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침공 당군의 보급 문제 외 *..역........사..*



1.
<자치통감>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유인궤가 청주자사일 때의 일입니다.

마침 백제를 토벌하게 되자 유인궤는 바다에 배를 띄워서 군량을 운반하게 되었는데, 그때에 아직 갈 수가 없었지만 이의부가 그를 독촉하자 바람을 만나서 배를 잃고 정부丁夫 가운데 빠져 죽은 사람이 아주 많았으므로 감찰어사 원이식에게 명하여 그를 국문하게 하였다. - 자치통감 21, 권중달 역, 422~423쪽

이 내용은 해당 연도에 있지 않고 666년조에 유인궤가 우상의 지위에 올라서 그때 자신을 조사했던 원이식을 용서하는 훈훈한 장면에서 회상씬으로 나옵니다.

이 대목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당군에게는 본래 보급부대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소정방이 덕물도에서 오랜 시간 지체했던 이유는 보급부대가 늦었기 때문일 듯합니다. 즉 유인궤가 준비하던 보급선이 전복되었기 때문이죠. 유인궤는 이 일로 삭탈관직되어 다음 해(661년) 백제 정벌에 백의종군하게 됩니다.

2.
소정방이 백강구에 도착했을 때 일은 이렇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자치통감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소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성산(산동 지방)에서부터 바다를 건너니, 백제는 웅진강 입구를 점거하고 이를 막았다. 소정방이 진격하여 그들을 깨뜨리니 백제의 죽은 사람이 수천 명이고 나머지는 무너져서 달아났다. 소장방은 바다와 육지로 일제히 나아가서 곧바로 그들의 도성으로 나아갔다. - 위 책, 373~374쪽

웅진강 입구를 점거하고 이를 막았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렇다면 성충과 흥수의 조언이 먹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애초에 그렇게 했다면 의자왕의 탄식 - 성충의 말을 따르지 않아 이에 이르렀도다 - 이 이상하게 보이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성충의 조언을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충은 "왕이 궁인들과 더불어 주색에 빠져 마음껏 즐기고 술을 마시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그것을 간하다가투옥되고 죽음에 이르렀던 인물입니다. 의자왕의 탄식은 성충의 총성된 간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일 수 있습니다. 전쟁 상황의 전술 이외에 말이지요.

백제본기를 보면 "당나라와 신라의 군사가 이미 백강과 탄현을 지났다는 말을 듣고" 계백을 출전시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탄현을 지키지 못한 것은 아주 분명한데, 백강구에서 싸운 듯한 이야기는 대체 무엇일까요?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이날 소정방과 부총관 김인문은 기벌포에 이르러 백제 군사를 만나서 마주 싸워 이를 크게 부수었다. -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조

"기벌포"라는 지명이 낯익지요? 성충의 조언을 여기서 한 번 보지요.

만약 다른 나라의 군사가 온다면 육로로는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의 언덕岸을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며, 험한 곳에 웅거하여 적병을 막아야만 할 것입니다. - 백제본기, 의자왕 16년조

기벌포의 언덕. 백제는 이곳을 지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를 빼앗기고 말죠. 이 부분을 봅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해당 내용이 이렇게 나옵니다.

이때에 백제군은 군사를 합하여 웅진의 어귀를 막고 강가에 군사를 둔쳤으나 소정방이 왼쪽 강가로 나아가서 산을 타고 진을 쳐서 싸우니 우리군사가 크게 패했다. 당나라 군사는 조수를 이용하여 많은 배들이 서로 잇달아 나아가며 북을 치고 고함을 질렀다. - 백제본기, 의자왕 20년조

소정방이 탔다는 산이 바로 기벌포의 언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 그럼 백제군은 백강 입구를 지킨 것일까요, 지키지 못한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한 중요한 자료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중)에 있습니다.

장군 소정방과 김인문 등은 바닷길을 따라 기벌포로 들어왔는데, 바닷가가 질어서 빠지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백제의 대신들이 말하던, "당나라 군사로 하여금 백강에 들어와서 강류를 따라 내려오되 배를 나란히 타고 오지 못하게 하고"에 해당하는 사항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백전노장인 소정방은 이 상황을 단숨에 돌파합니다. (cf. 백전노장인 이유를 보려면... 노인의 전쟁 [클릭])

이에 버들자리柳席를 펴서 군사를 행진하게 했다.

갯벌에 버드나무로 짠 자리를 펼쳐서 갯벌을 순식간에 장악해 버린 것입니다. 소정방은 군사를 신속하게 이동시켜 기벌포 언덕을 장악했고 백강변에 늘어선 백제군을 쓸어버리며 전진했습니다. 이것이 백강구 전투의 모습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백제군은 당군이 백강으로 진입한 뒤에 갯벌을 이용해서 당군을 막고자 했으나 소정방은 그 전술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전략적 요충지인 기벌포 언덕을 손쉽게 빼앗았던 것이지요.

3.
그럼 신라군은 황산벌 전투 후에 백강구로 가서 당군과 합류했을까 하는 문제를 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위에서 소개한 자치통감 내용의 다음 구절을 보지요.

아직 다다르기에 20여 리가 못 미친 지점에서 백제는 나라를 기울여서 와서 싸웠지만 그들을 대파하고 1만여 명을 죽이고 도망하는 사람을 뒤좇아가서 그 성곽으로 들어갔다. - 자치통감21, 권중달 역, 374쪽

소정방의 당군은 두 번의 전투를 치른 것이 분명합니다. 백강 입구에서 한 번 싸웠고(상륙작전), 백제가 총력을 기울여 보낸 군사와 또 싸웠습니다.

두번째 전투는 신라군과 합류한 다음에 일어난 일일까요? 아니면 당군이 독자적으로 수행한 일일까요?

시기상으로나 신라본기의 향후 내용을 보거나 두번째 전투는 신라군과 합류한 다음에 일어났어야 합니다. 신라본기를 조금 더 보겠습니다.

7월 12일에 당나라 군사와 신라군사가 의자왕의 서울을 에워싸려고 소부리벌로 나아갔다. 그러나 소정방이 꺼리는 바가 있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므로 김유신이 이를 달래어 두 나라 군사가 용감히 싸워 사면에서 함께 사기를 떨쳤다. -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조

백제 본기에도 이렇게 나옵니다.

소정방은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바로 그 도성으로 쳐들어가서 30리쯤 되는 곳에서 머물렀다. 우리 군사는 있는 무리를 다 모아 대항했으나 패하여 만여 명이 죽었다. - 백제본기, 의자왕 20년조

위 구절은 위에 소개한 백강 전투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소정방은 백강 전투 승리 후에 진군하다가 도성 30리 지점에서 멈췄고 이 다음날 신라군과 만났던 것 같습니다. 합류일에서 하루 늦은 날이죠.

그것도 오전이 아니라 오후에 만난 것이 분명합니다. 7월 10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11일날 만났고, 그날 진군할 수 없는 시간이었기에 12일날 진군한 것이죠.

의자왕은 13일날 도망쳐버립니다.




P.S.
이 포스팅을 보면 비로그인들 중에 나를 물고 늘어지며 비방을 할 인간이 있다는데 붕어빵 하나 걸 수 있습니다...^^;;

핑백

덧글

  • Real 2011/08/17 23:19 #

    사서문제야 역사지식전공이 아닌 입장에서 제 포스팅 불안하긴 했는데 확실하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는 의자왕이 도망갔다기보다는.. 작전상 후퇴라고 보는게 타당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구당서의 나당연합군의 고립에 의한 문제등을 고려해봐도 그렇구요.
  • 초록불 2011/08/17 23:22 #

    의자왕이 웅진성으로 달아난 것은 제가 보기에는, 대책없는 도망에 불과합니다...^^

    그곳에서 부하 손에 체포되어 버렸으니까요.

    사실 이런 문제는 결과론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이승만이 부산으로 "도망"친 것이냐, 부산으로 "작전상 후퇴"한 것이냐와 비슷한 문제일 수도 있죠...^^
  • Real 2011/08/17 23:26 #

    부하의 손에 체포되었다기보다는 부하의 배신이 맞지 않습니까? 한국사전인가 역스에서 그문제에 대해서 다루어준바도 있구요. 너무 백제가 당한 문제나 성충의 전략문제에 의자왕의 이동경로만으로 도망등의 무대책을 이야기하는건 좀.. 저 개인적으로 이문제가 오히려 식민사관과 같은 개념으로 볼수 있는 비판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황산벌 전투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비판기사를 본적이 있어서요;
  • 초록불 2011/08/17 23:29 #

    부하의 배신이 맞습니다...^^
  • Allenait 2011/08/17 23:27 #

    P.S에 500원 겁니다.
  • 초록불 2011/08/18 00:12 #

    세게 거십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8/17 23:38 #

    저는 나당연합군의 침공과정에서의 대처양상때문에 의자왕이 처음에는 명군이었으나 암군이 된 케이스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케이스는 역사에도 종종 등장하는 케이스이기에 의자왕에 대해 왜곡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PS: 그가 안그러고 베기겠습니까?ㄲ
  • 초록불 2011/08/18 00:14 #

    사람이 변한다는 사실이야 뭐...
  • 時雨 2011/08/18 09:40 #

    저도 의자왕은 핀치에 약한 타입이라고 생각하지요. 힘있을때는 리더쉽 있고 좋아보이던 사람이 위기 상황이 되면 X같아 지는 경우 많이 있지요...
  • 역사관심 2011/08/17 23:38 #

    마치 영화장면을 보는듯한 기술. 잘 보았습니다.
    사료의 기록으로 이렇게 상세한 묘사를 해내시는 능력이 있으시니, 다른 장르의 글도 멋지게 쓰시는 듯합니다. 다시 한번 또 찬찬히 읽어봐야겠네요. ^^
  • 초록불 2011/08/18 00:14 #

    고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8/18 00:06 #

    솔직히 기록의 전체적인 면모나 전쟁의 상황을 살펴보면, 의자왕의 무능함은 왜곡되었을지 몰라도 멸망 당시의 전황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백제군의 주력은 황산과 웅진구에서 소멸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사충은 김XX를 암살하죠. (응?) ㅎㅎ
  • 초록불 2011/08/18 00:11 #

    에... 계백 관련 소설이 잘 팔린대서 <취리산> 광고나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 을파소 2011/08/18 00:07 #

    ps에 전 냉장고 있는 초코파이를 걸겠습니다.(요즘은 붕어빵 철이 아니라서...)
  • 초록불 2011/08/18 00:11 #

    철이 아니라서 걸었다는 사실이 간파되었군요... (먼산)
  • Warfare Archaeology 2011/08/18 01:16 #

    500원 거시는 바람에...비로긴이 안 들어오는 듯? ㅋㅋ ^^;
  • 초록불 2011/08/18 01:18 #

    제 블로그에는 비로긴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 욕할 거라는 이야기지요.
  • Warfare Archaeology 2011/08/18 11:03 #

    아하! 그렇군요. ㅋㅋ ^^;; 어쩐지~

    암튼...딴 소리하느라 정작 할 얘기를 못 했네요.

    글 잘 봤습니다. 뭔가 중간에 빠진듯한 고리를 채워주신듯한 느낌입니다.
    문헌사료를 좀만 더 꼼꼼하게 봐도 정리가 될 수 있는 걸 그동안 안 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암튼 감사~
  • 행인1 2011/08/18 09:31 #

    소정방이 예상을 뛰어넘고 손쉽게 기벌포를 넘어버렸을때 백제쪽 표정이 상상되는군요. 그렇게 쉽게 넘을줄은 예상 못했을듯.
  • 초록불 2011/08/18 10:19 #

    소정방의 일대기를 보면 참 대단한 "탱커"라는 생각이 듭니다. 돌궐과 싸울 때도 눈이 쌓여 모든 장군들이 진군할 수 없다고 여길 때, 적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니 돌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결과승리한 일화가 있습니다.
  • 허안 2011/08/18 10:31 #

    김유신이나 소정방이나 나라를 엎을만한 명장이었다는 거군요.
  • Rcroxe 2011/08/18 13:29 #

    PS에 거신 분들. 이기셨습니다. 상품은 누가 줘야 할까요;;;
  • 누군가의친구 2011/08/18 13:40 #

    그러네요. 그 비로그인 주인되시는 분의 분신이 그런글 썼으니 말입니다.
  • 루드라 2011/08/18 14:38 #

    갯벌에 버드나무로 짠 자리를 펼쳐서 -> 현대전에서도 상륙지의 갯벌이나 모래사장등을 극복하는데 같은 방법을 사용합니다.(재료는 다르지만요) 소정방이 괜히 백제정벌군 사령관이 된 게 아니었네요.
  • 초록불 2011/08/18 15:10 #

    제 기억으로는 이 대목은 김유신 열전에만 나옵니다. 대단히 놀라운 자료지요...^^
  • 駕洛之胤 2011/09/21 11:59 #

    기벌포(백강) 해안은 오늘날 변산반도 위쪽 동진강으로 비정되며 소정방을 비롯한 일부는 이곳에상륙하여 상륙부대는 웅진강쪽으로 진군하고 나머지는 공성무기등 보급품을 싣고 배를 타고 웅진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로 사료됩니다...따라서 먼저 상륙한 부대가 웅진강 어귀를 막은 백제군과 교전을 했다고 보는게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 駕洛之胤 2011/09/21 12:03 #

    그래서 백강 즉 기벌포를 막으라는 성충의 충고를 어긴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 초록불 2011/09/21 12:17 #

    백강 비정이 학자마다 견해가 다른 것으로 아는데, 저는 금강 하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駕洛之胤 2011/09/21 14:19 #

    현재 금강상류를 웅진강으로 보고 해안쪽 하류를 백강으로 나누어 본다면 지금의 금강하류를 백강 또는 기벌포 라고 보아도 사료해석상 큰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