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를 보고 있는 중.
잘 알려졌다시피 데즈카 오사무의 아톰 시리즈 중 <지상최대의 로봇>편을 새롭게 그린 것이다.
오늘 보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지상최대의 로봇>도 다시 봤다. 그 한 권짜리 만화를 이렇게 장편 만화로 재해석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재주에 감탄을 보낸다.
6권 후기에 이런 말이 붙어 있다. (평론가 야마다 고로라는 사람의 글)
철이 드는 동시에 이 명작(<지상최대의 로봇>)과 만나 아톰과 철인, 고질라와 울트라맨, 신칸센이나 아폴로 11호, 오 사다하루와 나가시마 시게루에 자이언트 바바와 안토니오 이노키, 학생운동과 우드스톡 등등에 가슴을 설레며 자란 우리들은 과학과 히어로와 혁명과 록을 가장 순수하게 믿었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은색 미래(오카다 토시오, 58년생)>의 개막이라 여겼던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와 함께 행복한 꿈은 종말을 고하고, 사춘기를 맞이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과학이 공해, 히어로가 유명인, 록이 비즈니스, 혁명이 테러로 전락해가는 현실. 동급생 중 대다수는 꿈에서 깨어나 어른이 되었고, 나머지는 현실에서 도피해 오타쿠가 되었다.
우리는 일본을 미워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다.
아톰이 처음 방영되었던 때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것은 거의 내 최초의 기억인 셈이다. 1970년. 만으로 아직 다섯 살이 되기 전이었으니...
그날 오후에 나는 숙모와 함께 어딘가를 다녀오던 중이었는데, 아톰이 방영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계속 숙모에게 시간을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처음 그려본 만화도 아톰에 나오는 캐릭터인 코주부 박사(오챠노미즈 박사)였다. (뭔가 더 그려보았을지 모르겠지만기억나는 최초의 만화는 그것이다.)
그런 아톰은 당연히 내 친구였고, 내 꿈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아톰과 마징가제트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철인 28호와 우주의 왕자 빠삐, 요술소녀 세리, 남자여자 원조인 사파이어 왕자, 타이거마스크에 서부소년 차돌이까지...
이 만화영화들(혹은 만화)을 상영했던, 그 결정을 내렸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생각이었을까? 일본 이름이 낯설기 때문에 그 모든 이름을 한국식으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미키마우스나 마이티마우스는 쥐돌이가 되지 않았을까? 톰과 제리는 왜 나비와 찍찍이가 되지 않았을까?
이미 마음속에 애정으로 자리잡은 대상이 마땅히 미워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서정주의 시를 사랑하게 된 문학소년이 그의 친일과 독재정권 아부 사실을 알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하다. 논리와 이성 이전의 무의식의 세계에 이 만화들은 자리를 잡아버렸기 때문에...
나는 불필요한 증오, 연좌제라고나 이야기할 수 있는 증오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어떤 문제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한다. 증오는 진실을 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플루토>의 주제도 증오다.)
나는 일본 인명을 읽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일본 만화의 인명을 우리나라 식으로 바꾼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히 어린이들의 이해를 위해 번안했다는 것을 밝혀주었어야 하지 않은가? 정체불명의 작사작곡가 마상원 같은 것을 만들어서도 안되는 것이고.
우리 세대는 어쩌면 일본의 동세대나 마찬가지로 데즈카 오사무의 아이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실체를 모른 채, 이두호, 이우정과 같은 가면 뒤로 데즈카 오사무를 만났다.
일본의 세대가 한 겹의 환상을 만났다면, 우리는 두 겹의 환상을 - 그리고 그 때문에 두 배의 환멸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잘 알려졌다시피 데즈카 오사무의 아톰 시리즈 중 <지상최대의 로봇>편을 새롭게 그린 것이다.
오늘 보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지상최대의 로봇>도 다시 봤다. 그 한 권짜리 만화를 이렇게 장편 만화로 재해석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재주에 감탄을 보낸다.
6권 후기에 이런 말이 붙어 있다. (평론가 야마다 고로라는 사람의 글)
철이 드는 동시에 이 명작(<지상최대의 로봇>)과 만나 아톰과 철인, 고질라와 울트라맨, 신칸센이나 아폴로 11호, 오 사다하루와 나가시마 시게루에 자이언트 바바와 안토니오 이노키, 학생운동과 우드스톡 등등에 가슴을 설레며 자란 우리들은 과학과 히어로와 혁명과 록을 가장 순수하게 믿었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은색 미래(오카다 토시오, 58년생)>의 개막이라 여겼던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와 함께 행복한 꿈은 종말을 고하고, 사춘기를 맞이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과학이 공해, 히어로가 유명인, 록이 비즈니스, 혁명이 테러로 전락해가는 현실. 동급생 중 대다수는 꿈에서 깨어나 어른이 되었고, 나머지는 현실에서 도피해 오타쿠가 되었다.
우리는 일본을 미워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다.
아톰이 처음 방영되었던 때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것은 거의 내 최초의 기억인 셈이다. 1970년. 만으로 아직 다섯 살이 되기 전이었으니...
그날 오후에 나는 숙모와 함께 어딘가를 다녀오던 중이었는데, 아톰이 방영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계속 숙모에게 시간을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처음 그려본 만화도 아톰에 나오는 캐릭터인 코주부 박사(오챠노미즈 박사)였다. (뭔가 더 그려보았을지 모르겠지만기억나는 최초의 만화는 그것이다.)
그런 아톰은 당연히 내 친구였고, 내 꿈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아톰과 마징가제트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철인 28호와 우주의 왕자 빠삐, 요술소녀 세리, 남자여자 원조인 사파이어 왕자, 타이거마스크에 서부소년 차돌이까지...
이 만화영화들(혹은 만화)을 상영했던, 그 결정을 내렸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생각이었을까? 일본 이름이 낯설기 때문에 그 모든 이름을 한국식으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미키마우스나 마이티마우스는 쥐돌이가 되지 않았을까? 톰과 제리는 왜 나비와 찍찍이가 되지 않았을까?
이미 마음속에 애정으로 자리잡은 대상이 마땅히 미워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서정주의 시를 사랑하게 된 문학소년이 그의 친일과 독재정권 아부 사실을 알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하다. 논리와 이성 이전의 무의식의 세계에 이 만화들은 자리를 잡아버렸기 때문에...
나는 불필요한 증오, 연좌제라고나 이야기할 수 있는 증오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어떤 문제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한다. 증오는 진실을 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플루토>의 주제도 증오다.)
나는 일본 인명을 읽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일본 만화의 인명을 우리나라 식으로 바꾼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히 어린이들의 이해를 위해 번안했다는 것을 밝혀주었어야 하지 않은가? 정체불명의 작사작곡가 마상원 같은 것을 만들어서도 안되는 것이고.
우리 세대는 어쩌면 일본의 동세대나 마찬가지로 데즈카 오사무의 아이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실체를 모른 채, 이두호, 이우정과 같은 가면 뒤로 데즈카 오사무를 만났다.
일본의 세대가 한 겹의 환상을 만났다면, 우리는 두 겹의 환상을 - 그리고 그 때문에 두 배의 환멸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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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미래에 적자와 서자의 운명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일본 어느 팀인가하고 친선 경기 했을 때 일본 사람들이 대노했었다는 후문. 확인은 좀 필요합니다만......
일본 만화계가 어떤 의미로는 거의 모두가 데즈카 오사무의 후진들인데, 왜 거장의 [과거에서 눈돌리지마라] [전쟁을 네 도구로 쓰지 마라] [그 시대 일본은 분명히 잘못했다]의 일갈에선 고개를 돌리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날드 덕과 미키 마우스는 이름이 바뀐 적이 없습니다...
2011/04/18 22:30 #
비공개 덧글입니다.애니 등장 인물의 이름을 바꾸는 건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고 전 세계 공통이라서 뭐라고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케이블이나 비디오 같은데서 일본 이름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그게 오히려 세계적으로 드문일입니다.(한국 말고 다른 예가 있다고 들은 일이 없습니다)
물론 하시고 싶은 얘기가 단순히 작중 이름 얘기가 아니라는 건 압니다만 한국은 그래도 나름 노력해왔고 많이 바뀐 거 같습니다. ^^
근데 이름 문제에서 또 중요한 한가지가 이름으로 작중 인물들 구별이 가야한다는 건데 일본 이름은 익숙하질 않아서 그게 안 되더군요. 그에 반해 영어식 이름은 바트와 호머 같은 이름도 구별이 간단 말이죠. 영어의 위력이 얼마나 엄청난가 하는 뜻도 되겠지만 하여간 작중 이름을 바꾸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수한 문화는 국적이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향받을것은 받고 (억지로 받을수도 피할수도 없는 '물'같은 존재가 문화죠), 배울건 배우면 되는거구요.
개인적으로 TBC의 사장과 더불어 망해버린 한국애니 시장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와 함께 애니등 문화에 대한 우리나라의'경직성'도...
모든 애니메이션-만화 관련 컨텐츠가 (인용등 재생산역시) 일본것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이 좀 답답할 따름입니다. 역량이 없다면 포기할텐데, 그것도 아니고 말이죠...
어린이 만화로 돌아가서, 모쪼록 한국의 많은 어린이들이 (진부한 표현이지만) 꿈과 희망을 가질수 있는 한국애니들이 많이 탄생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청소년/어른들도 희망을 가질수 있는 거대한 서사시같은 작품들도 좀 보고 싶습니다 (화이브 스타 스토리, 은하영웅전설등...). 우린 언제까지 질투와 같은 세속적인 내용으로 채워진 드라마와 오락프로만 보고 있어야하는건지..휴..
플루토는 만화책이 아니라 80년에 새로 만들어진 '신 우주소년 아톰' (KBS방영)에서 2부작인가 3부작으로 나왔던 걸 TV에서 봤었습니다. 친구들끼리 방영다음날 난리도 아니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계 7대로봇을 따라하는 놀이도 하고, 역대 아톰 에피소드중 최고라는둥 떠들어댔었던 기억이 ^^;).
플루토가 우라사와 나오키에 의해 다시 나왔을때, 그 '감격'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