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역........사..*



삼학년 이학기 때의 일이다.

어느날 오후, 안과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오려고 하는데 누군가 나를 붙들었다. 내 친구 상규였다. 상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일 저녁에 중대한 일을 의논해야 하니 남운 식당으로 오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기로 약속하고 무엇을 논의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상규는 나를 한쪽 옆으로 데리고 가더니 거의 속삭이다시피 하면서 우리나라 대학생 여러 명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협의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조선 민족은 곧 일본의 부당한 정책에 맞서 일종의 시위를 벌일 것이며, 모든 조선 학생들은 시위에 가담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선 우리 학교의 몇몇 믿을만 한 조선 학생들에게 우리도 시위에 합류해야 하는지를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중략)

"우리가 가담한 사실이 당국에 발각되면 처벌받는다는 거, 너도 염두에 두고 있니?"
"물론이지."
"정부의 지배를 직접적으로 받는 학교에 다니니까 더욱더 그렇겠지. 우리는 고마운 마음에서라도 정치적 시위에는 참여하면 안 된다는 거지."

가장 큰 문제는 이제 우리가 가담할 것인가 아니면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학교 측에서는 예상 외로 우리에게 아무런 의무도 지우지 않고 우리를 수준 높은 학문으로 이끌어주었다. 우리는 그런 학교가 고마웠다. 학교에서는 또한 우리에게 명소나 구경거리가 있으면 하나도 빠짐없이 국비로 구경시켜주었고, 저명한 학자들과 성직자들과 정치가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중략)

상규는 우리에게 시위는 이미 상당 부분 준비된 상태이고, 국립 대학 학생들만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반왜놈'이라고 하면서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두 잔뜩 긴장한 채 상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모두 시위에 참가하는데 찬성했다.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시위를 일으켰는지, 시위대는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또 시위를 함으로써 일본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사람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래도 학생들은 모두 참가하고 싶어했다.

(중략)

마침내 그는 중요한 소식을 가져왔다. 첫 시위가 삼월 초하루, 오후 두 시에 이른바 파고다 공원이라고 하는 곳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 날은 화창하고 따뜻한 무척이나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중략)

정각 오후 두 시에 내가 공원에 갔을 때, 공원은 이미 순경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그 작은 공원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몰려들었는지 나는 열 발자국도 채 걸을 수 없었다. (중략) 갑자기 적막감이 감돌더니 누군가가 팔각정 앞에 설치된 연단에서 조선 민족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게 보였다. 나는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서 내용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 침묵이 흐르더니 '만세'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만세 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되었다. 그 작은 공원이 흔들렸다. 쾅 하고 폭발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중략) - 참고 : 이제 나는 죽었다 [클릭]

"드디어 해냈어!"

몇몇 사람들이 외쳤다.

"그래, 우리 대학생들이 해냈어! 우리 청년들이!"

다른 몇몇 사람들도 소리를 질렀다. 여자들은 울고, 부르르 떨고, 우리에게 마실 것과 먹을 것을 건넸다.

-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1946), 이옥용 역, 보물창고, 2009, 189~194






이미륵은 해주 출신으로 경성 의학 전문학교 학생이었습니다. 3.1운동 가담으로 수배되었고 중국을 거쳐 독일로 떠나게 되지요.



행동하는 사람들만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덧글

  • 사과향기 2011/06/12 16:39 #

    마지막에 "행동하는 사람들만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라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굔군 2011/06/13 04:06 #

    이 분 얼마 전에 "초록불 님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은 보기 싫고 역겹다"라면서 깽판 치시던 분 아닌가요? ㅡㅡ;;
  • 사과향기 2011/06/13 06:12 #

    음? 확실히 초록불님께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고, 다른 분들에게 미칠 영향등을 생각해서 불필요한 논쟁은 자제하셨으면 하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전 중립적 입장에서 드린 말씀인데 뭐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뭐. 그렇습니다.
  • 굔군 2011/06/13 07:55 #

    아, 그러셔요? 푸훕.

    불필요하고 아니고는 논쟁 당사자나 관전하는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때 분명히 "역사밸리에 이런 글들이 자꾸 올라오는 게 보기 싫어서"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자기가 보기에 불쾌하니까 그만 두라는 말인데, 참 "중립적"이기도 하군요. ㅡㅡ;;

    그렇게도 보기 싫다던 초록불 님의 블로그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계속 댓글을 다시는 행태가 참으로 의아하고 보기 역겨워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사과향기 2011/06/13 08:56 #

    글쎄요. 굔군님께서 말씀하시는걸 보면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하실 얘기 있으시면 제가 방명록을 열어놓겠습니다.
    거기에 해주시면 솔직한 답변드리겠습니다.

  • 굔군 2011/06/13 09:52 #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어차피 답 안 나오는 병림픽이 될듯하니, 굳이 님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군요.
    죄송하지만 방명록에 댓글을 다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공연히 남의 블로그에서 분란만 일으키는 것 같으니, 토론은 이쯤에서 접도록 하지요.
  • Ya펭귄 2011/06/12 17:50 #

    음... 트랙백 하나 걸겠습니다... 마지막 한 문장은 좀 상세화가 필요할 듯 싶어서리....^^

  • 나아가는자 2011/06/14 00:25 #

    1. 제 둘도 없는 친구의 이름이 상규라서... 그런데 그 녀석이 좀 쉬크한 녀석이라 좀 웃음이 나왔습니다.

    2. 예전에 교과서에서 봤던 인용문은 시체해부할때 향을 피우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 였는데, 3.1운동 이야기가 나오다니 흥미진진하네요. 그리고 경성 의학 전문학교라고 설명해주지 않으셨으면 헷갈릴뻔 했습니다. 사실 일제시대 말 그대로의 '국립(?) 대학'이라면 경성 제국대학밖에 없을 텐데 시기적으로 안맞았으니까요. 그나저나 경성 의학 전문학교가 '반왜놈'으로 생각되어졌다는 것도 특이하네요.
  • 초록불 2011/06/14 00:29 #

    2. 부분은 별로 논지에 중요하지 않아서 뺐고, 분량 상 경성 의학전문학교에 가기 위해 노력한 부분의 이야기도 뺐습니다. 거기 들어가는 게 장난이 아니었던 것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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