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는 싫다. 그런데 그 작품은 좋다. 이런 괴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한다.
어느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과 그의 작품을 즐기는 것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지적으로 공평무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입장이 전혀 다른 작가의 장점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즐기는' 건 다른 문제다. 좋거나 나쁜 예술이란 게 있다고 한다면, 좋거나 나쁜 속성이 예술작품 자체에(그것도 보는 사람보다는 보는 사람의 기분과 전혀 무관하게)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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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즉, 즐거움이 견해차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한테 해로운 걸 즐기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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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어떤 책이 명백히 그릇된 인생관을 표방한다면 '좋은 책'이라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적어도 주제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 시대에 진정한 문학적 장점을 지닌 책은 어느 정도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이는 사실을 무시하는 말이다. 역사를 통틀어 지금과 같은 진보 대 반동의 투쟁은 언제나 있어왔으며, 어느 시대든 최고의 양서들은 항상 다양한 관점을(다른 것들에 비해 명백히 잘못된 관점들까지도) 반영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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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관점은 정신건강 차원의 온전함, 그리고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는 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이상으로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재능일 것이며, 그것은 확신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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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가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작가의 세계관이 온전함이라는 기준을 겨우 만족시키는 수준일지라도, 작가의 확신이 뒷받침해준다면 위대한 예술 작품을 충분히 낳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 조지 오웰, 정치 대 문학 :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 <나는 왜 쓰는가>, 이한중 역, 한겨레출판, 2010
덧글
음악은 너무 좋은데, 사람은 보기 싫은 뮤지션이 있어서 힘들 때가 있습니다.
작가분들끼리야 아실 수도 있겠지만 저같은 일반독자는 책으로만 접하는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겠군요.
참 뭐라 할 말이...
극중 세계관이나 작가가 은근히 강조하는 가치관은 절대로 납득할 수가 없는데, 소설의 재미나 감동, 그리고 그에 따른 몰입감은 아주 굉장하니까요.
심심할 때마다 또 읽고 또 읽고 하는 몇 안되는 소설인데 볼 때마다 '젠장, 이런 마초 파쇼 자식,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사람의 작품을 통해 스스로 만든 이미지를 그걸 만든 개인에게 투영해서 기대에 안맞는다고 뭐라그러는건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