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영화의 갈림길 *..역........사..*



세종은 종친이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파문이 부마에게도 미쳐서 태종 때까지는 관직에 나갔던 부마들이 관직에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관직은 주지 않았지만 벼슬(명예직)을 주어서 녹봉을 받을 수는 있었는데, 이 때문에 부마들은 "OO위"라고 불립니다. OO에는 출신지가 붙습니다. 다소 예외는 있었지만 부마가 관직에 나갈 수 없는 것은 점차 확고해졌습니다. (태조, 태종 때까지는 OO군이라고 불렸습니다. 세종 때가 되어서 칭호가 내려간 거죠.)

부마라고 다 같은 부마는 아닙니다. 공주의 남편은 종1품이고 옹주의 남편은 종2품으로 차등이 있었습니다. (공주는 왕비 소생, 옹주는 후궁 소생) 부마는 왕실과 가까운 사이인데다가 공주를 위한 재력이 보태졌기 때문에 가문의 입장에서 보면 부마 하나 버리고 정치적 입지를 탄탄히 굳힐 수 있는 좋은 자리였지요.

태종은 역대 왕 중 가장 딸이 많은 왕입니다. 4공주와 13옹주. 무려 열일곱의 딸이 있었지요. 이 공주와 옹주는 외명부 소속으로 품계가 없습니다. 궁에서 자랐지만 시집을 가면 궁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내명부 소속이 아니고 외명부 소속이 되지요. 세자의 딸들은 군주(세자빈 소생), 현주(후궁 소생)로 불리고 각각 정2품과 정3품의 품계를 받습니다만 공주, 옹주는 품계 위에 군림하는 몸이었습니다.

딸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당연히 아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왕비와 아홉 명의 후궁이 있었지요.

각설하고, 본론으로 갑시다.

태종 17년(1417) 전 춘천 수령이었던 이속李續이라는 인물이 하옥되었습니다. 그의 죄는 감히 왕실과 혼인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이속은 본래 태종과 아는 사이였습니다. 인간이 거만하고 포악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태종이 좋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태종은 정신옹주를 이속의 아들과 결혼시킬까 생각하고, 맹인 판수를 보내 사주를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속이 이런 혼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속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례(吉禮)가 이미 끝났는데, 또 궁주(宮主)가 있는가? 만일 권 궁주(權宮主)의 딸이 결혼한다면 나의 자식이 있지마는, 만일 궁인(宮人)의 딸이라면 내 자식은 죽었다.”

또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짚신은 제날이 좋다."

제날이라는 것은 짚신을 지을 때 세로로 놓는 짚을 가리키는 말이군요. 즉 짚신에는 짚이 어울린다는 말이죠. 감히 왕실에게 짚신이니 짚이니 하는 말을 한 걸 보면 간이 크긴 큰 모양입니다.

이속은 대체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것은 시집 보내려는 딸이 신빈 신씨(이때는 신녕옹주라고 불렸습니다. 권궁주는 의빈 권씨인데 이때는 권궁주라고 불렸고요) 소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빈 신씨는 본래 왕비 원경왕후를 모시던 몸종이었습니다. 이속은 그런 몸종의 딸과 자기 아들을 맺어줄 수 없다고 한 겁니다. 몸종 딸은 몸종 딸에 어울리는 사람에게나 보내라는 것이었죠. 권궁주는 권홍(이때 벼슬은 지돈녕부사)이라는 사람의 딸로 사대부 집안의 딸이었죠. 그러니 그쯤은 되어야 시집 보낼 수 있다는 말이었던 겁니다. 이때 권궁주의 소생인 정혜옹주는 출가 전이었습니다.

태종은 노발대발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죠.

"한 쪽은 비록 천하지마는 한 쪽은 인군(人君)인데, 이속이 왕실과 관계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사헌부(司憲府)에 명하여 추문한 것이다. 여러 경들이 대답하기를, ‘크게 불충하다.’ 하니, 남의 신하가 되어서 이러한 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신하들은 삼족을 멸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딸의 혼사 문제로 그렇게 사람들을 죽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 태종은 곤장 백 대를 때리고 서인을 만들어 귀양보내는 정도로 일을 마무리합니다.

다행히 다른 집안에서 혼인을 하겠다고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귀양 중에 있던 윤향이라는 인물이었는데, 바로 고신이 돌려보내지고 과전이 지급되고 복직이 되었습니다(무려 한성부사로... 곧 형조판서로 승진). 딸의 혼인이 결정되었으니 이제 이속을 손 볼 시간이 되었지요. 이속의 재산을 몰수하고 창원부의 관노로 삼아버립니다. 이속의 집안은 손자 대에 가서야 간신히 과거를 다시 볼 수 있게 됩니다. 까불 때를 알고 까불어야죠.




덧글

  • Hyth 2012/07/04 01:06 #

    한쪽은 아들 팔아서(?) 귀양에서 풀려나고 무려 한성부사->형조판서 테크 타고
    다른쪽은 격에 안맞다고(...) 땡깡부렸다가 집안이 졸지에 망했군요;;
    역시 개겨도 뒤탈이 없는 상대한테나 개겨야(-_-)
  • 초록불 2012/07/04 01:10 #

    형조판서로 올려준 다음에 혼인을 치렀죠. 이건 이속에 대해서 과시하려고한 측면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게 합니다...^^
  • Niveus 2012/07/04 01:20 #

    ...성깔 더럽기론 조선왕조에서 손으로 꼽을 사람한테 대들었으니 -_-;;;
  • 초록불 2012/07/04 07:43 #

    원래 알던 사이니 성깔 더러운 것도 알았을 텐데... 정말 대단한 깡이죠.
  • 아빠늑대 2012/07/04 01:44 #

    깡도 좋지요. 왕의 친인척, 외척들도 벌벌 떠는 마당에 나라의 군왕에게 저렇게 까불 수 있다니 말이죠. 반면 그만큼 조선왕조 초기 왕권이라는게 태종이 안 잡았으면 정말 괴랄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초록불 2012/07/04 07:44 #

    아무래도 과거 친분을 믿고 까불긴 했을 겁니다. 사가에서부터 사귀었을 가능성이 높겠죠. 그리고 그런 면에서도 말씀대로 태종 정도 되니까 왕권을 잡았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 파랑나리 2012/07/04 02:11 #

    태종이 저렇게 기강을 잡지 않았으면 구변의 난이 얼마나 심했을지. 종친을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 건 정말 잘한 일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외척의 발호를 끝내 못 막은 것은 아주 유감스럽습니다.
  • 초록불 2012/07/04 07:44 #

    그건 너무나 뒷 이야기...
  • 아르핀 2012/07/04 02:50 #

    요즘식으로 말하면 '어느_부하직원의_패기' 정도로 제목을 뽑겠네요. 문제는 이게 직장에서 짤리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겠죠. 아니 저 아저씨는 도대체 뭔 배짱으로 태종의 '우리 사돈 맺읍시다'에 퇴짜를 놨대. 형제, 처남 가릴 것 없이 다 처내는 거 보면서 교훈도 못얻었나;

    그러고보니 태종이 신빈 신씨와의 사이에서 가장 많은 자손을 봤죠? 성종의 후궁인 숙의 홍씨가 조선왕조실록상 가장 자손을 많이 남긴 후궁인데 바로 다음가는 9명이나 낳았으니까... 금슬이 좋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원경왕후가 죽은 후에도 내명부를 총괄한 것을 보면 신뢰도 두터웠을 것 같구요. 물론 본부인이야 억장이 무너졌겠지만요.
    그런 애처(후궁이지만)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째딸 혼사에 퇴짜를 놨으니 태종의 눈에 불이 켜질만도 하지 않나요. 어찌보면 신빈 신씨의 자식과 맺어주겠다는 것도 나름 신경 쓴(?)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봉작되지 않은 다른 궁인들의 소생에 비하면 이지만요. 실제로 신빈 신씨에 대한 대우는 나름 후했으니까요.
    그래서 전 본격ㅋ 딸바보ㅋ 태종ㅋ을 주장해봅니다. 비록 아들들에게는 엄격한 왕이겠지만 딸들에게는 따뜻한 아버지였길 바랍니다.
  • 초록불 2012/07/04 07:44 #

    본격ㅋ 딸바보ㅋ 태종ㅋ...^^
  • 검투사 2012/07/04 08:00 #

    전생에 궁예에 두한이 오야붕이었던 분께 개기다니... (<대왕 세종> 기준...)
  • 초록불 2012/07/04 10:01 #

    대왕 세종이면 한석규가 연기한 거 아니었나요? 제가 드라마를 잘 보지는 않아서...
  • Bluegazer 2012/07/04 11:08 #

    한석규가 분한 건 세종이었습니다. 태종은 김영철 분이 맞습니다.
  • 초록불 2012/07/04 11:34 #

    아, 그렇겠군요...^^
  • young026 2012/07/11 13:05 #

    한석규가 세종으로 나온 건 뿌리깊은 나무죠.
  • 셔먼 2012/07/04 08:19 #

    어쩌면 태종과 막역한 관계여서 그를 이렇게까지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초록불 2012/07/04 10:01 #

    그런데 아주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데서는 기록이 안 나오거든요.
  • 회색인간 2012/07/04 09:25 #

    저사람 미쳤구나... 태종이 누구야.....지 형제들을 눈하나 깜짝 안하고 쓸어버린 작자인데......
  • 초록불 2012/07/04 10:02 #

    과소평가한 모양입니다. 아니면 정말 미쳤거나...^^

    사실 저 사람 바보짓 일화는 하나 더 있는데, 크게 중요한 건 아니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 措大 2012/07/04 09:34 #

    태종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군요. 아침부터 즐겁게 읽었습니다.
  • 초록불 2012/07/04 10:02 #

    고맙습니다...^^
  • 듀란달 2012/07/04 10:01 #

    포은 정몽주를 때려죽이고 자기 형제도 눈 깜짝않고 죽인 인간에게......

    시간상 왕자의 난을 리얼타임으로 봤을 텐데, 이건 배짱이 아니라 그냥 앞뒤 못 가리는 바보로군요.
  • 초록불 2012/07/04 10:02 #

    그런데 인간 세상 살면서 이런 사람들 많이 본다...
  • 듀란달 2012/07/04 10:21 #

    굉장한 설득력이 있는 말씀이군요...^^;

    당장 모 '흐르는 모래'역사학자들도 있고...(먼산)
  • 초록불 2012/07/04 10:25 #

    그 "흐르는 모래" 강에 귀머거리 사오정이 산다지...^^
  • 셰이크 2012/07/04 10:03 #

    나는 내 형제에게는 차가운 한양남자. 하지만 내 딸들에게는 따뜻하겠지
    적절한 시기의 한 수는 배정되고 암담했던 가문을 현역으로 바꿔놓습니다.
  • 초록불 2012/07/04 10:25 #

    ^^
  • 2012/07/04 10:4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2/07/04 10:42 #

    1. 노리는 자리는 권궁주의 소생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거라고 보입니다. 그 집안이 좀 빵빵하니까 양수겹장이었겠지요. 사실은 그런 데까지 쓰기가 바빠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3. 맞는 말씀입니다.
  • heesang12 2012/07/04 10:45 #

    역시...옛날이나 지금이나 왠지 변한거는 없는것 같아요~~~~~~~~~~~~~~~~~~~~~~~~~~~~~~~~~~~~~~~~~~~~~~~~~~~~~~~~~~~~~~~~~~~~~~~~~~~~~~~~~~~~~~~~~~~~~~~~
  • 초록불 2012/07/04 11:34 #

    삶의 형태는 변해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니까 역사가 재미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 곧은나무 2012/07/04 12:25 #

    장가 보내기 싫으면 말이라도 곱게 하던가...
    정말 개념이 없었군요
  • 초록불 2012/07/04 13:48 #

    여전히 친구인 줄 안 미련퉁이죠.
  • Warfare Archaeology 2012/07/04 14:20 #

    쯧쯧쯧...안 됐다는 말밖에는...
  • 초록불 2012/07/05 01:45 #

    뭘 믿고 개겼을까요... 참...
  • 천하귀남 2012/07/04 15:23 #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말을 막하다니 망할만 합니다. 사리분별이 없었군요.
  • 초록불 2012/07/05 01:46 #

    사리분별이 중요하죠.
  • Reg Teddy 2012/07/04 17:10 #

    섣부른 패기부리다 폐기되었군요
  • 초록불 2012/07/05 01:46 #

    ^^
  • 놀자판대장 2012/07/05 14:56 #

    벼슬과 관직이 같은 것인줄 알고 있었는데... 차이점이 뭔가요?
  • 초록불 2012/07/05 16:33 #

    정확하게 쓴 게 아니어서 혼동의 여지가 있네요. 설명하기가 복잡해서 대충 쓴 겁니다. (무책임)

    녹봉을 받아가려면 벼슬은 있어야 하는데, 실제 정무를 보는 관직에는 나가지 못하게 했다...는 거죠. (이것도 그냥 기억에 의거한 거라...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 놀자판대장 2012/07/05 16:38 #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12/07/05 22:27 #

    그러니까 부마의 벼슬은 명예직으로 실제 관직은 아닌 것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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