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교과서가 전하는 기자조선의 역사 *..역........사..*



1910년 11월 일제는 50종의 책을 금서 처분하고 압수했는데, 이것이 잘 알려진 20만권 분서설을 낳았다. 최근 나는 이때 금서처분되었던 책 중에서 기자조선의 진실을 알리는 내용을 발견했다. (진짜?)

이 책은 대한제국 시절 교과서로 사용된 책이다. 대체 모조리 분서해버린 이 책이 어떻게 아직도 전해지고 있는 거냐!

국민교육회에서 1906년 6월에 편찬한 책으로 책의 제목은 이렇다.

<보통교과普通敎科 대동역사략大東歷史略>- 총 222쪽(누친님의 콩댄스?)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군조선-기자조선-마한-신라(부附 고구려, 백제)-고려로 이어진다. 조선은 다루지 않았다.

책을 펴낸 국민교육회는 1904년 헤이그 밀사 사건의 이준 등이 결성한 단체로 이 책이 나올 무렵의 회장도 이준이었다. 국민교육회는 1907년에 흥사단에 흡수 합병되었다.

기자조선 이야기지만 권1 단군조선에 있는 이 부분은 읽고 가자.

신인神人이 태백산(현재 영변 묘향산)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와 성덕을 베푸시니 국인이 추존하여 왕으로 삼았다. 왕호를 단군檀君이라 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 이때가 대한 개국 기원전 3727년 무진년이었다.

환웅과 웅녀가 등장하지 않고, 환웅과 단군을 동일시하고 있다. 또한 내려온 곳이 백두산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그렇게 여기고 있는 묘향산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정신나간 조선대륙설 신봉자들은 묘향산을 중국에서 찾아야 할 듯...)

대동역사략의 기자조선기箕子朝鮮紀를 살펴보자.

1대 문성왕 (B.C.1122~1083)
기묘 원년에 단군의 후손이 부여로 천거하였기 때문에 왕위가 비게 되어 국인이 자서여를 추촌하여 왕으로 삼았으니, 바로 태조 문성왕이었다. 자서여는 지나 상나라(상이 같은 동이민족이라는 사람들 꺼지삼)의 종실이다. 상왕 주紂가 무도하여 나라를 잃게 되자 남녀 5천명을 거느리고 조선에 들어와 살았다. 이때가 대한 개국 기원전 2513년이다.

문성왕은 장안(=평양)에 도읍했고 재위 40년, 연수 93세에 사망. 평양성 북쪽 토산兎山에 묻혔다. 태자가 왕위에 올랐다.

2대 장혜왕 (B.C.1082~1058)
원년에 종묘를 세웠다. 선왕이 죽은 다음해가 원년으로 되어 있다. 늙은 뒤에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3대 경효왕 (B.C.1057~1031)
4대 공정왕 (B.C.1030~1001)
5대 문무왕 (B.C.1000~973)
역법, 형률, 도량형을 정비했다.

6대 태원왕 (B.C.972~969)
아들이 없어서 조카가 왕위를 이었다.
7대 경창왕 (B.C.968~958)
8대 흥평왕 (B.C.957~944)
동전을 최초로 주조하였다.

9대 철위왕 (B.C.943~926)
10대 선혜왕 (B.C.925~897) - 왕이 죽은 해는 갑자년인데, 갑오년으로 오기했다.
양현원養賢院을 설치하여 민간에서 뛰어난 자를 뽑아 육예를 익히게 했다.
직언경直言磬을 궁궐문에 달아 백성의 고충을 들었다.

11대 훤양왕 ( (B.C.896~844)
53년간 재위에 있었다. 원년에 전염병이 돌았다.

12대 문혜왕 (B.C.843~794)
50년간 왕위에 있었다.
윤환법(환곡)을 시행했다.
오교장五敎長을 주군에 두어 오륜을 가르치게 했다.

13대 성덕왕 (B.C.793~779)
가뭄이 들어 왕이 백악白岳에서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했다.
음사淫祀를 금지시켰다. (자기는 기우제를 지내고?)

14대 도회왕 (B.C.778~777) - 여기서도 갑자년을 갑오년으로 오기했다.
후사가 없어 조카가 왕위를 이었다.

15대 문렬왕 (B.C.776~762)
처사 감가찰甘加察을 불러 상대부로 삼고자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아 자문만 받았다.

16대 창국왕 (B.C.761~749)
원년 정월에 태백성이 하늘에 지나갔다. (태백주현인 모양이니 이제 어느 천문학자가 계산해보고 이 사서의 진위를 가리겠지?)

17대 무성왕 (B.C.748~723)
수사水師를 두고 선박을 수리했다.
대동강 물이 범람했다.

18대 정경왕 (B.C.722~704)
원년 5월에 일식이 들어 낮에도 어두웠다. - 식분이 확실한 일식이다! 누구든 계산해보셈!
13년(B.C. 710)흉년이 들어 쌀을 제나라와 노나라에서 사서 백성들을 구제했다.

19대 낙성왕 (B.C.703~676)
태묘에 악장을 정했다.
요망한 무당 영운鈴雲이 동해 용왕의 딸이라 하며 백성을 미혹했다. 저자거리에서 참수했다.

20대 효종왕 (B.C.675~659) - 병오년을 병자년으로 잘못 썼다.
제양원濟養院을 두어 환과고독을 보살피게 했다.
뇌물죄에 대한 법률을 만들어 관리가 나랏돈 백만을 범하거나 백성 재산 150만을 빼았으면 본인은 죽이고 가족은 변방으로 보내게 했다.
박사관博士館을 두어 군국의 일을 담당하게 했다.
9년(B.C.667)에 지나 제나라의 사신 공손각公孫恪이 조회했다.
12년(B.C.664)에 북적 추장 길리도두吉利都頭가 조회했다.

21대 천노왕 (B.C.658~635)
방사 백일청伯一淸을 총애하여 국사로 삼았다.
구선대求仙臺를 흘골산紇骨山(평북 성천)에 세웠다. 화려한 무늬가 있는 돌로 높이 5백 장으로 만들었다.
17년(B.C.642)에 사신을 보내 제나라 제후 소백小白(제환공을 가리킴)의 죽음을 조문했다.
천노왕이라 자칭하고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22대 수도왕 (B.C.634~616)
원년에 백일청을 국태사로 삼았다. 신하 염서적冉西赤이 백일청의 전횡을 고하자 왕이 진노하여 염서적은 전성氈城(함북 온성)으로 달아났다.
5년(B.C.630) 9월 1일에 일식이 있었다. - 또 나왔다! 일식!
천노왕이 금단약을 먹고 조울증에 걸려 죽었다.
11년(B.C.624)에 도사관을 설치하고 신산神山을 패강(=대동강)에 만들었다.
15년(B.C.620)에 상주국 서문장수西門長壽가 백일청을 죽이려다 발각되어 처형됐다.
19년(B.C.616)에 방사 노용盧龍을 동해에 보내 신선을 찾게 했다. 금단약을 먹고 번민이 일어나 죽었다.

23대 휘양왕 (B.C.615~595)
원년에 백일청과 노용을 죽였다.
17년(B.C,599)에 나라에 돈이 없어 가옥과 장시에 세금을 거두니 민심이 떠들석했다.

24대 봉일왕 (B.C.594~579)
원년에 숙부 정靜을 상주국으로 삼았다.
6년(B.C.589)에 공손강公孫康이 상주국 정을 죽였다.
10년(B.C.585)에 공손강이 왕을 높여 봉일왕으로 삼고 스스로 섭정태백이 되었다.
16년(B.C.579)에 공손강이 왕을 별궁으로 옮겼고 왕은 근심과 분노로 죽었다. 후사가 없었는데 하대부 남궁제성南宮齊成이 공손강을 설득해 조카 화의후和義候 근僅을 옹립했다.

25대 덕창왕 (B.C.578~561)
원년에 남궁제성에게 밀지를 내려 공손강 처치 계획을 세웠다.
2년(B.C.577)에 공손강과 그의 무리를 모두 죽였다. 아형부阿衡府를 설치하고 남궁제성을 태아형으로 삼았다.
18년(B.C.561)에 순행하다가 요원遼原(평남 덕천)에서 죽었다.

26대 수성왕 (B.C.560~520)
원년에 하이蝦夷(=아이누족)의 훼공군후리(卉公攈厚釐)가 와서 공물을 바쳤다.
27년(B.C,534)에 존현관尊賢館을 설치하고 정양定養(=평북 곽산)의 현사 웅국진熊國珍을 불러 태사로 삼았다.

27대 영걸왕 (B.C.519~504)
원년에 연삭連朔(=평북 태천군) 태수 황이장媓彛長이 탐관오리 짓을 하여서 도읍으로 불러들여 삶아죽였다.
15년(B.C.505)에 북호北胡(=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가 쳐들어오자 직접 출정하여 무찌르고 장백산 밖 천여 리 영토를 개척했다.
16년(B.C.504)에 태자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되었다.

28대 일성왕 (B.C.504~487)
원년에 향헌장鄕憲長을 주군에 설치해 효도와 공경, 농업, 상업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했다.
3년(B.C.501)에 상왕이 북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포천抱川(평북 의주) 행궁에서 죽었다.

29대 제세왕 (B.C.487~466)
10년(B.C.477)에 지나 제나라, 노나라와 밀무역을 금지했다.

30대 정국왕 (B.C.465~433) - 재위 기간이 33년인데 20년으로 잘못 기재되었다.
16년(B.C.450)에 진언관進言舘을 설치. 정직한 자를 수십 명 선발해서 간쟁하게 했다.

31대 도국왕 (B.C.432~414)
7년(B.C.426)태안太安(=평남 자산)의 우화충宇和冲이 반란을 일으켜 도읍에 들이닥쳤다. 왕은 배를 타고 혈구穴口로 가 잠시 머물렀다.

아는 이름이 하나 나왔다. 우화충!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43세 단군 물리勿理 36년조 기사.

36년(B.C.426) 을묘에 융안의 사냥꾼[獵戶] 우화충于和冲이 장군이라 자칭하며 무리 수만 명을 이끌고 서북 36군을 함락하였다. 단군 물리가 군사를 보내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이해 겨울에 적들이 도성을 에워싸고 급박하게 공격하므로 단군 물리가 측근 궁인들을 거느리고 종묘와 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배를 띄워 해두海頭로 내려간지 얼마 안 되어 붕하였다.


9년(B.C.424)에 왕의 군대가 도읍을 수복하고 우화충을 죽였다.

<환단고기>에서는 이후 백민성 욕살 구물이 우화충과 싸워 B.C.425년에 그를 죽인 것으로 나온다. 그후 구물은 44세 단군이 되고 나라 이름도 대부여로 고친다. 이로써 이 우화충의 반란 사건이 이런 대한제국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사건을 패러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이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알아내야 하겠지만... 미리 이야기해두겠지만, 이런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좋아할 바보도 분명 있을 거다.

32대 혁성왕 (B.C.413~386)
11년(B.C.403)에 북호 추장 목수길강穆修吉康이 공물을 바쳤다. 지나 연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왔다.

33대 화라왕 (B.C.385~370)
6년(B.C.380) 지나 연나라 사람이 만번한滿番汗(중국 성경성盛京省=요동)에 쳐들어오자 장수 묘춘장苗春長이 크게 무찔렀다.

다시 아는 이름이 나왔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45세 단군 여루 17년(B.C.380)의 기사에 나온다.

17년 신축에 연나라 사람들이 변군을 침범하므로 수장守將 묘장춘苗長春이 이를 쳐부수었다.

묘춘장으로 나오는 이름을 묘장춘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


34대 설문왕 (B.C.369~362)
원년에 박문관博文舘을 설치하여 선비와 백성 가운데 재덕을 갖춘 자 3백 명을 선발하여 태자를 모시고 공부하게 했다.
5년(B.C.365)에 지나 연나라 장수 진개秦介가 2만의 기병을 거느리고 갑자기 요서에 쳐들어와 변군을 연달아 함락시켰다. 상군대부上軍大夫 위문언衛文言이 연나라 군대를 오도하五道河(중국 요동 양산성 북쪽)에서 맞아 공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6년(B.C.364)에 위문언이 연나라 군대를 연운도連雲道(=요하 입구)에서 맞아 공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연나라 장수 진개를 활로 쏴 죽이니 나머지 무리들은 도망가버렸다. (지못미 진개... 여기서 활에 맞아 죽었다니...)

이 내용도 <환단고기>에 삽입되었다. 단군 여루 32년조에 나오는데 장군 이름은 우문언于文言으로, 연운도는 連雲島라는 섬으로 바뀌었고, 연나라 장수는 이름은 나오지 않은 채 사살했다고만 나온다.

35대 경순왕 (B.C.361~343)
16년(B.C.346)에 북호 추장 액니차길한厄尼車吉汗이 좋은 말 2백필을 바치고 연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했다. 왕은 하군대부 신불사申不死에게 보병 1만과 호인 기병 1천으로 연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상곡성(요동에 있음)을 함락시켰다.
19년(B.C.343) 연나라가 화친을 청해 허락했다.

이 내용도 <환단고기>에 들어갔다. 단군 여루 47년(B.C.350)에 북막추장 액니차길厄尼車吉이 내조해서 연을 치자고 청했고 번조선 장군 신불사申不私가 상곡을 쳐서 빼앗았고 54년(B.C.343)에 연나라와 화친했다. 연도가 조금 틀리고 사람 이름도 조금 고쳤을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36대 가덕왕 (B.C.342~316)
25년(B.C.318)에 연후 쾌噲(재위 B.C.321~316)가 무도하여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대부 왕례王禮가 간하여 그만두었다.

이 사건은 위략에 나오는 그 유명한 것이다. 위략에는 '대부 예'라고만 나온다.

37대 삼로왕 (B.C.315~291)
원년에 상주국 왕림王霖(왕례의 아들)을 지나 주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18년(B.C.298)에 북호 니사尼舍가 번랑翻郞(=악공)을 바쳤다.
25년(B.C.291)에 태자에게 전위했다.

38대 현문왕 (B.C.290~252)
9년(B.C.282)에 단군 사당을 백악에 세웠다.
39년(B.C.252)에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 즉위하였다.

39대 장평왕 (B.C.251~233)
4년(B.C.248)에 북호 추장 아리당부阿里當夫가 연나라 정벌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자 조공을 끊었다.

이 대목도 <환단고기>에 있다. 47세 단군 고열가 48년. 물론 거절의 주체는 고열가. 북호는 북막北漠으로 바뀌었다.

19년(B.C.233)에 북호 정벌 친정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40대 종통왕 (B.C.232~222) - 위략에 나오는 조선왕 부否가 이 사람이다.
4년(B.C.229)에 북호가 쳐들어와 영주寧州(=만주) 태수 목원등穆遠登을 죽이고 재물과 부녀자를 약탈해갔다.

이 대목도 <환단고기>에 있다. 북부여기 상편 단군 해모수 11년기사다.

11년 임신에 북막 추장 산지객륭山只喀隆이 영주를 덮쳐서 순사巡使 목원등을 죽이고 크게 노략질하고 돌아갔다.


41대 애왕 (B.C.221~194) - 위략의 준왕이다.
20년(B.C.202년)에 지나 한나라가 군사를 청하자 보명 1만을 보내 한나라 군과 함께 초나라 국경까지 진격했다. (202년은 초패왕 항우가 패배하고 자살한 해) 연나라에서 항복해온 위만에게 박사를 제수하여 서쪽(지나 성경성)을 지키게 했다.
28년(B.C.194)에 위만이 배반하여 도읍을 습격했다. 왕은 금마군(전북 익산)으로 도망쳐서 그곳에서 죽었다. 태자가 즉위하여 국호를 마한으로 고쳤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환단고기에 있지만 특기할 내용은 아니므로 생략한다.






이 책을 지은 사람은 누구인가? 학계는 이 책을 지은 사람으로 유길준의 동생 유성준(1860~1934)을 지목한다.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도지사, 강원도 도지사를 지낸 거물 친일파다.

이런 거물 친일파가 지은 대한제국 교과서. 그리고 이것을 금서로 만든 조선총독부...
이 시기의 복잡성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이 뒤로 이어지는 <마한기>에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미 글이 너무 긴 관계로 패스. 이 책은 시중에서 구해서 볼 수 있다.

근대역사교과서 3 - 10점
국민교육회 지음, 박광연 옮김/소명출판


번역본에 오탈자가 조금 있는데, 원문이 뒤에 영인되어 있으므로 이상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지적한 오탈자는 원문이 틀린 것이다.

[추가]
hyjoon님의 트랙백으로 이종휘의 <동사>에서 '기자세가' 편을 읽어보았는데, 대박이다...^^

위서의 일반적인 형태를 그대로 쫓아가고 있다. 기자세가에 나온 왕명을 따온 것 말고 뭐 남는 것이 없다. 심지어 역대 왕들의 재위기간도 틀린 상태. (모두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왕명도 조금씩 다른 경우가 있는데, 비슷한 한자의 경우는 그렇다치더라도 (誼와 諠, 微와 徽, 淸과 靖...이 서로 다른 글자다. <동사>의 경우는 원본을 보지 못해서 디지털화 할 때 생긴 오탈자일수도 있다.) 逸泯王(동사)이 逸聖王(대동역사략)의 경우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왕의 경우도 哀平王(동사)과 哀王(대동역사략)으로 서로 다르다.

그외에 사건이라고 할만한 것들은 모두 빠져 있다. 따라서 환단고기에 들어간 사건들의 정체는 아직 원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책이 원전일 수도 있고...

덧글

  • 즈라더 2012/04/01 16:10 #

    오.. 재밌다..! 하면서 보다가 막판에 친일파 크리..-_-;;
    파고 들면 파고 들 수록 매력넘치는 환단고기의 뿌리..
  • 초록불 2012/04/01 16:17 #

    양파도 이런 양파가 없어요...^^

    기자조선에 대해서는 족보가 참조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보았는데,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2012/04/01 16:5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2/04/01 16:58 #

    이쪽 세계도 광대하답니다...^^
  • 뜨신쌀밥 2012/04/01 17:27 #

    마치 어두운 터널에서 손끝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기어가는 느낌이군요;;; 영영 미스테리로 남을듯;;;
  • 초록불 2012/04/01 17:43 #

    좀 뒤엉켜 있기는 해도 그럴 정도는 아닐 겁니다...^^
  • 아무것도없어서죄송 2012/04/01 17:33 #

    요즘 이 밸리 환빠들이 점령했더군요 ㅠㅜ
  • 초록불 2012/04/01 17:44 #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 파랑나리 2012/04/01 22:23 #

    거물급 친일파가 쓴 책을 조선총독부가 금서로 지정한 건 아이러니네요. 아마도 서로 손발이 안 맞아서 그런 걸 겁니다. 그나저나 이것 참 뭐랄까 내용이 아슫흐랄하네요.
  • 초록불 2012/04/02 14:30 #

    여러가지로 흥미롭습니다...^^
  • 굔군 2012/04/02 03:17 #

    저 계보는 인터넷에서도 떠돌아 다니는 걸 많이 봤습니다만, 대체 누가 지어낸 것일지...ㅎㅎ
    뭐, 아무래도 기자의 후예를 자처하는 청주 한씨나 태원 선우씨, 행주 기씨 족보가 원출전이겠죠? 이율곡의 <기자실기>에도 이미 실려있었던 것 같으니...

    위만조선과 한사군을 언급하지 않고 마한으로 정통성이 이어진다고 서술한 걸 보면, 저땐 이미 삼한정통론이 대세였나 봅니다. 이것은 실학의 영향...
  • 초록불 2012/04/02 14:31 #

    기자실기에 있었던가요? 요즘은 영 기억력이...
  • 2012/04/02 09:5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2/04/02 14:31 #

    ^^
  • 슈타인호프 2012/04/02 11:27 #

    혼자 지어낸 것일지 아니면 집단창작인지 혹은 뭔가 참고한 전적이 있는지가 제일 궁금하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족보를 참조했다면 그것 나름대로 누대에 걸친 집단창작이 될 것 같습니다만.
  • 초록불 2012/04/02 14:31 #

    몇가지 본 것이 분명히 있는데 기억이 안 나는 중입니다. 늙었나봐요... (먼산)
  • Leia-Heron 2012/04/02 17:59 #

    역사를 이은 설덕질...(?)
  • 게렉터 2012/04/02 12:04 #

    "대동역사략"이니까, "대동역사"의 "략" 버전으로 나온 것이리라 생각 합니다. 본문 중에 있는 기자조선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 추인 정교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대동역사"에도 실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동역사도 대동역사략 보다 한 몇년 더 빨리 나온 것인데, 대동역사에는 서문을 비롯해서
  • 초록불 2012/04/02 14:33 #

    대동역사에서 본 기억이 없어서... (그런데 제 기억력 요새 못 믿겠더라고요.)

    대동역사라는 것이 그냥 우리나라 역사라는 뜻일수도 있고, 다른 자료를 미처 찾아보지 못한 상황이라서 이 책에만 의지해서 써놓았습니다... (무책임)

    시간 날 때 도서관이라도 뒤져야 정확하게 알 것 같습니다.
  • 게렉터 2012/04/02 12:05 #

    인용서목이나 앞뒤 자료가 좀 더 있으니까 대동역사를 파보면 이 자료의 근원에 대해서 좀 더 잘 추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마에스트로 2012/04/02 14:00 #

    개인적으로 이 왕계가 사실이었으면 하는 바램이....ㅠㅠㅠㅠ
  • 초록불 2012/04/02 14:33 #

    ^^
  • 잠꾸러기 2012/04/02 14:40 #

    환머시기 그책도 결국 공편저쯤 될듯ㅋㅋ
    고구려왕들 초기 계보도 들쭉날쭉인데 그 훨씬 윗대가 너무나 일목요연이란것 자체가 어떤 의도의 냄세가 납니다. --;;
    아마 고구려나 백제가 당에게 망한게 아니었다면 성리학자들이 고구려 백제버전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초록불 2012/04/02 21:43 #

    그래도 이런 책을 환단고기에 비하는 건 너무 욕보이는 거죠...^^
  • 셔먼 2012/04/02 23:51 #

    이유립의 환단고기보다 좀 더 그럴싸하군요. 물론 판타지소설 설정집이라는 것만큼은 변함없지만요.
  • 초록불 2012/04/03 17:33 #

    ^^
  • 굔군 2012/04/03 16:46 #

    근데 저런 지명들의 위치는 직접 비정하신 건가요?

    저기에 나오는 기사들이 환단고기에도 거의 그대로 흡수된 것을 보면, 이유립이 창작을 하면서 조선말의 족보 같은 자료들도 이것저것 참고했던 모양입니다.
    이천 서씨 족보의 내용도 짜집기한 것을 보면 말이죠. ^^;;
  • 초록불 2012/04/03 17:33 #

    위치는 이 책에서 비정한 것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2/05/16 15:31 #

    초록불님이 지명을 모두 체크해 놓으시기는 했지만...다소 흥미로운 점이 있네요. 지명이 초기에는 서북한 지역을 벗어나지 못 하다가 갑자기 후기에 와서 만주-요동지역까지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초반에 나왔던 서북한 지명은 오히려 안 나오고요.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흐음~^^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아웃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