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만들어진 한국사



마이클 셔머의 책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12장 "토크 쇼에서 만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을 읽어보면 사이비들이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선전하는지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

1994년 도나휴 쇼에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를 불러서 토론을 펼쳤다. 도나휴는 이들을 반유대주의자로 몰려고 했는데, 이것은 논점을 일탈한 행위였다. 팩트를 따지는 자리에서 인신공격으로 덤벼든 격이었다. 도나휴 측의 실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증거로 제시된 사진이 잘못된 것이었고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는 즉시 그 문제를 짚고 나왔다. 도나휴는 뭘 잘못했는지 몰랐고 마이클 셔머는 그 사진이 잘못 제시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부정론자는 진실로 잘못 알려져 있는 문제를 들고 나왔다. 유대인이 비누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라고 한 것이다.

유대인을 죽여서 그 지방으로 비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당대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괴담"이었다. 아유슈비츠에서 몇 년을 있었던 폴란드 레지스탕스의 자전적 소설에도 등장할 정도니까.

스미스(홀로코스트 부정론자) : 이렇게 말해보죠. 독일인들에 대한 야비한 거짓말 같은 게 있으며, 사람들은 그걸 온당하다고 여깁니다. 예를 들어 독일인들이 유대인에게서 기름을 짜내 비누로 만들었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왜 거짓말이냐 하면...
셔머 : 아니에요.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 실수... - 위 책, 333쪽


이 순간 아우슈비츠 생존자가 흥분해 버린다. 이 흥분을 부정론자는 즉각 이용하기 시작한다.

스미스 : 왜 저들이 이 여성에게 그런 짓을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왜 저들은 이 여성에게 독일인들이 유대인의 기름을 짜고 가죽을 벗겼다고 믿도록 가르쳐 왔는지...
버그 (아우슈비츠 생존자) : 난 아우슈비츠에 일곱 달이나 있었어요. 소각로 가까이에서 살았고, 당신과 나 사이 정도의 거리였죠. 냄새가 났고... 아마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면 다시는 구운 닭고기를 먹지 못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 냄새는...


이 여성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건 "비누"와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고 부정론자는 그 점을 놓치지 않는다.

스미스 : 문제를 찬찬히 살펴봅시다. 저 여성은 비누와 전등갓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마이클 셔머) 말로는 당신이 오해했다는 것이고요.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부정론자였는데 이제는 마치 마이클 셔머가 제기한 것처럼 바로 이용하고 있다. 도나휴가 사태를 수습하려고 끼어들었다.

도나휴 : 당신에게는 감정도 없습니까? ...당신이 저 여성에게 가하는 고통이 걱정도 안 됩니까?
스미스 :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비난받는 독일인들은 무시하는 겁니까?


생존자는 거세게 부정론자를 비난하지만 부정론자는 계속 마이클 셔머를 방패로 사용한다. 마이클 셔머는 이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50년 전에 자기들에게 일어난 일 이외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들이 날짜를 잘못 대거나, 더 나쁘게는, 볼 수 없었던 상황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주장하면, 부정론자들은 능숙하게 그걸 걸고 넘어진다. 그런데 버그 부인이 시체를 태운 것을 본 경험을 사람 비누에 대한 증거로 삼게 되자, 부정론자들에게 아주 완벽한 판이 깔린 셈이 되었고, 스미스는 바로 그걸 이용했던 것이다. - 위 책, 335쪽

마이클 셔머는 자신들에게 불리해보인다고 해서 진실을 감추는 행위는 매우 좋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상대방들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중요한 사안들에 침묵을 지키게 되면,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도리어 우리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올 것이다. - 위 책, 337쪽

마이클 셔머는 부정론자들의 주장을 입밖에 내지 못하게 막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는 그 사례로 일본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한다.

1995년에 문예춘추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이스라엘 정부의 항의를 가져왔고 문예춘추 전체에 대해서 광고 보이콧의 압력이 들어왔다. 문예춘추는 잡지를 폐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진실에 대한 탄압이라는 형태의 선전에 이용된다.

내가 내 블로그를 유사역사학 선전장으로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그들"에게 자신의 블로그에서 주장하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런데 있다. 마이클 셔머의 주장을 경청해보자.

누구나 무슨 주제로든 표현할 자유가 있다는 것에 대한 내 입장은 이렇다. 정부는 어떤 조건이 되었든 누구나 아무 때나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결코 제한해서는 안 되지만, 사설 기관들은 나름의 규정 내에서 누구든 아무 때나 표현할 자유를 제한할 자유도 갖고 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에겐 마땅히 자기네 간행물과 책을 출판하고 다른 간행물(이를테면 대학 신문의 광고)을 통해 자기들 견해를 전달하려고 노력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독자적인 신문사를 갖추고 있는 대학교에서는 부정론자들이 신문 독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제한할 자유도 가져야만 한다. - 위 책, 345쪽

마이클 셔머의 말 하나 더.

일단 검열의 메커니즘이 확립되면, 형세가 역전되었을 경우 도리어 여러분에게 검열이 가해질 수도 있다. 잠시 이런 가정을 해 보자. 만일 다수가 진화를 반대하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며, 창조론자들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힘을 가진 입장에 있다고 해보자. 만일 검열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면, 이제 진화를 믿고 홀로코스트가 일어났었다고 믿는 여러분이 검열당할 처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생각을 만들어내든 인간의 정신은 결코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 위 책, 346쪽

사람들은 흔히 적대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을 갖는다. 제 정신이 아니거나 광적인 과격주의자라든가 하는 식으로. 마이클 셔머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을 직접 만나 보았는데 그들이 대체로 호감이 가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나도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지만 이 사람들이 미치광이거나 넋나간 바보들인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그거야 실제로 만났을 때나 그런 것이고 인터넷 상에서는 사람들이 훨씬 과격해진다. 때문에 자신에게 불리할 것 같은 이야기는 감추고 싶어지고, 상대를 더 강하게 압박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 자신도 그런 점에서 부족한 부분을 노출한 일이 많다.)

댓글로 논쟁을 벌이면 이런 약점에서 빠져나가기가 - 냉정을 유지하기가 더 쉽지 않다. 상대의 약점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하나하나 설명할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 점은 도나휴 쇼에서 마이클 셔머가 처한 것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떤 약점을 파고 들어올 것인지 알고 그에 대해서 대비하는 것이 좋다. 자신에게 불리한 문제를 덮어버린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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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셔먼 2012/06/06 23:53 #

    읽다가 중간에 셔먼이 나와서 흠칫 했습니다(...).
  • 초록불 2012/06/07 00:01 #

    오타를 냈군요. 수정했습니다...^^
  • LVP 2012/06/07 00:03 #

    수법이 우째 옆집 어린이들이랑 비슷한 이....'ㅅ';;;;;
  • 초록불 2012/06/07 07:49 #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이 잘도 써먹은 국회 공청회에서도 이런 수법을 볼 수 있지요.
  • 야스페르츠 2012/06/07 01:19 #

    역시 어려운 문제로군요...
  • 초록불 2012/06/07 07:49 #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아요...
  • 愚公 2012/06/07 01:41 #

    마지막 3문장이 특히 와닿는군요. 당장 진실이 통하지 않다라도 외면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 초록불 2012/06/07 07:50 #

    네. 이 책에는 유대인들의 바람에 따라 진실에 대한 증언을 포기했던 홀로코스트 연구자의 뼈아픈 이야기도 실려있습니다. 자신의 집단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하면 준거집단인 그쪽에서 배반자 소리를 듣게 되므로 침묵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 SKY樂 2012/06/07 07:43 #

    잘 보고 갑니다.
  • 초록불 2012/06/07 07:50 #

    고맙습니다.
  • AnonymousY 2012/06/07 08:29 #

    중간까지 읽다가 갑자기 요즘 언론에 떠오르고 있는 진화론 문제가 겹쳐 보여서 몹시 씁쓸합니다. 특히 "그처럼 중요한 사안들에 침묵을 지키게 되면,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도리어 우리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올 것이다." 이 부분 말이죠...설마 사이비 과학이 과학을 교과서에서 몰아내는 황당한 상황이 일어날줄은...
  • 초록불 2012/06/07 08:50 #

    마이클 셔머는 진화론을 옹호하고 창조론을 비판하는 일에도 공이 크지요. 국내에서도 학자들의 분발이 있기를 바랍니다.
  • 질유키 2012/06/07 16:43 #

    로비의 힘입니다.

    특히 일본우익들은 로비를 벌여 독도가 역사적으로 다케시마였고 동해가 일본해였다는 주장을 역사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도 동북공정하면서 자신이 날조한 유적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부당한 권력은 거짓을 바탕으로 하는 법입니다.
  • 진성당거사 2012/06/07 10:33 #

    국내에서도 셔머 선생같이 활발히 활동하는 학자들이 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별 진전없이 답보상태인 과학사 분야는 특히나요.
  • 초록불 2012/06/07 22:11 #

    그렇습니다.
  • 파랑나리 2012/06/07 10:35 #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사니 과학이니 하는 모든 분야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지 말고 진실을 알리라고 하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습니다. 오늘날 논쟁에서 이겨서 우월감을 얻으려는 인터넷 시국에 일침을 가하는 말입니다.
  • 질유키 2012/06/07 16:49 #

    일부 재야들이 모순을 범하는 것이 있다면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역사관이 민족주의적이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 더 낫다고 우열을 가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재야들은 환단고기를 '사실로서의 역사'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 초록불 2012/06/07 22:12 #

    승리의 쾌감을 누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니 아마 멊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알고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 빼뽀네 2012/06/07 10:43 #

    '중요한 것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닿았습니다.
  • 초록불 2012/06/07 22:13 #

    네, 가끔은 목적을 망각하고 수단에만 매달리게 되니 늘 경계해야 합니다.
  • Quality 2012/06/07 11:24 #

    잘봤습니다.
    평소 생각하던 부분인데 예시와 함께보니 풍부해지네요.
  • 초록불 2012/06/07 22:13 #

    고맙습니다.
  • 질유키 2012/06/07 16:52 #

    1995년에 문예춘추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이스라엘 정부의 항의를 가져왔고 문예춘추 전체에 대해서 광고 보이콧의 압력이 들어왔다. 문예춘추는 잡지를 폐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진실에 대한 탄압이라는 형태의 선전에 이용된다.

    ->이 문구를 보니 생각나는게 일본우익들이 미국과 좌파가 일본인들을 세뇌했기 때문에 일본제국이 사악한 제국으로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진실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믿음을 중시하는 사람은 공자가 말한 소인에 해당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인은 情에 연연하기 때문입니다.(그게 바로 민족감정입니다.)
  • 초록불 2012/06/07 22:13 #

    사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 Crete 2012/06/07 22:00 #

    안녕하세요 초록불님

    글 내용이 너무 좋네요. 혹시 허락해 주신다면 원문링크와 초록불님 이름을 명기해서 전문을 퍼가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 초록불 2012/06/07 22:11 #

    전문을 퍼가는 것은 별로 권장하지 않습니다만 허락을 구하시니 거절할 수가 없군요...^^
  • Crete 2012/06/07 22:12 #

    초록불님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푸른미르 2012/06/07 23:39 #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의 어려움이라....
    이건 역사학 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에 적용될만한 금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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