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에 대한 어떤 이야기 *..역........사..*



쓰시마와 조선의 관계에 대해서, 히데요시는 조선은 지금까지 "쓰시마의 별장에 지나지 않는다"(<구주어동좌기九州御動座記>는 1587년, 히데유시의 규슈 출진 시 기록. 필자는 기록관이었던 오무라 유코[大村由己]라고 한다), 즉 조선은 소 씨에게 복속되어 있다고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류큐가 시마즈 씨에 종속되어 있다고 본 히데요시의 시마즈·류큐 관계에 대한 이해와 축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측의 사료는 그와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나 있다. 당시, 조선 영의정 류성룡은 쓰시마와 조선의 관계에 대해서 "쓰시마의 태수 소 모리나가[宗盛長]는 대대로 섬을 지키며 우리나라를 섬겨왔다."(<징비록>)고 기록하고 있다. - 기타지마 만지[北島万次],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경인문화사, 19쪽








이것은 마치 외대와 경희대가 서로의 대학을 지칭하는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먼산)


한 구절 더 옮겨놓으면... 삼포왜변 이후 상태가 안 좋았던 쓰시마는...

1555년(명종10), 고시마[五島]를 근거지로 하는 오쵸쿠[王直]의 큰 왜구 떼가 조선 전라도 방면으로 행동을 개시했다(을묘왜변). 이때를 절호의 기회로 본 소 씨는, 이 정보를 조선 측에 전했다. 이를 통해, 1557년(명종12) 소 씨는 조선으로 30척의 세견선을 보낼 수 있게 되고(정사조약) 조선 교류권을 독점하게 된 것이다. - 위 책, 23쪽

덧글

  • 역사관심 2012/03/17 14:58 #

    조선이 대마도의 별장이라...꽤나 큰 배꼽이군요. 무슨 그런;
  • Warfare Archaeology 2012/03/17 15:55 #

    그러게나 말이군요. 처음 듣는 표현인데...참 일본놈들 뻥카는...
  • 굔군 2012/03/17 14:58 #

    뭔가 유럽의 봉건제도 하에서의 이중 가신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이쪽 나라도 섬기고, 저쪽 나라도 섬기고...)
  • rumic71 2012/03/17 15:24 #

    거의 비슷했습니다.
  • Niveus 2012/03/17 15:47 #

    소씨는 필요할때마다 여기 붙고 저기 붙고 했었죠.
    거의 이중봉납이라 봐도 좋을 지경 -_-a
  • 시오리 2012/03/17 17:10 #

    대마도 어제 일본지받으러 갔다가 일본대사관쪽도보니 뜬금없이있는 대마도 반환하라는 플랜카드.... 대마도의 2중 외고정책이 참ㅇ여러가지로 곤란하게하는것 같네요..
  • 셔먼 2012/03/17 17:50 #

    누가 풍신수길 아니랄까봐 과장센스 하나는 훌륭하군요(...).
  • Earthy 2012/03/17 18:17 #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짜 해외에 대해서는 완벽하리만큼 무지했군요.
    뭐 중국 정발이 진심으로 가능한 거리 믿고조선에 출병을 하기도 했으니...
  • Crescent Moon 2012/03/18 00:45 #

    역시 일본놈들의 구라실력이란...
  • 리리안 2012/03/18 08:08 #

    외대와 경희대의 관계가 궁금해지는군요...(응?)
  • 누군가의친구 2012/03/18 10:00 #

    만약 조선과 일본이 제대로 된 전면전이 터질경우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피를 보는게 쓰시마라서 소씨가 어떻해서든 회피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 양측에 좀 그런 감이 있었죠.
  • 허안 2012/03/19 11:02 #

    제가 외대출신입니다. 외대사람들은 경희대를 정원이라 부르죠(경희대 캠퍼스가 서울의 모든 대학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거든요) 반면에 경희대분들은 외대캠퍼스를 화장실 뭐 그런 걸로 표현했는데요(외대서울캠퍼스는 2개 정도 대학을 제외하면 가장 협소합니다).

    근데 초록불님 덕분에 졸지에 대마도 사람이 되었네요.^^;
  • 초록불 2012/03/19 11:43 #

    어이쿠,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제 모교도 외대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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