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관점 *..만........상..*



홀로코스트, 남경대학살과 같은 비인간적인 범죄행위를 연구하다 보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회의가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일을 그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힘들 때가 많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것에 소속되어 있게 마련이고 -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 소속이 없는 경우에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속이 정의되면, 그 소속에 따라 적과 아군을 나누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작게도 또는 크게도 나타난다.

가령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는 사이에도 NL과 PD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같이 밥을 먹지도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고, 때문에 한쪽에서 진행하는 일에는 무조건 반대하거나 불참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둘 사이에서 대의를 위해서 단합하자는 말을 했다가 양쪽에서 공격 당한 경험도 있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행한 주체에 대한 이런저런 분석이 이루어진다. 그 분석이 인간이라는 관점을 벗어나 그가 속한 소속으로 발전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때로 이런 분석이 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가 없는 일 사이에 얼토당토한 선을 그어 억지춘향을 만드는 일도 종종 본다.

그런 억지춘향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높이기 위함이다. 즉 자기들의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적대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의'라는 포장 위에 올라가면 그 거짓을 파헤치기가 난망해진다.

어쩌면 대의를 위해 이질적인 집단들이 단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함정에 걸려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하나의 관점 - 인간이라는 관점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휴머니즘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 않다.

덧글

  • 천하귀남 2012/04/06 22:34 #

    대의를 위해 사람잡자고 드는 얼치기가 제일 무섭지요.
  • 초록불 2012/04/06 23:42 #

    그게 확신범이 되면 더 무섭지요...
  • Niveus 2012/04/06 22:49 #

    대의인지도 의문이지만 요새 보면 국수주의가 무서울지경이죠.
    일본 가라앉아라 중국 무너져라 하는거 보면 -_-;;;
    전 인류의 1/4보고 죽으라고 디스하는 멋진 광경을 볼수 있으니;;;
    힛총통이나 강철의 대원수따위 쌈싸먹을 기세(;;;)

    앞문단 보고 생각난건데 전 남경+홀로코스트+동부전선을 스트레이트로 공부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는줄 알았죠.
    ...한동안 인간불신이었음;;;
  • 초록불 2012/04/06 23:42 #

    경험이 있으시군요...
  • Niveus 2012/04/06 23:45 #

    ...사실 크리티컬은 동부전선사였죠 -_-;;;
    인간이 아닌 짐승들이 활보하는 지상의 지옥경이란 말이 딱이었;;;
  • 소하 2012/04/07 00:39 #

    조직의 쓴 맛(ㅡ.ㅡ)
  • 초록불 2012/04/08 11:24 #

    흐미..
  • 역사관심 2012/04/07 00:47 #

    요즘은 규모가 작은 아침뉴스만 봐도 인간성에 대한 회의가 들곤 하더군요. 묻지마부터 초등학생 발에 걸렸다고 폭행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뭔가 근본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 다 돌리는건 말도 안되고) 해결을 한국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시점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살벌한 영화 그래서 별로 안좋아하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공공의 적 1편 나왔을때만 해도, 저런 뭐같은 인간이 실제로 어딨어..에이..이런 분위기 였는데, 고작 10년만에 그런 인간들이 나오는 세상이니까요. '만들어진'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특히 언론, 예술계등 종사자들도 곰곰히 고민을 좀 할 시점같아요).

    완전히 다른 길로 빠져서 죄송;.
  • 초록불 2012/04/08 11:25 #

    별로 다른길도 아닌 것 같습니다...
  • 셔먼 2012/04/07 01:02 #

    특히 거대화된 조직일수록 고의로 적을 만들고 그들과 갈등을 일으키려는 모습이 많이 드러나죠.
  • 초록불 2012/04/08 11:25 #

    복잡합니다...
  • 마에스트로 2012/04/07 01:17 #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들의 멘탈 구조가 궁금합니다. 이데올로기에 머리가 마비가 된 것인지..... 특히, 중국 형벌사나 제노사이드를 보면 진짜 주화입마 제대로죠. 그림도 아니고 글자로 서술하는데도 욕지기가 나오니.....

    솔직히 얘기하면 프랑스 대혁명 때 혁명 당원들의 멘탈 구조나 수양 대군 휘하의 인간들, 특히 한명회 같은 인간 쓰레기를 보면 역사책 보기가 좀 짜증날 때가 있습니다.
  • 초록불 2012/04/08 11:25 #

    욕지기 나오는 것 많지요...
  • 2012/04/07 06:0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2/04/08 09:59 #

    말 그대로지. 더 궁금한 건 만나면 말해줄게.
  • 잠본이 2012/04/07 10:07 #

    그러니까 '아돌프에게 고한다'를 고교 필독서로(...뭔소리여)
  • 초록불 2012/04/08 11:24 #

    대찬성...
  • 2012/04/07 10: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2/04/08 11:23 #

    이럴 때일수록 역사학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 지크프리드 2012/04/08 10:57 #

    그러고보니 아우슈비츠 소장.. 그러니까 루돌프 회스 손자는 홀로코스트 피해자에게 구타를 당해야만 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조상 잘못을 후손이 뒤집어써야한다는것 만큼 억울한건 없죠.

    p.s - 그래서 역사의 심판 두려워하란 소리가 있는건가 봅니다.
  • 초록불 2012/04/08 11:18 #

    거창양민학살사건의 주역이었던 이장이 고향에 몰래 돌아왔다가 맞아죽었던 사건이 생각나네요.
  • 파랑나리 2012/04/08 23:39 #

    인간의 추악한 면, 짐승만도 못한 면을 솔직하게 인정하면 인간이 저런 짓을 저지르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답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 없다고 각성하는 겁니다.
  • 초이스 2012/04/09 13:21 #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가보고 심각해진 적이 있었지. 그걸 연구한다면 우울증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데 절대 공감. 작금의 정치현실도 마찬가진가?
  • 휴머니스트 2012/04/10 01:41 #

    저는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데, 예전에 한국전쟁 때 있었던 학살과 5.18 광주 항쟁을 공부할 때, 저도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회의를 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인문학인 역사학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럴 때마다 가슴이 막막해지고 울컥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 그때가 다시 떠오르네요.

    그렇지만 그런 가슴 아픈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학도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슴 아픈 역사들을 볼 때마다 역사는 진보하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었는데, 예전에 역사학 개론서를 읽을 때,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 (중략) 만약 지금까지 논의해 온 이성주의적 근대 담론으로서의 진보가 아닌, 인간성에 대한 신뢰나 지금보다 내일은 조금 더 나을 것이라는 꿈과 희망으로서의 진보라면, 그 진위여부를 불문하고 인류가 사는 한 가지 이유로서 그에 대한 믿음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왔기에, 인류가 밝은 미래를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인문학도, 즉 휴머니스트들의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인문학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가슴에 늘 휴머니즘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초록불 2012/04/10 01:49 #

    저는 <만들어진 한국사>에서 대강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말미에 적어놓은 바 있습니다.

    역사에서 "교훈"이라는 것은 인간 행위의 권선징악을 넘어서서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것입니다. 즉, 역사는 거대 담론으로 인간 실체에 대한 규명을 그 일차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가 역사학의 근본 목적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인간 본질에 대한 이해를 높여 나가게 되고, 그를 통해서 성숙한 인간으로 자신을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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