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 *..역........사..*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 10점
케이스 젠킨스 지음, 최용찬 옮김/혜안


46판 크기에 191쪽 밖에 되지 않는 책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모든 역사는 누군가를 위해 쓰여진 것이다. 여기에 중립이란 없다. 스스로 중립이라고 생각해보아야 인간은 언제나 어떤 이해에 관련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편파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역사는 이론적이며 모든 이론은 이미 일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입장을 만들고 있다. - 위 책, 188쪽

입장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집단은 갈등과 고통이 없는 깔끔한 역사를 원하는가 하면 또 어떤 집단은 경건함을 주는 역사를 원한다. 또 다른 집단은 검소한 개인주의를 구현하는 역사를 원한다. 게다가 혁명을 위한 전략과 전술을 제공해줄 역사를 원하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반혁명의 근거를 제시해 줄 역사를 원하는 집단도 있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이렇게 보면 혁명가가 원하는 역사는 보수주의자가 원하는 역사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략) 결국 모든 사람이 다같이 동의할 수 있는 역사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위 책, 71쪽

역사는 누구를 위해서 기술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객관적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란 단지 역사가의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를 실재하는 객관적 역사라고 믿어왔는데, 해석을 떠난 객관적인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객관적인 역사가 없다면 역사학은 대체 왜 존재한단 말인가? 아니, 그것을 떠나 과거에 일어난 일을 탐구하는 역사학이 "객관적 실체"가 없는 상상을 연구한다고 말하는 게 가능한가?

정확한 '과거의 일'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1914년과 1918년 사이에 소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알고 있다. (중략)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은 '진실하다'는 점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역사가가 생각하는 좀 더 큰 쟁점 안에서는 그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역사가는 각각의 사실(개별적인 사실)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역사가가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이 일어났는가만이 아니라 그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고, 또 왜 일어났는가, 그리고 당시 상황에서 그 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나아가 그것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다. 역사가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일을 자신의 과업이라고 스스로 설정해 놓았다. - 위 책, 105~106쪽

저 말은 사학과에 들어가서 첫 수업에서 들은 말과 거의 같다. 연대는 중요하지 않다. 역사가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일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 사실을 무시해야 한다고 배우지는 않는다. 물론 저자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연대를 나열한 사건은 마치 구슬 서 말처럼 의미가 없으며, 그것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리고 그 보배는, 절대무비, 유일무일한 것이 아니라 마치 레고 블록처럼 그것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형태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 이전의 역사학은 하나의 진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었다는 것.

지식이란 항상 권력과 연관되기 때문에 사회구성 안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쥔 사람들은 자기 이해에 부합하는 '지식'을 최대한 퍼뜨리고 정당화시키려 한다. - 위 책, 87쪽

즉, 우리가 아는 기존의 '역사'는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서 쓰인 역사라는 이야기다. 자, 이런 이야기는 유사역사가들이 늘 주장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한국을 지배하는 권력층은 친일파들이고 그래서 그들을 위해 쓰인 역사는 친일식민사학이라는 것도 이와 매우 비슷하다.

과연 저자의 주장은 이런 것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국사교과서를 본다면 그것이 기득권층(여기에 친일을 집어넣는 것은 자폭이다)의 이익을 위해 이리저리 짜깁기 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고, 이런 점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비판의 칼날은 이곳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간다면,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이야말로 인종주의에 기초한 국수주의자들 위해 쓰인다는 점을 명백히 할 수 있다.

저자는 "모든 역사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인위적인 구성물"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이 점을 인정하고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가는 이데올로기의 입장을 가지고 과거를 써내려가야 하며, 역사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해체될 수 있는 그저 쓰여진 담론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 위 책, 181쪽

즉, 역사가라 해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역사 해석"을 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주장을 권력층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추정을 벗어나지 않는 객관성을 이용하여 표면상 견고히 규정된 '순수한' 역사의 경계를 그을만한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대안적 읽기를 만드는 자유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것은 곧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지배적인 담론들은 원치 않는 이러한 읽기들을 폐쇄시키려고 한다. - 위 책, 182쪽

그렇다면 역사는 과연 무엇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역사를 그저 과거에 대한 진실한 지식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학문분야로 고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마음을 그대로 갖고 과거를 깊이 탐구하고 그것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적절하게 재조직하는 담론적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 - 위 책, 184쪽




저자의 결론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이 왜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에 의문을 가지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는 해석이라는 주장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회의주의가 그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냉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위 책에서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저 책은 제일 밑바닥에 있을만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하긴 그것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니 이 책에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불평할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덧글

  • 찬별 2012/03/11 21:19 #

    인용문만 봐서는 제 관점과 95% 이상 비슷한 것 같군요.
  • 초록불 2012/03/11 21:22 #

    포스트 모더니스트 찬별!
  • Niveus 2012/03/11 21:46 #

    주관이 섞일수밖에 없지만 그 속에 담긴 사실을 추론해낼 능력을 배양하는게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 초록불 2012/03/11 22:27 #

    그걸 "해석"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 야스페르츠 2012/03/11 22:30 #

    사실로서의 역사와 해석으로서의 역사.... 솔직히 저는 아직 해석으로서의 역사까지는 범접치 못할 것 같습니다. 사실로서의 역사를 놓고도 이전투구하는 중이니... ㅡㅡ;;;
  • 초록불 2012/03/11 22:35 #

    저자의 이야기는 사실로서의 역사를 놓고 이전투구하는 이유가 "사실은" 해석으로서의 역사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 야스페르츠 2012/03/11 22:41 #

    흠... 그런데 제가 생각컨대 아무래도 이데올로기적인 해석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부분은 현재와 가까운 역사라는 점이 걸립니다. 서양사의 경우에는 이데올로기의 기원으로 고대 그리스나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해석"의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상대적으로 동양의 역사는 그러한 해석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편이니까.......라고 생각해보니 저 동북공정과 탐원공정이 있군요.... ㅡㅡ;;;
  • 초록불 2012/03/11 22:44 #

    뭐, 저 책에는 서양 철학은 모두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나오니...
  • 조욱하 2012/03/11 22:49 #

    확실히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이군요.
    권력이 지식을생산하고, 지식이 권력을 생산하는 지식-권력의 생산적 관계는 철학자 미셸 푸코가 날카롭게 지적하는 부분이지요. 거기서 권력은 독점이 가능한 단순한 의미의 권력 개념이 아니지만요.
  • 셔먼 2012/03/12 00:06 #

    일단 역사가 지니는 보편적 진실은 인정하되, 해석자들의 주관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이군요.
  • 초록불 2012/03/13 00:10 #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은 보편적 진실이라는 말에는 권력의 함정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 잠꾸러기 2012/03/12 07:59 #

    교과서에서 본 랑케,카 이런 사람들의 설명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책도 계속 읽어보고 단편적이지만 지식이 쌓이다보니 그 관점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때가 생기네요.
  • 초록불 2012/03/13 00:11 #

    카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상태지요... 저는 아직은 카의 입장에 더 점수를 줍니다.
  • 루드라 2012/03/12 09:32 #

    전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 자체가 지적 사기꾼들로 밖에 안 보여서 말이죠.
  • 초록불 2012/03/13 00:11 #

    확실히 상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불가지론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2/03/12 23:11 #

    뭐, 아주 예전에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이라면서 분란을 일으켰다가 퇴갤한 누가 생각납니다만.
  • 초록불 2012/03/13 00:12 #

    그런 일이 있었던가요... 기억이 날 것도 같고...
  • 역사관심 2012/03/13 05:22 #

    역사쪽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을 이렇게 본 분이 어찌보면 토마스 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철학자가 쿤의 패러다임이론을 전개시키면서 모든 과학자는 중립적일수 없고, 종교적이다 라고까지 말했지요... 곱씹어볼 말 같습니다.
  • 초록불 2012/03/13 15:21 #

    중립이라는 개념이 문제가 된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황희 정승은 실제할 수 없다는 뭐 그런...
  • 굔군 2012/03/13 12:49 #

    분명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자칫 "결국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이나, "모든 역사 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회의주의로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도 "그래서 결론이 뭐냐"는 거죠. 그러다 보니 "역사란 내가 상상해서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불가지론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어쩌면 불가지론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는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확실히 답이 없을 경우에는 불가지론밖에 답이 안 나오는 문제도 있으니까요.
  • 초록불 2012/03/13 15:22 #

    이에 대한 대답은 건강한 회의주의인데, 그 한계가 어디인가라는 문제가 남고, 그것은 또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실천적 과제로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 2012/03/13 15:46 #

    의외로 제 주위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뭔지나 알까 싶은 사람(일반인 분)들이 위 글 비스무레한 주장들을 많이 하더군요.(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462719.html <-이것도 그런 예시 중 하나일 듯 하고요.) 결국 극단적 불가지론과 극단적 회의주의로 빠져서 역사학에 대해 상당한 적대감을 보이더라고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철학에 대한 이유없는 적대감과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지만.
  • 초록불 2012/03/14 10:50 #

    해외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각이 있는 걸로 압니다. 그런 쪽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