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일진회 *..역........사..*



한겨레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겨레] ‘이승만 고종 밀사설’ 깨졌다 [클릭]

위 기사를 따르면 다음과 같은 미국 기사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기사들은 미 의회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신문검색 서비스(chroniclingamerica.loc.gov)를 이용해서 찾아낸 것으로 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윤병구는 Rev. P. K. Yoon으로 이승만은 Syngman Rhee라고 표기되어 있네요.

<뉴욕 데일리 트리뷴> 1905년 8월4일 7면 : 루스벨트를 만나기 위해 온 윤병구와 이승만이 “우리는 황제의 대표자가 아니라 ‘일진회’라는 단체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전달할 것을 위임받았다”고 말한 것을 인용·보도했다.
“We wish it distinctly understood that we are not representatives of the Emperor.” said Mr. Yoon, the spokesman. “for our Emperor does not now represent the best interests of the people of Corea. There has been a wonderful awakening in Corea within the last few years, but it has all taken place among the lower classes. The officials ate tainted with the influence of Russia. A great society with many thousands of members is growing rapidly throughout the empire, and one of these days will take hold of affairs and conduct the government. The name of this soeiety is Il Chin Hoi, which, translated, means ‘The Dally Progress’.”

“러시아 사람들은 줄곧 적이었고, 우리는 이 전쟁(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고 있는 것에 기뻐한다”
“The Russians have ever been the enemies of our people.” said Mr. Yoon. “They stand for everything that is hateful and deceitful, and we rejoice that the Japanese are winning in this war.”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이들은 전자(일본)를 주인(masters)으로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거의 없다.
Still, as between the Japanese and the Russians, they would have little hesitancy in choosing the former for masters.

<스타크 카운티 데모크라트(오하이오 주 발행)> 8월8일 7면 : “윤병구와 이승만은 자신들이 러시아 영향력 아래 놓인 황제를 대표하고 있지 않으며, 힘있는 단체인 ‘일진회’의 대변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Rev. P. K. Yoon and Mr. Syngman Rhee, the envoys In question, assert that they do not represent the emperor, as he Is under Russian influence. They are spokesmen for a powerful society, II Chin Hoi (이하 생략)

<워싱턴 타임스> 8월 4일 2면 : “이들은 ‘일진회’로 알려진 한국의 거대 진보정당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They claim to represent the as “Il Chin Hoi,” which, translated means the Society of Daily Progress.


한국에 대해서 정말 잘 몰랐다는 것은 국명 표기도 Corea와 Korea가 같이 쓰이고 있는 현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서는 C를 쓰고 있지만 나머지 신문들은 K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승만은 1898년 정부 전복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1904년 풀려났고 바로 도미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정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지닐 리 없었겠지요. 또한 일진회에는 동학 출신과 더불어 독립협회 출신도 많이 들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는 아시아인도 서양인을 이길 수 있다는 어떤 상징으로 작용해서 많은 당대 지식인들이 친일파로 변모하게 하는 계기로 작동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런 정황을 감안해도 이승만의 위 행적은 이해하기 어렵군요. 더구나 같이 움직인 윤병구(尹炳求, ?~1949) 역시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에 더 어리둥절해지게 됩니다.

역사의 진실은 때로 이렇게 복잡한 면모를 띄게 됩니다. 근현대사에 밝은 분들의 탁견을 기대합니다.



P.S.
영문은 되는대로 타이핑한 거여서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감안해서 봐주세요.

P.S. 2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 대한 기사들이 제법 많습니다. 영어가 짧은게 웬수죠... (먼산)


덧글

  • sharkman 2011/08/22 23:12 #

    '일진'들이 모여서 일본을 때려잡을 궁리를 했군요, '일진회'....

    후다닥...
  • 누군가의친구 2011/08/22 23:22 #

    이거 참 복잡해지네요.

    좀더 찾아보고 대조해본다면야 뭔가 나올듯 한데, 저도 영어가 짧으니...(...)
  • sharkman 2011/08/22 23:38 #

    코리안즈 앳 오이스터 바.....라고 읽은 1인.
  • 자유로픈 2011/08/22 23:49 #

    독립협회가 해산된 후 그 노선을 계승한 조직은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뉘게 되죠. 대한협회 계열 세력과 일진회 세력으로 나뉩니다. 두 세력 모두 독립협회 노선을 계승했으므로 대외관계에서 반러친일적 성향을 가졌지만, 이후 정치노선의 변화에 따라 다른 운명을 맞지요. 대한협회계열은 일본이 조선인들을 문명개화시켜줄 수 있다는 '문명지도론'을 수용하긴 하지만 어쨌든 추상적으로나마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향한 반면, 일진회는 '문명지도론'에 심하게 경도되어 일찌감치 '합방론'을 주장합니다.

    저도 위 기사를 재미있게 봤는데, 추측건대 이승만과 윤병구는 주장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당시 최대 규모의 조선인 정치단체였던 일진회의 명의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진회는 처음부터 친일성향을 노골화하기는 했지만, 여론으로부터 '친일당'이라는 비판을 심하게 받기 시작한 때는 1905년 11월 이후입니다. 이때 일진회는 1905년 11월 5일 외교권을 일본에게 위임해야 한다는 내용의 선언서를 발표합니다. 이를 계기로 일진회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하고, 당시까지 일진회에 참여하고 있었던 천도교 계열이 이탈하게 되지요. 참고로 당시 대한협회 계열은 일본의 탄압을 받아 대중조직을 건설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대한협회 창설은 1907년) 그러므로 독립협회 노선을 계승하면서 대중조직으로 활동하던 것은 일진회 뿐이었죠.

    위 기사는 1905년 8월의 것입니다. 일진회가 결정적으로 '친일당'이라는 비난을 듣기 직전의 시점인데, 독립협회 노선에 공명하고 있었던 이승만이 일진회의 명의를 사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초록불 2011/08/22 23:53 #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저도 어렴풋이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만 뭔가 제대로 쓰려면 이것저것 찾아봐야 하는 내공인지라 그냥 의문만 던져 놓았죠...^^
  • 자유로픈 2011/08/22 23:59 #

    최근에 일진회를 비롯한 한말 '애국계몽운동'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연구들이 나왔습니다. 서지사항 소개할게요

    김종준, <일진회의 문명화론과 친일활동>, 신구문화사, 2010 (박사논문 출판)
    백동현, <대한제국기 민족담론과 국가구상>,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2010(박사논문 출판)
    정숭교, <한말 민권론의 전개와 국수론의 대두>,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논문
  • 초록불 2011/08/23 10:07 #

    흥미로운 논문들이군요. 그런데 일진회의 영어 설명을 보니 한 일자가 아니라 날 일자(일본을 상징하는 중의적 사용일수도)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2011/08/23 02:2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1/08/23 10:07 #

    이승만은 이후에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니까 그런 변화를 가질 시간은 충분했겠지요.
  • 진성당거사 2011/08/23 06:33 #

    이거 국부 이승만 운운하는 사람들이 보면 까무러치겠군요.
  • 초록불 2011/08/23 10:07 #

    좀 당황스럽긴 하겠어요.
  • 루치까 2011/08/23 09:20 #

    미묘한 시점이군요. 을사조약 직전에 친일 성향의 발언을 하다니.
  • 로자노프 2011/08/24 13:14 #

    제가 아는 바로는 을사조약 이전까지는 전반적으로 지식인들은 친일적 성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어디서 들은거라 불확실하지만 안중근이나 여운형, 손병희도 을사조약 이전에는 일본에 호의적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로 러일전쟁 자체가 인종 대결 적 양상으로 비춰지면서 한국내에서도 황인종의 승리 뭐... 이런 인식이 있었던 것 같고요. 다만 이게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그 인식이 흔들리고 반일 성향으로 전향하는 사람들도 나오게 되는 걸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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