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계비의 토문 *..역........사..*



김지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냐하면, 청나라에서 조청국경 확정을 위해 파견한 사신 목극등을 맞이한 조선 관리 중 한 명입니다. 조선 측 대표는 박권이었고 김지남은 수석통역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지남은 회담에 참여한 내용을 자세히 적어서 남겨놓았는데, 이 책의 이름이 <북정록>입니다.

따라서 <북정록>을 읽어보면 양국 국경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번역본도 나와 있지요.



여기에 총관 목극등이 김지남에게 양국 국경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대는 양국의 경계를 명확히 알고 있는가?"
"저희들은 비록 직접 보지는 못하였으나, 장백강 꼭대기에는 하나의 큰 호수가 있습니다.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이 되고 서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이 되었으니, 그 호수의 남쪽이 곧 우리나라의 영토입니다. 그러므로 작년에 황제께서 창춘원에서 사신을 불러 물어보았을 때 두만 압록 두 강으로 경계를 삼는다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증빙할 어떤 문서라도 있느냐?"
"상고 시대 이후로 나라를 세운 후에는 이로써 경계를 삼아 왔으니, 지금에 와서는 어린아이들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찌 문서가 있어야만 증명이 되겠습니까?" - 위 책, 64~65쪽


이처럼 압록강과 두만강이 국경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적혀 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목극등이 백두산 아래 이르렀을 때 다시 한 번 묻고 김지남은 똑같이 다시 대답합니다.

"장백산 꼭대기 큰 호수 남쪽이 바로 우리나라의 경계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말씀드린 바인데 지금 어찌 말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 위 책, 87쪽

목극등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올라가 확인하겠다고 말합니다. 조선 대표단은 청이 백두산을 자기네 산이라고 주장할까봐 전전긍긍하다가 김지남이 꾀를 냅니다. 목극등이 백두산에 등정하면 그 그림을 하나 그려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대국의 산천은 그림으로 그려줄 수 없지만, 백두산은 이미 그대들 나라 땅이니 그림 한 폭 그려주는 것이 어찌 어렵겠는가?"
"만약에 그것이 대국의 산이라면 어찌 감히 부탁할 마음이 생겼겠습니까?"
"잘 알았네." - 위 책, 102쪽


이렇게 해서 청나라 대표의 입에서 확실히 백두산이 조선의 것이라는 답변을 얻어낸 대표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일행은 압록강 쪽에서는 백두산으로 오르지 못해서 무산부로 가서 두만강 쪽에서 백두산으로 오릅니다.

무산부에서 머물렀다. 지난밤에 총관을 따라갔던 접반사 군관인 선전관 이의복에게서 급보가 왔다.
"11일에 총관이 백두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압록강의 근원이 과연 산 중턱 남쪽 가장자리에서 나오는 까닭에 이쪽은 이미 경계를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토문강의 근원은 백두산 동쪽 가의 가장 아래에 하나의 작은 물줄기가 동쪽으로 흐르는 것이 있어 총관이 이것을 두만강의 근원으로 삼았습니다. 두 물줄기 사이에 있는 고갯마루 위에 비석 하나를 세워 경계를 확정하려고 합니다. 비를 세워 경계를 정하는 것은 황제의 지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접반사와 관찰사도 역시 비석에 이름을 새겨야 할 것 같은데 가부를 묻고자 합니다. 운운." - 위 책, 109쪽


이의복은 이틀 후에 또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총관이 두만강 원류에 혹시 물줄기가 끊기는 곳이 있는지 명백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현재 물줄기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운운." - 위 책, 114~115쪽

그리고 목극등 일행은 사흘 후에야 무산부로 돌아왔습니다.

각기 숙소로 돌아온 후 비로소 차원, 군관 등이 접반사 앞에서 자세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분수령 위에 이미 비를 세웠고 동쪽으로 물이 흐르다가 끊어진 곳으로부터 100여 리를 총관이 직접 가서 물이 솟아나는 곳을 찾아다녔으며 우리나라 사람과 통역관 하인들을 시켜 수 일 동안 두루 찾도록 하였다. 가장 아래에서 작은 물줄기를 찾았는데, 총관은 이를 두만강의 근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 위 책, 123쪽

그런데 여기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현지 주민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목극등이 찾은 근원이 잘못 되었다고 접반사 박권에게 이야기했고, 그에 따라 박권이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 풍경에 대해서 우기는 격인데...

정말 놀라운 것은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맞았다는 거죠. 목극등이 찾은 근원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이 점은 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숙종실록 52권, 숙종 38년 12월 7일 병진 3번째기사 1712년 청 강희(康熙) 51년 백두산 정계가 잘못된 것에 대한 겸문학 홍치중의 상소. 이에 대한 논의와 거산 찰방 허양의 공술
두 차원을 시켜 함께 가서 살펴보게 했더니, 돌아와서 고하기를, ‘흐름을 따라 거의 30리를 가니 이 물의 하류는 또 북쪽에서 내려오는 딴 물과 합쳐 점점 동북(東北)을 향해 갔고, 두만강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기필코 끝까지 찾아보려고 한다면 사세로 보아 장차 오랑캐들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며, 만약 혹시라도 피인(彼人)들을 만난다면 일이 불편하게 되겠기에 앞질러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청차(淸差)는 단지 물이 나오는 곳 및 첫 번째 갈래와 두 번째 갈래가 합쳐져 흐르는 곳만 보았을 뿐이고, 일찍이 물을 따라 내려가 끝까지 흘러가는 곳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본 물은 딴 곳을 향해 흘러가고 중간에 따로 이른바 첫 번째 갈래가 있어 두 번째 갈래로 흘러와 합해지는 것을 알지 못하여, 그가 본 것이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니, 이는 진실로 경솔한 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목극등이 이렇게 "경솔한 소치"를 일으킨 탓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간도 떡밥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당대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이 일을 처리했던 찰방 허양은 이렇게 말합니다. (위 실록 기사 중)

목차가 지적한 물이 이미 잘못 본 것이라면, 박도상(朴道常)과 갑산 사람들이 지적한 두번째 갈래는 원류(源流)임이 분명하여 조금도 의심스러운 잘못이 없는 것이니, 이곳에다 푯말을 세우는 것 외에는 다시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목극등은 자신의 사리에 맞게 이야기하지만 박권이 계속 우기자 짜증스럽게 말합니다.

"내가 만약에 두만강 수원을 잘못 찾았고 과연 진짜 두만강이 백두산으로부터 내려온 것이 있다면, 국왕이 황제에게 자세히 갖추어 상주한 연후에 다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결단코 전에 본 것을 바꿀 수 없다." - 위 책, 125~126쪽

이렇게 되자 박권도 단지 전해들은 말만 가지고 섣부르게 말을 꺼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지남을 불러 큰일났다고 걱정하며 목극등을 잘 달래라고 말하게 되지요. 그리고 다행히 이틀 후에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게 되었을 때 박권은 전적으로 동의하여 문제의 소지를 잠재웠습니다. 이 날 목극등은 김지남에게 위 지도를 보여줍니다.

대개 압록 두만 양 강의 물줄기가 이미 정확하게 정해졌고 오랜 여행길에 백두산까지 왕래하였지만 허다한 사람들과 말들이 다치거나 상한 일이 하나도 없으니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이 없었다. - 위 책, 132쪽

다음날 목극등은 지도를 필사하여 접반사에게 줍니다. 그림의 모사본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이 책에도 실려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아 압축하지 않고 올립니다. 누르면 커집니다.)

압록강의 근원에는 두 갈래가 있는데, 한 줄기는 백두산 꼭대기 남쪽 가에서 흘러내리고 또 한 줄기는 백두산의 서북쪽에 흘러내려 하나로 합치는데 남쪽에서 흘러내리는 줄기는 두만강의 근원과 멀지 않은 곳에 마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압록강의 근원이라는 이름을 썼고 서북쪽의 줄기에는 그 이름을 적지 않았다. - 위 책, 133쪽

원래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접반사의 요청으로 그쪽에도 이름을 적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위 그림처럼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위 글에는 동북쪽을 서북쪽이라 적었는데, 옛날 책에는 이런 혼동이 종종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지도가 남아 있어 혼동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극등은 공문을 작성해서 넘겨줍니다.

변경을 조사한 일로써 내가 친히 백두산에 이르러 살펴보니, 압록강과 토문강 두 강이 모두 백두산의 근저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발원하여 양쪽으로 나누어 흐르고 있습니다. 원래 강의 북쪽을 중국의 영토로 정하고 강의 남쪽을 조선의 영토로 정한 것은 세월이 이미 오래 되어 논의할 것이 없습니다. 두 강이 발원하는 분수령 가운데 비를 세우고 토문강의 근원으로부터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면서 살펴보았는데 물줄기가 수십 리를 가다가 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다가 돌 속에 묻혀 밑으로 흘러 100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큰 물줄기가 나타나 무산으로 흐릅니다. 양안에는 풀이 드물고 땅이 편편한데 사람들은 변계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 위 책, 145쪽

이렇게 토문강이란 두만강을 가리키고 있음이 명백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이들 일행은 한양을 떠나 고양-철원-원산-함흥-갑산-삼수-혜산-무산으로 가서 백두산을 올랐고 무산-회령-경원으로 해서 두만강을 따라 국경을 시찰한 뒤에 청나라로 돌아갑니다. 이를 보아도 조선과 청의 국경 문제는 매우 명확해서 더 말할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핑백

  • 迪倫齋雜想 : 김득련의 7대조 할아버지 김지남 이야기(上) 2013-01-14 07:02:07 #

    ... 사 정치적인 일들을 다루지않는 것이니 이 정계비와 그로 인해 전개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좋은 자료나 포스팅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초록불님의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을 추천합니다.) 김지남이 이 일의 과정에 대해 시말을 기록한 “북정록”과 김경문이 홍세태를 통해 기록한 “백두산기”는 동북아 역사재단의 자료실에 ... more

덧글

  • 하늘이 2013/02/04 09:50 #

    1. 사실 관련 사료를 아무리 우리 쪽에 유리하게 해석하더라도 간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데 가끔 크고 아름다운 지도를 가지고 만주까지도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정신이 멍해지지요.

    몇 년 전 수업 중에 간도는 중국 영토라고 했다가 한 학생으로부터 "샘은 왜 중국을 옹호하시나요?" 라는 반격(?)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ㅡ.ㅡ;;

    2. 이제 곧 그 분(...)들이 오셔서 민족 반역자 & 매식자 타령을 시작하시겠군요. ( ' ^')
  • 초록불 2012/05/25 10:04 #

    ^^
  • 빼뽀네 2012/05/25 09:44 #

    1. 보통 세종이 4군6진을 개척하여 한반도가 우리의 영역으로 확보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소개해주신 내용에서 '원래 그러하였다'와 같은 내용이 나오는 것은 이 일이 있은 후에 명과 조선 사이에 국경이 그렇게(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정해졌다는 뜻인가요??

    2. 백두산 중턱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이 발현되었다면 백두산도 절반으로 갈라 가졌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백두산은 온전히 조선에게 귀속된 것인가요??
  • 초록불 2012/05/25 10:08 #

    1. 당연히 역사적으로 보면 세종 때 국경이 확정된 것이지만 이 당시 사람들의 인식은 옛날부터 그렇게 여겨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2. 고대 국경에서 이런 부분은 애매하지요. 지금처럼 칼처럼 국경을 쪼개는 것이 아니고, 어차피 혜산에서 무산에 이르기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았습니다. 목극등은 여기에 목책을 설치해서 국경을 확정하자고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려서 넘어갑니다. 위 기록의 일반적인 인식은 백두산은 우리 것, 천지 남쪽은 우리 것이라는 관념이 혼재되어 있는데, 저 기록을 근거로 국경을 논의한다면 결국은 백두산 북쪽면은 청나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이어서 그 남쪽이 조선 영토라는 말이 계속 나오니까요.
  • June 2012/05/25 10:38 #

    제가 들은 이야기 중엔 원래 백두산 전체가 우리나라에 속했는데 김일성인지 김정일인지(-_-)가 돈이 궁해 절반을 중국에 팔아먹었다... 는 게 있었는데요, 이대로라면 그전부터 이미 천지 이북은 중국 것이었던 걸까요.
  • 빼뽀네 2012/05/25 10:53 #

    1 & 2.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이 책도 꼭 읽어봐야겠네요. ^^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빼뽀네 2012/05/25 10:56 #

    June님) 저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근거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시는 근거가 있다면 함께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평소 궁금해했던 부분이었거든요. ^^
  • 초록불 2012/05/25 11:40 #

    June님 / 대강 이렇게 정해진 상황에서 현대적인 국경 조약을 맺은 것이겠지요. 이 경우에 외교적 역량이나 적극적 의지 등이 반영되었을 텐데, 그것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이 때보다도 후대에도 백두산이 누구네 산인지 헷갈려 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남쪽에서 백두산을 올라 북쪽을 보면서 저기는 중국 땅이지, 정도로 생각들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 천지화랑 2012/05/25 12:48 #

    June// 사실 정계비만 가지고 보면 중국측에서 천지 전체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할 말 없는 상황입니다.
  • June 2012/05/25 13:47 #

    빼뽀네님, 초록불님//저도 근거 없이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였는데요, 좀 찾아보니 1962년에 '조중변계조약' 이란 협정으로 현재의 국경이 확정되었다고 하네요. 다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조약은 아니고 '밀약' 의 형태라고 합니다. 오히려 중국이 백두산 절반을 할양했다... 는 설도 있군요. 뭐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초록불님 말씀처럼 대강 정해진 걸 당시의 외교적 이해관계에 따라 확정시킨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들은 건 아마 90년대에 반공의식 고취용(?)으로 돌던 소문이 아닐까 싶네요.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A4%91_%EB%B3%80%EA%B3%84_%EC%A1%B0%EC%95%BD

    천지화랑님//그래서 중국 쪽에선 조중변계조약을 '파격적인 양보' 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하네요. 자기네들 땅이었던 백두산을 절반이나 떼어준 셈이 되니까요.
  • 레일리엔 2012/05/25 10:21 #

    결국 토문강이 뭐냐 라는건 결정이 났다고 생각해도 되는걸까요.

    그나저나 이제 또 우르르 오셔서 김지남을 아예 없는사람취급할 사람들이 예상되네요
  • 초록불 2012/05/25 10:31 #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이렇게 명백한 기술이 있는데 왜 이게 논란이었나 싶어요.
  • Kael 2012/05/25 10:25 #

    그러고보니 저 일 이후에 영조인가 숙종인가 시대에 우리나라 관리를 국경 관찰사로 파견하니 갑자기 "두만강이 아닌 토문"을 따라 만주로 가버려서 조선 조정이 뒤집어진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일은 어떻게 결론이 났나요?
  • 초록불 2012/05/25 10:35 #

    잘 모르겠는데요...^^
  • 초록불 2012/05/25 10:36 #

    저 책에는 다른 기행문도 들어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 같은 게 있으면 다시 포스팅하겠습니다.
  • 잠꾸러기 2012/05/25 10:49 #

    구한말 간도문제와 연결되면 복잡하네요....
  • 초록불 2012/05/25 11:34 #

    구한말 간도 문제는 어영부영 영토 확장의 기회가 왔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다...라는 거라고 생각해요.
  • Kael 2012/05/25 11:11 #

    사실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사건이 터지거든요. 저 책을 못 봐서 이 내용이 있는 지는 모르겠는데..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D%86%A0%EB%AC%B8%EA%B0%95&keyword=%ED%86%A0%EB%AC%B8%EA%B0%95

    여기서 "국역 더보기"를 클릭하신 뒤 "숙종 52권 38년 12월 7일 (병진) 3번째기사 / 백두산 정계가 잘못된 것에 대한 겸문학 홍치중의 상소. 이에 대한 논의와 거산 찰방 허양의 공술 내용" 이걸 보면..

    목극등과 박권이 합의하여 비석 세우고 내려와서 국경 정했으니 목책 세우려고 다시 답사를 하니 "오 쉣 왜 갑자기 오랑캐 땅(만주)으로 올라가고 있지?" 라는 흠좀무한 상황이 발생하거든요 (먼산) 분명 토문강 = 두만강인 줄 알고 비석 세웠는데 올라가니 만주 (...)

    그래서 조정이 뒤집어져가지고 일단 두만강으로 목책 세우는 걸로 결정하고 "아 Fuck 국경선 잘못그었잖아 청나라에 뭐라 할거임? 우리 X됐잖아?!"이라는게 저 기사의 대충 결론인데... 저거 결과가 궁금합니다 (히힛)
  • 초록불 2012/05/25 11:33 #

    아, 이것이 바로 박권이 목극등에게 항의한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박권이 목극등을 따라가지 않았으므로 더 할 말이 없었던 것인데, 뒤에 조정에서 다시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정계비가 선 곳의 강이 북으로 가는 강줄기이냐, 두만강으로 가는 강줄기이냐, 인 것이 아니고 두만강으로 가는 강줄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니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두만강이 국경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향후 일이 어찌 되었는지는 저도 모르지만 애초에 국경 자체가 두만강이라는 사실이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별 다른 일이 없었을 것 같네요.
  • 잠꾸러기 2012/05/25 12:15 #

    구한말 경제력이나 군대해산때 병력을 보니 간도진출은 고사하고 도성도 수비못할정도니...ㅠ

    게다가 지금은 남북으로 쪼개진 상황에서 감정으로만 접근하면 일만 더 꼬이겠네요....
  • 초록불 2012/05/25 13:54 #

    사실 접근하고 말고의 상황이 아닌 걸로 보입니다. 여기에 조선족 문제를 더해보면 답이... (먼산)
  • 야스페르츠 2012/05/25 12:21 #

    뭐... 애초에 정계비에서 국경 확정을 놓고 싸우던 곳도 기껏해야 두만강 발원지가 어디냐를 놓고 몇 십리 안에서 아웅다웅하던 거니... ㅎㅎ 잘보았습니다.
  • 초록불 2012/05/25 13:54 #

    ^^
  • 천지화랑 2012/05/25 12:49 #

    사실 간도 문제 떠드는 사람들은 그 기저에 '우리 민족은 절대로 잘못할 리가 없다능!'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니 답이 없지요 -_-;;
  • 초록불 2012/05/25 13:54 #

    우리민족무오류설!
  • Warfare Archaeology 2012/05/25 13:35 #

    ㅋㅋ 이건 뭐 논란의 여지가 없네요. 확실하게 못을 박아놨으니~
  • 초록불 2012/05/25 13:54 #

    대못이 박혔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2/05/25 14:56 #

    이렇게 명백한 것도 한번 콩깍지가 씌이면 안들려 안보여가 쩔게 되는거지요.
  • 굔군 2012/05/25 15:58 #

    상식적으로 간도가 조선의 영역이었다면 언제쯤 진출하여 점령했다는 확실한 기록이 있어야 할 텐데, 이건 뭐 정계비 세우면서 그냥 청나라가 갑자기 간도 땅을 조선에게 뚝 떼어주었다는 논리이니...ㅡㅡ;;

    교과서의 간도 기술은 대체 언제쯤이나 수정될는지...(먼 산)
  • 마에스트로 2012/05/25 17:07 #

    포스팅 감사합니다. 이제 그 분들(?)께서 지옥문을 뚫고(?) 분탕질을 하러 올 일만 남았군요.^^
  • 붉은잎 2012/05/25 17:25 #

    토문강이 송화강이냐 앙자강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지요..-_-;
  • 셔먼 2012/05/25 18:00 #

    송화강 지류가 토문강이었다는 가설은 이미 오래전에 상해버린 떡밥이었군요.
  • 뒤죽박죽 2012/05/25 18:25 #

    그런데 유사사학의 영향이 커서인지, 저희 국사쌤이 토문이 쑹화강이라는 설은 말해 주시더군요.
  • 붉은잎 2012/05/26 08:00 #

    저희반 친구가 토문이 양자강이라고 주장하더군요..=_=;;
  • 사과향기 2012/05/25 19:14 #

    초록불님도 이 책을 보셨군요.
    토문, 두만에 대해서 오랄총관이던 목극등이 자신의 관할지에서의 문제로 그 지역관리와 만주어로 대화를 할 때 김지남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들의 대화내용을 파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 김지남의 아들 김경문은 천지까지 동행을 했는데 그 역시 만주어를 아는 것 같지가 않고
    토문,두만... 문제에서 이 부분 또한 고려되어야 할 듯 합니다.
    또 한가지는 두만강변에 있는 훈춘인데 우리식으로 하면 혼춘이라 부르는 것이 맞으나
    만주? 또는 중국식으로 훈춘이라고 불리는 것도 고려되어야할 듯 합니다.
    제가 아는 바로 훈춘은 만주어로 변두리라는 뜻이라죠?

  • 천지화랑 2012/05/25 22:06 #

    아하, 왜 연변지역에서 혼춘을 조선어로 훈춘이라고 쓰는가 했는데 애초에 만주어였군요.
  • 미르 2012/06/02 23:25 #

    이로서 간도가 조선땅이 아니라는게 명확해졌군요.
    민족주의자들이 보면 게거품 물겠네..
  • brightbeer 2012/06/08 20:36 #

    아, 이거 인강 들을때 서울대 사학과에서 동북아역사재단(맞나요?)의 의뢰를 받아 열심히 검토한 결과
    ...
    ...
    ...

    간도는 우리땅은 개소리라고 결론났다고 - . - ;;

    그리고 교과서에는 간도는 우리땅인것처럼 서술
  • 강이식후손 2012/07/02 01:06 #

    안녕하세요 초록불님, 간도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 이렇게 또 여쭙게 됬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간도가 우리나라땅이라는 입장인데 이부분에대해 반박부탁드립니다.

    1. 백두산 정계비는 숙종 38년(1712)에 세워집니다. 정계비를 세우는 과정에서 청의 대표 목극등(穆克登)은 우리 나라 대표인 박권(朴權)을 동행하지 않고 우리 나라 통역관과 군관들만을 데리고 백두산 정상에 올라 그가 분수령이라고 인정되는 곳에 정계비를 세웠습니다. 이 정계비에 우리 나라 대표인 박권의 이름도 넣자고 하였으나 박권은 자신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비석에 이름을 넣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정계비에는 우리 나라 대표의 이름이 빠져있고 군관과 통역관의 이름만 들어가 있는 문서 규정상 하자가 있는 문서입니다.
    그리고 비석의 내용중 "서위압록동위토문(西爲鴨綠東爲土門)"의 귀절이 있는데 이를 두고 청과 조선의 해석이 다릅니다.
    "서위압록"은 압록강을 가리키니까 두 나라 사이에 아무 이의가 없는데 "동위토문"이 문제입니다. 청나라에서는 토문강은 두만강을 가리키는 이칭이라고 주장하고, 우리 나라는 분명히 토문강이 있으니까 그 토문강이 국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간도 지방에 우리 민족이 이주하여 많이 살면서 이 문제가 쟁점화되어 이중하와 이범윤을 파견하여 청과 협의하였지만 뚜렷한 결론 없이 회담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나지 않은 상태이며 남북이 통일되면 중국과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2.분명히 세종대에 확정된 우리 나라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말기에 문제가 된 간도는 그 두 강의 북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우리의 영토임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모순적으로 느껴지지요? 하지만 그것은 조선 중기 이후 간도 지역을 둘러싼 역사를 알게 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간도는 본래 고구려와 발해의 땅으로 발해가 망한 후에는 그 유민의 하나인 여진족의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이들 여진족은 조선에 조공을 바치고, 조선은 그들에게 생활물자를 교역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서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간도지역은 여러 강의 지류 연안에 위치한 기름진 땅이었지만, 여진족은 농경보다는 유목과 수렵에 종사하였고, 그 땅을 개척하여 농경지로 만든 것은 주로 조선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중기에 청이 건국되면서, 청은 간도지역 즉, 장백산 일대를 그들의 발상지로 여겨 성역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청 태종은 병자호란 뒤 백두산 일대를 봉금지역(거주금지구역)으로 삼아 사람들의 거주를 금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계속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자, 청은 경계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숙종 38년(1712) 길림지방의 장관인 목극등을 파견하여 조선측 대표와 함께 백두산에 경계를 표시하는 정계비를 세우게 하였습니다(백두산정계비). 이 비에 따르면, 청과 조선 사이의 국경은 동으로는 압록강에서 토문강에 이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토문강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바로 간도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이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만주 내륙의 송화강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목극등이 합의한 토문강은 두만강 상류가 아닌 만주의 송화강 상류입니다. 따라서 간도 지방은 곧 조선에 귀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두산 정계비가 건립된 뒤 160여 년간은 별 문제가 없이 지내오다가, 19세기 중엽에 들어 청나라의 봉금이 소홀해지고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넘어가 농사를 짓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문제가 야기되었습니다. 그러자 조선은 고종 20년(1883) 어윤중을 보내어 조사하게 하고, 그 결과 토문(만주의 송화강)이 청과 조선의 경계임을 확인하고, 간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청국에 주장하였습니다. 영조 30년(1754)에 만들어진 『관북총람원도』라는 책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국경은 오늘날과 같은 두만강이 아니라, 훨씬 더 북쪽으로 들어간 토문강임이 명백합니다. 따라서 간도는 우리의 영토였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1907년 조선의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가자, 일본은 안봉선 철도부설 문제로 청나라와 흥정을 시작, 1909년 간도를 청에게 넘겨주고 그 대가로 철도부설권을 얻었습니다(간도협약). 이로써 간도는 오랜 기간의 귀속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중국의 영토로 편입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제에 의한 불법적 할양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아직도 간도 귀속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게 국사편찬위원회의 간도가 우리나라 땅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거든요.
    국사편찬위원회의 말대로라면, 청계비를 세울때 목극등과 박권이 같이 참여하지않고 목극등만 참여했으니, 부당하다는 얘기인데, 반박부탁드립니다.
    다른 부분도요..;;;
  • 초록불 2012/07/02 08:21 #

    따로 반박할 것이 없습니다. 위에 적은 바대로입니다. 조선말의 상황은 이와는 별개로 해석해야 합니다. 당시에 조선 정부가 현명하게 행동했다면 그 땅을 우리 영토로 편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죠.
  • 강이식후손 2012/07/02 01:10 #

    그리고 질문 또드릴게요.. 국사편찬위원회가 이렇게 부실했나요?;;;
  • 강이식후손 2012/07/02 14:27 #

    초록불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청계비를 만든 김지남도 토문강이 두만강이라고 생각하고 백성도 그렇게 생각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제가 다른 분 블로그를 보아도 성호사설, 연려실기술, 해동역사에도 나와있고, 조선왕조 숙종실록을 살펴봐도 청계비의 토문은 두만강은 뜻한다고 하시던데, 그 얘기가 틀린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극등이 합의할때 조선측과 당연히 두만강이남으로 책정된줄알고 청계비를 세우고 돌아갔는데,
    조선측에서 목책을 세우려고 정계비대로 강을 따라가보니 두만강으로 가지않고 송화강쪽으로 갔기 떄문에 조선측에서 난리가 났었고, 이문제를 다시 청에게 꺼내게 되면, 분명 두만강으로 재확정시킬것이 조선입장에 두려워서 그냥 나둔채로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것도 숙종실록에 기록이 되있다는데 이것도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조선말기 때 조선관리들이 토문강은 두만강이라고 주장을하여도, 그 이전 조선은 두만강 이남이 조선땅이라고 생각하는바, 조선말기때의 조선관리들의 주장은 제가 생각할때 욕심을 부리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 설명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 초록불 2012/07/03 13:53 #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고, 제 의견 자체가 강이식후손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슈타인호프님이 여러차례의 포스팅을 통해 분명한 전후사정을 이야기한 바 있으므로 저보다는 그 포스팅을 읽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http://nestofpnix.egloos.com/tag/간도

    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 강이식후손 2012/07/03 14:22 #

    휴..;; 감사드리구요.. 다정리되있네요 ㅋ; 한참찾아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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