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공산주의자 역사가의 이야기 *..역........사..*



나는 1954년부터 1968년까지 바르 연구에 매달려 있었고 1960년 말에 공산당을 떠났다. 공산당원이었던 나는 내 연구 결과를 마르크스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소개해야 한다는 도의적 의무를 느꼈다.

하지만 공산당을 떠나면서, 나는 내가 연구하고 있는 프로방스의 현실이 칼 마르크스의 발견과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이것은 이 영역에서 마르크스적인 해석을 좀 더 발전시켜야 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르크스주의가 지나치게 단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공산당이 틀렸다는 (정치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론적인 독단은 배척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차츰 자유민주주의를 향해 다시 기울면서 나는 학문적으로 절충주의와 경험주의를 쉽게 용납할 수 있게 되었다.

- 모리스 아귈롱 (프랑스 파리 1대학 현대사 교수) : 피에르 노라 엮음,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 이성엽 배성진 이창실 백영숙 역, 에코리브르, 2001, 53쪽


프랑스에서 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당은 그 세력을 크게 신장시켰는데, 그때 모리스 아귈롱도 공산당원이 되었다. 그는 그후 공산당을 벗어난 사람들을 네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범주 1 : 공산주의에서 정치의 진수를 기대했다가 공산주의에 실망하고 정치 전반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 정치 전반에 무관심하다.
범주 2 : 공산주의만이 유일하게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서 파시즘, 자본주의, 보수적 반동, 빈곤도 나쁠 수 있다는 점까지 망각한 사람들.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진 우파가 되었다.
범주 3 : 공산주의의 잘못된 점을 발견했지만 공산주의만이 잘못되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이들도 정치에 관여하고 있으며 좌파에 몸담고 있다. 모리스 아귈롱도 이 부류로 자신을 분류한다.
범주 4 : 공산주의가 잘못된 것은 스탈린 때부터이며 원칙적으로는 잘못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볼셰비즘을 지지하는 극좌파다.




대한민국에서 맑스를 읽게 된 것은 - 극소수의 비밀 조직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 1980년대 이후(그것도 1983년 이후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다. 그리고 그 짧은 팽창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사실상 끝장이 났어야 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1986년경부터 서서히 운동권을 잠식한 주체 사상이 이런 "역경"을 극복하고 세력을 확장하는 기현상이 있었다. 전체 운동권의 쇠락과 줄어든 몸체 안에서 극단적인 파벌이 헤게모니 장악에 성공했다고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상황이 프랑스와 비교한다면 전반적으로 어정쩡하긴 하지만, 모리스 아귈롱의 위와 같은 분류는 8~90년대 운동권들의 향후 분화에도 유용한 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추가]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범주 5가 필요할 것 같다. 본래 우리나라 운동권이란 공산주의 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자유주의 우파로 남은 사람들이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덧글

  • shaind 2011/04/19 21:54 #

    음모론적 관점에서라면, "다른 좌파세력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유지된 반면 주체사상은 북한의 지원공작으로 유지되었기 때문" 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렇게 극단적으로 보지는 않더라도 북한의 존재 자체가 주체사상의 한국 좌파내 득세에 강한 영향을 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 無碍子 2011/04/19 22:11 #

    소생 우견으로는 주체이즘은 막시즘과 다르다고 봅니다. 주체이즘은 파시즘을 능가하는 극우 사상으로 봅니다.
  • 萬古獨龍 2011/04/20 00:06 #

    볼셰비즘과도 다른 주체사상이니까요. 맑시즘하고는 이미 안드로메다와 지구사이 정도.
  • 에드워디안 2011/04/20 00:20 #

    유교+공산주의+천황제파시즘=주체이즘
  • smilesun 2011/04/20 00:52 #

    범주 2는 좌파에서 전향한 뉴라이트 일부. 범주 3는 대체로 시민운동에 많이 있고, 진보 정당에도 꽤나 있어 보이는 군요. 주체주의자들은 넓게 보면 범주 5되겠군요. 맑스 레닌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은 운운하면서요. 음, 맑스를 대중적으로 읽은 건 80년대 이후 되겠지만, 나이드신 분들 얘길 들어보니, 4.19, 6.3 세대들도 꽤 읽으셨더라구요. 비록 출판된 자본론 번역본 이런 건 없었더라도요. 사실 우리 나라에는 일제로부터의 독립이전부터, 지식인들 사이에 꽤나 공산주의 사상이 전달되었으니, 그 유통이 전쟁이후 무너졌다고 해도 완전히 소멸되기는 힘들었겠죠.
  • 초록불 2011/04/20 00:59 #

    제가 보기엔 주사파는 범주4입니다. 범주5는 기본적으로 우파라고 생각하거든요.
  • smilesun 2011/04/20 01:52 #

    아, 범주 4라고 쓴다는 것이 오타였습니다. 죄송~
  • 허안 2011/04/20 10:27 #

    유용한 분류같아요.
  • Cicero 2011/04/20 14:12 #

    범주4와 유사한 성향을 갖는 사람들은 어느 이념에서나 발견되는것 같습니다. "원래 우리 00의 순수한 형태는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XX가 망쳐놨다. 다시 순수함을 되찾자."는 식의 논의는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오죠. 넓게보자면 로마이전의 게르만부족공동체에서 통일 독일국가의 지향을 찾으려했던 독일통일운동, 파운딩 파더들의 순수한 이상을 자신들이 이어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티파티등도 여기에 속할수있겠죠.

    아,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은 주제에 중국에 사대적인 세력에 의해 환국이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는 유사역사학 맹신자들도 이부류에 집어넣을수 있을듯합니다.
  • 초록불 2011/04/20 19:57 #

    ^^
  • 누군가의친구 2011/04/20 20:23 #

    공산주의의 한계는 소련의 붕괴로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레이건 행정부의 군비증강에 맞추어 증강한 것과 소련-아프간 전쟁이 소련 붕괴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는 하나 이미 그 이전부터 한계가 있었지 말입니다.
    물론 공산주의가 끼친 영향은 무시할수 없고 마르크스가 경제사학에 끼친 긍정적 영향을 무시할수 없습니다만, 그 부정적 결과 역시 무시할수는 없지요.
    공산주의를 학문으로써 연구, 탐구하는건 경제 연구에서 반대할수는 없으나 그것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은 18세기에 만든 옷을 21세기에 입히려는 낡은 사고 방식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 초록불 2011/04/20 20:26 #

    저 책에는 말씀하신 부분의 내용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이므로 한 번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4/20 20:53 #

    그런데 불행이도 학교 도서관에는 없더군요. 어헣헣...ㄱ-
  • 초록불 2011/04/20 21:33 #

    공산주의 붕괴 이야기는 아니고...

    자신이 연구한 분야가 맑스의 견해와 정면충돌하면서 경제학자로서의 맑스, 또는 대략적인 선만 그어놓은(언급만 한 정도라는) 역사 연구분야의 공산주의자들은 겪지 않은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한 대목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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