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역사소설 *..문........화..*



역사 내러티브에서 가장 맑은 진주는 종종 소설에서 발견되는데, 소설은 오랫동안 역사 이해의 주요한 구성요소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공식적인 역사보다 월터 스콧에서 진 플레이디에 이르기까지 역사 소설을 통해 이해한다. - 데이비드 로웬덜,<과거는 낯선 나라다>, 김종원·한명숙 옮김, 개마고원, 2006년 505쪽

위 구절에서 제일 흥미를 끈 것은 진 플레이디...이다. 월터 스콧은 많이들 이름은 들어보았을(^^) <아이반호>의 지은이다. 하지만 진 플레이디는 누굴까? 들어보신 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영국의 로맨스 작가로 살아생전 1억 권 이상의 책을 판매했다. 그러나 국내에 번역본이 나온 적이 없는 걸로 안다. 영국 여왕 시리즈를 비롯해 역사 로맨스 소설이 엄청 많다.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도 첫 장을 펼치면 "로맨스"라고 적혀 있다. 역사물과 로맨스는 이처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게 이번 글의 핵심은 아니니까 이 정도 언급만 하고 넘어간다.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허구를 소설 속에 삽입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과거를 느끼고 아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그 목적 자체는 역사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역사가들은 기억과 비교하는 것보다 소설과 유사점을 찾는 것을 훨씬 더 불쾌하게 여긴다. 그들의 혐오는 앞에서 보았듯이 자신들의 내러티브에서 '허구적' 수사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크다. 역사가들은 이야기 전달자로서 소설가와 닮았지만 자신을 학자로 구별하려 하면서, 역사는 과거의 사실에 철저하며 다른 관찰자의 면밀한 조사에 열려 있지만 소설은 이 두 가지 제한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위 책, 505~506쪽

위 이야기는 매우 일반적인 상식에 속할 것이다. 물론 전근대 시대에는 이런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별과 혐오 모두 최근의 일이다. 예전에는 역사와 소설은 종종 하나가 되거나 상호 보완적인 통찰력을 주고받았다. (중략) 허구적 내러티브로부터 역사적 내러티브의 분리는 역사 자료의 타당성과 정확성에 대한 르네상스 후기의 관심의 부산물이었다. 고대와 중세의 서사시에서는 융합되어 있던 두 장르가 점차 '역사'(다른 자료를 통한 정밀한 조사에 노출되어 있는 실제 사건들)와 (역사적 충실함을 전혀 가장하지 않는) '시'나 '로맨스'로 분리되었다. - 위 책, 506쪽

이렇게 해서 역사는 무미건조해졌다. 반면 소설은 그런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더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월터 스콧은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과거에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역사 그 자체를 엄청나게 인기 있게 만들었다. 토머스 칼라일이 증언했듯이, 스콧은 "지나간 시대는 의정서, 공문서, 논쟁, 그리고 추상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는 안색을 가지고 식욕을 지닌 살아있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고 가르쳤다. - 위 책, 507쪽

로웬덜은 역사가와 소설가가 각기 상대의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설은 역사를 비판하면서 역사에서 쓸모 있는 부분을 빼내어 이용한다. 역사는 소설의 자격을 훼손하면서 소설의 통찰력과 기법을 채택한다. - 위 책, 513쪽

하지만 그 이상의 차이도 가지고 있다.

(역사가의) 기술적인 방침은 자신의 결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고의적으로 만들어내거나 배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자신을 역사가라 칭하고 자신의 작품을 역사라고 부르면서, 역사가는 역사가 정확성, 내적 일관성, 남아있는 기록과 일치함으로 평가되길 원한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인물을 만들어내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특성이나 사건을 실재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모순되는 특성을 무시하지 않는데, 공적인 기록에 접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고안물들을 숨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발각되었을 때에 그것을 정당화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 위 책, 516쪽 (매끄럽지 않은 번역을 조금 손보았음)

소설가는 이와 다르다.

역사소설가는 과거에 실재한 사람을 위해 인물과 사건 혹은 상상의 사고와 행동을 고안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가들이 기꺼이 수용하는 제약을 소설가들은 견디지 못한다. - 위 책, 516쪽

이 책에서는 과거를 보는 방법의 하나로 "역사 소설"의 유용성과 영향력을 이야기한다. 그 안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큰 효용이 있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

덧글

  • 하늘타리 2011/05/24 04:32 #

    와 재밌는 책이군요. 소개 감사합니다. 나중에 찾아봐야겠어요.
  • 한도사 2011/05/24 11:02 #

    월터 스코트의 '아이반호'와 '십자군의 기사'는 원전을 영어로 읽는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번역해 놓으면 그 느낌이 안 살던데요...
  • 파랑나리 2011/05/26 23:51 #

    그래서 주인장이 역사학을 배우고 소설을 쓰시는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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