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목적으로만 대하려는 사람들에게 *..역........사..*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흔히 역사가 국민을 단합시키는 목적으로, 국민에게 자부심을 주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보다는 덜하지만, 사실 어떤 사람들은 역사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민통합수단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래야 하는 것일까?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은 역사로 바꿔놓아도, 장르소설로 바꿔놓아도 모두 성립하는 말이 된다.

과학의 또 다른 가치는 지적 유희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읽고 배우고 생각하면서 얻는 재미, 소수의 사람들이 과학 연구를 하면서 얻는 재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지적 유희는 실제로 매우 중요하며, 과학자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반성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지적 유희는 사사로운 개인적 즐거움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천만에요! 사회 자체의 성립을 위한 가치를 고려하는 것도 하나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회는 사람들에게 즐길 거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만일 그렇다면, 과학의 즐거움은 여느 즐거움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 리처드 파인만, 승영조 김희봉 옮김, <발견하는 즐거움>, 승산, 2001, 153쪽


리처드 파인만은 세계가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어떤 실용성을 갖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하드론과 뮤온 등을 이해하는 문제는, 현재는 어떠한 실용적 응용 가능성도 없다고 봅니다. (중략) 그러면 왜 그걸 하느냐고요?

세상에는 응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 위 책, 297~298쪽


역사학에서 말한다면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이해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만들어진 한국사> 후기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파인만의 이야기를 조금 더 보자.

멀리서 폭발하는 퀘이사를 발견한다는 건 또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대체 천문학이라는 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재미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추구하는 세계 탐구와 같은 종류의 탐구며, 제가 가진 호기심과 같은 종류의 호기심입니다. 인간의 호기심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의미에서는 호기심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도 실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현재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경제적인 의미에서 그것이 실용적 가치가 있을 거라는 보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 위 책, 298쪽


97년에 썼던 글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왜 그것을 알아야 합니까?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알고싶어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고자 할 뿐입니다.
달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사람들이 달에 우주선을 보냈습니다.
별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사람들이 별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언어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언어를 연구했으며
수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사람들이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실용>이라는 말이 가진 함정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덫에서 빠져나올 때 사람은 자유로와집니다.
공자는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일이 자신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지에 대해서 말한 바 있습니다.
달을 보려면 달을 봐야지, 그 손가락 끝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옛날에 쓴 글이 부끄럽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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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1/11/08 01:31 #

    깊이 동감합니다.
    특히 이 부분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지적 유희는 사사로운 개인적 즐거움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천만에요! 사회 자체의 성립을 위한 가치를 고려하는 것도 하나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초록불 2011/11/08 10:06 #

    인간은 호기심 덩어리인 거죠...^^
  • 앨런비 2011/11/08 01:41 #

    뭐 갠적으로 관련된 말에 동의하고 많이 했던 것이죠. 왜 연구하냐? 그것은 상업적, 정치적 목적도 물론 있지만 인간의 지적 호기심이 크게 작용한다.
  • 초록불 2011/11/08 10:07 #

    일종의 다다익선...^^
  • DeathKira 2011/11/08 01:47 #

    저도 동감합니다.
    지적 욕구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이해가 안 가더군요.
    이 재밌는 걸..
  • 초록불 2011/11/08 10:07 #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즐거움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지요. 이게 바로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일지도...^^
  • 루드라 2011/11/08 03:51 #

    너무 당연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설명까지 붙여줘도 세상에는 이걸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군요.
  • 초록불 2011/11/08 10:07 #

    딱딱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
  • 진성당거사 2011/11/08 06:08 #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기타 어거지들에 휩쌓인 역사는 그때부터 역사가 아니겠지요.
  • 초록불 2011/11/08 10:09 #

    그런데 늘 그런 일이 있었기에 이런 생각이 더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보따리> 시리즈에 대한 서평에서, 역사가 재밌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들이 나올 때 제일 즐겁습니다.
  • Alice 2011/11/08 07:14 #

    오오 저 파인만이란 사람 글은 안읽어봤는데 제 동기를 명확히 설명해주는군요. 제 스승님도 '고대사는 호사가들이 하는 것'이라셨지요. 저 또한 호사가에 불과한 걸 인식하고 있고요. 간명하고 시원한 글, 공감합니다.
  • 초록불 2011/11/08 10:09 #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다른 분야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asianote 2011/11/08 08:30 #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생각을 근래에 하게 됩니다.
  • 초록불 2011/11/08 10:10 #

    에리히 프롬이 그런 것을 가리켜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 객관적진리추구 2011/11/08 09:26 #

    저도 이 말씀에 깊이 동감합니다 가끔씩 이상한 사람들이 더러 있어서 그렇죠...
  • 초록불 2011/11/08 10:10 #

    이상한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마세요.
  • 팔랑 2011/11/08 09:42 #

    동감합니다. 예술분야도 그렇죠.
  • 초록불 2011/11/08 10:10 #

    그렇습니다...^^
  • Mr 스노우 2011/11/08 10:45 #

    100퍼센트 동감합니다.
  • 다능 2011/11/08 10:50 #

    역사가 국민을 단합시키는 목적으로, 국민에게 자부심을 주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시즘, 나치, 제국주의, 군국주의, 동북공정 등등 좋은 예가 많이 있네요.
    E.H. Carr가 자신의 책에서 열심히 까댄 사람들...
  • water4life 2011/11/08 11:33 #

    인류의 모든 생각이 처음부터 쓸모를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쓸모없는 정도가 아니라 당시에는 위험한 생각이었으며, 해롭기 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지극히 위험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데, 실행하지 않더라도 표현만 하더라도,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사회적 제제를 받기도 합니다. 그 시대마다 "금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날이야기도 욕구불만에 대한 표본입니다.

    이 댓글도 실용적 가치는 전무 합니다.
  • muse 2011/11/08 11:58 #

    동감합니다. 그런데 예술의 지적 유희로써의 가치는 인정하면서도 과학, 역사, 사회학은 목적으로만 대하려는 사람들이 은근히 꽤 많아서 아쉽습니다ㅠ
  • Savant 2011/11/08 11:59 #

    초록불님의 글을 읽으니 크레이그와 히친스의 토론내용이 떠오릅니다.

    크레이그가 '무신론자가 말하는 미래는 차갑게 식어 멸망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미래는 소망과 영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히친스가 '저도 차갑게 식어 멸망하는 미래는 싫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라고 반박합니다.

    단합 목적에 적합하지 않든, 자부심을 주는데 방해가 되든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야할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결국 문제에서 눈을 돌리겠다는 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Silverfang 2011/11/08 14:06 #

    받아들이는 것(직시하는 것)이 우선 해야만 돌파구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댓글보고 공감하는게 있어 남겨봅니다.ㅎ
  • 파파게노 2011/11/08 13:37 #

    공감합니다. '유희' 그것의 의미는 상당히 큽니다. 그리스 소피스트들이 일은 노예들에게 맡겨두고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었지만 아고라에서 서로 떠들어 댄 것이 서양 철학의 시작인 것처럼..
  • 가면대공 2011/11/08 19:50 #

    좋은 글이라 큰 공감을 얻고 갑니다.
  • 긁적 2011/11/08 20:13 #

    그러니 철학에도 돈을 좀. 굽신굽신. 철학도 재미있다구요!
    입자가속기 건설하는 데에는 수조를 들이는데, 그 돈이면 전 세계의 철학과 학생 + 교수가 십년은 먹고 남을 돈인데 ㅠ.ㅠ
  • santalinus 2011/11/08 23:15 #

    그러게 말입니다... 실용성으로 따지면 천문학이나 철학이나 매한가지인데;;; 예산을 책정하는 놈씨들이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거죠... 즉 지적 유희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얘깁니다.ㅋㅋㅋ
  • 긁적 2011/11/08 23:21 #

    santalinus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천사의먼지 2011/11/08 20:14 #

    글쎄요. 역사는 오히려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만.
    그 목적이 올바른지 아닌지 또는 좋은지 좋지 않은지 평가하고 이용할지 안할지를 결정할지 정한다라고 말하는게 저는 맞다고 봅니다.
    역사를 특정한 목적으로만 대해서는 안된다 또는 문제점이 들어난 목적에 이용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고 봅니다.
    초록불님이 말씀하신 역사를 지적유희로 즐긴다는 것도 훌륭한 목적 중 하나겠죠. 하지만 그것이 제목때문에 목적이 아니라는 늬앙스가 느껴지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런 의미로 쓰지는 않으셨겠지만요.

    전체적인 내용은 참 좋은데 제목이 좀 거시기한 느낌이 듭니다. 아니면 목적을 너무 적은 범위에서만 사용 하셨거나요.
  • 초록불 2011/11/09 10:05 #

    그럴수도 있겠네요. 여기서는 실용적인 목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11/08 21:44 #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역사를 왜곡한 사례는 많았고 그 해악도 그에 비례해 증가하였죠. 그로 인한 비극은 더 많았고 말입니다.
  • santalinus 2011/11/08 23:18 #

    으잉? 말씀하신 내용에는 공감합니다만 표현에 잠깐 갸우뚱 합니다... 오히려 역사를 "수단"에 대비되는 "목적" 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역사 그 자체가 목적이지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라고 쓰는게 더 와닿지 않을까 싶습니당....
  • 초록불 2011/11/09 10:06 #

    오해의 여지가 있는 제목이었나 봅니다...^^
  • 헤헤헤 2011/11/12 21:33 #

    달을보는건 쉬운일인데 자화자찬인가 ㅎㅎ 손톱보는 사람많네
  • 파랑나리 2011/11/17 02:11 #

    실용 얼마나 진절머리 나는 말입니까? 속물을 합리화하는 말이고 사람의 열망을 구속하는 속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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