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과 이하동서설 - 동북공정 (2) *..역........사..*



푸쓰녠(傅斯年·부사년 1896~1950)이 1934년에 내놓고 국내 유사역사가들이 날 것으로 홀랑 먹어버린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이란 무엇인가?

이하동서설은 "중국 고대문명의 기원"이 단일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서 두 지역의 대치 관계였다는 주장이다. 동은 이夷 집단(상商=은殷)이, 서는 하夏 집단(주周)이 대립했다는 것이 이 가설의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유사역사가들은 저 동이, 즉 푸쓰녠이 은나라로 파악하고 있는 동이를 우리민족으로 간주한다. 그렇게 자기 멋대로 해석한 다음에 푸쓰녠마저 중국의 불리한 사실을 "용기있게" 밝힌 양심적인 역사학자라고 추앙하는 것이다. 뭐랄까, 반공주의자가 레닌의저작을 읽고 자본주의의 진리를 설파한 대혁명가라고 추앙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이에 대해서는 이유진(고려대)이 분명하게 이야기한 바 있다.

앞서 푸쓰녠이 말하고자 했던 이와 하의 투쟁 역시 비중국과 중국의 투쟁이 아닌, '중국' 안에서의 동서 대치였을 뿐이다. (중략) 동서가 대치하면서 서로 싸우고 멸한 것이 바로 중국의 삼대사三代史[삼대사란 하·은·주의 역사를 가리키는 용어 - 필자 주]라는 것이다. - 이유진, 누가 왜 예를 말하는가 : 동이의 예에 관한 중화주의 신화론 비판, <동북아 활쏘기 신화와 중화주의 신화론 비판>, 동북아역사재단, 2010, 240쪽

이하동서설은 이처럼 중국 안에서의 대립이기 때문에 푸쓰녠은 그 대립을 유방(서)과 항우(동)는 물론 조조(서)와 원소(동)의 대립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예전에 어떤 소설가가 조조를 동이족의 후계자로 그린 엉터리 소설을 내놓은 바 있는데, 푸쓰녠의 견해를 따르자면 서쪽을 대표하는 조조가 동쪽을 대표하는 인물로 둔갑한 셈이다. (그 소설가는 조조가 폄하되는 이유가 바로 그가 동이족의 후예이기 때문이라는 기상천외의 주장을 했다. 이런 식으로 역사 인물을 중화와 비중화로 나누는 방식은 장정일도 사용한바 있다.)

그런데 위에서 은과 동이를 동일하게 보는 것으로 이야기했는데 푸쓰녠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 또 차이가 있다고 한다.

부사년[sic]은 동이와 은을 동쪽 구역에 속한다고 하면서도 이 둘은 서로 다르다고 본다. 둘의 관계에 대해, 그는 왕국유王國維의 가설을 발전시켜 은집단은 본래 만주에서 발원해 산동지방에 있던 동이 제족을 정복했다고 주장한다. - 이병호, <'東北工程' 前史 :傅斯年의 『東北史綱』 비판>, 동북아역사논총 제20호 (2008년 6월), 262쪽

은나라가 환국이라면 유사역사가들의 이야기와 맞아 떨어질 수도 있다. 사실 과거 역사가 중에는 이런 식의 이동경로를 생각한 바 있었다.

이때 조선 사람은 큰 사날(세력)로써 밖으로 사방에 퍼져 북으로 흑수(흑룡강) 북쪽 5만여 리 땅에 비리, 양운, 구막한(구만한) 일군들의 나라를 열었다. 서쪽으로 중국 산동 반도로부터 그 이남 지역에는 예로부터 조선 사람의 들어간 자가 많았었는데 단기 12세기 중(BC13세기)에 그 내지로 들어가 회(회수)와 대(태산)의 사이를 차지하여 회(회이)와 서(서이) 양국으로 나뉘어 한족과 다투었다. - 권덕규, <조선유기략>, 1929년 초판, 우리역사연구재단, 2009 재발행, 39쪽

권덕규의 주장을 문정창이 발전시킨다.

농경과 유목을 겸행하는 단군조선인은 후빙기 최적기온 후 기온이 급강하는 연대부터 온난하고 기름진 땅을 찾았으며, 그 한 갈래는 한반도로 남하하고 다른 한 갈래는 요령 평원과 북지나로 향했다. - 문정창, <한국고대사>, 1971년 초판, 인간사 재발행, 1988, 46~47쪽

권덕규와는 달리 문정창은 이주 시기를 BC 21세기 경으로 보고 있다. 더 오랜 옛날로 올라가는 것은 이 계통의 특징 중 하나다. 여기서 살펴볼만한 재미있는 여흥이 있다. 은나라를 동이족의 동족 국가로 보는 이들은 기자를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자는 은나라의 현인으로 은이 멸망하자 도망하여 조선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인물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식민사가들은 기자를 부인했고, 기자의 역사를 없애버림으로써 한국사의 연대를 축소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기자도 부인했으니 단군 부인은 당연지사)

그런데 일본식민사가의 주장 중 "기자 부인설"은 유사역사가들의 입맛에도 맞는 것이었다. 중국 사람 기자가 조선 임금이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 그러나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라면 기자가 와서 안 될 이유도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유사역사가에게 본래 논리라는 게 없다.

문정창은 은나라를 동이족 국가로 보기는 하지만 고조선과는 대립 관계에 있던 적대적 국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기자조선을 부정하는데 논리적인 모순은 없다. 황제도 동이족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문정창은 기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김부식은 한인 사가들이 꾸며 내놓은 <기자조선>을 받아들여 "조선족의 국가는 자초지종 중국의 봉책을 받아 온 것이다." 하였다. 기자는 은나라 말엽의 현인으로 은이 망하자 곧 조선으로 달아났다. (중략) 주 무왕이 토멸한 은의 위치는 양자강 유역이었고, 이때 주의 세력은 겨우 산동반도 노魯에까지도 미치지 못하였으며 또한 이보다 800여년 후, 유사 이래 초유라 칭하는 한무제의 대세력도 요동반도 이동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기자가 간 곳은 하남서 언사偃師로부터 그리 멀지 아니한 고장일 것이요, 은의 수도로부터 5천여 리 떨어져 있는 한반도는 아니다. - 문정창, 위 책, 478쪽

문정창에게 큰 영향을 준 유사역사가 최동의 경우는 문정창보다 오히려 전향적이어서 은의 기자가 본국 조선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하고 다만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조선 내 기국의 자작이 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기자가 동도東渡하여 동이족의 본국 조선에 귀의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 최동, <조선상고민족사>, 동국문화사, 1966, 294쪽

이런 혼란상은 <실증 한단고기>와 같은 책에서도 반복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은나라뿐 아니라 그 이전 삼황오제가 모두 동이족에서 갈라져 나간 지류에 불과하다. - 이일봉, <실증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98, 166쪽

결국 걸왕이 조선과의 맹약을 어기고 또 다시 도움을 요청하자 걸왕의 무도함을 꾸짖고, 또 역대로 내려오던 상국(조선)과 신하국(하나라)과의 조약까지 파기하였으므로 걸왕을 징벌하고 탕왕을 인정하여 그로 하여금 중원의 백성(동이족)들을 도로써 다스리게 했던 것이다. - 이일봉, 위 책, 175쪽


본래 동이족이었던 나라가 동이족을 다스리고 있으니, 이것이 대체 중국 역사인지 한국 역사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이일봉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쓸개빠진 사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한국의 제도권 사학자들은 단군조선의 역사는 인정하려 하지 않으면서 반대로 중국인들이 조선에 와서 왕이 되어 다스렸다는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으니 실로 가소로운 일이다. - 이일봉, 위 책, 217쪽

그러니까 은나라는 동이족 국가이고 동이족을 다스렸지만 기자는 "중국인"인 것이다. (기자조선을 인정하는 국내 학자는 거의 없다는 것은 이 포스팅에서는 아예 논외로 한다.)

반면 푸쓰녠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은나라가 동북, 즉 만주 지방에서 건국해서 남하하여 동이족을 정복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멸망하게 되자 본국이 있었던 만주 지방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푸쓰녠의 주장은 이 정도에 멈추지 않는다.

부사년[sic]은 한사군 설치 이전에 이미 '중국어'를 사용하는 '중국인' 집단이 폭넓게 거주하고 있었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는 이 점에서 한무제의 군사활동을 오랫동안 '중국인의 터전'이었던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대한 중국 왕조의 중앙통제권 강화를 위한 시도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한무제의 위만조선 정벌은 한민족과 같은 동방 이민족과의 전쟁이라기보다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리던 중국인 통치 집단과의 싸움이었다. (중략) 부사년은 심지어 옛 고조선 지역의 군현제가 몇백 년간 지속될 수 있는 이유를 이땅에 오래전부터 살아온 한인漢人들 덕분이라고 보았다. - 이병호, 위 논문, 263쪽


푸쓰녠은 철저한 중화주의에 입각해서 자기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한족은 비한족 집단에 비해 월등한 문화수준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우월성이 이들을 주체로 한 거대한 정치조직을 만들 수 있게 했다고 본다. - 이병호, 위 논문, 263쪽

자, "부사년" 선생님을 추종하옵시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환국의 신민 여러분께서는 이제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시는지?

푸쓰녠은 중국인들이 만주로 들어가서 미개한 종족들을 "한화"시켜 주었다고 주장한다. 푸쓰녠에게는 중국인들은 오로지 선진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문화전달자들이었다. 푸쓰녠은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경우도 이미 한화된 종족으로 대대로 중국에 복종해오다가 단지 왕조교체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부분은 어떨까?

관구검의 고구려 원정을 통해 "중국인들은 고구려인에게 관개농법을 가르쳐주었고, 이 새로운 농업기술은 고구려에 번영의 시대를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성공의 기반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중략) 당고종에 의한 안동도호부 설치에 대해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 백제를 합병함으로써 한반도 전체와 만주는 완전히 중국의 통제에 놓이게 되었다"는 억지 주장을 펼친다. - 이병호, 위 논문, 269쪽

이런 엉터리 이야기들 때문에 푸쓰녠의 <동북사강>은 1980년대에는 전집에서 빠져버렸으나, 오늘날 동북공정의 영향 아래 다시 부활해서 2003년의 전집에는 포함되었다고 한다. <동북사강>이 나왔을 때 그야말로 진짜 양심적인 중국학자들은 이 책이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무풍림은 "부사년의 책은 불과 수십 쪽에 불과하지만, 그 누락과 오류는 지금까지 역사서적에서 발견된 어떠한 기록을 거의 돌파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 이병호, 위 논문, 276쪽

이런 비판 때문에 푸쓰녠은 기획되었던 나머지 <동북사강>의 발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학자의 논지를 가져다가 희희낙락하며 양심적인 학자 운운하는 유사역사가들은 대체 어찌된 노릇인가.

이병호는 이런 말로 논문을 마무리하는데, 나 역시 100% 공감을 표시한다.

마대정의 주도로 탄생했던 '동북공정'은 부사년이 이끌었던 <동북사강> 프로젝트의 실패를 그대로 밟아가고 있다. <동북사강>을 읽고 나서 "역사적 사실들과 인물들은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적으로, 두 번째는 희극적으로"라는 마르크스의 풍자가 문득 떠올랐던 것은 필자만이 가진 생각은 아닐 것이다. - 이병호, 위 논문, 280쪽




[사족]
이병호는 이 논문 작성의 계기를 이기동 교수가 주었다고 말한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이 죽어라 매도하는 식민사학자 수괴 중 한 분인 이기동 교수는 사실은 이처럼 동북공정에 맞서 싸우는 우리의 중요 학자라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참 씁쓸하다.






그리고 이 글을 본 "그들"의 반응~

덧글

  • 슈타인호프 2011/02/05 23:58 #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그나마 스스로가 내세운 주장을 뒤에서 부인하는 논리적 모순조차 깨닫지 못하는 주장은 정말 실소를 머금게 합니다-_-;;
  • 초록불 2011/02/06 01:03 #

    제가 이런 포스팅을 올릴 때마다 뭔가 희한한 정신승리가 나오던데, 이번에는 어떤 정신승리가 보일지...
  • 네리아리 2011/02/05 23:59 #

    주여...(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어떻게 태클을 걸어야 합니까...;ㅅ;
  • 초록불 2011/02/06 01:03 #

    웃어야 합니다...^^

    소문만복래~
  • Allenait 2011/02/06 00:04 #

    자기 스스로 자기 말을 부인하는 이런 코메디 같은 일이 있단 말입니까..
  • 초록불 2011/02/06 01:04 #

    담뱃대를 손에 쥐고 걸어가면서,

    "내 담뱃대 어디 갔지? 아, 여기 있구나! 내 담뱃대 어디 갔지? 아, 여기 있구나! 내 담뱃대..."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는 것 같습니다.
  • windxellos 2011/02/06 00:13 #

    전체의 문맥을 알지 못하여 결국 자기 손으로 자기 목을 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니,
    무분별한 단장취의의 결말이란 것이 대저 저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먼산)
  • 초록불 2011/02/06 01:05 #

    동북공정에 이용되는 글들을 얼마나 잘들 가져다 쓰는지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 파란바람 2011/02/06 00:14 #

    동이=한국으로 가르치는게 환빠들만이 아니죠
  • 초록불 2011/02/06 01:06 #

    사실 그런 착각은 일제강점기에는 광범위하게 있었지요.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모두 유사역사가의 탓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2/06 00:42 #

    문정창의 글에서 이 구절이 눈에 띄네요...

    "....주 무왕이 토멸한 은의 위치는 양자강 유역이었고......."

    은허 유적지는 황하 이북에서 발견된 게 아니었습니까... ㄷㄷㄷ 이거 뭐야.. 무서워..
  • 초록불 2011/02/06 01:07 #

    저도 "무서웠는데" 그걸 분석하려면 그건 그것대로 글이 길어져서 그냥 "무시"했습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2/06 01:13 #

    하지만 그들은 의심은 커녕 저 말을 믿지 않겠지요. 아마 안보여, 안들려 시전중일겁니다.
  • 초록불 2011/02/06 11:23 #

    신기한 일입니다.
  • 소하 2011/02/06 03:01 #

    부사년의 "이하동서설"은 채도와 흑도 때문에 한때 매력적으로 보이기는 했으나, 지금은 중국 자체 내에서 완전히 폐기된지 오래죠...ㅋ
  • 초록불 2011/02/06 11:24 #

    하지만 부사년의 "정신"은 계속 살아남아있는 듯합니다.
  • ghistory 2011/02/06 07:25 #

    이번 연재에서는 KOEI 삼국지 이미지들을 활용했다는 특징이 정말로 참신하고 재미있습니다.
  • 초록불 2011/02/06 11:24 #

    감사합니다.
  • 2011/02/06 09:3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hyjoon 2011/02/06 12:43 #

    적과 아군을 분간 못하는게 본래 그동네의 특징 아닙니까.
  • BlackNovelist 2011/02/06 15:02 #

    저 화면을 얻기 위해 설마 삼국지를 밤세 클리어?ㅋㅋ 근데 유사역사학자분들 참 논리도 거의 억지수준..
  • 초록불 2011/02/06 15:12 #

    그럴리가요. 요새 영걸전 하다가 잡아뒀던 화면입니다. 아직 제갈량 등장 전 캡처만 있다는...^^
  • luccifer 2011/02/06 16:02 #

    이렇게 좋은 연구성과가 있었는데 이것이 대중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게 참 아쉽기도 하지만 이렇게 초록불님처럼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는 분의 손을 거치면 바로바로 유사역사학의 백신으로 쓰일 수 있을 정도로 양질의 연구결과가 있다는것에 다행스러움도 느낍니다.
  • 초록불 2011/02/06 16:27 #

    그렇습니다. 제가 조금 더 부지런하면 좋은 논문들을 많이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게으른 게 문제지요...^^;;
  • luccifer 2011/02/07 11:33 #

    별 말씀을 ^^;;;
    바쁘신것 뻔히 아는데 이 이상 바라면 벌받죠 ^^;;;
  • Jes 2011/02/06 16:41 #

    진짜 저런 분들이 "식민사학자"라 매도당하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 초록불 2011/02/08 01:05 #

    소개를 한 저 역시...

    "그들"의 반응을 추가로 캡춰해 놓았습니다.
  • 싱클레어 2011/02/06 16:58 #

    요즘 트위터하면서 마주치게되는
    무수한 한민족참기름 일당에게 초록불님
    자료를 활용하고 있어 감사드릴 따름입니다...트위터 해보시면 깜짝 놀라실듯.
    무려 역사 라는 그룹명을 선점한게 환빠입니다 눈물이
    나는군요 그들의 글은 무차별로 리트윗되고 있지요
  • 초록불 2011/02/06 18:24 #

    많은 활용 부탁드립니다...^^
  • Mr 스노우 2011/02/06 20:11 #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군요. 전혀 자기들 편이 아닌 사람을 자기 편으로 오해하는 것 역시 저런 전통이 있었을줄이야...ㅋㅋㅋ
  • 원샷원킬 2011/02/07 14:58 #

    동이족 관련글에 조조와 원소가 나오는게 흥미롭네여,,,근데 원소는 동탁집권 후 도망치듯 동쪽으로 갔는데 동쪽인물?? 뭐 뭔들 맞겠습니까만 ㅎㅎ
  • 초록불 2011/02/07 16:07 #

    원소 본래 근거지인 기주를 동으로 간주한 건데, 어차피 억지 이야기죠.

    동이족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그냥 동과 서의 대립이라는 것이 이런 점에서도 증명됩니다.
  • 들꽃향기 2011/02/07 21:14 #

    적절한 원소님하의 짤방이군요. ㅎㅎ 말씀대로 마대강이 주도하는 동북공정은 부사년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촌극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패를 반복해가는 동북공정을 엄청나게 진행되는 것으로 간주하여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찾으려는 유사역사학자들 역시 촌극을 벌이고 있으니...(쓰읍)
  • 초록불 2011/02/08 00:54 #

    ^^
  • 2011/02/12 13:2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1/02/17 21:46 #

    댓글을 늦게 보았습니다.

    http://orumi.egloos.com/4538154

    에 포스팅했습니다.
  • 파랑나리 2011/02/17 17:28 #

    사이비역사에 빠진 놈들의 동족同族kill에 화가 납니다. 저것들을 다 갈아마시고 싶어져요. 어떻게 부사년 같이 중화제일주의에 빠져서 주변 민족을 미개인or복속민으로 꾸미는(요새는 동북공정하면서 夷狄도 中華라고 사기친다면서요? 이적에 맞서 중화를 지키던 공자 이래 중화의 지식인들이 후손들의 이 짓을 보면 뭐라 할까요?) 새퀴를 양심적인 학자, 동북공정에 맞서는 '우리편'을 식민사학자라고 "모함"을 하다니.... 이 놈들이 짜장 민족반역자입니다. 이것들에게 숙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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