1932년에 <동북사강>을 내놓았고, 바로 여기에서 동북공정의 단초를 읽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병호, <'東北工程' 前史 :傅斯年의 『東北史綱』 비판>, 동북아역사논총 제20호 (2008년 6월) pp.243-283 를 참고해 주기 바람)

이병호는 푸쓰녠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강한 어조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중국인의 시각에서 당시 위기에 처한 만주지역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이 책(<동북사강>)이야말로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적 사실들이 어떤 식으로 연구자의 주관에 따라 조작되고 곡해되는지를 극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 위 논문, 246쪽

당시 푸쓰녠은 일본 학자들의 "만주와 몽고는 중국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기 위해 위 책을 썼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만주"라는 용어를 버리고, "동북"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이런 경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단지 만주가 중국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본과 근원이 같다는 유사역사학 주장으로 발전한다. 사사키 야스고로(佐佐木安五郞 1872~1934)는 일몽동조론日蒙同祖論을 내놓았다. 만주사변의 실질적 기획자였던 이시하라[sic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 1889~1949)는 이런 주장들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정치의 목적에 영합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변 역사가들의 담론이 가지는 위험성을 목도하게 된다." (위 논문, 253~254쪽 참조. 인용 부분은 위 논문, 254쪽)

푸쓰녠은 청년 시절 5.4운동에 참여한 바 있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영국과 독일에서 근대 역사학을 공부하고 돌아왔지만 민족주의를 배격하고 자신의 지론인 실증사학을 하기에는 시대가 좋지 않았다.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 발발 직후 북경에 있던 부사년[sic]은 비분강개한 어조로 "(우리) 서생들은 어떻게 조국에 헌신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동료 지식인들에게 던졌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그를 위시한 연구소의 젊은 역사가들은 처음에는 중국통사를 저술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곧 만주지역에 대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보다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인식했고 바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이는 만주 지역이 본디 중국의 영토였음을 증명함으로써 구국을 위해 역사가들이 응당 가져야 할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 위 논문, 256쪽

살펴본 바와 같이 푸쓰녠은 중국을 위한, 중국의 역사를 주장한 학자였다. 그런데 이런 푸쓰녠을 스스로 애국이 넘쳐흐른다는 양반들이 칭송하기가 일쑤다.

<동북사강> 서문에 푸쓰녠이 쓴 글을 읽고도 "선생" 운운할 수 있을지 두고보고 싶다.

발해를 둘러싼 3면은 모두 중국문화 발상지이며, 요동 일대는 영원토록 중국의 군현이었으며, 백산과 흑수 일대는 오랫동안 중국의 번병이었다. (중략) 2천년의 역사를 볼 때, 동북이 중국이라는 사실은 강소성이나 복건성이 중국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위 논문, 258쪽에서 재인용

오늘도 역시 슬금슬금 들어와 이 글을 읽고 있을 유사역사학 신봉자, 아니 "부사년" 선생을 흠모하는 여러분은 이제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푸쓰녠은 위 책에서

만주 지역이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북중국과 공동의 기원과 기반을 가진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물론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선사시대부터 만주지역에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깔려 있다. - 위 논문, 260쪽

그러면 푸쓰녠이 주장한, 그래서 국내 유사역사가들이 좋아라 죽는 은과 동이의 문제 - 유사역사가들에게 있어서는 이 동이는 물론 우리 민족 - 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차회를 기대하시라.






덧글

  • hyjoon 2011/02/04 18:16 #

    차회 기대 중입니다. ㅎㅎㅎ
  • Allenait 2011/02/04 18:47 #

    저도 차회가 기대됩니다.
  • 2011/02/04 18:5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2/04 19:02 #

    부사년과 함께 서량지도 그들의 호프지요.ㅎㅎ 게다가 양계초의 글마저 견강부회하는 그분들을 어이해야 할까요.ㅠㅠ
  • Mr 스노우 2011/02/04 19:04 #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 Esperos 2011/02/04 19:44 #

    ctrl c+v와 정신승리 앞에서 당해낼 수 있는 것은 없긴 합니다만 (____)
  • hyjoon 2011/02/04 19:54 #

    그나마 그대로 베끼는 것도 아니고, 인용문도 자기들 입맛에 안 맞으면 멋대로 고칩니다. 군수님 이래로 이어지는 捏造詐學의 유구한 전통입니다. http://shaw.egloos.com/1702694
  • rumic71 2011/02/04 20:13 #

    사소한 것인데, 일본 내에서도 이시하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이시와라 칸지가 맞다고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1/02/04 20:22 #

    패전 후 동경재판에서 '일본을 국제정치질서의 위험한 수렁으로 몰고 간 장본인은 페리 제독'이라 주장하는 바람에, 재판정을 아연하게 했다는 일화가 있죠.ㅋ
  • NoLife 2011/02/06 15:08 #

    그동안 자연스럽게 石原 莞爾를 이시하라 칸지로 읽고 있었는데 히라가나를 보니 いしわら かんじ로 나오는군요...
  • 萬古獨龍 2011/02/04 20:14 #

    차회 기대하겠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1/02/04 20:24 #

    차회 기대하겠습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2/05 03:59 #

    차회는 충공깽일까요?
  • 無碍子 2011/02/05 16:37 #

    부사년과 서량지가 환국신민들의 스승이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초록불님의 블로그에서 부사년을 볼 줄이야.......

  • 방바닥 2011/02/05 17:59 #

    재미있는 상황이네요; 이에 대한 그 사람들의 반론도 보고 싶고요.
  • 초록불 2011/02/08 00:54 #

    반론이래야, 제 욕하는 것뿐일 겁니다.
  • 초록불 2011/02/08 01:03 #

    다음 편에 그 사람들의 반론(?) 캡춰해 놓았습니다...^^
  • 들꽃향기 2011/02/07 20:28 #

    말씀하신 일화, 즉 부사년 전집에서 동북사강이 빠졌다가 근래에 첨록된 것을 보고 한참을 웃곤 했었습니다. ㅎㅎㅎ
  • 파랑나리 2011/09/29 00:18 #

    부사년의 학설은 확실히 동북공정의 바탕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이것은 일본의 중국침략이라는 비상한 시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네요. 다시 말해 그 때에는 어쩔 수 없지만 중국이 오히려 일본을 외교적으로 굴복시키는 현재에는 맞지 않는 학설입니다. 그렇기에 당시에 어쩔 수 없이 내건 학설을 현재에 억지로 살려쓰는 동북공정은 현실감각을 상실한 어리석은 짓이고 부사년을 좇으면서 그가 조선에 이로운 주장을 했다는 유사역사학 신봉자는 조선의 참된 민족반역자입니다.

    덧. "이시하라"에 sic라고 하셨는데 이시하라(いしはら)는 石邍(원래 原은 근원을 뜻하고 여기서는 벌판을 뜻하므로 邍이 맞습니다.)의 역사적 표기이기 때문에 아주 틀렸다고 하기는 좀 그러지 않을까요?

    덧덧. 傅斯年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걸 sic라 한 것도 뭔가 의아합니다. 한자발음의 경우 북경어보다 한국에 원형이 더 보존되어 있다고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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