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바꿔가며 살아남은 용어 *..역........사..*



사실은 지금은 거의 사망 단계기는 합니다만...

뜻이 바뀌어가면서 수세대를 넘기며 살아간 단어가 있습니다.

네, 가능합니다.

그 용어는 바로 부족국가!

"부족국가"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백남운(1894 ~ 1979)이었습니다.

백남운은 1933년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백남운은 맑스를 추종하는 사회경제사가였습니다. 그는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고대노예제사회로 이행할 때 그 과도기로 원시부족국가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삼한, 부여, 초기고구려, 동옥저, 예맥, 읍루가 부족국가였다고 말했죠.

부족국가는 씨족제라는 원시공동체적 요소와 계급 형성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과도기 국가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백남운의 주장은 당장 다른 사회경제사가들에게 비판되었지요. 백남운의 후배였던 김광진(1902∼1986)은 "부족조직이나 씨족조직과 같은 원시적인 공적 제도를 모두 국가로 간주한다면 부족국가 이외에 씨족국가도 존재해야 하며, 인류는 그 발생시대부터 국가를 가지게 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해방 후 북한으로 들어가 북한사학계의 근간을 이루었는데, 북한에서는 "부족국가"라는 용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백남운의 이 용어는 남한 학계가 물려받았습니다.

1948년에 나온 손진태(1900 ~ 1950?)의 <조선민족사개론>에 "씨족이 통합된 것이 부족이며, 이 부족이 가일보 통합된 것이 부족국가이며, 부족국가 중의 몇이 강력한 연맹체를 이룬 것이 초기 왕국의 발생상태"라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손진태는 백남운의 부족국가를 더 세분화해서 "부족 -> 부족국가 -> 부족연맹왕국"이라는 세 단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손진태는 부족국가를 귀족국가의 전단계로 보아서 계급 관계를 중시했습니다. 이 점은 백남운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이후 손진태의 학설은 김철준(1923∼1989)이 이어받아 씨족공동체적 질서를 유지한 채 내부에 새로운 가부장가족이 등장한 사회를 부족국가라고 언명했습니다. 이것은 기존에 강조해오던 "계급"이라는 부분을 경시하고 "혈연"을 강조한 것으로 기존의 부족국가라는 개념과는 다른 것이었지요.

부족이라는 것은 혈연공동체이므로 "부족"에 방점을 찍으면 혈연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국가"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는 게 문제죠. 따라서 처음 백남운이 이 용어를 꺼냈을 때, 김광진이나 이청원이 비판한 것이 올바랐던 것이죠. 그러나 그런 과학적인 비판보다는 용어 자체에서 느끼는 매력에 이끌려 부적합한 개념을 보강하려다보니 오히려 더 이상해지는 현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부족국가에 대한 비판은 1971년 천관우(1925~1991)에 의해서 "성읍국가론"이 나오고 이것을 이기백(1924~2004)이 받아들여 1976년 <한국사신론>을 내놓음으로써 본격화 되었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아래 책을 대부분 참고했습니다.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 - 10점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지음/역사비평사


뭐, 늘 하는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도 "안들려, 안보여"를 시전하는 분들은 한국사란 그저 이병도의 학설을, 스승님의 학설에 반대하지 못하는 역사학자들이 계속 계승해나가고 있어서 일제식민사관 그대로라고 주장하겠지요.

글쓰다 알았지만 모두 고인들이시네요. 한국사의 세대가 변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싶군요.

잘못된 학설은 바뀝니다. 그렇게 믿든, 믿지 않든.


덧글

  • 2011/12/05 00:1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백야 2011/12/05 00:50 #

    포스팅의 내용대로 '부족국가론'을 비판하면서 등장해 후일 보다 더 엄밀하게 발전한 성읍국가론도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비판을 받는다는게...;ㅅ;(이기백 교수의 제자였던 이종욱 교수가 가장 분명하게 타겟팅비판을 했었죠 아마..)
    사실 학계의 초기국가론 논쟁의 추이만 대략적으로 훑어봐도 현재 학계의 학설들을 '이병도 학설의 재탕'이니 뭣이니 한다는게 우습죠.ㅇㅅㅇ
  • 초록불 2011/12/05 01:11 #

    성읍국가론이 비판 받는 이유도 바로 불분명한 용어 때문이죠. 성읍국가라고 하면 "성"이 필수요소가 되는데, 성이 없는 국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죠. 이 때문에 이종욱 교수는 "추장사회" -> 소국 이론을 내놓았고, 이외에도 족장사회, 읍락국가 등의 용어도 나왔습니다...^^
  • 헤겔슈타인폰데어지헬 2011/12/05 01:51 #

    뭐 초기 한국사학계에서 저런 논쟁이 일견 이해가 가는게, 고고학적 발견 성과는 부족하고 문헌 연구에 치중하는 그런 역량 부족의 상황이었던 만큼 인류학적 연구방법론 및 용어를 끌어다가 상고사를 설명할 수 밖에 없었지요.
    이기백 교수님하니 전제왕권설이 생각납니다. 이것도 무수한 비판을 받았던 학설이었죠.
  • 야스페르츠 2011/12/05 08:22 #

    아무리 생각해도 국가형성론은 카오스입니다. 볼 때마다 새롭고 볼 때마다 바뀌고 있어요. ㅠㅠ
  • 누군가의친구 2011/12/05 19:17 #

    그러고보니 역사관련 용어를 보면 초등학교적 역사책을 봤을때 기억했던 명칭이 몇년후 지나니까 상당히 바뀌어서 혼란을 잠깐 겪기도 했습니다. 하여간 용어는 학문이 발전할수록 명칭이 바뀌거나 뜻이 바뀌니 가끔 업데이트 할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아웃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