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사위 *..역........사..*



지난번에 쓴 글(http://orumi.egloos.com/4718463 [클릭])에 태종이었다면... 이라는 댓글이 있어서 태종의 사위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조선시대에 부마를 고르는 것도 왕비(세자빈이나)를 고르는 것처럼 간택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이 제도를 처음 만든 사람이 태종입니다.

태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외척 세력의 발호를 극력 저지한 인물이죠. 부마를 고르는데도 이 점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태종에겐 정실 딸로 넷이 있었는데 첫째 정순공주는 이거이의 아들 이백강에게, 둘째딸 경정공주는 조준의 아들 조대림에게, 셋째딸 경안공주는 권근의 아들 권규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이때까지는 아직 간택제 시행 전이었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된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쓰죠.)

이런 유력가문에 딸들을 보낸 태종은 슬슬 뒷일이 걱정되기 시작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왕비 민씨의 집안이 점차 권력의 맛을 보이는데서 비롯되었겠지요. 결국 민씨 일가를 도륙을 낸 태종은 넷째딸 정선공주의 가문은 한미한 곳에서 고르리라 맘을 먹습니다.

4~5품 이하 가문의 아들 중에서 부마를 구하겠다고 선언하죠. 3품 이상이 당상관이니까 고관대작은 아예 자격 박탈을 한 겁니다. 이렇게 해서 후보자 세 명이 올라왔고 그 중에서 태종은 사주팔자가 맞는 남휘南暉를 사위감으로 고릅니다.

사주팔자라...

남휘는 누구일까요? 남휘는 남재의 손자인데... 남재는 남은의 형이었습니다.

그럼 남은은 누구일까요?

바로 정도전과 함께 왕자의 난 때 죽은 주동인물입니다. 남산에 남은 돌이 없네...라는 속요에도 이름이 "남은" 인물이죠. (썰렁~)

태종에게는 철천지 원수인 남은의 형. 그 집안과 사돈을 맺은 것입니다.

심지어 남재는 태종이 일찌감치 용서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서워서 도망치다가 붙잡혀온 경력도 있는 인물이었죠. 그런데 남재의 아들은 일찌감치 죽었고... 그러니까 남휘는 과부의 자식이었습니다.

태종의 입장에서는 이 점이 괜찮았을 겁니다. 일단 정치적으로 몰락한 집안이고, 심지어 권력을 휘두를 아버지도 없다는 것!

하지만 사주팔자까지 본 남휘와의 결혼생활은 별로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실 부모탓(?)이었습니다.

정선공주가 17세가 되었을 때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가 세상을 떠났고, 2년 후에는 태종이 갔습니다. 문제는 당시 조선은 3년상을 철저히 지키게 해서 27개월동안 부부생활이 금지되었다는 거죠.

남휘는 피끓는 청춘이었는데, 갑자기 부부생활 금지령. 거기에 부마 신분에 바람을 피기도...(폈다가 태종 눈에 걸리면 어찌 될는지...)

남휘는 도박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내인 정선공주가 앓아누운 상태인데도 남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환관들과 쌍륙 도박을 즐기고 있었던 겁니다. 세종은 1차 경고를 했으니 남휘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정선공주는 세종의 친 누이동생입니다. 동생이 아픈데 매부가 노름으로 지새고 있으니 세종이 꼭지가 도는 것도 당연하죠.

하지만 남휘는 결국 바람을 피는 지경으로 나아갑니다. 태종이 없으니 겁날 게 없었던 걸까요? 윤이라는 여성이었는데, 원래는 관비였고 그후 윤자당(이숙번의 형입니다. 성이 다른 이유는 어머니가 개가한 때문입니다)이라는 사람의 첩이 되었는데 윤자당이 죽자 얼른 남휘가 차지한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윤자당이 죽은 지 100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첩으로 취한 것은 유교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었죠. 남휘는 이렇게 거리낌없이 굴었고 정선공주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후에 세종이 불러다가 야단을 치죠. 하지만 죄 주라는 신하들의 상소는 무시합니다.

남휘는 공주가 죽은 뒤에도 강간 폭행을 저지르지만 세종은 벌주지 않았죠.

남휘는 그렇게 세종의 비호 아래 잘 살다가 단종 때 죽었습니다.

정선공주는 두 명의 아이를 남겼는데 손자가 바로 남이 장군이고, 딸은 신 씨 집안에 시집 가서 신사임당의 할아버지 신숙권을 낳았습니다.

덧글

  • 빼뽀네 2012/07/03 09:39 #

    참.. 조선의 왕실은 친척이나 인척들에게는 꽤나 관대했던 모양이네요. ^^;;
  • 초록불 2012/07/03 10:12 #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지하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먼산)
  • 빼뽀네 2012/07/03 10:19 #

    네. ^^;; 태종이 있었지요.
    예전에 언뜻언뜻 왕실 일원에 의한 횡포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무마시키거나 무시하는 경우를 봐서요.
    지난 번 공주의 남자편도 그렇고 이번 편도 그렇고 결국 결정권을 지닌 군주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나서지 않으려는 모습을 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이래저래 조선 시대 상민들은 양반이나 왕족 가까이 사는 일이 참 피곤했을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12/07/03 10:27 #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긴 하겠지요.
  • 놀자판대장 2012/07/03 09:59 #

    이래저래 여자들만 불쌍하네요. 그런데 후손들이 대박을 쳤으니 세종대왕의 관대함은 효력을 본 걸지도
  • 초록불 2012/07/03 10:11 #

    시간이 없어서 대충대충 썼는데, 아마 산후조리를 잘 못해서 죽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 엄마 없는아이들이 불쌍해서 관대하게 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2012/07/03 10:1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2/07/03 10:28 #

    맞습니다. 그렇긴해도 조선 시대에 신원이 복구되었으니... 뭐...
  • Allenait 2012/07/03 13:12 #

    거참 태종때 빼고는 친인척 문제에 왕실이 매우 관대했군요..
  • 초록불 2012/07/03 16:36 #

    그게 꼭 그렇지는...
  • Niveus 2012/07/03 14:07 #

    태종이 족치기엔 너무 늦게 사위를 봤군요.
  • 초록불 2012/07/03 16:37 #

    어쩌면 반항심리가 있었을지도. 태종의 사위에 대한 에피소드를 하나 더 올려볼까 싶군요.
  • 셔먼 2012/07/03 14:29 #

    남은의 조카씩이나 되는 사람이 인간말종이니 삼촌이 관 속에서 돌아누울 지경이었겠군요.;
  • 초록불 2012/07/03 16:38 #

    뭐, 남은은 내 목을 벤 인간과 사돈을 맺다니 하고 생각했을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고소해했을지도 모릅니다.
  • 초록불 2012/07/03 23:42 #

    실수가 있었습니다. 남은은 남휘의 작은 할아버지입니다... (죄송)
  • 루드라 2012/07/03 16:02 #

    그런데 남은의 아들은 일찌감치 죽었고... 그러니까 남휘는 과부의 자식이었습니다. --> 남은의 아들이 일찍 죽은 것과 남은의 조차인 남휘가 과부의 자식인게 무슨 연관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 초록불 2012/07/03 23:42 #

    다시... 수정합니다.

    남재 - 아들 - 남휘입니다... (죄송)
  • Hyth 2012/07/03 17:08 #

    저는 전편하고 연동해서 조대림 이야기가 나올줄 알았는데 다른 사위가 먼저 나왔군요 ㅎㅎ
    조대림은 문제 일으켰다가 태종이 직접 조졌다는(...) 이야기를 대강 봤던 기억이;;
  • 초록불 2012/07/03 22:05 #

    조대림은 모함을 당했던 걸로 기억이... (저도 대강...)
  • 파랑나리 2012/07/03 22:13 #

    1. 그러고보니까 의빈은 다른 외척처럼 발호를 하지 않네요.
    2. 남은의 집안은 외자이름을 즐겨 썼던 것 같은 데 무슨 까닭이 있을까요?
    3. 윤자당의 경우를 보면 그때는 친형제라도 어머니의 개가 같은 사유로 성이 다른 게 가능했었나봐요.
    4. 임금이 이 따위 인간말종을 감싸주었으니 백성은 얼마나 괴롭고 화가 났을까요?
  • 초록불 2012/07/03 23:04 #

    글쎄요. 답을 바라고 쓰신 글은 아니라고 봅니다...
  • 파랑나리 2012/07/04 02:07 #

    아니요. 1의 경우는 전부터 임금의 사위 집안은 처가나 외가처럼 발호하는 일이 없어서 궁금합니다.
  • 초록불 2012/07/04 07:42 #

    뭐, 부마도 부마 나름이니까 케이스가 다양하지요. 제가 다 찾아본 것도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다음번에는 엄청난 발호 가문 이야기나 해볼까 싶군요.
  • 악희惡戱 2012/07/03 23:38 #

    그런데 남재의 아들은 일찌감치 죽었고... 그러니까 남휘는 과부의 자식이었습니다.
    -> 뭔가 잘 이해가 안 가네요. 내용상으로는 남재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남휘가 과부의 아들이었다는 것 같은데...
  • 초록불 2012/07/03 23:40 #

    남재 - 아들 - 남휘...

    즉 남휘는 남재의 손자입니다...
  • 초록불 2012/07/03 23:40 #

    아차.. 그러고보니까 손자를 아들이라고 잘못 써놓았네요... 아침에 좀 급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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