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문........화..*



잊혀질 권리 - 10점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지음, 구본권 옮김/지식의날개(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뭐랄까, 가끔은 굉장한 책을 본다는 느낌을 갖는데, 이 책이 그런 책 중 하나다.

지금까지 인류는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정보는 곧 권력이고 무엇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많은 상황에서 권력은 상대적 개념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아는 데서 생겨난다. 인류 역사 초기부터 특정한 계급, 집단, 전문 직업들은 남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배타적으로 유지하는 데서 비롯했다. 이들은 신과 소통할 수 있고, 질병을 고치고, 정신을 지배하고, 군대를 지휘하고, 생산량을 확대시키고, 혹은 사회를 통치할 수 있었다. - 위 책, 151쪽

그리고 잊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단이 글자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우리 선조들은 손쉽게 변경되지 않고 해석할 필요가 적은 형태로 기억을 외부화하는 방법을 찾고자했다. 특히 생산, 무역, 행정조직에 초점을 맞춘 사람들은 정보를 편리하면서도 정확하게 저장하고 호출할 수 있는 방법을 갖고자 했다. 이게 문자의 탄생이고 고대 관료들과 회계원들이 그 놀라운 산파였다. - 위 책, 59쪽

우리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한다. 그것은 늘 재구성되고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억은 남고 그렇지 않은 기억은 사라진다.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여러가지 매체가 등장했으나 아날로그적 세계관에서는 그 기록도 낡고 변화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원본과 차이없는 세계, 디지털 복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오리지널과 복제 사이에 대해서 하고 싶은 엄청난 이야기가 있지만 이번 글과는 관련이 없으므로 생략한다.)

옛날에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지만, 이제는 결정이 낭비인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가령 구글의 메일함은 뭐 때문에 메일을 지우는 수고를 하느냐고 묻는다. 당신에게 용량은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선택하는 시간 낭비를 하지 말라는 것.

값싼 저장 장치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기억할지 망각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경제적이지 않게 되었다. 망각은 - 그것을 결정하는데 3초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 이제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비싼 게 되어버렸다. - 위 책, 109쪽

이렇게 기억하면 나중에 그걸 어떻게 찾는가가 문제다. 그래서 구글이 있는 거다.

쉬운 검색 기능을 갖춘 수백 기가바이트에 이르는 방대한 정보는 더 이상 우리가 익사할 위험이 있는 무한한 정보의 바다가 아니다. 우리 인간을 확장시켜주는 강력하면서도 다재다능한 속도 빠른 도구다. - 위 책, 120쪽

이렇게 해서 우리는 엄청난 정보를 공유하는, 인류가 그토록 목말라했던 정보의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유토피아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 첫번째 문제는 이렇다.

일단 정보가 공유되면 사람이 이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만약 내 정보에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한다면, 그들이 내 정보를 나의 기대에 어긋나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 위 책, 131쪽

어디 이뿐인가? 두번째 문제는 더 심각하다.

비록 파일을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더라도, 각각의 온라인 상호작용 자체가 그 상대 눈군가가 소유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바로 자신에 관한 정보라는 점이다. - 위 책, 133쪽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온라인 상에서 어떤 행위를 할 때 우리의 정보가 새어나가고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이용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혹은 알아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 우리의 세계는 이런 새로운 개념과 맞닿게 되었다.

오늘날 망각하는 것은 비용이 들고 어려워진 반면, 기억하는 것은 저렴해지고 쉬워졌다. - 위 책, 143쪽

아날로그 시절에는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가령 이사를 해버리는 것. 그 정도로 안 되면 이민을 가버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과 결합된 세상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자신이 행한 기록이 남아서 후일 불이익을 줄 수 있는데, 이런 사례는 이미 발견되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어떤 불이익으로 올지 알 수 없다는 것. 결국은 스스로를 검열하고 위축시킬 수 밖에 없게 만들고 만다.

일단 정보는 누구에게나 도달될 수 있으며, 우리는 어떤 경우 주의를 덜 기울이는 실수를 할 수가 있다. 또 계산할 수 없는 어떤 손해를 무릅쓰기보다 의심하면서 스스로를 검열한다. - 위 책, 169쪽

그럼 안 하면 되는 것인가?

구글의 최고 경영자였던 에릭 슈미트는 (중략)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자신들의 무엇을 제공할지 점점 더 조심하게 된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이 말이 함축하는 바는 분명하다. 노출을 피하는 것은 (누군가를) 비판하지 않는 것이다. - 위 책, 167쪽

이렇게 되면 어떤 결과를 낳는가?

시민과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면,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시민의 힘을 축소시킬 때 권력 분리가 어려움에 처한다는 것을 보게 된다. - 위 책, 168쪽

모든 걸 한 눈에 보면서 통제한다는 인식은 자기 검열의 문화를 만들어내어 민주정부의 특징인 건강하고 개방된 토론을 현재만이 아니라 먼 미래에까지 제한한다. - 위 책, 171쪽

사람들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망각이 인간을 구원한다. 그 문제가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힌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망각의 기능을 잃어버린 한 사람의 증언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나쁜 일 또한 기억하고, 모든 나쁜 선택들 역시 기억한다. 그리고 실제로 스스로에게 잠시의 휴식도 허용하지 못한다. 인생은 항상 갈림길이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고,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다. 나는 많은 것에 대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당신의 기억은 기억이 당신을 보호하는 장치다. 나는 기억이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느낀다. (중략) 비록 사람들이 망각을 고통으로 생각하고 나이 들어감에 따라 많은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어 불안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우리 인생에 관해 상당 부분을 망각할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 위 책, 179쪽, AJ의 자서전 인용

망각이 거부되면서 인간은 변화도 거부할 위험이 있다.

만약 인간 행동이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변화하려 할 필요를 거의 느끼지 않게 된다. (중략) 디지털 기억은 우리를 과거 행동에 묶어 놓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할 것이다. 망각이 없으면 용서도 매우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T.S 엘리엇이 "만약 모든 시간이 영원히 존재한다면, 모든 시간은 구제받을 수 없다"라고 쓴 대로일 것이다. - 위 책, 189쪽

또한 자신에게 보여진 디지털 기억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는 그 수많은 낚시들을 생각해 보자.






이 책은 기억이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는지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망각의 중요성에 대해서 논한다. 정보의 유용성과 더불어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방법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에 대해서 책장을 덮고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일화 하나가 남았다.

1930년대 네달란드 정부는 모든 국민에 대해 이름, 생년월일, 주소, 종교를 비롯해 다양한 개인정보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인구 등록 사업을 시행했다. 이 등록사업은 정부의 행정을 용이하게 만들고 복지 서비스를 개선하는 사업으로 환영받았다. 그러고나서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했고 인구 등록 기록을 입수해, 수백만 네덜란드 국민의 개인정보를 신원 식별용으로 그 용도를 바꿔 사용했다. 유대인과 집시를 찾아낸 뒤 무자비한 박해와 학살을 저질렀다. (중략) 네덜란드 유대인 인구의 73%가 학살 피해를 봤는데 이는 벨기에(40%)나 프랑스(25%) 등 유럽 내 어느 나라보다 높은 비율이다. - 위 책, 212~213쪽



책에는 이런 짤방을 쓴 적이 없지만, 이 책은...



덧글

  • 파리13구 2011/10/16 16:27 #

    잊혀질 권리는 프랑스정치에서 인터넷시대의 기본권들 중 하나로 인정받는 것이라 합니다.
  • 초록불 2011/10/16 21:50 #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가 문제지요. 이 책은 말미에 그 대안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 Jes 2011/10/16 16:28 #

    여담이지만 이런 거 볼 때마다 "'잊혀질 권리'가 아니라 '잊힐 권리'인데"하는 생각이 ㄷㄷㄷ
  • 초록불 2011/10/16 16:34 #

    본문에는 "잊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우 고민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같은 경험이 있거든요)
  • Kael 2011/10/16 16:43 #

    확실히 이제는 인터넷이 발달하게 되면서 "망각"의 자유가 없어지고 있지요.
    일단 인터넷에 뭐가 나오는 순간 반영구적으로 그 자료가 남아 있을 테니까요.
    이게 인터넷의 강점이자 약점이겠지만요.

    확실히 인터넷이 들어오면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 santalinus 2011/10/16 21:00 #

    그러나 여전히 함부로 배설하는 사람도 공존하고 있지요.... 조심하는 사람은 항상 조심하고 조심안하는 사람은 여전히 막 싸는 것 같아요;;;
  • 초록불 2011/10/16 21:50 #

    한 번 지적할 수는 있는 일이지만, 그후에도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전에 그랬잖아, 하고 괴롭히는 건 이지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인베르츠 2011/10/16 20:24 #

    그래서 지금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정보를 어떻게 다루고 처리하느냐"가 핵심이 된듯 싶습니다.
  • 초록불 2011/10/16 21:51 #

    적절한 지적이십니다. 다 이야기할 수 없어서 생략했지만, 이 책에서 비중있게 다루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10/16 20:42 #

    네티즌 수사대의 정보력(?)을 생각해보면 정말 망각되지 않는 극히 사소한 정보나 잘못들이 무서운 것 같습니다. ㄷㄷㄷ
  • 초록불 2011/10/16 21:51 #

    그리고 뭔가 수틀리면 물어뜯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저 너머에 있잖아요...^^
  • Niveus 2011/10/16 21:03 #

    좋은 책이로군요.
    확실히 넷상에서의 자신을 지우는건 노력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자신을 지우는데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정말;;;
  • 초록불 2011/10/16 21:52 #

    온라인에서 과거를 지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죠.
  • Allenait 2011/10/16 21:44 #

    허. 마지막 일화가 무섭군요
  • 초록불 2011/10/16 21:53 #

    한 시스템 상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이 외계의 침입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주었다... 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 DeathKira 2011/10/16 21:48 #

    확실히 자신에 관한 정보가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는 건 껄끄럽죠.
    꽤 재밌어보이는 책이네요.
    사야하나...
  • 초록불 2011/10/16 21:54 #

    사세요~
  • draco21 2011/10/16 23:34 #

    이렇게 제 체크포스트와 서가에는 책이 한권씩 늘어날 뿐이고.... 읽는 속도는 더딜뿐이고.. (한숨)... 아니 (토혈..)
  • 초록불 2011/10/17 10:14 #

    저도 못 읽은 책이 산더미입니다...
  • 역사관심 2011/10/17 05:54 #

    대단한 통찰력과 통시적안목을 가진 저자로군요.
    꼭 사봐야겠습니다.
  • 초록불 2011/10/17 10:14 #

    재미있게 보세요.
  • causationist 2011/10/17 15:50 #

    저 역시 잊혀질 권리를 득하기 위해 새로이 아이디 팠습니다만...

    깔끔하게 J모 싸(가지없는)이트에서 묵살당해서 말이죠 하하핫...

    그냥 막나갈렵니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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