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의 역습 - 한국사시민강좌 *..역........사..*



한국사 시민강좌가 만들어진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사역사가들의 교과서 공세에 의한 국회청문회 사건 때문이었지요. 그 건에 대해서는 여러 편의 글을 쓴 바 있습니다만 아래 두 편을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국사편찬위원 전원 경질이라는 거짓말 [클릭]
1981년 국사 교과서 개정 청원 공청회에서 나온 지당한 말 [클릭]

이때 불려나가 수난을 당한 이기백 교수는 대중을 위한 역사교양잡지를 만들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이런 일들이 계기가 돼서 <한국사 시민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저에게도 자꾸 질문을 했습니다. 아주 잘 아는 사람들도 고조선의 영토가 어디까지였다는데 어떻게 됐느냐고 질문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식민주의 사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싶어서 창간호에서는 그것부터 알려 주려고 했습니다. 제2집에서는 고조선을 다루었고 제가 고조선의 국가형성과정을 썼습니다. 그 뒤 어떤 교사가 "전에 단군신화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못했는데 이제는 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참 효과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 이기백, 나의 한국사 연구, 한국사학사학보1, 2000, 3

국사공청회는 1981년이고 <한국사 시민강좌> 1집이 나온 것은 1987년 9월이었습니다. <한국사 시민강좌>의 직접 계기는 또 한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1987년 2월 '한국상고사의 제문제'를 주제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재야 역사단체들이 결성한 '민족사 바로잡기 국민회의' 측 인사들이 역사학계의 고조선 연구방법이랄까 통설에 대해 친일적인 반도사관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방 성토하여 세간의 역사 인식을 크게 오도하고 있었으므로 본 <한국사 시민강좌>의 책임편집자였던 이기백 선생이 이에 대응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터이기도 했습니다. - 이기동, 독자에게 드리는 글, 한국사 시민강좌 49, 일조각, 2011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문제는 그후 2000년에도 <한국사 시민강좌> 27집에서 다뤄졌습니다. 이때 다시 이 주제가 나온 것은 1993년 북한의 단군릉 발굴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북한의 연구가 국내에 알려지면서 이상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상황이 만들어졌던 것이죠. 북한 학계의 황당함은 이런 말에서도 잘 볼 수 있습니다.

지난날 김일성이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이 중국 진의 시황제보다 200여년이나 뒤늦게 건국했다는 것은 민족의 수치라면서 역사학자들에게 동명성왕이 진시황보다 먼저 건국한 것으로 고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실제로 북한에서는 1990년 손영종의 <고구려사1> 발간 이래 종래 기원전 37년으로 되어 있던 고구려의 건국 연대를 4주갑 끌어올려 기원전 277년으로 수정, 공식 견해가 되어 있음) 고조선의 건국을 기원전 3천년경으로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 '단군릉' 발굴도 어쩌면 고조선의 역사를 "주체적 입장에서 새롭게 정립"하라는 김일성의 특별지시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 이기동, 위 책

그리고 <한국사 시민강좌>는 이번 49집에서 또 다시 고조선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루게 된 이유는 크게 이렇습니다.

(1) 현재 북한과 남한의 일부 연구자들은 고조선의 국가 형성 시기를 뚜렷한 근거 없이 끌어올리거나 혹은 그 지배영역을 한없이 확대해보려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형편이기 때문

(2) 중국이 전개하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한 홍산 문화에 대한 오류와 그 오류를 받아들여 요하문명론과 고조선을 연결하는 국내 연구자에 대한 비판

(3) 재야사가들의 근거없는 한국고대사 연구자에 대한 비방에 대한 검토


이 책에서 제일 속 시원하게 보이는 것은 이성규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은퇴하신 모양이지만...)

어떤 사관과 방법론도 '엄정한 사료 비판을 통하여 확보된 믿을만한 사료에 근거한 합리적 논지'란 시험대를 면제받을 수 없다면, 역사의 진상을 탐색하는 연구에 북한 학계가 따로 있고 민족주의사학이 따로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애초에 실증적 토대가 없는 '민족주의적사학'이나 '사회경제사학'이라면 '학설'로 성립할 수도 없는 것이며, 그 결론이 특정 이념이나 주의주장에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논증되지 않는 억단을 '학설'로 대접할 이유 역시 없다. - 이성규, 중국사학계에서 본 고조선, 위 책

한국사 시민강좌 제49집 - 10점
한국사 시민강좌 편집부 엮음/일조각


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1/11/24 01:10 #

    하긴 공청회에서 발렸다는 이야기가 나돕니다만, 당시 신문기사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ㄱ-

    PS: 부카니스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경우도 보이는데 부카니스탄에서 학문이 연구되는 방법을 보면 신뢰하는거 자체가 참으로...ㄱ-
  • 초록불 2011/11/24 01:48 #

    뭐, 포스팅의 두번째 링크가 바로 학계가 바보들을 발라버리는 현장이죠.
  • 듀란달 2011/11/24 09:07 #

    오프라인 환빠 버전 정신승리지요.
  • 즈라더 2011/11/24 01:41 #

    저들이 주장하는 것..
    파헤치면 다 뽀록나게 되있습니다.. 하하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네요.
  • 초록불 2011/11/24 01:49 #

    쓰기 싫어서 쓰지 않았지만 지뢰가 두 개 있습니다... (먼산)
  • 萬古獨龍 2011/11/24 01:48 #

    마지막 부분이 날카롭군요
  • 초록불 2011/11/24 01:49 #

    저 말이 나온 이유가 있는데, 좀 귀찮아서 그건 생략해버렸습니다... (무책임)
  • 푸른화염 2011/11/24 02:10 #

    으억, 내일 사러가려고 했는데 이런 통쾌한 발언이! 이성규 교수님 발언이 참 시원하네요.ㄷㄷㄷ
  • 초록불 2011/11/24 10:05 #

    이 분 글이 좀 어려운 게 흠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공이 깊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엑스트라 1 2011/11/24 03:02 #

    학문에 엄정한 검증을 거부하고 다른 요소들을 끌어들이는 것들을 학설로 인정해줄 필요는 없지요.
  • 초록불 2011/11/24 10:06 #

    그렇습니다.
  • 굔군 2011/11/24 03:46 #

    지난날 김일성이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이 중국 진의 시황제보다 200여년이나 뒤늦게 건국했다는 것은 민족의 수치라면서 역사학자들에게 동명성왕이 진시황보다 먼저 건국한 것으로 고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실제로 북한에서는 1990년 손영종의 <고구려사1> 발간 이래 종래 기원전 37년으로 되어 있던 고구려의 건국 연대를 4주갑 끌어올려 기원전 277년으로 수정, 공식 견해가 되어 있음)


    → 아니, 근데 시황제가 진나라를 건국한 인물이 아니잖아요. 전국을 통일한 인물이지...진의 건국은 서주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이뭐병(...)

    김일성은 머리가 꽤 좋은 인물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군요. ㅡㅡ;
  • 초록불 2011/11/24 10:07 #

    원칙적으로 굔군님 말씀이 맞지만 진시황은 자기가 새 나라를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초대 황제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니까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 2011/11/24 07:0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1/11/24 10:07 #

    물량 면에서 쨉이 안 되니까요.

    그리고 학자들은 키배에 서툴러요... (먼산)
  • 백야 2011/11/24 07:56 #

    포스팅 제목대로 시원한 '주류'의 역습이군요.ㅇㅅㅇㅋㅋ
    이성규 교수의 말씀이 날카롭네요.(짜증스러움까지 느껴진달까...;;)
  • 초록불 2011/11/24 10:09 #

    저 앞의 글까지 보면 짜증 맞습니다...^^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 야스페르츠 2011/11/24 08:40 #

    푸하! 이렇게 통쾌할수가! 으하하하
  • 초록불 2011/11/24 10:09 #

    비바!
  • 사과향기 2011/11/24 09:43 #

    김일성의 직접지시가 있었다는 겁니까? 오. 이런.
  • 초록불 2011/11/24 10:09 #

    저 이야기는 황장엽의 증언이라고 합니다.
  • 강희대제 2011/11/24 10:20 #

    어떻게 보면 말이죠. 유사역사학이 학자들과 대중들의 소통을 넓혔다는 점에서 공적을 세웠다고도 할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치들이 없었으면 한국사 시민강좌 같은 대중학술지가 어떻게 나왔겠습니까?
  • 초록불 2011/11/24 10:57 #

    그런 면도 있긴 하지요. 하지만 판매량을 보면 (ㅠ.ㅠ)
  • hyjoon 2011/11/24 10:49 #

    마지막 일갈이 정말 일품이군요. '주장이 아무리 고결해도 사이비는 존중대상이 못됨 ㄳ'식이니...^^
  • 초록불 2011/11/24 10:57 #

    이런 기개를 가진 학자들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 객관적진리추구 2011/11/24 10:58 #

    이런 책이 잘 팔려야 하는뎅...ㅠ.ㅠ
  • 초록불 2011/11/24 20:15 #

    ^^
  • 소하 2011/11/24 12:19 #

    공청회 당시의 기록을 보면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다그치고 호통치는 분위기더군요. 사학과 민족주의, 독선이 결합되니 추하더군요.
  • 식용달팽이 2011/11/24 19:32 #

    책이 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한 번도 눈길을 둔 적은 없었는데, 한 번 사 보고 싶어지네요 ㅎㅎㅎ
  • 초록불 2011/11/24 20:16 #

    어느 정도 팔려야 계속 책이 나오겠죠...^^
  • 진성당거사 2011/11/24 19:53 #

    간만에 나왔군요. 조만간 보러가겠습니다.
  • 초록불 2011/11/24 20:16 #

    대체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나온 내용들을 정리한 수준에 가깝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아웃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