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트는 도련님 *..문........화..*



힌트는 도련님 - 10점
백가흠 지음/문학과지성사


지난 포스팅에 올렸던 글은 백가흠의 <힌트는 도련님>에 나온 글이다. 표제작이다.

백가흠의 소설집은 두 번째이다. <조대리의 트렁크>를 읽었고, 첫번째 소설집인 <귀뚜라미가 온다>는 보지 않았다. 막 보려던 참에 개정판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고, 개정판 기다리다가 깜빡 놓쳤다. 그런데 그 사이에 세번째(맞겠지?) 소설집인 <힌트는 도련님>이 나온 것이다.

<조대리의 트렁크>는 읽다보면, 마지막에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가 나온다. 표제작인 <조대리의 트렁크>도 그렇다. 그렇게 대책없이 착해서 뭘 어쩌라는 거냐?

동이 트기 무섭게 남자는 짐을 꾸렸다. 3년 동안 사들인 명품들이 가방 가득이었다. 남자는 문을 나서다 말고, 들고 있던 가방을 거실로멀리 던져버렸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자는 숙소를 나섰다. - <그런, 근원> 67쪽

이런 대목도 그렇다. 그야말로 "소설적"이다. 20대에 이런 글을 보았으면, 멋진 놈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대책없는 놈이라는 말이 나온다. 좀 슬프군...

소설집의 첫 작품인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는 매우 재미있었다. 다 읽고나면 참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쓰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미덕이다. 인간의 무심한 악의와 인간의 뻔한 선의. 그 두 줄기가 엮여나가는 모습은 당연히다음 단편을 기대하게 해주었다.

두번째 소설이 <그런, 근원>. 백가흠 소설답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데 세번째 소설이 또 의외였다.

<그래서>. 제목부터 "그래서 어쩌라고"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런 말이 들어있다.

그는 죽었다. 자신의 재능 없음을 비관하며 자살을 한 모양이었다. 책 뒤표지에 누군가 헌사를 바치며 내막을 적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죽었다고 했던 작가가 책에 사인을 해서 노인에게 보낸 것이었다. 노인이 받았던 책에는 반듯반듯한 글씨로 "'그래서'입니다 - 백"이라고 적혀 있었다. - <그래서>, 91쪽

그래서, 라는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_-;;

여기까지 재미있게 읽어왔는데 표제작인 <힌트는 도련님>에서 딱 걸려버렸다.

이 소설은 아마도 글쓰기에 쩔쩔 매는 문학지망생들이 읽으면 무릎을 치며 감탄할만한 글이다. 그런데 모두에게 그렇게 느껴질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소설가라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집에는 이런 식으로 글쓰기에 관련된 작품이 몇 가지 있다. 앞서 말한 <그래서>도 그렇고, <힌트는 도련님>도,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P>도 그렇다.

특히 <P>는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소설 안에 있는데, 그게 사실이건 사실이지 않건 이 소설집 안에서 제일 완성도가 떨어지는 소설이었다. 그 소설에는 두가지 시간과 세가지 사건이 섞여 있는데, 그다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때로 본격문학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기본적인 형식은 추리소설과 같은데, 다른 점은 추리소설은 소설 말미에 작가가 탐정으로 등장해서 모든 설명을 해주는데 반해, 본격문학은 책 말미에 평론가가 탐정처럼 등장해서 자기가 아는 이야기만 대충 해준다는 점이다.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나 <통>은 재미있다. 특히 <통>이 재미있다. 고엽제 피해자를 다루는 이 소설은 시종 일관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은 의문이 잠시 들긴했지만...

<쁘이거나 쯔이거나>는 좋은 소설이다. 좋은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다. 하지만 작가가 주인공에게 연민을 가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같은 주제로 아마도 나는 열 배는 더 주인공을 비극으로 빠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이 좀 아쉽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이 소설은 정말 걸작으로 남았을 것인데.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겠다. 내가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뜻은 아니고, 이 소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 이건 매우 간극이 큰 이야기인데, 자칫 내가 백가흠보다 더 잘 쓴다는 뜻으로 읽힌다면 대략 낭패... 혹시 그렇게 읽은 분이 있을까 싶어 덧붙여 놓는다.)

전반적으로 근래에 읽은 국내 소설 중 제일 재미있었다. 다만 작가가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하긴 어쩌면 나 역시 나를 팔까 싶어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백가흠이 스릴러를 한 번 써봤으면 좋겠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덧글

  • 2011/07/22 23:2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7/23 00:5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1/07/23 03:05 #

    앗,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얼른 수정을...
  • catnip 2011/07/23 19:13 #

    음..세상은 넓고 읽을 것들은 갈수록 많아지는데 뇌용량은 점점 줄어들고......ㅠㅠ
    독서를 제대로 한지 몇달은 된듯한데 여전히 재밌는 책, 괜찮은 책에 대한 소개는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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